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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698화


1133화

백작 살해범의 일당.

“뭐? 어디냐!”

“잡아! 다리부터 잘라!”

그 말의 파괴력은 엄청났다. 그렇지 않아도 머리끝까지 차 있던 기사들의 분노가 단번에 터져 버린 것이다. 챵! 촤촤촤촹!

뒤이어 검을 뽑아 든 기사들이 성난 황소처럼 이드 일행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뒤에는 한발 늦게 기사의 말을 이해한 손님들이 아연실색한 얼굴로 멈춰 있었다.

백작이 죽었다니. 심지어 타살? 왜 하필 내가 찾아왔을 때 이런 날벼락 같은 일이!

그 마음은 피터라고 다르지 않았다.

설마 기사들이 까칠했던 이유가 백작의 죽음 때문이었을 줄이야. 그러나 이런 공황 상태도 잠시. 문득 황당함이 몰려왔다.

아무리 눈이 뒤집혀도 그렇지, 백작을 찾은 손님이 말대꾸 좀 했다고 다짜고짜 살인자로 몰다니.

그러고도 기사냐? 그러고도 기사야?!

“으으! 으으으…..이런. 쉬~ 펄.’

하지만 그리 내뱉으려던 의지와 달리, 정상이 아닌 목 때문에 말이 쉬이 나오지 않았다. 해서 결국 그는 짧은 욕설과 함께 섀도우 워퍼를 꺼내

들었다.

이 대화가 안 통하는 멍청한 기사 놈들에게 화끈한 현실을 알려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피터 씨, 될 수 있으면 싸움은 피하죠.”

이드가 그를 멈춰 세웠다.

와장창!

직후 문과 창문을 부수며 여기저기서 기사들이 달려들어 왔다. 서로 내가 먼저라는 듯 앞다투어 검을 뻗어 내는 그들.

“마법사가 있다! 마법사부터 조져!”

라미아의 로브를 본 누군가가 외치자, 그중 절반 정도의 검이 그녀를 향했다.

저렇게 많은 검에 찔리고도 살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건가? 아니, 처음부터 생포할 생각이 없는 건가?

이드는 그런 의문을 느끼며 두 손을 마주쳤다.

감히 라미아에게 검을 향했다는 불쾌감을 담아.

짜악!

푸화악-

그러자 평범하게 손뼉을 치는 소리와 함께, 손바닥 사이에서 일어난 충격파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눈에 보이지 않았기에 피할 수도 없었을뿐더러, 설령 보였다 해도 그야말로 음속에 가까운 속도였기에 이미 늦었다.

“커흡!”

“무스…… 쿠에엑!”

당연히 기사들은 그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달려들던 속도보다 더 빠르게 뒤로 튕겨 나갔다. 심지어 그뿐 아니라 천장과 사방의 벽도 충격파로 인해 둥글게 파였다.

이들을 이끌고 온 상급 기사는 자신의 발 앞까지 굴러 나온 부하를 보고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뜨겁던 머리에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박수 한 번으로 기사들을 모조리 튕겨 내는 실력자라니. 저자가 손뼉을 치는 대신 검을 휘둘렀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제야 상대도 제대로 살피지 않고 성급히 검부터 뽑았음을 자책했다.

하나 이미 일어난 일. 상급 기사는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나섰다.

“범상치 않은 자다! 함부로 공격하지 말고, 모두 물러서라. 너는 당장 지원을 요청해라!”

명령이 떨어지자 남아 있던 기사들이 저마다 쓰러진 동료를 끌어내며 그 앞을 지켰다.

그에 이드는 한발 물러서며 공격할 뜻이 없음을 보였다.

“더 이상 공격하지 않을 테니 서두를 필요 없소. 방금 것은 내 아내를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였소.”

“이 성안에서 기사들을 공격한 귀하의 말을 믿으란 말이오?”

“그래서 정당방위라지 않소. 공격은 그대들이 먼저였으니까. 우리와 저기, 떨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백작님의 손님이오. 처음부터 그대들이 손님에 대한 예의를 지켰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요.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 어떻게 공격으로 돌아올 수 있는 거요. 설마 접객실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범인으로 상정해 감옥에 가두기라도 하려 했던 거요?”

이드의 말에 방 밖으로 쫓겨나다시피 나온 손님들도 하나둘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진짜 우리를 범인으로 만들려고?”

“설마! 있을 수 없는 일이오.”

“평시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지금은 백작께서 살해된 상황이니, 무슨 일이 생길지 누가 알겠소?”

비록 정신없이 어영부영 끌려 나오긴 했지만, 그들 모두 집사가 신분을 확인하고 접객실에 머물도록 허락한 사람들이다.

즉, 설령 귀족이 아닐지언정 최소한의 발언권은 가졌다는 뜻.

이들이 집단으로 들고일어나면 여간 곤란한 것이 아니다.

난처한 입장에 처한 상급 기사는 처음 일을 키운 기사를 향해 내심 이를 갈았다.

“결단코! 그런 의도는 없습니다. 들어 아시겠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한시라도 빨리 범인을 찾고자 하는 과정에서 다소 과격함이 있었을 뿐입니다. 엘라임 백작가가 얼마나 정의로운 곳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모른다. 만난 적도 없는 엘라임 백작이 정의로운지 아닌지 어떻게 알겠는가.

하나 이드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그래도 먼저 손님에 대한 예의를 지키시오. 그런다면 우리도 협조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

“옳소.”

“그분의 말대로요.”

다른 손님들까지 나서자 상급 기사도 고개 숙여 자신들의 무례를 사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은 한숨을 내쉰 그는 여전히 검을 들고 있는 기사들을 물리고 이드 앞으로 다가왔다.

“실력만큼이나 대단한 말솜씨를 지니셨군요. 이제 손님의 성함과 방문 목적을 밝혀 주시겠습니까?”

“그건 지원된 기사들과 집사가 모두 도착하면 밝히도록 하겠소. 굳이 두 번 말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접객실 밖을 가리키는 이드의 말이 끝나고,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지원 요청을 받은 기사들과 집사가 도착했다.

다만 그들의 목적은 서로 달랐다. 특히 집사가 달려온 이유는 지원 요청을 받은 기사들과 완전 반대였다.

접객실 안에 서 있는 손님들을 본 집사는 기사들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그렇게나 조심하라 주의를 주었건만.”

딱 봐도 뭔가가 마무리된 모습. 순식간에 접객실의 분위기를 휘어잡은 집사는 손님들의 기분을 풀어 주며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이드 앞에 선 집사는 엉망이 된 접객실의 중심에 그가 있음을 파악하고는 미간을 모았다.

“참으로 공교롭군요. 손님께서 저희 성을 처음 찾아온 날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동감입니다.”

“죄송하지만 다시 한번 신분과 방문 목적을 밝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사이 접객실을 엉망으로 만든 범인이 이드임을 들은 모양이다. 경계심을 품은 집사의 요청에 이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원래는 백작님을 만나면 직접 밝힐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요. 제가 드린 편지는 보관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만?”

“그것부터 확인해 주길 바랍니다. 될 수 있는 한 최소한의 사람들만으로 말입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집사로서 많은 사람을 응대한 연륜일까.

그는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냐는 말 대신 기다려 달라 답하곤 물러났다.

그리고 잠시 후,

적지 않은 의심을 품고 물러갔던 집사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기사와 함께 중년의 남성을 모시고 돌아왔다.

이드가 말한 편지를 든 중년의 남자가 앞으로 나서자 집사가 그의 신분을 밝혔다.

“인사드리십시오. 이분께선 프란시스 백작가의 새로운 주인이 되실 벨라임 프란시스 예비 백작님이십니다.” 

다시 말해 엘라임의 아들이란 소리다.

이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제국의 큰 별이 지셨습니다. 참혹한 사건에 어떤 말로 위로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보다, 여기 적힌 것이 사실입니까? 정말 검후님이 보내신 분입니까?”

“정확히는 검후님의 추천을 받은 겁니다.”

“증거가 있습니까?”

검후가 보낸 사람이라면 그 신분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무턱대고 그 말을 믿을 수는 없는 것도 당연하다.

이드는 증거를 요구하는 예비 백작에 곤혹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소드 팰러스 시절의 백작님과의 추억에 대해 검후님께 듣고 오기는 했습니다만, 정작 그걸 확인해 주실 분께서 사고를 당하셨으니…….”

“그런 거라면 제가 확인해 드리죠. 그 시절 아버님에 대해서라면 모두 알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군요. 검후님 말씀으로는, 백작님과 대련 중에 그분의 엉덩이에 있는 예쁜 점을 본 적이 있다고…………….”

오늘 고인이 된 인물의 부끄러울 수 있는 기억을 그 아들에게 말한다는 건 좀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이야기를 들은 벨라임 예비 백작의 얼굴은 오히려 밝아졌다. “맞습니다. 아버님께서 가장 끔찍한 순간이었다고 말씀해주셨던 일입니다.’ 반대로 그 뒤에 서 있던 집사와 기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졌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다고?’

아무리 젊은 시절의 일이었다고 하지만, 저 검후에게 엉덩이를 까 보였다니.

과연. 이런 일이라면 백작의 엉덩이에 점이 있다는 것과 별개로 두 당사자를 제외하곤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이드는 벨라임 예비 백작의 반응에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고인에 대한 모욕이 될까 걱정했는데 다행이군요.”

“모욕이라니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가장 끔찍했다고 말씀하셨지만, 그 이야기를 해 주시던 아버님의 얼굴이 얼마나 즐거워 보이셨는데요.” 

“그건 검후님도 마찬가지셨습니다.”

사실 검후에게 백작의 죽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생각만으로 벌써부터 난감했다.

이드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벨라임 예비 백작이 돌연 부탁을 하고 나섰다.

“갑작스러운 말이지만, 기사들을 상대로 보여 주신 뛰어난 실력과 검후님을 믿고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부탁을 하러 온 사람에게 도리어 부탁이라니.

이드는 난감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단호하게 거절하기도 그랬다. 고인이 다른 사람도 아닌 검후가 아끼던 제자라지 않는가.

“일단 들어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아버님의 사인을 밝히는 일에 도움을 주시길 바랍니다.”

“・・・・・・ 타살이 아니었습니까?”

그렇기에 범인을 찾으려 했던 게 아니냐는 의미였다. 그에 예비 백작 뒤에 서 있던 기사가 대신해서 나섰다.

“백작님의 사인은 타살이 확실하오. 그러나 그 상대가 누구였는지, 또 정확히 어떤 방법으로 백작님을 해하였는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소. 모두 우리들의 능력이 부족한 탓이오.’

형형한 눈빛과 달리 스스로의 모자람을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모습.

항상 자신만만한 기사들의 성향상 좀처럼 볼 수 없는 경우였다. 그에 이드는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라면 당연히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드의 허락과 함께 그들은 바로 자리를 옮겼다.

이드 일행이 세 사람을 따라 도착한 곳은 백작의 개인 연무장이었다.

그곳의 사방을 둘러싼 높은 벽에는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고, 그뿐 아니라 심지어 문마저 두꺼운 철로 이루어졌다.

그들이 연무장 안으로 들어서자 한쪽에 누운 백작과 더불어, 그 옆에서 백작을 살피는 마법사와 경계를 서는 기사들이 보였다. 

“하버 마법사. 그사이 알아낸 것이 있소?”

“면목 없습니다. 제 실력이 부족해서 아직 흔적을 찾지 못했습니다.”

볼이 빵빵하게 살이 찐 마법사는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예비 백작 뒤에 따라오는 이드 일행을 보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함께 오신 분들은?”

“백작님을 찾아오신 손님들로,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 해서 모셨소.”

그런 예비 백작의 소개에 이드와 라미아가 앞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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