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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59화


496화

에단은 바짝 긴장했다. 간파의 눈에 성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 잡혔기 때문이다. 이드가 자리를 비운 사이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간파의 눈을 항시 사용하고 있었던 덕분에 상황 변화를 빠르게 파악할 수가 있었다.

“아무래도 성에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드를 기다리며 검을 손질하고 있던 일리나가 검을 무릎에 놓고 에단을 돌아보았다. 그의 눈 속에서 돌아가고 있는 별을 보고는 그가 간파의 눈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뭔가 특별한 변화가 보이나요?”

“네, 현재 성안에 있는 병력이 저희를 중심으로 모여들고 있어요.”

에단은 말을 하면서 얼굴을 굳히고 있었다. 말을 하는 동안에도 포위망이 점점 두터워지며 방을 에워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자작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네요. 본심을 드러낸 건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만찬의 분위기가 좋았는데.]

라미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약 만찬 자리에서의 모습이 연기였다면, 연말시상식의 대상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이유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에단은 저 한쪽에 똬리를 틀고 있던 거대한 뱀이 움직이는 모습에 급하게 말했다.

“라미아, 자작도 움직였다. 이드 님께 연락해!”

[벌써 전했어요. 지금 지하 감옥에 있는데, 티티라는 산적을 챙겨서 바로 올라온대요.]

“지하 감옥? 안 보이는데.”

에단은 반문하며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그들이 있는 곳은 2층, 지하라면 최소 두 층 밑이다. 하지만 그의 눈이라면 충분히 보일 터였다. 그럼에도 일 층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은 보여도, 그 밑에서 움직이는 존재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했다. 비록 출입구는 허술했지만 그곳은 마법적으로는 잘 보호된 곳이었다. 초인을 죽여서 힘을 뽑아낼 때도, 자작이 그 힘을 포식할 때도 강력한 마나의 분류(奔流)가 일어나기 때문에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때문에 마법사의 탐지 마법을 포함해서 에단의 간파의 눈도 그 안을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마법 방어가 잘 되어 있는 감옥인가 보죠.]

라미아의 대답을 들으며 일리나가 손질하던 검을 납검하고 일어났다.

“그럼 아직 이드가 그 감옥에서 나온 게 아니겠네요. 에단, 자작은요?”

“막 2층으로 내려왔어요.”

다행히 배정받은 방은 계단에서 제법 멀다.

“저희가 이드에게로 움직이죠. 여기 그대로 있다가는 이드보다 자작을 먼저 보게 될 것 같으니까요.”

라미아가 일리나의 어깨로 내려앉으며 방향을 정했다.

[창문을 통해서 밖으로 나갔다가 무너진 벽을 통해서 가는 게 빨라요.]

라미아가 이드에게 전해 받은 그의 동선(動線)을 떠올리고는 말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짐을 풀지 않아서 따로 챙겨야 할 물건은 없었다. 

“그럼 제가 먼저 뛰겠습니다.”

에단이 검을 뽑아 들고서 말했다. 자신보다 실력이 좋은 두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여성을 먼저 뛰게 할 수는 없었다. 어디서 떳떳하게 밝힐 수는 없는 신세라지만 그 역시 며칠 전까지만 해도 기사 나부랭이였다. 에단은 창밖으로 보이는 상태를 이야기하며 검을 휘둘렀다.

“일단 오십 미터 거리에 있는 정원에 병사들과 기사들이 잠복해 있고, 창문 바로 아래에도 기사 두 명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둘 다 처리할 생각이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왼쪽을 맡겠습니다.”

에단을 말을 마치면서 창문을 검면으로 깨부쉈다. 크게 부서진 창문 유리를 떨어뜨려 바로 아래 몸을 숨기고 있는 기사들에게 피해를 입히기 위해서였다. 갑자기 유리 조각이 떨어져 내린다면 당황하고 부상을 입을 테니, 그때 쉽게 공격하겠다는 잔꾀였다.

‘좋은 생각이다. 그렇다면 나도!’

라미아는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 가지 마법을 추가했다.

“하이 그래비티 필드!”

슈슈슈슉-

순간 깨어진 유리에서부터 그 아래 기사들에게까지 땅으로 강하게 끌어당기는 고중력장이 형성되었다. 라미아의 마법에 비스킷처럼 가벼운 유리 조각은 강철처럼 무겁게 변해서 화살과 같은 속도로 기사들을 덮쳤다.

푸푸푹!

“커어억!”

아마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리 조각과 마찬가지로 고중력장의 범위 안에 들어가 있던 기사들은 무거워진 몸무게에 순간 반응이 늦었고, 그 순간의 차이로 유리 조각을 전신에 꽂은 고슴도치가 되어 절명하고 말았다.

누가 어떻게 반응하지도 못한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기사들이 바닥에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바닥에 착지한 에단은 라미아의 센스에 침을 꼴깍 삼켰다. 그 찰나의 순간에 이런 생각은 어떻게 하고 마법의 타이밍은 또 어떻게 잡았나 싶었다.

‘너무 많이 놀리지 말아야겠다.’

두려움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일리나가 그의 옆으로 떨어져 내리고 정원에 숨어 있던 기사와 병사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잡아라!”

와아~

[이쪽이에요!]

병사들의 함성 속에서 라미아가 나갈 방향을 가리켰다. 달리는 중에 몸이 날랜 기사들이 막아서기도 했지만, 그들로서는 일리나의 검과 에단의 초인기를 막아 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두 사람 앞으로 포위망을 만들어 가고 있던 벽의 일부가 모습을 보였다. 기사와 병사들로 이루어진 날카로운 벽이었다. 목표로 했던 부서진 성벽은 그들의 바로 뒤에 있었다.

“이런, 젠장!”

그들을 모습을 확인한 에단이 반사적으로 속도를 줄이려는 순간 라미아의 목소리와 함께 마법의 시동어가 들려왔다.

[그냥 달려요. 샤인 그라운드!(빛나는 대지)]

짜자자작!

땅에서 번개가 솟았다. 수십 줄기의 번개에 맞은 기사와 병사가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라미아의 다음 마법이 이어졌다. 

[에어로 봄!]

공기 폭탄 마법이었다. 폭발 소리도 굉장히 컸다.

퍼어어어엉!

쓰러진 사람들 중앙에서 터진 고압의 공기는 쓰러진 사람들을 가을 낙엽처럼 가볍게 날려 버렸다. 그들은 그대로 번개의 영향권 밖에 서 있던 병사들에게 날아가 그들과 함께 바닥을 뒹굴며 이차 피해를 냈다.

에단은 순식간에 말끔히 비워진 길을 바라보며 헛웃음이 나왔다.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봐도 이렇게 쉽게 해결될 상황이 아닌데, 단 두 번의 마법에 깨끗이 해결되어 버렸다.

“하하하하. 대단하다, 정말 대단해.”

[흥, 내가 대단한 걸 이제 알았어요? 실없이 웃지 말고 빨리 따라와요.]

에단이 라미아를 보는 시선을 달리하고 칭찬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라미아의 핀잔이었다.

에단은 다시 피식 웃으며 앞서 달리는 일리나의 뒤를 쫓았다. 다시 성안 복도 위를 달리기 시작할 때 휑하니 뚫린 벽 너머로 진형을 재정비하는 길 단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에서 탈출하기 전에 확인한 바로, 길 단장은 자작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자작이 왔습니다. 좀 더 서두르죠.”

에단이 걸음을 재촉하며 말했다. 그때 등 뒤쪽에서 유령 같은 음산한 느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왔다. 이 개 같은 년놈들!”

“흡!”

반사적으로 돌아본 에단은 삼십 미터 뒤쪽에서 혼자서 빠르게 달려오는 자작을 보고는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숨을 틔어 주는 목소리 또한 들려왔다.

“이드!”

“마스터?”

일리나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에단은 지하 계단을 올라 이쪽으로 나는 듯이 달려오는 이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드는 한쪽 어깨에 기절한 남자를 짊어지고 있었다.

서로를 향해 달리는 일행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양측이 교차하는 순간 이드는 남자를 에단에게 던져 버리고 일라이져를 뽑아 들었다.

“라미아, 두 사람을 부탁해!”

[걱정 말아요.]

라미아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이드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노려보는 자작을 바라보았다.

“초대해 주신 덕분에 지하에 준비해 두신 것들은 잘 봤습니다. 자작님.”

“이놈! 감히 날 속이고 농락해? 죽여주마!”

자작은 크게 외치며 허리에 매여 있던 채찍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손잡이를 시작으로 채찍 전체가 푸르다 못해 검은색처럼 보이는 기운에 물들며 스스로 자작의 허리를 풀고 나와 뱀의 꼬리처럼 끝을 흔들었다.

츄릭, 츄리리릭, 츄릭.

그러자 채찍 끝에서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났는데, 그것이 마치 뱀이 위협하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자작은 그 소리에 잔인하게 웃으며 크게 채찍을 휘둘렀다.

“과연 네놈이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확인하리라. 포이즌 니들!”

쐐에에엑-

자작은 큰 기합과 함께 크게 휘두른 채찍이 앞으로 뻗는 순간 팔을 당기고 손목을 교묘하게 흔들어, 채찍을 창처럼 꼿꼿이 세워 회전시키며 이드의 목을 노리고 찔러 들었다. 특히 그 끝에 채찍의 원심력을 타고 몰려든 검은 기운이 뱀의 머리 같았다. 실제로 그것은 독을 품은 뱀처럼 위험한 기운을 풀풀 풍기고 있었다.

이드는 그와 동시에 일라이져를 허공중에 크게 한 번 휘둘러 당겼다. 그때에는 이미 일라이져에 핏빛을 머금은 검강이 세워져 있었다. 이드는 일라이져를 허리춤에 놓고 분뇌보를 밟아 뱀을 혼란케 하고 몸을 한 바퀴 회전시켰다. 몸의 회전을 마친 끝에는 회전을 시작할 때부터 일라이져의 끝에서 뻗어 나온 수백가닥의 강사가 하늘거리며 이드의 몸을 따라 크게 호를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드의 의지가 더해지는 순간 수백의 강사가 하나로 모여 불꽃같은 대도(大刀)의 모습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검으로 도를 만들어낸 것이다.

“수라참마인 집속(集束) 영인(映刃)!”

대도는 태어남과 동시에 날카로운 소리로 허공을 찢으며 뱀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자고로 뱀은 목을 취하면 꼼짝하지 못하지.’

피이이이잉-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대도가 벼락처럼 뱀의 목에 붉은 이빨을 꽂았다. 하지만 이 독한 뱀 또한 호락호락하지 않아 검은 독아로 대도를 물어 버렸다. 순수하게 힘과 힘이 부딪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찰나였다. 두 힘은 결국 서로를 견디지 못하고 터져 나갔다.

콰아앙!

거대한 두 힘의 폭발은 광포한 힘의 폭풍을 만들어 내며 당장이라도 성을 무너트릴 듯 뒤흔들었다.


“이런, 제기랄. 도대체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하이탈 용병 길드 지부장이 초조한 표정으로 방 안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로서는 도저히 정규군이 움직인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지금 하이탈의 군은 자작성을 부숴 놓은 미친놈을 잡기 위해서 눈을 벌겋게 뜨고 있었다. 이곳으로 향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으로 모여드는 것이다.

“설마, 그 미친놈이 여기 숨어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니야. 그런 소식은 전해 들은 적도 없잖아.”

곧이어 부지부장인 일락도 도착했다. 하지만 일락이 나타난다고 해서 상황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이야기 끝에 우선 용병거리의 용병들부터 단속하기로 했다.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가장 선행되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덕분에 길드의 직원들이 모두 동원되어 용병거리를 소리치며 내달려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대부분 각자의 숙소에서 몸을 쉬고 있던 용병들은 빠르게 자기 정비를 하고 만약을 대비했다.

두 지부장은 책임자가 가까이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길드 건물을 나섰다. 그런 두 사람의 주변으로는 어느새 준비를 마친 삼십 명의 용병들이 나섰다.

두 지부장은 혹시나 영지군이 갑자기 미쳐서 난데없이 용병들을 공격하는 사태가 일어나지만 않기를 바라면서 책임자를 만났다. 책임자는 동문 수비대장이었다.

두 지부장은 그를 만난 후 대장의 안가를 중심으로 한 건물의 용병들을 빠르게 대피시켰다. 기사들은 성급한 그들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두 지부장은 모른 척해 버렸다. 동문 수비대장의 설명을 들어 보니 이번 일은 영지군과 블랙리스트 간의 문제다. 거대 세력 간의 다툼에 힘없는 용병들이 끼어서 다치는 것은 절대로 사양이었다.

용병들은 딱히 조심하는 것 없이 노골적인 움직임으로 대피를 서둘렀다. 그것은 최근 들어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대장에 대한 마지막 배려였다. 

“쯧, 거친 놈들이 귀여운 짓을 하잖아.”

대장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용병들의 배려에 쓴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달빛에 흐려 보이는 영주성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여기에 저놈들이 찾아 온 걸 보면 성에도 일이 났다는 소린데, 괜찮을지 모르겠군. 허긴, 지금 내가 다른 사람을 걱정할 때는 아닌가?” 

대장은 곧 깊게 숨을 들이쉬며 파이온에게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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