이드 2부 – 583화
1019화
확신하는 이드에 대장 마법사가 고개를 흔들었다.
“왜 우리에게 이러는 것이오? 귀하가 찾는 그런 사람・・・・・・ 우린 알지 못하오!”
이 마법사, 아무래도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은 게 틀림없다. 담담하려 하지만 목소리가 흔들린다.
이드는 한층 깊어진 미소로 말했다.
“그럴 리가. 미완의 마탑 마법사가 랜달 포스터를 모른다니, 누가 그 말을 믿겠소?”
“……도대체 당신은 누구요? 어떻게 우리 소속을 아는 것이오?”
“토벌에서 지겹게 본 몬스터들을 세워 놨는데 모를 리가 없잖소. 나는 알아보라고 일부러 내세운 줄 알았소만?”
대장 마법사는 누가 자신의 목에 빵을 쑤셔 박은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랬다. 쉐어 가든에서 알아보라고 세워 놓은 몬스터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하나만 생각하고 둘은 고려해 보지 못했다.
토벌을 통해 미완의 마탑이 알려진 만큼, 이제는 쉐어 가든 말고도 당연히 알아볼 사람이 많은데 말이다.
이런 상황에 부정해 봐야 통하지도 않고, 꼴만 우습다.
무엇보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과 달리 칼날처럼 날카로운 이드의 눈빛이 자신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듯해 혓바닥이 뻣뻣하게 굳는 것 같았다.
“귀하는 도대체 누구요? 그리고 랜달 님은 왜 찾는 거요.”
“당연히 볼일이 있으니 찾는 거 아니겠소. 용건은 본인을 만나 해결할 일이고. 그보다, 랜달이 여기 있기는 한 거요?”
“없소. 그분은 마탑에 계시오.”
“후후후. 혹시 평소에 거짓말을 못한다는 말을 자주 듣지 않소?”
딱하다는 느낌을 담은 이드의 질문에 대장 마법사가 입술을 물었다. 이드의 말이 틀리지 않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소’라는 별명을 지어 줄 만큼 우직한 그다.
랜달이 자신을 대신해 이 병력을 이끌게 한 것도 그래서였다.
성급히 공을 탐하지 않으면서도 시킨 대로 은근히 쉐어 가든을 압박할 만한 자로는 명령에 충실한 그가 최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랜달의 오판이라면 지금처럼 이드가 앞을 막고 서서 그를 직접 상대하게 될 줄은 몰랐다는 것일까.
하긴 탑주로부터 경고를 가장한 명령을 받아 검후를 빼내는 일에 몰두하고 있을 랜달이, 갑작스러운 이드의 등장을 어디 상상이나 했을까. 까득.
초조한 것인지, 대장 마법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면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겠소. 귀하가 강자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제국의 토벌에 대해 들어 봤다면 알 것이오. 우리 미완의 마탑이 얼마나 강력한지!”
“글쎄. 귀하의 말과 달리 난 잘 모르겠소. 마탑이 나와 마주했을 때는 항상 꼬리를 말고 도망가기 바쁜 모습만 보여서 말이오.”
“지금 그 말은 우리 마탑을 모욕하는 거요?”
“사실을 말하는 것이 모욕이라면 그렇게 되겠지. 그보다 그쪽이야말로 날 모르오?”
토벌 중에 훔쳐보는 시선이 꽤 있었을뿐더러 거래를 통해 마탑의 예산까지 왕창 빼냈으니, 나름 마탑 안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수십 명이나 되는 마법사 중 알아보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걸 보니 딱히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당연히 자신을 알아볼 생각했던 이드의 어깨에 조금 힘이 빠졌다.
“내가 본 적도 없는 당신을 어찌 알겠소? 오만한 자. 당신이 강하다는 건 알지만, 마탑이 이렇게 모욕당하고도 가만히 있을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오!”
대장 마법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몬스터들이 땅을 박차고 이드에게 달려들었다.
커허허헝!
수백 마리가 단숨에 달려드는 모습은 마치 검은 파도 같았다. 그 뒤를 이어 마법사들이 영창과 시동어를 외치며 마법을 난사했다.
미리 마법진의 방위를 점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기본적인 마나 집적을 통해 발현된 마법은 그 하나하나가 대마법사가 사용하는 마법에 뒤지지 않는 위력을 가진 듯했다.
이드는 그 모습에 혀를 찼다.
방금 자신의 일 검에 수백 몬스터가 베어지는 걸 보고도 머릿수로 밀어붙이다니 말이다.
차라리 몬스터로 눈을 가리고 도주를 선택했다면 똑똑하다고 해 줬을 텐데.
“아무래도 오만하다는 말은 나보단 당신들에게 어울릴 것 같네.”
일라이져를 든 이드는 빠르게 마법사들을 살폈다.
요원이 말한 마법사의 숫자는 마흔여섯. 그러나 이드가 나타나고 마법진의 방위를 찍으며 모습을 드러낸 숫자는 그보다 많은 쉰다섯.
“세 명 정도면 되겠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 끝나는 순간 일라이져의 검신이 하늘을 향해 섰다. 이어지는 난화와 낙화의 연환식은 화려하고 잔혹한 꽃비가 되어 내렸다. 솨아아아!
흉악한 모습을 한 몬스터에게는 과분할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도 몬스터와 가까워지는 순간 섬뜩하게 변했다.
퓨퓨퓨퓸.
바람을 탄 듯 살랑이던 검화가 몬스터의 머리로, 어깨로, 또는 가슴으로 파고들며 핵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바닥을 차며 몬스터 속으로 뛰어드는 이드. 그 어깨와 손이 아지랑이처럼 흔들리자 콩 볶는 소리가 났다.
타다다닥.
꾸워어억.
동시에 이드를 향해 달려들던 몬스터 수십 마리가 각자 다른 방향을 향해 수직으로 떠오르더니, 그 자리에서 폭발해 버렸다.
마법사들이 날린 마법과 충돌한 것이다.
몬스터 디펜스. 이정도면 지구의 MD보다 성능이 좋을지도!
마법 중에는 위력이 강해서 한 번의 충돌에도 여력이 남은 것도 있었지만, 그런 마법의 앞에는 여지없이 두 마리째의 몬스터가 나타나 막아섰다. 몬스터를 베면서 동시에 마법도 막아 내는, 두 가지 작업을 동시에 진행한 이드.
보통은 따라 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그 어려운 일에 이드는 한 가지를 더하는 만행을 저지르기까지 했다.
쿠쿵!
마각철황격.
땅에 박아 넣은 발에서 시작된 경력이, 지맥을 타고 마법사들이 똘똘 뭉쳐 있는 곳에 이르러 솟아오른 것이다.
“커헉!”
“끄어어억!”
지면을 뚫고 폭발한 경력의 형태는 지뢰나 스톤 엣지 마법과 비슷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무작위로 공간을 휘감는 앞의 두 개와 달리, 이드의 기감이라는 레이더를 통해 목표를 정한 공격은 허공을 찌르는 법 없이 하나같이 마법사들에게 치명상을 가했다는 것이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진형의 일각이 완전히 무너졌다.
“실드를 이렇게 쉽게 뚫었다고?”
경악에 찬 대장 마법사의 볼이 푸르르 떨렸다. 그들이 만들고 있는 진형은 기사나 병사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것과는 다르다.
마법진에 기반해 정확한 방향과 마나를 공명시켜 마법의 위력을 상승시키는 브레인 유니온이었다.
이 브레인 유니온을 사용하면 자연스럽게 진형을 따라 대물, 대마법의 실드가 마법사들을 지키게 된다.
한데 그 실드가 한 번의 공격도 견디지 못하고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대장 마법사는 내심 진땀을 흘렸다.
이드가 강하다고 여겼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
“브레인 유니온을 페이즈 4로 변경하시오.”
그는 브레인 유니온을 단번에 세 단계 상승시켰다. 브레인 유니온은 마법사의 숫자와 실력에 따라 그 형태가 실로 다양하게 나뉜다. 그러나 현재 그들의 숫자와 실력으로는 페이즈 4까지가 최고였다.
중상을 입거나 사망한 마법사를 챙길 여유는 없다. 남은 마법사들이 바뀐 브레인 유니온에 따라 위치하며 전력으로 마나를 뿜어냈다.
당연히 이드는 그 모습을 그냥 보며 기다려 주지 않았다.
마법사들이 마각철황격을 경계하는 게 뻔히 보이는데, 굳이 그쪽으로 머리를 들이밀 이유가 있나.
끄그그극!
철판을 긁는 듯한 소리와 함께 수십 미터의 허공을 넘은 철관심인이 실드를 두드렸고, 다시 수명의 마법사들이 모든 구멍에서 피를 뿜으며 절명했다.
“페이즈 4의 실드가 왜 뚫리는 거냐고!”
철관심인이란 고절한 침투경을 알아보지 못한 마법사가 발작하듯 소리쳤다. 그뿐 아니라 두려움에 젖은 마법사들이 개구리처럼 펄쩍펄쩍 뛰었다. 마법사들은 이드에게 향하는 몬스터를 돌려 방패 대신 앞에 세웠다. 뒤이어 대장 마법사가 소리쳤다.
“제발 좀 닥치시오. 그리고 살고 싶으면 전력으로 마나를 투입하시오. 레기온을 일으키겠소.”
“차라리 도망칩시다.”
“불가능하오. 저 괴물이 그냥 보고 있을 리가 없잖소. 그리고 우리 임무를 잊지 마시오!”
급한 상황임에도 대장 마법사의 성격은 어디 가지 않는다. 그 말에 부득부득 이를 갈며 브레인 유니온에 마나를 쏟아붓는 마법사들이다. 불만은 많았지만, 그들이 보기에도 다른 방법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진형을 따라 차올라 고조된 마나가 사방으로 퍼지더니, 작은 호수의 파문처럼 다시 되돌아오며 뭉쳐졌다.
그에 따라 몬스터들이 제 형태를 잃고,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그 몸으로 마법사들을 감싸 보호한 거대한 말이었다.
검은 갈기는 불타는 것 같고, 이빨은 맹수의 것처럼 날카로우며, 전신에 털 대신 비늘이 솟아 있었다.
저와 비슷한 형태를 한 번 본 적이 있었던 이드는 혀를 찼다.
“겨우 생각한 방법이 숨는 거라면 실망인데.”
동시에 아직 남은 몬스터를 베어 내는 검신에서 뇌정화가 번개처럼 치솟아 말의 아래턱을 꿰뚫었고,
퍼걱.
그 안에 존재하던 몬스터의 핵은 가루가 되었다.
이드가 어떻게 몬스터를 이렇게 쉽게 처리할까.
그건 기감을 통해 몬스터의 핵이 있는 곳을 정확히 감지해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거대하게 변했다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거대해진 만큼 특유의 기운을 진하게 발산하는 핵의 위치는 더 명확하게 감지되어 노리기가 쉬웠다.
그렇게 말의 핵을 파괴한 이드가 막 돌아서려던 때였다.
차각차각.
“음?”
스스스슥!
분명 검은 연기로 변해 흩어져야 할 말이 그 형태를 유지했다.
게다가 목덜미의 비늘이 일어서더니 채찍처럼, 화살처럼 이드를 공격해 왔다.
그와 함께 이드는 말의 이마 부근에서 또 다른 핵의 존재를 감지했다.
“확실히 조금 다르긴 한 모양이네.”
동시에 비늘의 창이 이드의 전신을 꿰뚫었다. 하지만 그건 이드의 잔상에 불과했다. 부운귀령보를 밟은 이드는 이미 말대가리 앞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푸히히힝!
그에 말이 이드를 향해 입을 벌렸다. 물기라도 하려나 싶은 순간 검은 입안에서 시퍼런 번개가 튀어나왔다.
번개에서 느껴지는 마나 패턴은 이미 한 번 느껴본 것. 말의 몸 안에 있는 마법사들이 말의 입을 통해 마법을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한낱 마법사의 마법이 어떻게 이드보다 빠를까. 비늘의 창과 같이 번개가 허무하게 허공을 가른 순간, 이드는 말의 주둥이 위에 서서 녀석의 이마에 손을 대고 있었다.
순간 손바닥을 통해 말의 내부가 이드의 눈에 훤하게 드러났다. 턱에 있는 핵이 부서지고, 이마에 다시 나타난 만큼 또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다. 해서 이드는 단순히 핵을 부수지 않고 그 내부를 살핀 것.
물론 그 모습을 말도 마법사도 가만히 보고 있을 턱이 없지만, 어차피 순간에 끝나는 일. 이드에겐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과연 합쳐진 몬스터의 숫자만큼 핵도 많다는 거네. 쉽군.”
핵의 숫자가 많다. 하지만 결국 근본적인 형태는 같다.
푸욱.
머릿속에 숨어 있는 핵의 위치를 그려 낸 이드의 손이 파랗게 물들며 말의 이마를 뚫고 들어갔다.
푸히히힝!
그에 말이 머리를 털지만 이드를 떨어트리진 못했다. 대신 이드의 등을 노리고 비늘의 창이 날아들었다.
이드는 그런 모든 반응을 무시하고, 그대로 팔꿈치까지 팔을 박아 넣고는 근육을 꼬았다 풀었다.
그러는 동안 그 흐름을 따라 대맥에서 세맥으로 세찬 내력을 뿜어냈다.
파옥청강살.
말의 내부에 푸른 토네이도가 생겨났다. 거친 바람이 좁은 말의 내부를 휩쓸며 핵을 파괴하고 지나는 건 순식간이었다.
우뚝.
그와 함께 말의 몸부림도, 비늘의 창도 석상이 된 듯 굳어 버렸다.
잠시 후, 모든 걸 쓸어 버리고 배가 부른 토네이도가 푸른 바람이 되어 자신을 가두고 있는 말의 몸을 부수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쿨럭………….. 어쩌면 저자………… 이드 명예 후작?”
연기처럼 사라진 말의 안에서 나타난 마법사들은 하나같이 피를 토하고 있었다. 핵과 마찬가지로 말의 안에 숨어 있다 파옥청강살에 당한 거다. 그리고 그 중 한 마법사가 뒤늦게 떠오른 듯 멍청하게 중얼거렸고,
“역시 아는 사람이 있었네.’
이드는 반갑게 알은체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