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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678화


1113화

진짜 침입은 지금부터인지도 모르겠다.

추적조의 모습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이드였다.

확실히 문은 미쳤다 싶을 정도의 보안 능력을 자랑했다.

해서 그걸 믿고 침입자에 대해서는 아예 손을 놓고 있구나 싶었더니, 설마 이런 걸 설치해 뒀을 줄이야.

물론 애초 설치 목적이 침입자 대비용은 아닌 것 같지만, 무슨 상관인가 지금 자신들이 곤란한데.

“이건 저도 돌아갈 구석이 없네요.”

그나마 믿었던 라미아도 포기를 선언했다.

“이 결계가 그렇게 대단한 거였어?”

“대단히 단순하죠. 그래서 어려워요. 오로지 반(反) 감응이라는 호론석의 성질을 이용한 거라 어떻게 찔러 볼 구석이 없거든요.” 

“드래곤도 포기할 만한 결계라.”

그레이드론의 지식을 이은 라미아가 모른다는 건 드래곤도 모른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음, 엄밀히 따지면 포기라기보다는 굳이 해제할 필요가 없었죠. 부숴 버리면 그만이니까.”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곳에 무작정 쳐들어간다?

하긴, 이 그레센 땅에서 그들에게 위협이 될 일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을까.

실로 최강의 종족이기에 보여 줄 수 있는 오만함이다.

“그럼 우리도 드래곤의 지혜를 따라 보자.”

아는 사람은 적지만, 이드 역시 그레이드론의 상속자.

다른 건 몰라도 재물, 그리고 힘에서는 드래곤에 지지 않았다.

해서 이드는 결계 안으로 망설임 없이 성큼 발을 들였다.


그리고 이드가 결계를 넘어서는 순간.

이드 일행이 목표로 삼고 있던 성안에서는 날카로운 소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삐이이이-

소리 자체가 크지는 않았지만, 그 묘한 음이 지독하게 청신경을 긁어 대 하던 것도 멈추게 만들었다.

거기에 영향을 받은 이 중 하나가 대련에 온 정신을 팔고 있던 뱅커올슨 남작이었다.

“이 소리는?”

휘두르던 검을 멈추고 귀를 기울인 남작은 좋지 않은 일임을 직감했다.

이딴 소음으로 좋은 일을 알리는 사람은 없으니까.

혹시 스승은 무슨 상황인지 알까,

남작은 자신의 상대를 해 주던 스승에게 몸을 돌리려 했지만, 마음뿐이었다.

뜨끔.

“적을 앞에 두고 한눈을 파는 것은 기사가 할 수 있는 가장 멍청한 짓이다.’

목덜미에서 시작된 화끈한 고통과 함께, 몸이 굳어 움직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마치 어미 고양이에 목덜미를 물린 새끼 고양이 꼴이다.

“옳은 말씀이지만, 빠른 상황 판단 역시 기사에겐 중요한 덕목, 대련보다는 실제 상황이 먼저가 아니겠습니까.”

“후후, 말은 잘하는구나.”

그와 함께 물러가는 검.

남작은 마비되었던 몸이 풀리자 목덜미에 흐르는 피를 닦았다.

“스승님께선 이 소리의 의미를 아시는지요.”

“나도 실제로 듣는 건 처음이다만, 결계에 외부 간섭이 생겼다는 걸 게다.”

“이 공간에 외부 간섭이랄 것이 있습니까?”

남작이 알기로 이 공간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이는 오로지 자신과 스승뿐으로, 그 외에는 끽해 봐야 바람과 먼지뿐이었다. 그러나 스승은 그런 남자의 반응에 혀를 찼다.

“원래 없다가 갑자기 생겼다면 그게 무슨 뜻이겠느냐. 가장 대표적인 외부 간섭이 뭔지 모르지는 않을 테지.”

“……적. 설마, 침입자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우릴 제외한 누군가 이 안에 들어오는 건 불가능합니다.”

“불가능이라. 그럼 매일 이곳을 오가는 너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사나이라도 되느냐?”

순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부정만 하던 남작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맙소사…… 그렇군요. 제가 달고 온 꼬리였어요.”

“지금까지 없던 침입자이니, 그렇게 보는 것이 제일 합리적이지.”

“죄송합니다. 스승님을 뵐 면목이・・・・・・ 없습니다.”

스승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인 남작을 안쓰럽게 보았다.

열심히 하는 것은 좋으나, 이리 눈치가 없어서야 정계에 나가 얼마나 버틸지.

“온전히 네 탓이 아니니, 사죄는 그만하면 되었다.”

“네? 제 탓이 아니라니요?”

남작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묻자, 스승이 탁자에 놓인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말했다.

“목표는 네가 아니다. 시골 영지의 남작이 무어 대단하다고 뒤를 캐겠느냐. 침입자가 쫓는 건 아마 네가 아니라 ‘그분’일 것이다. 그 말고는 이유가 없어.”

스승은 단언했다.

기실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고작 변방의 남작 따위를 쫓는 일에 이 공간에 발을 들일 정도로 뛰어난 자들이 함께하지는 않았을 테니.

“다행…… 아니! 그럼 더욱 큰일이 아닙니까. 그분을 쫓는 자들이라니. 이 공간에 발을 들인 이상 결코 살려 보낼 수는 없겠군요.”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한 듯 빠르게 낯빛을 회복한 남작이 새삼 전의를 태웠다.

스승은 이 순진한 제자의 모습에 내심 혀를 찼다.

하나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대련에 쓰던 검을 구석에 던져 놓고 자신의 애검을 들었다.

이 공간에 발을 들일 정도의 능력을 갖춘 인물들이었다.

즉, 결코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자들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곧 이어질 전투에 긴장보다는 흥분되는 이유는 왜일까.

‘이 안에 너무 오래 있었나.’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지키고 있는 일이 지루했던가?

아니다.

그보다는 이 안에서 홀로 고독하게 쌓아 올린 무공을 드디어 펼쳐 낼 생각에 즐거운 것이다. 히죽.

그 증거로 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남작이 그 모습에 이상함보다는 오싹함을 느낄 때였다.

스스스슥.

그들이 디디고 선 바닥에 갑자기 검고 복잡한 문양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미소가 씻은 듯 사라진 그는 대신 혀를 차며 옆에 놓인 의자로 걸어가 털썩 주저앉았다.

“재수도 없지. 하필 초인 놈들이 발을 들일 건 뭐란 말인가. 흥이 식는구나.”

남작 역시 그런 스승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검을 쥔 손에 힘을 뺐다.

앞서 알람의 뜻은 몰랐지만, 이 마법진의 용도는 그도 익히 알았기 때문이다. 마법진 안으로 들어온 초인을 녹여 그 정수를 뽑아내는 용광로,

그게 바로 방금 나타난 마법진의 정체였다.

초인이라면 그게 누가 되었건 이 용광로에 발을 들인 이상 살아나갈 수 없다.

즉, 재주 좋게 이 공간에 발을 들이민 침입자는 제 죽을 자리를 찾아든 불나방이었다는 것이다.

검은 마법진은 물에 떨어진 물감처럼 빠르게 번지기 시작했다.

마법진의 핵인 ‘성’은 사실 성이라기보다는 콜로세움에 더 가까운 형태를 하고 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콜로세움에 적당한 생활 공간을 갖춘 성이 붙어 있는 모양새다. 콜로세움 가운데는 넓은 연무장이 있다.

조금 전까지 두 사람이 대련하던 곳으로, 거기에 깔린 하얀 돌에는 붙인 흔적이 없었다.

마치 하얀 돌산의 허리를 뚝 잘라 옮겨 온 듯했다.

그러나 이도 콜로세움 너머로 삐죽 솟아 있는 기형의 돌산들을 보면 어려운 일은 아니다 싶다.

아니, 애초에 이 황량한 공간에 이런 성을 지었다는 사실 자체가 더 말이 되지 않는 일이기도 했다.

그런 하얀 연무장이 지금은 검은 마법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심지어 사방으로 번진 마법진은 원형의 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하더니.

화르르륵.

벽 위에 만들어진 스물다섯 개의 화로에 모여 검은 불길과 함께 연기를 뿜어냈다.

그 모습에 남작이 말했다.

“파티 시간이로군.”


이드가 알아차린 건 곧 시작될 전투에 기감을 활짝 열어 둔 덕분이었다.

그건 어떠한 형태도 없었다.

굳이 표현하면 땅을 기어 다니는 어둠이라고 할까.

“전방에서 습격입니다. 방어하세요. 나머지는 제 뒤로!”

이드의 경고와 달리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에 대해 의심하거나 반문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마추어가 아니다.

평범한 공격이었다면 굳이 경고할 필요도 없다.

마리를 포함해 이드와 가까운 거리에 있던 이들은 이드 뒤로 재빨리 이동했지만, 나머지는 굳이 이동하지 않고 방어 태세를 취했다. 어떤 공격에도 쉽게 깨지지 않으리라.

반대로 이드는 그 모습에 불안함을 느꼈다. 분석이 아닌 예지에 가까운 직감이었다.

하지만 적의 습격이 정확히 어떤 유형인지 모르기에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우선 확실한 것부터 처리한다.

이드는 적의 습격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정체불명의 공격이 정확히 이드의 제공권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이드는 자신들을 덮치는 습격의 정체를 파악해 냈다. 

‘이건 의념이다. 하지만 무공이 아닌 마법의 형태. 의념 보다는 개념인가.’

마치 부모님의 잔소리나 황제의 황명 같은 거랄까.

둘 다 칼이나 방패로 막아 낼 수 없으며, 그걸 듣는 사람은 크든 작든 영향을 받는다.

이 습격의 정체는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상대에게는 운이 없게도 의념이라면 이드도 쉼 없이 다루고 있는 화두였다.

그가 가진 최강의 수인 의형강기의 의지가 의념을 다듬어 낸 최종 형태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의념을 잘라 낼 수 있다는 뜻이다.

“갈라져라.”

곧게 뻗은 황금빛 수도가 허공을 갈랐다.

작렬한 폭발도 화려한 검강의 분출도 없었지만, 그를 대신하는 이드의 의지가 땅과 하늘을 가르며 끝없이 나아갔다.

쩌어억.

그와 함께 음습하게 기어들던 의념이 칼을 댄 비단처럼 갈라졌다.

마치 커다란 바위를 만난 냇물처럼 의념은 이드와 그 뒤의 초인들을 비껴갔다.

문제는 이드의 보호 밖에 있던 초인들이었다.

어떤 공격이든 막을 수 있다고 자신하던 그들은 아무런 공격의 기미가 보이지 않음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잠시 후, 발끝부터 시작된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입을 딱 벌리더니 썩은 통나무처럼 쓰러져 버렸다. 

“끄아아악!”

빠득! 빠드드득!

참을성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거의 모두가 아기처럼 비명을 질렀고,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있는 이들은 혀를 깨물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한데 그 힘이 얼마나 강한지 이가 깨지고, 잇몸에서 피가 흘렀다. 그 모습에서 그들이 받는 고통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찰스!”

“마리 씨, 내 뒤에서 움직이지 말아요. 라미아!”

가짜라도 부부는 부부인 모양이다.

이드는 움직이려는 마리를 세우고는 라미아를 불렀다.

그 뜻을 파악한 라미아가 즉시 회복 마법과 함께 파마의 결계를 만들어 냈다.

대마법사라는 말로도 부족한 그녀는 이드와 마찬가지로 습격의 정체를 알아낸 것이다.

파마의 주문은 악념으로부터 정신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 즉, 의념의 방어와도 일맥상통한다.

“커헉.”

“아아악! 아직! 아직이야!”

과연 비명의 크기가 줄었다.

하나 아직 의념에서 온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듯했다.

그에 라미아가 혀를 차고는 흩어진 그들을 이드 등 뒤로 모았다.

그곳이야말로 의념의 청정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곳은 사방 보이는 모든 곳이 성에서 시작된 음습한 의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봐, 조금만 참아.”

“혹시 모르니까 만지지 말아요.”

라미아는 동료들을 걱정하는 추적조를 보며 경고했다.

그에 나머지는 고개를 끄덕여 각자 거리를 유지하고는 사방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현재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거기에 더불어 이번 임무는 정말이지 처음부터 지금까지 하나같이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도대체 이게 뭡니까?”

그리고 그런 중에 들려온 피터의 목소리에 라미아가 눈을 반짝였다.

그 역시 이드의 보호 아래 있지 않았는데 어떻게 저렇게 멀쩡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피터가 이 공격에 대한 해답이 될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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