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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667화


1102화

이드가 ‘그 사실을 안 건 외박에서 돌아온 후였다.

일리나와 자리를 비운 어젯밤, 라울이 저택을 방문한 것이다.

“그런 일이 있었으면 알려 주지.”

어차피 수도 안이다. 부르기만 하면 저택으로 돌아오는 건 순식간이었을 텐데.

그에 대해 라미아는 묘하게 건방진 자세로 검지를 까딱까딱 흔들었다.

“고작 그런 일로 일리나의 행복을 방해할 순 없죠. 나도 의리가 있는데. 또, 이드가 없어도 라울 정도는 우리 선에서 해결할 수 있고.”

“……라울 앞에서도 그렇게 한번 말해 봐. 그럼 아마 계급장 떼고 한 판 붙어 보자고 하지 않을까?”

“흥, 과연 그럴 배짱이나 있겠어요?”

없지. 검후와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이상 당당하긴 힘들 거다.

그나저나 의리라.

나란히 앉은 일리나가 유난히 방글거리는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자신과 일리나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게 진짜 이유였던 것 같았다. 조금 미안하지만, 고마운 일이다.

좌우간 이렇게 다녀간 라울이 남긴 정보는 영혼의 관에 대한 토벌이었다.

그러고 보면 며칠 전 황녀는 라울이 은밀히 황궁에 들러 황제를 만났다고 했었다.

“몰래 만나서 이런 일이나 꾸미고 있었다니.”

라울이나 황제나 신경 쓸 사안이 한둘도 아닐 텐데, 그런 중에 이런 일까지 처리하는 걸 보면 정말 탐욕스러울 정도로 계산이 빠르다. 냉혹한 권력자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어쨌든, 당시에는 알리지 않았던 정보를 지금 와서 전달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이드의 카논 행 때문이었다.

라울이 말하기로는 토벌이 계획대로 진행되는 동안 이드가 카논에서 돌아오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당연히 미완의 마탑을 두려워하는 건 아니다.

초인들의 권익을 위해서라면 제국과도 전쟁 각을 세울 수 있는 바벨이, 자신들이 지원금을 들여 키운 마탑을 두려워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

이드는 라울이 자신을 챙기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혼돈의 파편에 대한 대비로군요. 정신의 관에서처럼 갑자기 튀어나오면 대응이 힘드니까.”

“우리가 내린 결론도 같아요.”

“약삭빠른 짓이 눈꼴시긴 해도, 이해는 가더라고요. 혼돈의 파편이라면 전부 그 괴물 늑대 같은 놈들일 텐데, 이드 님이 아니면 누가 상대할 수 있겠어요.”

검후에 이어 스폴이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는 듯 부르르 떨며 말했다.

정신의 관에 이어 쉐어 가든의 전투까지 함께한 은색 기사단으로서는 이드가 없는 토벌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어쩌면 그 마음이 라울 이상일지도 몰랐다.

그래서인지 스폴이 갑자기 이드를 잡고 늘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빨리 돌아오셔야 해요. 이드 님이 없어서 토벌에 빠지면 전부 이드 님 책임이니까요.

“갑자기? 거기다 그게 왜 내 책임이야?”

어처구니가 없는 이드지만, 스폴은 뒷골목 협잡꾼처럼 뻔뻔한 얼굴을 치켜들었다.

“이드 님도 없이 그 위험한 곳에 어떻게 제 사랑하는 부하들을 보내요? 거기다…… 은색 기사단이 움직이면, 모르긴 몰라도 저희 검후님도 절대 가만히 있지 않으실 테죠.”

“당연한 거 아니니?”

굳이 그런 걸 물어야 아냐는 듯 답하는 검후. 그리고 자기 말 대로이지 않냐며 콧대를 세우는 스폴.

이드는 쿵짝이 잘 맞는 사기꾼이 눈앞에 나타난 기분이었다.

말 몇 마디에 은색 기사단의 토벌 참가가 자신의 책임이 되어 버렸으니.

거기다 자식 같은 부하들과 사랑하는 검후의 안전이 걸린 문제라 그런지, 평소 외부 장착 양심 회로처럼 두 사람의 브레이크 역할을 해 주던 쉴라마저 조용하다.

그에 불현듯 사기꾼에 대한 대응 방법이 떠오른 이드였다.

“습격을 계기로 일타삼피를 노리다니. 역시 머리 쓰는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군요.”

바로 무시다.

그에 스폴이 펄쩍 뛰었지만, 꿋꿋하게 딴소리를 하는 이드에 결국 이야기의 흐름도 바뀌었다.

이이제이에 차도살인을 더한 라울과 황제의 계획이 확실히 대담하기는 했다.

이번 습격을 명분 삼아 영혼의 관에 대한 토벌을 기획하다니. 당연히 그 선두에 서는 것은 삼검왕과 소드 팰러스다.

황제는 존 워스에게 토벌의 선두에 설 것을 명령하리라.

존 워스가 돌아와 있다면 당연히 황제의 명령을 따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결국 존 워스를 대신해 두 검왕과 소드 팰러스가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 선다.

사실 그들은 이미 다른 꿍꿍이를 품고 있는 이들인 만큼 무시할 수도 있었다. 황제의 명령을 받은 당사자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라울의 생각은 반대였다. 오히려 다른 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에 더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삼검왕과 소드 팰러스의 가장 힘이자 지지자들은 기사들이다. 그러나 존 워스의 문제로 인해 기사들의 믿음을 저버리고 말았다.

삼검왕으로서는 최대한 빠르게 잃은 신뢰를 회복할 필요가 있었다. 개중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공으로 과를 덮는 것.

즉, 토벌에서의 활약이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삼검왕과 마탑이 끈끈하게 협력해 왔더라도, 그 관계가 파괴될 수밖에 없다. 아무렴 마탑의 안위보다는 소드 팰러스의 신뢰 회복이 먼저일 테니까.

그리고 토벌에 보는 눈이 많은 이상 노골적으로 다른 짓도 할 수 없다.

거기에 마지막 남은 영혼의 관을 지키기 위해 마탑도 필사적일 테니, 그 저항은 강력할 터. 당연히 토벌의 선두에 설 소드 팰러스의 피해는 그에 비례하게 될 것이다.

제국의 입장에서야 큰 피해 없이 기고만장한 삼검왕의 세력도 꺾고, 토벌을 공언한 마탑도 정리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거양득인 셈이다. 거기에 더해 마탑과 손을 잡으려는 마스에도 한 방 크게 먹여 줄 수 있는 것은 덤이고,

그렇게 라울이 남긴 이야기를 모두 전해 들은 이드는 한가지 확신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토끼몰이는 마스에서 시작되겠군요.”

계획을 라울과 황제의 뜻대로 끌어가기 위해서는 도망자들이 마탑으로 향해야 하니 말이다.

그것도 마스에서 따라붙는 눈을 피해서 교묘하게.

하지만 막상 토끼몰이를 시작하면 놀라게 될 것이 분명했다. 이드는 물론이고 라울과 황제까지, 설마 검왕이 마탑을 끌어들이려는 마음을 크게 먹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으니까.

“아마 제법 시끄러워질 거예요.”

“그럼 그 소란이 잦아들기 전에 빠르게 카논에 다녀오도록 하죠.’

그렇게 내일 이른 아침. 카논으로의 출발이 결정되었다.


카논으로 향하는 이드의 준비는 정말이지 단출했다.

그게 당연한 것이, 거의 모든 물품이 라미아의 아공간에 상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막말로 뜬금없이 무인도에 떨어져도 생활에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할 수준이라고 할까?

과장 조금 더해서 고래 등만 한 저택도 아공간에 들었으니 말이다.

사실 이런 철저한 준비는 이드의 고집 때문이었다. 일종의 경험이라면 경험일 수 있고, 트라우마라면 트라우마라고 할까?

중원에서 그레센으로, 그레센에서 지구로, 지구에서 다시 그레센으로,

갑자기 다른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경험으로는 세상 누구보다 많다고 자신할 수 있는 이드였다.

그렇게 세 번이나 세상으로 넘나드는 사이, 단 한 번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이젠 차원의 인을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기에 시간이 나는 대로 필요하다 싶은 걸 아공간에 챙겨 넣어 둔 것이다.

마치 겨울을 준비하는 다람쥐처럼.

그런 이유로 카논으로 향하는 이드의 등에는 작은 배낭 하나가 전부였다. 그것도 외부의 눈을 의식해서 준비했을 뿐, 정작 그 안에 든 건 샌드위치 네 쪽과 물이 전부였다.

저택 거실에서 간단히 작별 인사를 나눈 이드와 라미아는 지하의 마법진을 통해 수도를 빠져나왔다.

그 후 경공과 마법을 병행하여 카논의 국경으로 향했다.

일반적으로 상단의 이동에는 넉 달, 말을 타도 석 달이 걸리는 거리.

이드와 라미아는 그 거리를 단 일주일 만에 주파해 버렸다.

이런 속도가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트러블을 최대한 피한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두 사람을 제외한 동행이 없었기에 가능했다.

“중간중간 마커를 설치했으니까, 지금은 이렇게 오래 걸려도 돌아갈 땐 순식간이라고요.”

물론 그 시간도 길다면서 혀를 차는 라미아였지만 말이다.

매번 그 오랜 시간을 걸려 오가는 상인들이 들었다면 어처구니없어 할 만한 이야기였다.

어쨌든 출발하고 팔 일째 되는 날, 이드와 라미아는 국경을 넘어 카논의 땅을 밟게 되었다.

국경을 넘는 절차는 크게 까다롭지 않았다. 두 나라는 꽤 오랫동안 큰 문제 없이 지내 왔기에, 국경의 감시가 그리 까다롭지 않았다. 해서 간단히 용병패를 제시하는 것만으로 끝낼 수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 그런 두 사람을 맞이했다.

“카논 방문을 환영합니다. 두 분이 사용하실 숙소를 미리 잡아 두었습니다.”

거리에 나오면 수없이 볼 수 있을 것 같은 지극히 평범한 차림에, 밍밍한 얼굴을 한 남자. 그는 자신을 바벨에서 나왔다고 소개했다.

“라울 님이 말씀하신 분이군요.”

“제가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저 그 아래, 아래, 아래로 명령을 받았을 뿐입니다.”

사내가 민망하다는 듯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드는 그런 남자를 따라 준비된 숙소로 향했다. 쉬어야 할 만큼 피곤하진 않았지만, 며칠 동안 뒤집어쓴 먼지는 꼭 따뜻한 물에 씻어 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곳에 사는 현지인을 통해 카논의 정보도 확인해야 했고.

사실 이런 일을 위해 에단과 이그렌이 동행을 자원했었다. 하지만 다양하게 재주가 좋은 에단도 카논에 대해서는 초행이었기에, 굳이 속도를 포기해 가며 동행할 이유가 없었다.

에단이 이러니 이그렌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세상 경험에 있어서 에단에게 한참을 배워야 하는 이그렌의 동행은 말 그대로 짐 이상이 아닐 테니 말이다.

남자가 준비한 숙소는 상당히 고급스러운 여관이었다.

“꽤 비쌀 것 같은데요.”

“가능한 모든 걸 최고로 준비하라고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넉넉한 자금과 함께요.”

남자는 자신이 바벨에서 일하며 그만한 지원금은 처음 받아 봤다며 넉살을 떨어 보였다. 그런 중에도 이드와 라미아에 대해서는 정중함을 잃지 않았다.

이드는 도대체 라울이 내린 명령이 무언지, 또 이 남자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혹시 제가 누군지는 알고 있습니까?”

“모릅니다. 그리고 알려 주실 필요도 없습니다.”

빠르게 나오는 대답에 이드는 이 남자가 주로 어떤 일을 하는지 대략이나마 알 것 같았다. 손님을 맞이하는데 궁금해하지도 않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알았습니다. 그럼 그쪽은 어떻게 부르면 됩니까?”

“적당히 피터라고 불러 주십시오.’

“그러죠. 피터.”

어느 마을에라도 세 명 이상은 있을 법한 이름, 이드는 그 익숙함에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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