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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602화


1038화

로켓처럼 솟아오른 빛은 곧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이드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느릿하게 손을 들었다.

팡!

손끝에서 작은 폭음이 난 후, 이드의 검지와 중지 사이엔 은색의 긴 털이 잡혀 있었다. 암기 대신 털을 사용한 공격.

이드는 손에 쥔 털을 털어 버리고는 메르시오를 향했다.

“무모하네. 포기하지 않는 근성에 대한 칭찬이 필요한 건가?”

“흐흐. 이왕 날 위해 뭔가 해 줄 거면 죽어 주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농담까지 하는 걸 보면, 그 꼴을 하고도 살 만한 가봐.”

이드가 메르시오의 상태를 살폈다.

한쪽 팔에 의지해 겨우 몸을 반쯤 일으킨 그의 몸은, 명치 아래의 부분이 잘려 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나머지 절반은 이드의 발아래 놓여 있었다. 잘린 몸통에서 꾸역꾸역 내장과 피를 흘려 내면서 말이다.

그에 비해 몸을 일으키고 있는 상체에선 피가 흐르지 않았다. 메르시오가 뭔가 조치를 취한 것 같았다.

뭐, 몸이 잘리고도 멀쩡히 입을 열어 말을 하는 거에 비하면 새삼 놀라울 것도 없지만,

“트로피를 놓쳐서 아쉽겠다?”

“흐흐흐. 어떨까.”

“・・・・・・ 역시나 트로피가 직접적인 목적은 아닌 거로군.”

“좋을 대로 생각해라.”

“그러고 있다.”

빈정거리는 답에 그대로 되돌려 준 이드가 쪼그려 앉더니, 잘려 나간 반신을 사이에 두고 메르시오와 눈높이를 맞췄다.

당장 이드가 그 머리에 검을 박아 넣겠다고 달려들면 막을 여력도 없으면서, 번뜩이는 눈빛만은 여전히 사납다 못해 파괴적이다. 평범한 사람은 그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정신에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래 봤자 이드에겐 눈을 부라리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말이다.

이드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더 이상 싸울 수 없어서,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끝나서 아쉽지? 나도 동감이다.”

“무슨 개소리냐.”

메르시오가 으르렁거렸다.

왜 안 그렇겠나. 몸을 두 동강 낸 장본인이 갑자기 네 맘을 안다며 맘씨 좋은 자원봉사자처럼 말하는데, 그 말에 넘어가는 쪽이 이상한 거지. 하지만 이드는 메르시오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나도 아쉽거든. 너와 싸울 때면 짜릿하고, 흥분되지. 이게 마지막이면 서운할 것 같단 말이야.”

“개소리가 길군.”

“이대로 널 놓쳐 줄 수도 있어.”

“물론 공짜는 아니야. 싸움에서 이겼으면 얻는 게 있어야 하는 법. 혼돈의 파편 중 하나, 더도 덜도 말고 딱 하나의 위치. 사라진 드래곤들의 행방. 초인의 폭주 이유. 별의 의지. 이 중 딱 두 개에 대해서만 털어놔. 그럼 기꺼이 놓쳐 주지. 어때, 꽤 괜찮은 조건이지 않아?”

“미치겠군. 내가 이런 사기꾼에게 패배했다니.”

“이봐, 솔직해지라고. 너도 살고 싶은 건 사실이잖아. 그래서 지금도 떨어진 하반신을 조종하려고 애쓰는 거고.”

말과 함께 이드가 앞에 있는 메르시오의 다리에 손을 댔다.

벌떡,

그러자 늘어져 있던 하반신이 벌떡 메르시오를 향해 돌아섰다. 끊어진 몸통 부분에서도 다시 피가 솟았다. 그러다 이드가 손을 떼자 줄이 끊어진 인형처럼 다시 힘없이 쓰러지는 하반신이다.

당연히 이드가 강제로 하반신을 조종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손을 댐으로써 하반신에 대한 메르시오의 지배력을 잠시 통하게 해 주었다. 시니컬한 모습 뒤에 숨은 치열함이 드러나서인가. 비웃듯 올라가 있던 메르시오의 입꼬리가 내려오며 무표정이 되었다.

반대로 이드는 득의만만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자랑하듯 팔목을 쓰다듬었다.

“차원의 인・・・・・・ 빌어먹을.”

그곳에 선명하게 떠올라 있는 차원의 인에 메르시오가 이빨을 드러냈다. 그런다고 차원의 인이 겁을 먹을 것도 아닌데 말이다.

“정말 기막히지 않아? 몸의 일부가 떨어지는 순간, 그에 대한 본 주인의 지배력이 닿지 못하게 해서 자기가 지배권을 탈취하다니 말이야. 이 녀석에게 이런 기능이 있는 줄은 나도 지금 알았다고.”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신이 나 말하는 이드다.

그럴수록 메르시오의 기분은 나빠지는 듯했지만, 뭐, 어떤가.

사실 방금 하반신을 움직이게 한 것도 이드의 역할은 크지 않았다. 그저 메르시오의 몸에 손을 대, 그 몸을 덮고 있는 차원의 인의 힘 일부를 중화시켰을 뿐이다.

다시 말해 지금 하반신을 움직이려는 메르시오의 힘을 막고 있는 것은 오롯이 차원의 인의 힘이란 뜻이었다.

메르시오의 행동은 어차피 이드의 예상 범위 안에 있던 일이었다.

이미 웨어울프로 변하는 순간 반 이상 끊어진 신체가 회복되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나머지 잘려 나간 신체를 움직이는 정도야, 허공섭물이 가능한 기사도 가능한 일이니 메르시오 정도면 그렇게 어려울 것도 아니고 말이다.

다만, 메르시오의 하반신을 잘라 내는 것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차원의 인이 떠오를 줄은 몰랐다.

하긴 그러고 보면 정신의 관에서 메르시오가 도주할 때도 다리가 잘려 나간 순간 차원의 인이 깨어났었지 않던가.

‘그때와 지금의 상황을 정리해 보면 짧은 시간이라도 혼돈의 파편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순간, 원래 혼돈의 파편에 속해 있던 것은 바로 차원의 인의 먹이가 된다는 건가.’

이번에도 같았다.

메르시오의 다리가 몸에서 떨어진 순간 깨어난 차원의 인은, 메르시오가 하반신에 지배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막고는 바로 꿀꺽해 버리고자 했다. 앞서 정신없을 때와 달리 이번엔 이드도 그런 과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드는 이유도 없이 이런 과정이 감각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을 거라 여기고, 의형강기를 움직일 때처럼 의지를 전달해 보았다.

지금은 먹지 말고 잠시 참으라고.

통하면 좋은 것이고, 아니면 그만이라고 여긴 시도였는데 의외로 쉽게 성공해 버렸다.

그에 이드는 묘한 감동을 느꼈다.

여태 소통 불능에 제멋대로 움직이던 녀석이, 처음으로 자신의 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아직 멈추라는 것 이상의 소통이 가능한지 확인해 보진 않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어딘가 싶었다.

애완견처럼 차원의 인을 쓰다듬던 이드가 말했다.

“어때, 순순히 거래할 생각이 들어?”

“웃기지 마라.”

“좋게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지. 차원의 인. 먹어 버려.”

이드는 유감이라는 듯 혀를 차고는 차원의 인이 있는 왼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쩌어억!

그러자 차원의 인을 이루고 있는 문양의 일부가 팔목에서 일어나 몸을 부풀렸다. 그러더니 마치 짐승의 입처럼 벌어져 메르시오의 하반신을 한입에 꿀꺽 삼켜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 본래의 모습의 모습을 하고 팔목으로 돌아가 얌전을 떨었다.

“거참.”

하지만 이드는 이미 메르시오의 반신을 한입에 삼켜 버린 모습을 봤다. 이제 와서 아무리 내숭을 떨어 봐도 그의 눈엔 야수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사실 지금 이드도 애써 놀람을 가라앉히는 중이다.

당연히 이전처럼 가루로 만들어 흡수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통째로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조만간에 차원의 인을 붙잡고 제대로 대화를 시도해 봐야겠다고 느낀 이드다.

일단 지금은 메르시오를 상대하고 나서 말이다.

“음. 좀 과격한 모습인데, 충격을 받지는 않았겠지? ・・・・・・ 문제없는 것 같네.”

이드는 조용히 중지를 세워 대답을 대신하는 메르시오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간단히 말하지. 선택해, 잡아먹힐래. 협조할래.”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뀐 선택지를 들이미는 이드다.

그에 대한 메르시오의 답은 한결같았다.

“끝을 보자.”

쿠구구구.

말과 함께 메르시오의 몸이 공중에 떴다. 곧이어 그의 전신이 은의 송곳니가 된 듯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몸의 절반이 차원의 인에 먹혔기 때문일까. 메르시오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이전 전력의 반도 되지 않았다.

3%의 미묘한 차이만으로도 이드에게 한 번도 승기를 잡지 못했던 상황에, 거기서 다시 절반 이상의 전력이 깎여 나갔다. 좋은 말로도 이긴다고 할 수는 없으리라.

즉, 지금의 메르시오는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말 그대로 끝을 내자는 뜻이었다.

두두두두-

메르시오를 둘러싼 푸른빛이 한층 강해지면서 대기가 울고, 땅이 진동했다. 정말 바닥의 바닥에 있는 힘까지 박박 끌어 올리는 것 같았다. 힘의 절반을 잃었지만, 저런 모습이라면 짧은 한순간은 전력에 비견되는 파괴력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메르시오가 힘을 가다듬는 모습을 지켜보던 이드가 결심을 한 건지 움직였다.

그는 일라이져를 두고 두 손을 내밀고는 살짝 손을 오므렸다. 마치 메르시오를 끌어안듯.

그리고 이드의 입이 열렸다.

“원원대멸력!”

그와 함께 홀연히 나타나 메르시오를 조이기 시작한 고리.

콰득.

콰드드득.

“커윽…… 비…… 열…… 하…….”

비록 전력을 끌어 올렸지만 원래의 절반을 읽은 메르시오는 원원대멸력의 압력을 견디지 못했다. 푸르게 솟구치던 기운은 내부로 밀려 들어가고, 전신을 조이는 압력에 온몸의 뼈는 압착기에 눌리는 자동차처럼 부러져 나갔다.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던 메르시오는 억울해 죽겠다는 눈으로 이드를 노려보았지만, 그 눈을 마주한 이드는 오히려 당당하게 말했다.

“비열은 무슨. 내가 뭘 믿고 너와 싸우는데? 싸우는 척하다가 갑자기 들러붙어 자폭이라도 하면 나만 바보 되는 거잖아.”

“그러니까, 내가 널 어떻게 믿느냐고, 거래에 응하는 모습이라도 좀 보였으면 나도 생각을 달리했겠지만. 그것도 아니고 말이지.” 물론 메르시오가 거래에 응했어도 처음부터 놓쳐 줄 생각이 없었다는 사실은 비밀이지만 말이다.

찌지직.

그러는 사이 뼈가 다 부서지다 못해, 이젠 근육이 으깨지는 소리가 나기 시작한 고리의 안. 여전히 눈을 부릅뜨고 있는 메르시오지만, 이드는 그의 죽음을 알 수 있었다.

차원의 인이 메르시오를 먹기 위해 일어나려 했기 때문이다.

그에 이드는 원원대멸력을 풀고 차원의 인의 먹방을 허락했다. 그러자 좀 전과 같이 문양이 일어나 메르시오를 한입에 삼켜 버리고는 팔목으로

돌아갔다.

이드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누가 뭐래도 메르시오는 혼돈의 파편의 일인이다. 그런 메르시오를 삼킨 만큼, 차원의 인에 어떤 변화가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가 허무하게, 먹을 것이 사라진 차원의 인은 다시 잠든 듯 사라졌다.

의지를 일으켜 다시 불러 보지만, 반응은 없었다.

이드는 조금 실망하긴 했지만, 곧 미련을 버리고는 라미아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차원의 인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은 것이 어디 하루 이틀 일인가 말이다. “이드!”

“고생하셨습니다!”

“그런 싸움은 처음입니다. 존경합니다!”

그렇게 돌아온 이드를 가장 격하게 반긴 것은 라미아도, 일리나도 아닌 은의 기사들이었다.

그녀들은 마치 아이돌을 만난 팬처럼 격렬하게 환호를 보냈다.

이드는 그 모습에 조금 난감한 기색이더니, 슬쩍 손을 흔들었다.

곤란한 건 곤란한 것이고, 좋아해 주는 것에 기분 나쁠 이유는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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