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680화
1115화
삐이이이-
성에 다가갈수록 소리는 커졌다.
거리가 가까워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라미아가 그랬다.
호론석 결계는 단점인 짧은 수명을 보완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다중 설치를 한다고.
과연 첫 번째 결계 뒤로도 세 개를 더 넘었고, 소리는 그때마다 배로 증폭되었다.
덕분에 성 앞에 도착한 지금, 그저 껄끄럽던 정도의 소리는 어느새 음향 대포 수준으로 커져 있었다.
하지만 참새도 아니고, 소리만 커 봐야 무슨 소용인가.
물론 그 안에 초인에게 치명적인 의념 마법도 함께 담겨 있긴 하지만, 어차피 성 앞에 도착한 이드와 일행에게는 아무런 위협도 될 수 없었다. 침입을 확인했고 초인에 대한 공격도 있었겠다. 이렇게 달려오면 누구 하나는 나올 줄 알았거늘 여전히 소리만 요란스레 빽빽 질러 댈 뿐 아무도 없다.
그렇기에 이드는 멈추지 않았다.
“성안까지 곧장 진입합니다.”
다만 마중 나오지 않은 데 대한 섭섭한 마음을 담아 가볍게 진각을 밟았다.
목표는 앞을 막고 선 커다란 성문.
회녹색의 괴상한 디자인은 밖에서 게이트 역할을 하던 문과 똑 닮아 있었다.
간단히 말해 괴상하게 생겼다는 뜻.
저런 흉물은 빠른 철거가 답이었다.
꾸어어엉.
발끝에서 터진 마각철확격의 충격파가 수직이 아닌 수평으로 뻗어 나갔다.
땅속을 달리는 진각에 땅 표면이 쩍쩍 갈라졌다.
소형 지진이랄까.
그렇게 꿈틀거리는 용과 같은 힘이 문 아래서 분출되었다.
빠가각!
문이 설치된 지반은 물론, 비교적 약한 부분을 노린 공격이었다.
효과는 매우 컸다. 단단해 보이던 문의 중앙을 타고 굵은 균열을 만든 것이다.
땅을 달린 용이 승천한 흔적 같다.
와르르르ᅳ
하지만 그 흔적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도 순간이었다.
순식간에 보기 흉한 돌무더기가 된 문 너머로 컴컴한 성 내부가 드러났고, 이드는 거침없이 성안으로 발을 들였다. 화륵, 화륵, 화르르륵.
그러자 걸려 있던 초에 저절로 불이 붙으며 내부가 흐릿하게 밝아졌다.
“아직도 초를 쓰는 곳이 있다니. 구식이네요.”
그에 뒤이어 들어선 라미아가 혀를 찼다.
어지간한 성과 귀족 저택에선 이미 초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거의 모든 조명이 마법 물품으로 대체된 까닭이다.
그럼에도 아직 초를 쓴다면 그건 고전적이라는 소리보다는 가난하다는 평가를 듣기 딱 좋았다.
마지막으로 들어선 피터가 주변을 살피고는 의혹을 내보였다.
“구조가 좀 특이하군요. 문을 들어서자마자 긴 복도라니. 위로 올라가는 계단도 보이지 않고요.”
거기에 초를 밝혀 둔 복도는 절로 음산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마치 이곳으로 오면 아주 끔찍한 일이 생길 거라고 암시하는 듯하달까?
“일단 다른 길이 없으니 여길 따라가 보죠. 무슨 의도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별 재미 없으면요?”
“다 때려 부숴야지.”
라미아의 말에 짧게 답한 이드가 복도를 따라 발길을 옮겼다.
뚜벅뚜벅.
창도 방문도 없기 때문일까.
마치 지하를 걷듯 발소리가 울린다.
복도는 완만하게 우측으로 휘어 있었다.
외부에서 보던 둥근 성벽을 따라 만들어진 것일까. 그럼 이 복도는 무슨 의미일까? 그런 의문이 생기려는 찰나였다. 피이아-
느닷없이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등 뒤에서부터 화살들이 날아왔다.
티티팅!
하지만 그건 누가 움직일 필요도 없이 자연스레 발동된 라미아의 실드에 막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드는 그중 하나를 주워 들었다.
화살촉에는 녹이 슬어 있었다.
“일반 화살도 아니고, 뭐, 파상풍에라도 걸리란 거야?”
문을 뚫고 들어온 상대가 이런 허접한 공격에 당할 리는 없었다. 정녕 그렇게 믿었다면 상대는 어쩌면 터무니없는 바보일지도 몰랐다. 이드가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텅! 터텅! 터터텅!!
일행이 지나온 복도의 천장이 차례차례 내려앉으며 돌아갈 길을 막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깥쪽에서부터 실시간으로 내려앉아 그들이 있는 곳과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치 어서 도망가지 않으면 피떡으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협박하는 것 같은 모습.
“너무 노골적이고 고식적이네요. 얘네가 진짜, 누굴 바보로 아나.”
“그렇지. 우린 바보가 아니지. 그런데 여기에 당한 사람도 있나 봐.”
이드는 코웃음을 날리는 라미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한쪽을 가리켰다.
벽과 바닥에 남은 검붉은 흔적. 그것의 의미는 충분히 짐작 가능했다.
저 느리게 무너지는 천장에 깔리진 않았을 테니, 그보다 앞선 화살에 당했으리라.
“여긴 그럼 사냥감 몰이를 위한 공간인 걸까요?”
“아직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일단 기분이 나쁘긴 하네.”
굳이 따지면 이드와 라미아는 존 워스를 잡기 위해 온 사냥꾼인 셈이었다.
한데 이렇게 갑자기 역으로 입장이 바뀌다니.
“그보다, 일단은 저희도 저걸 피해 움직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피터가 초조해하며 말했다.
무너진 천장의 잔해들로 인해 일어난 먼지가 일행에게로 밀어닥치고 있었다.
위쪽을 말없이 노려보던 이드가 고개를 끄덕인 것도 그때였다.
“그래야죠. 하지만 저런 유치한 장치에 쫓기고 싶지는 않으니, 저것부터 해결하고 갑시다.”
직후 폭죽이 터지듯 눈부신 황금빛이 다섯 번 번뜩였다.
애용하는 혈뇌천강지보다 빠르지는 않지만, 돌과 같은 물질에 대한 관통력은 더 뛰어난 금령원환지였다.
지강의 광채가 복도의 벽을 뚫고 사라짐과 동시에 벽 너머로부터 진동이 일어났다.
터텅. 끼이이익.
무언가 부서지고 어긋나는 소리. 직접 보지 않아도 결과가 눈에 뵈듯 선했다.
꺼거거걱.
과연 천장이 무너지기를 멈췄다. 정확히는 천장을 의도적으로 떨어트리던 장치가 망가진 것이다.
“……간단하군요.”
사실 보기처럼 간단한 일은 아니다.
공간의 특수성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지만, 이 복도까지 온 인물들은 절대 평범하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그런 이들이 피를 뿌렸다.
다시 말해, 보이는 것처럼 형편없는 수준의 기관이 아니라는 의미다.
어디까지나 이드가 특별할 뿐.
무지막지한 채권자를 멈춰 버린 세 사람은 다시 찬찬히 복도를 따라 움직였다.
처음엔 드문드문 보이던 피가 엉겨 붙은 자국이 점점 많아졌다.
그건 이후로도 특이한 함정이 많이 나왔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함정들은 한 번 나타난 후 다시는 쓰지 못하게 되었다.
이드가 보이는 족족 철저하게 부숴 버렸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함정에 들러붙은 핏자국과 찢어진 옷, 그리고 부서진 뼈들이 그의 기분을 거슬렀기에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그런 이드의 기분을 결정적으로 상하게 만든 게 있었으니, 바로 성을 한 바퀴 돌지 않았나 싶을 시점에 나타난 오르막길이었다.
아무래도 계단을 대신해 위층으로 오르는 역할을 하는 모양이었다.
문제는, 이런 식이라면 이와 같은 복도를 앞으로 네 바퀴 정도는 더 돌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드의 짜증에 마침표를 찍는 것처럼 경사진 복도를 따라 밀려 내려오는 노린내와 온갖 악취들.
그건 짐승의 냄새와는 달랐다.
절대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드에겐 너무 인상 깊은 순간이었기에 각인되듯 기억에 선명히 남은 몬스터의 체취였다.
피터가 코를 벌름거렸다.
“킁킁. 이건 고블린의 변 냄새. 오크도 있군요. 그 뒤의 희미한 비린내는 확신하긴 힘들지만 리자드맨이나 트롤 같습니다. 그나저나 대단하군요. 이놈들이 한곳에 모여 있을 녀석들이 아닌데.”
과연 전문가라고 할까.
이드와 달리 냄새만으로 몬스터의 종류까지 짚어 내는 피터였다.
“그런데, 여기서 몬스터가 생존할 수 있나?”
오르막 너머로 보이는 2층도 1층과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다시 말해 먹을 것이 없다는 소리다.
몬스터는 본래 식탐이 굉장한 놈들이다.
죽으면 죽었지, 굶고는 살지 못하는 놈들이라고 할까?
특히 오크는 식량이 부족하면 따라 제 동족도 잡아먹는 놈들이다.
한데 피터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고블린에 오크, 리자드맨에 트롤까지 있단다.
듣자 하니 순서대로 잡아먹히기 딱 좋은 상하 관계였다.
“일반적으로 던전에서 사용하는 방법은 동결시켜 두는 건데요.”
일종의 콜드 슬립이다. 다만 그 부작용이 꽤 심각하다. 기억이나 지능에 문제가 생기니까.
하지만 침입자를 막고, 테스트하는 용도로는 딱 적당했다.
현재 잡초 하나 없는 이 황량한 공간에서 몬스터를 유지하기엔 최고의 방법이랄까.
하지만 이드는 어쩐지 그건 아닐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원래는 이 쓸데없는 뺑뺑이는 그만두고 바로 직진하려고 했는데.
“올라가요?”
“응, 조금・・・・・・ 신경 쓰이는 게 있네.’
말과 함께 이드가 2층으로 올랐다.
그와 동시에 몬스터의 노린내가 머리가 띵할 정도로 덮쳐 왔다.
아무래도 창문이 없어서 더 그런 것 같았다.
“실프. 악취 제거.”
반사적으로 실프를 부른 이드는 곧 놀라고 말았다.
언제든 부르기만 하면 바람처럼 달려오던 작은 꼬마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프? 노움?”
실프만이 아니었다. 노움은 물론이고 중급 정령인 노드도 부름에 답하지 않았다.
“이건 이 공간의 특이성 때문일까?”
그 모습을 흥미롭게 보고 있던 라미아가 잠시 눈을 굴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확률이 높아요. 마찬가지로 이곳이 황량한 이유도 자연계를 지탱하는 정령이 배제되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가장 크고요. 그런데・・・”
“뭐?”
“이런 공간을 만들 때는 보통 실체하는 공간을 복사해요. 그래야 제작이 쉬우니까.”
당장 이 공간만 해도 그렇다. 비록 황량하긴 해도, 모습은 밖에 있는 뱅커올슨 영지 일부의 모습을 그대로 가져온 형태였다.
“이때 정령의 영향력도 같이 미치게 돼요. 보통은 말이죠. 일부러 배제하는 작업이 더 까다롭고 힘들거든요.”
“그렇겠지. 굳이 정령을 멀리할 이유는 없으니까. 한데 이런 상황인 걸 보자면, 존 워스가 일부러 배제했다는 거로군.”
“네. 꿍꿍이가 있다는 거죠.”
이드는 턱을 쓰다듬었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의심이 더욱 깊어진다.
굳이 번거롭게 정령을 배제해야만 했던 까닭이 무엇일까.
또 그 영향력은 어느 정도일까? 중급 정령까지는 확인했고, 상급 정령은? 정령왕은 어떨까?
문득 일어나는 충동에 이드는 고개를 저었다.
궁금하긴 하지만 정령왕까지 불러서야 영 곤란해진다.
숨어서 지켜보고 있을 뱅커올슨 남작과 의문의 인물이 울거나 도망가 버릴 수도 있지 않은가.
그만큼 정령왕이란 존재는 귀하고 또 강력하다.
“일단 여기서 뭘 하는지 확인하고 확인해 보자.”
“뭘 하는지 확인하고, 그다음은 뭘 더 확인해야 하는데요?”
“그건 나중에 직접 보고, 일단 가자고.”
말을 마친 이드는 앞으로 쭉쭉 걸어갔다.
그 걸음엔 무언의 확신이 담겨 있었다.
다만 좋은 일은 아닌지 그 표정은 담담한 가운데에도 딱딱하게 굳은 채였다.
‘무슨 일이기에 저러는 거지?’
그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피터.
하지만 그의 얼굴이 구겨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