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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693화


1128화

멍청한 실수에 대한 강렬한 쪽팔림을 애써 견딘 피터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럼 이제 두 분께선 바로 돌아가시는 겁니까?”

이드는 고개를 저었다.

“일단 하루, 이틀 정도 더 머물면서 영지를 살펴볼 겁니다. 이번에 붕괴된 던전과 성에 쌓여 있는 호론석을 보면, 이 땅에 아직 뭐가 더 있을지

모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남작에 대한 심문부터 빠르게 부탁하죠.

“그런 거라면 기대하십시오. 내일 아침까지 남작의 인생을 통째로 가져오겠습니다.”

자신만만한 호언장담에 벌써부터 남작의 곡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기대하죠. 그럼 그때까지 우린 좀 쉬겠습니다.”

그만 나가 보란 소리였다.

사실 쉬겠다는 건 핑계고, 세레니아가 보낸 드래곤 하트 등을 조용히 살펴보고 싶었다.

그러나 순순히 나갈 것 같았으면 애초에 피터가 그렇게 쪽팔림을 견딜 이유가 없었을 거다.

“그……쉬시기 전에 보고서 작성에 필요한 조언 하나만 부탁드리겠습니다. 그것 때문에 보고서 작성이 막혀서 답답해 죽겠습니다.”

죽상을 하고서 사정사정하는 모습이 불쌍해 보인 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한 거라면 도와 드리죠.

“감사합니다. 그런데 마법에 관련된 문제라서……… 아, 물론 명예 후작님께서 의견을 더해 주시면 더 영광이긴 합니다.”

묘하게 변하는 이드의 얼굴에 피터가 급히 말을 바꾸었다. 그래 봤자 ‘이드의 의견은 꼽사리 수준’이라는 게 바뀌진 않을 상황. 라미아가 키득거리며 나섰다.

“그래서, 피터 씨를 괴롭히는 문제가 뭐죠?”

“이번 사건에서 가장 큰 위험 요소였던 괴수에 대한 겁니다.”

“확실히 스피츠하비터의 힘이 강력하긴 했죠. 바벨이 경계할 정도로요.”

“스피츠하비터요? 그게 괴수의 종입니까?”

그런 종류가 있었던가, 하고 피터가 미간을 좁히자 라미아가 이드를 가리켜 보였다.

“어떤 종류라기보단 이름이에요. 이드가 직접 들었죠.

“허어~ 그놈이 말도 할 수 있었군요.’

새로운 정보를 얻은 피터는 곧바로 품에서 보고서로 보이는 것을 꺼내 무언가를 기입했다.

라미아는 그가 필기를 마치길 기다렸다가 물었다.

“그런데, 설마 지금 스피츠하비터에 대해 전부 논해 보자는 건 아니죠?”

그걸 ‘하나의 질문’이라고 친다면 당장이라도 쫓아내 버리겠다는 뜻이 듬뿍 담긴 말이었다.

그에 피터가 식은땀을 흘리며 두 손을 내저었다.

“절대 아닙니다. 그건 사기죠. 제가 드릴 질문은, 이 스피츠하비터를 다른 곳에서도 만들어 낼 수 있느냐는 겁니다.”

“……이해했어요. 분명 그만한 힘이라면 가지고 싶어 하는 자들이 많겠죠.”

라미아의 말에 이드도 고개를 끄덕였다.

“파괴력만 따지면 그랜드 마스터 급이야. 모르긴 몰라도, 그 힘을 알고 나면 탐내는 이들이 그냥 많은 정도가 아닐걸.”

그랜드 소드 마스터는 숫자로 대체가 불가능한 대표적인 비대칭 전력이다.

이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같은 그랜드 마스터가 나서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희생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겨우 그랜드 마스터를 상대하고 났더니 싸울 전력이 없다면 그거야말로 코미디일 테니까.

그런데 이런 그랜드 소드 마스터 급의 전력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그 누가 망설일까.

아마 대부분은 그걸 얻기 위해 초인들을 갈아 넣는 일도 주저하지 않을 터였다.

특히 초인 중에는 전력 외로 분류되어 하릴없이 떠도는 자들도 많으니, 그들을 제물로 써먹으면 기존 전력의 누수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문제라면 세상의 눈과 초인들의 반발일 텐데, 이것도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

이곳 뱅커올슨 영지에서도 티 나지 않게 가능했으니, 국가 수준에서 움직인다면 밖으로 꺼내기 전까진 알기 어려울 게 분명했다.

“아마 엄청난 수의 초인이 제물로서 희생되겠지요.”

초인을 위해 존재하는 바벨의 입장에선 어쩌면 버서커 이상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버서커는 한 번 지나면 끝이지만, 스피츠하비터를 만들기 위해 제물로 사용되는 건 끝이 없을 테니 말이다.

어쩌면 지배자 입장에선 초인 개개인보다 스피츠하비터 하나를 더 선호할지도 몰랐다. 속을 알 수 없는 인간 여럿보다 그저 명령에 따라 움직일 뿐인 스피츠하비터가 더 믿음직할 테니까.

그런 생각만 해도 열이 치밀어 올라 피터가 질겅질겅 입술을 씹어 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세상이 스피츠하비터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결국 시간문제일 뿐. 언젠가 알려지는 건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렴 존 워스가 쓰지도 않을 것에 그리 공을 들이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러니까 피터 씨의 말은, 현재 각국의 마법 수준으로 스피츠하비터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냐는 건데. 전 애초에 그런 자세한 정보는 알지

못하는걸요.”

“하지만 최소한 아나크렌 제국의 수준은 아시지 않습니까. 토벌 중에 많은 교류가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국의 수준을 알면 다른 나라에 대한 답도 나옵니다. 아, 그리고 제국에 더해서 마탑에 대한 후작 부인의 의견도 꼭 듣고 싶습니다.”

“마탑이면, 미완의 마탑이요?”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저희 초인들과 관련된 연구에 있어서는 그쪽이 가장 수준이 높지 않겠습니까.’

피터가 싫은 얼굴을 하고서 말을 꺼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분명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토벌을 피해 숨어 있는 마탑에 그럴 정신이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이드는 이내 피터가 말을 꺼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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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피터 씨는, 제국에서 진행 중인 마탑에 대한 토벌이 끝난 후를 걱정하는 거로군요. 마탑의 연구 자료가 넘어갈 때.’

“후우~ 부디 그런 상황이 없기를 바라지만, 그렇게 된다면 저희들로서는 최악이죠. 기존 자료만으로도 과거 초인 발생 초기의 마법 연구가 시작될까 걱정해야 할 판에, 스피츠하비터까지 더해지면…….”

“아무리 바벨이라도 각국의 욕심을 막기 힘들어지겠죠. 먹음직스러운 사탕이 무려 두 개가 되는 꼴이니 말이다.

그렇게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라미아는 팔짱을 낀 채 생각에 빠져 있었다. 문제가 문제인 만큼 그녀도 최대한 확실한 답을 주려는 것이다.

그녀가 기준으로 잡은 건 피터의 말대로 토벌 중 접촉했던 제국 소속 마법사들의 능력이었다.

과연 풍족한 지원을 받은 마법사들의 수준은 뛰어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스피츠하비터를 만들어 낼 수 있느냐면 그건 또 아니다.

마법은 맛을 보거나 전해 듣는 걸로 대충 비슷하게 만들어 낼 수 있는 레시피 같은 게 아니었다.

“일단 지금 기준으로 답을 드리자면, 불가능해요. 최소 십 년 이상의 집중적인 연구를 한 후에야 기본적인 이론을 세울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미완의 마탑의 경우에는 당장도 불가능하고, 이후에도 스피츠하비터를 만들 가능성은 없어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스피츠하비터는 미완의 마탑이 추구하는 마법과는 그 방향성 자체가 다르니까요. 다만 문제는, 마탑의 연구 자료가 제국을 비롯한 다른 세력에 전해졌을 경우인데…………….”

잠시 말을 끊은 라미아에 피터의 입술이 바짝 말라 갔다. 그도 이어질 말이 이 문제의 핵심임을 느낀 것이다.

꼴깍.

“아마도 그렇게 되면 십 년의 시간이 삼 년 정도로 단축될지도 모르겠네요.”

다시 말해 연구 시간이 약 반의반으로 줄어든다는 말이다.

십 년이라는 장기 투자에 비하면 누구나 쉽게 도전해 볼 법한 시간이다.

피터가 두 손을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제기랄, 아,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충분히 이해해요.”

“후작 부인께서 해 주신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이 내용을 보고서에 그대로 적고 싶은데,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처음부터 그러기 위해 조언을 구한 거잖아요. 그렇게 하세요.”

“감사합니다. 그럼 전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편히 쉬고 계십시오.”

꾸벅 고개를 숙인 피터가 물러났다.

그런 그의 얼굴은 조언을 구하기 전보다 더욱 복잡해 보였다.


피터가 떠난 집엔 이드와 라미아만 남았다.

이베인과 남작은 서로 다른 안가로 옮겨졌고, 초인들도 그 둘을 따라가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한 행동 속엔 두 사람이 편히 쉬길 바라는 배려가 담겨 있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었다.

아무렴 바벨에서 사용하는 안가가 아닌가.

전날 사용하던 방으로 들어간 이드와 라미아는 가장 먼저 마법을 이용해 도청을 막았다.

“이렇게 되면, 바벨에서도 이번 영혼의 관 토벌에 두 손 놓고 있을 순 없겠어.”

“마탑을 키우는 데 일조한 만큼, 자업자득이라고 봐요.”

라미아의 대답은 건조했다.

분명 이 문제로 인해 촉발될 수 있는 초인의 희생은 안타깝지만, 그 근본적인 원인에 바벨이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바벨의 입장에선 이번 사건을 통해 발견한 변형 버서커와 스피츠하비터의 존재가 악몽과 같을 것이다. 초인이 짊어진 문제인 ‘버서커’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던진 수가 결국 더욱 큰 피해로 돌아오게 생겼으니까.

그나마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미완의 마탑이 가진 연구 자료를 통제할 필요가 있는데, 이 또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미완의 마탑이 이미 통제를 벗어났을 뿐 아니라, 그들에 대한 토벌 역시 아나크렌 제국의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개입하는 게 쉽지 않은 탓이었다.

또 설령 어떻게 끼어든다 해도 제국에서 토벌 후 전리품 중 그 가치가 가장 큰 연구 자료를 통째로 내놓을 리가 없었다.

그런 일이 가능하려면 바벨과 제국 간에 큰 배팅이 이루어져야 했다.

그렇다고 제국은 물론이고 마스까지 복잡하게 얽힌 상황에 바벨 단독으로 영혼의 관을 칠 수도 없다.

그랬다가는 문제만 더 심각해질 터였다. 당장 바벨의 과격한 행동에 대한 원인을 찾기 위해 움직일 테니까.

그야말로 긁어 부스럼이랄까.

무엇보다 당장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에는 이미 제국에 정신의 관에서 획득한 연구 자료가 있다는 점도 크게 한몫했다. 결국 이번 일의 키는 제국이 쥐고 있는 셈이었다.

“라울이 꽤나 머리 아프겠어.”

“라울이 고생하면 검후는 좋아하겠네요.’

이드는 흐뭇하게 웃을검후를 상상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우리도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 어쨌든 초인이란 존재가 혼돈의 파편에 대항하기 위한 수단이라면 말이야.”

“끄응. 그런 복잡한 건 뒤로 미루죠. 어차피 일차 당사자는 라울과 바벨이잖아요.’

라미아의 말대로 그들이 나서는 건 당사자들이 열심히 움직인 후다.

복잡한 문제를 뒤로 넘겨 버린 라미아가 슬슬 본론을 꺼내자는 듯 드래곤 하트를 조심조심 침대 위에 꺼내 놓았다.

“지금 중요한 건 이거죠. 그리고 이드가 얻었다는 것도 꺼내 봐요. 답답하게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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