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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632화


1067화

이드가 보유한 재산은 어마어마하다.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다 세어 보기 힘들 정도다. 거기에 얼마 전에 마탑에서 왕창 뜯어 내서 더 불어나기까지 했다.

그런 이드지만 이 땅에 그 앞으로 된 집은 하나뿐이다.

황제로부터 영지를 받기는 했으나, 가 본 적도 없었다. 괜히 발을 들였다가 여러 가지로 관계만 복잡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어차피 황실에서 관리하던 땅이다. 어련히 잘 관리되고 있으려고.

해서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이드의 마이 홈이지만, 현재는 주인이 자리를 비운 관계로 쓸쓸히 문이 잠겨 있었다.

그나마 저택을 관리하던 집사와 하인들도 유급 휴가를 주고 내보낸 상태였다. 혹시라도 저택을 비운 사이 침입자가 들어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애꿎은 관리인들이 희생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파아앗!

그렇게 아무도 없는 저택에, 주인이 은밀하게 돌아왔다.

그런 그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은 뿌옇게 일어난 먼지였다.

“집을 비운 지 얼마나 됐다고 먼지가 이렇게 많아?”

눈살을 찌푸린 이드가 발로 바닥을 꾸욱 눌렀다. 그러자 발끝의 내력이 압축되며 발생한 인력이 주변의 먼지를 끌어왔다. 그건 곧 동그랗게 뭉쳐져 작은 공이 되었다.

공기나 다른 물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고, 오직 먼지만 끌어모으는 모습.

그에 검후가 눈을 가늘게 뜨고 살피기 시작했다. 이드에게 묻지 않고 혼자서 그 원리를 파악해 보려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건 나중에 여유가 있을 때 그녀가 알아서 할 일.

이드는 단정하게 뭉친 먼지 공을 한쪽으로 툭 차 놓고는 기감을 확장했다. 지하실에서 저택, 정원을 넘어 그 밖으로까지.

순식간에 주변 일대를 감지 범위에 둔 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택 안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아. 딱히 침입한 흔적도 없고.”

“에헴. 당연해요. 허락도 없이 우리 집에 들어오는 건 제가 허락하지 못하죠.’

가슴을 활짝 펴는 라미아의 눈이 반달 모양이 되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드 일가가 집을 비운 후 저택에 침입하려던 작자들은 제법 지독한 꼴을 당했으리라.

물론 전혀 불쌍하게 느껴지지는 않는 이드였다. 불법 침입자 따위가 어디 감히 하소연을 한단 말인가.

본래 집이란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안전하게 보장되는, 개인의 완벽한 성역과도 같다. 그 성역에 허락 없이 침입한다는 것은 죽여 달라는 의미와 다를 바 없다는 게 이드의 생각이었다.

“대신 밖에는 감시하는 사람이 있어. 실력은 그리 뛰어난 것 같지 않아 보이지만.”

“알아서 지켜 준다면 따로 도둑 걱정은 안 해도 돼서 좋네요. 그만 신경 끄고 저희 일부터 처리하죠?”

“그러자.”

라미아의 재촉에 이드는 빠르게 걸음을 놀려 저택을 나섰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저택을 감시하던 자는 그런 세 사람의 존재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실력은 둘째 치고라도, 아무도 방문하지 않는 저택을 지키는 임무에 의욕이 촛농처럼 녹아 흐물흐물해진 상태였던 것이다.

그렇게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감시자를 지나친 세 사람은 빠르게 밤하늘을 갈랐다.

일부러 늦은 시간에 오긴 했지만, 그래도 자정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인지 소드 팰러스의 거리에는 아직 오가는 사람이 있었다.

심지어 발아래로 지나는 펍이나, 여관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의 표정이나 목소리는 하나같이 좋지 못했다.

이유는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검은 돌에서 부지런히 퍼 나른 존 워스에 대한 소문 때문이었다.

소드 팰러스에 사는 사람들은 크든 작든 소드 팰러스에 대한 자부심을 품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번 사건으로 그 긍지에 똥물이 튄 것이다. 

“이건 다 초인 놈들의 조작이야!”

“그거야! 그 말이 맞는 거라고!”

“아무렴! 철벽의 검왕님이 흑마법사라니. 헛소리도 정도가 있지!”

“미완의 마탑이 삼검왕님들을 세뇌했다는 게 말이 되냐, 이 새끼들아!”

“엉엉~ 검후님 어디 계십니까 억울합니다~~~”

술에 얼큰하게 취한 몇몇 취객은 거리에 나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곳곳에서 그에 호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 저게 무슨 소리예요?”

밤하늘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를 들은 검후가 황당함이 한가득 담긴 눈으로 이드를 찾았다.

“소문이 자극적일수록 더 빨리 퍼질 것 같아서 양념을 좀.

에린이 이런 작업을 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이드는 슬쩍 시선을 피했다.

“아니, 그렇다고 저런 소문을 퍼트리면 어떻게 해요!”

제법 성이 난 듯 검후가 눈을 부라렸다.

그도 그럴 것이, 속속 이어지는 취객의 고함은 하나같이 듣고 있는 검후의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민망하고, 어이없는 내용뿐이었기 때문이다. 소드 팰러스에 오색 기사단까지, 이야기의 주인공도 다양했다.

어쩐지 에린이 어떤 양념을 더할지 묻고 싶지 않더라니.

“난 한 번도 저런 소문을 내라고 한 적 없어. 결백하다고. 돌아서 에린에게 물어봐!”

“・・・・・・ 지금 그 말, 비겁하다고 생각 안 해요?”

“전혀~”

뻔뻔한 이드의 대답에 검후가 입을 뻐끔거렸다. 동시에 얼굴에 떠오른 배신감,

모르긴 몰라도,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던 이드에 대한 무언가가 부서진 듯했다.

“저기요, 두 분. 그런 이야기는 돌아간 후에 하고, 앞이나 봐요. 화원이에요.”

그때 라미아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녀의 말처럼 세 사람은 어느새 화원에 도착하고 있었다.

은색 기사단이 떠난 후, 이드의 저택만큼은 아니라도 화원에도 사람의 흔적이 없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나마 여긴 관리인들이 있어 먼지가 쌓이지는 않은 상태라는 게 차이점이라고 할까?

“이제 어디로 가?”

“따라오세요.”

이드의 말에 검후가 조용히 앞으로 나섰다.

이드의 저택과 달리, 화원에는 제대로 된 실력 있는 감시자가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마도 검후가 탈출했다는 정보를 확인했기 때문이리라. 혹시나 검후가 화원에 돌아올지도 몰라 저리 준비해 둔 모양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그랬다면 차라리 마르텔이라도 박아 놨어야지.’

이드는 눈을 번뜩이는 감시자들의 머리 위를 뛰어넘으며 속으로 혀를 찼다.

아무리 검후가 일 년간 검을 잡지 못해 감이 둔해졌다고 해도, 아무려면 이런 얼치기들에게 잡히길 바란 것일까.

이게 허공에 낚싯대를 매달아 놓고 그 바늘에 검후가 걸리길 바라는 것과 다를 게 뭐란 말인가.

세 사람은 거의 무인지경이나 다름없는 화원을 거침없이 가로질렀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은 바로 검후의 수련실이었다.

“설마 이 뒤에 있는 밀실이 목적지야?”

“맞지만, 조금 달라요.”

검후는 일전에 이드가 했던 것처럼 수련실의 벽면에 내력을 주입해 밀실을 열었다.

하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오히려 열린 벽의 일부에 손을 가져다 댔다.

밀실을 감추기 위해서, 또 수련 중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벽은 두껍게 만들어져 있었다. 검후는 그 두꺼운 벽 아래쪽 한 부분에 손가락을 넣어 뚜껑처럼 덮여 있는 돌을 들어냈다. 그리고 그 안쪽에 작게 드러난 공간에서 가죽으로 된 주머니를 꺼내 이드에게 건넸다. 

“이거예요. 로드께서 제게 남기시며 이드에게 전해 주길 바란 물건.”

“생각과 달리 단순하게 숨겼네.”

“이 문에 대한 비밀을 찾았다면 그쪽으로 집중할 테니까요. 허점을 이용한 거죠.”

“괜찮은 생각이네. 그럼 뭘 남겼는지 볼까.”

이드는 그 자리에서 바로 주머니를 뒤집었다. 그러자 이드의 손 위로 반짝이는 반지 하나가 굴러 나왔다.

예상했던 것과 다른 내용물에 당혹하던 이드는 곧 고개를 갸웃했다.

“이 반지, 왠지 어디서 본 것처럼 눈에 익은데? 라미아?”

이드는 반지를 라미아에게 건넸다. 액세서리라면 아마 아티팩트의 종류일 테니, 그녀가 살피는 것이 옳았다.

“맞아요. 이거, 일리나가 가지고 있던 그 반지와 비슷하게 생겼어요. 아마도 일리나에게 남긴 반지를 열쇠로 삼은 것 같아요.”

“이중, 삼중으로 보안을 해 둔 거네.”

이 정도면 보통 철저한 게 아니다. 당장 반지에서는 마나를 감지할 수도 없었다. 검후가 아니었다면 이드도 반지의 존재를 알 수 없었으리라. 또 행여 이드가 아닌 누군가 반지를 찾아냈다고 해도, 일리나를 만나지 않은 이상 거기에 무엇을 남겼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드는 검후를 통해 반지를 찾았고, 일리나도 함께하고 있다.

“그럼 내용물은 돌아가서 확인해야겠네.”

“궁금하긴 하지만, 괜히 손을 댔다가 망가지는 것보다는 그러는 편이 낫죠.”

이드의 말에 라미아가 반지를 돌려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마법 실력이야 드래곤도 한 수 접어줄 정도지만, 이 반지를 남긴 세레니아는 진짜 드래곤이었다. 그것도 모든 드래곤의 로드.

괜한 모험을 할 필요는 없었다.

반지를 손 위에서 한 번 굴려 본 이드는 품속에 잘 넣어 놓고는 검후를 돌아보았다.

“그럼 이제 카일란과 클라인 백작을 보러 가자. 혹시 둘 말고 만나 볼 사람은 또 없어?”

“……마르텔이요.”

마침 마르텔은 홀로 남아 소드 팰러스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 그를 처리하는 건 어려운 문제도 아니다. 세 사람이 나서면 그의 목쯤은 소리 없이 떨어질 것이다.

다만 문제는 이후에 이어질 후폭풍이다.

당장 발터가 들고나온 존 워스에 대한 문제부터 제대로 진행하기 어려울 분명했다.

게다가 이건 보기에 따라 라울과 했던 협상과도 어긋나는 일이 될 수 있었다.

“마르텔은 다음에 보고, 다른 사람은?”

“쩝. 없어요.”

간단히 고개를 젓는 검후다. 역시 그냥 해 본 말인 것 같다.

“그럼 누구부터 먼저 만나 볼래?”

“카일란이죠. 그라면 클라인 백작이 있는 곳으로 은밀히 이동도 가능할 테니까요.”

“좋아. 앞장서”

“……또 앞장서요?”

어쩐지 길잡이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입술이 툭 튀어나온 검후. 이드가 그런 그녀의 등을 밀고 나갔다.

“당연하지. 우린 카일란 단장의 집이 어딘지도 모른다고.

사실이었다. 이드가 아는 거라고는 카일란이 작업하는 대장간뿐이었다.

곧이어 세 사람이 나간 수련실에서는 소리 없이 열렸던 밀실의 문이 닫혔다.

다시 밤하늘을 달린 세 사람은 바쁘게 움직였다. 카일란의 저택에 들러 그를 만나고, 그와 함께 다시 클라인의 집으로 이동하기도 했다. 두 사람 모두 다시 만난 검후를 앞에 두고 주책없이 눈물을 보였다.

특히 이드가 검후 빠돌이로 인정하고 있는 클라인의 경우 눈물과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몇 번이나 세수를 해야 했을 정도다.

여우처럼 약삭빠른 모습을 보이던 남자가 검후를 향해 이렇게 순수한 감정을 보이다니. 이드로선 그 모습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렇게 한데 모여 앉은 다섯은 그간 밀려 있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검후를 중심으로 앞으로 어떻게 소드 팰러스를 정리하고 배신자를 처단할지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하나 당장 확정할 수 없는 요소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대화는 자연스레 자정을 넘어 새벽까지 이어졌다.

겨우 이야기를 정리하고, 다음 기회에 다시 만나기로 한 세 사람은 해가 뜨기 전 겨우 수도로 복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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