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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711화


1146화

날이 밝고, 거리엔 사람들이 가득 찼다. 그들은 밤사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하기에 평소처럼 웃고 떠들었다.

그런 그들을 놀라게 만든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건 삼삼오오 모이는 점심때였다.

“자네들, 얼마 전에 백작님 댁에 난리 난 거 알지?”

“그걸 모르는 사람도 있나요?”

“그렇지? 그럼 어젯밤에 레오날도 후작님 댁에 또 난리가 난 건 아나?”

“그 말 진짜요?”

“아무렴. 어디 죽으려고 후작님 가지고 헛소리를 해. 어쨌든, 듣기로는 다행히 괴한들이 후작님 기사들에 막혀서 다 도망갔다더라고.”

“그거구먼. 아침부터 본 기사님만 서른 분이 넘는다 했더니. 그 때문이었어.”

“그런데 도대체 어떤 미친놈들이 안티로스에서 이런 수작질을 부리는 거랍니까?”

“글쎄…….”

“흥, 글쎄는 무슨. 감히 우리 제국에 이런 짓을 할 미친놈들이면 그놈들밖에 더 있소?”

“…..마스?”


“……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답니다.”

스폴이 지금 안티로스에 급속히 퍼지고 있는 소문을 들려주었다.

습격 대상부터 시작해서 사실과는 많이 달랐지만, 이드는 묘하게 납득하고 말았다.

“과연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발표할 수는 없다는 거지.”

제국민들에게 불안을 심어 주는 것도 문제지만, 그 이전에 황제가 제 나라에서 습격당했다는 건 제국의 체면이 상하는 일이기도 했다.

도대체 한 나라의 대표자에 대한 호위가 얼마나 허술하면, 평소 안티로스의 경비가 얼마나 구멍투성이면 수도에서 습격 사건이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바로 황제의 목숨을 노리는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고 떠들어 대는 호사가들이 있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이런 사건은 자칫 역심을 품은 무리나, 아나크렌 제국에 반감을 가진 이웃 국가에 잘못된 시그널을 주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런 일을 피하기 위해 대외적으로 사건을 왜곡한 것이 분명했다.

그에 일리나가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이런다고 영원히 숨겨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오히려 이런 정보 왜곡이 적을 추적하는 일에 방해만 될 텐데요.”

엘프인 그녀에겐 직관적이지 못한 쓸데없는 일로 비쳤던 모양이다.

그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쓰게 웃고, 이드가 말했다.

“틈을 메꿀 시간. 다시 말해 오늘 알려지는 것과 내일 알려지는 건 다르다는 얘기죠. 그리고 정보 왜곡은 어디까지나 대외적인 부분에 한해서고, 알아야 할 사람들에겐 진실이 제대로 전해졌을 거예요.”

어차피 힘없는 백성이 사실을 알아 봐야 분란만 일어날 뿐, 적을 잡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이드의 말을 스폴이 냉큼 받았다.

“사실입니다. 안티로스 안에 있는 모든 귀족이 아침부터 황궁으로 호출되었는데, 황궁 안의 분위기가 살벌했답니다.”

어지간해선 한두 마디 새어 나올 법도 한데, 단어 하나 흘러나오지 않았다는 게 바로 그 증거다.

잠시 말을 끊었던 스폴이 낄낄거리며 말을 이었다.

“지금쯤이면 아마 바짝 겁먹은 귀족님들이 전부 황제 폐하 앞에 바짝 엎드려 있을 겁니다. 낄낄낄.’

“스읍, 스폴 경, 검후님 앞이다.”

쉴라는 그런 스폴에 눈치를 주어 입을 닫게 만들고는 의혹을 꺼내 놓았다.

“한데 너도나도 마스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는데, 우연일까요?”

마스의 인상이 최악이긴 하지만, 지금처럼 하나같이 입을 모아 범인으로 모는 상황은 어딘가 부자연스럽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글쎄다. 이드 님이 보시기엔 어떤가요?”

이드는 검후가 자연스레 떠넘기는 질문에 순간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황제 폐하의 뜻이겠지요. 정체불명의 적에게 습격당했다고 발표하는 것보다 보기 좋고, 현재 제국과 마스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신경전에서 마스를 압박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잖습니까.”

무엇보다 마스를 두드리는 일에 대해서는 제국민들이 전혀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언제나 적극적이라는 점도 한몫했을 테다. 그에 검후도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들었지? 나도 이드 님과 같은 생각이란다. 마스도 결국 핑계인 게지.”

“하지만 가능성 없는 이야기도 아니죠. 아직 범인이 잡히지 않은 이상, 진짜 마스가 범인일 수도 있으니까요.”

전날 밤늦게까지 이어진 그녀들의 고민은 결국 답을 찾지 못하고 끝이 났다. 애초에 제대로 된 단서도 하나 없이 답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긴 했다.

대신, 한 가지에 대해서는 같은 의견을 내보였다.

바로 습격 뒤에는 모종의 국가가 있으리라는 점.

그제 밤. 황제를 습격한 자들의 실력은 뛰어났다. 그 구성은 기사나 초인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으며, 장비 역시 훌륭했다.

과연 국가 단위가 아니면 그 어떤 세력이 그 정도 준비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오직 돈에 의해서만 활동하는 용병 길드가? 초인의 문제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바벨이? 그도 아니면, 호기심과 진리에 대한 연구가 아니면 행동하지 않는 마탑이 황제를 노렸을까?

결국 이 셋을 빼고 남는 건 국가 단위밖에 없었다.

그중에서도 전쟁광 마스와, 혼돈의 파편이 웅크리고 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카논이라면 황제 습격이라는 대담한 수단을 이용할 가능성이 충분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결국 의심과 짐작일 뿐. 드러난 진실은 아무것도 없다.

이드는 어색한 침묵에 곧 이야기의 방향을 틀었다.

어차피 오늘은 그 말고도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황제가 다시 방문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비밀스러운 방문이기에 크게 격식을 갖출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전날 습격을 받았던 만큼 따로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그럼, 가장 먼저 어떤 식으로 은색 기사단을 배치할지부터 살펴보도록 하죠.”


시간이 흘러 밤이 되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황녀를 안아 든 일리나가 앞장섰고, 그 뒤를 따라 황제의 일행이 담을 넘으며 황궁을 빠져나왔다.

대담하게도 그들의 수는 황제를 포함해서 전부 넷. 어제보다 호위가 한 명 늘었을 뿐이다.

‘보기보다 더 용감하군.’

이드는 일리나의 머리 위에서 이동 중이었다.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 라미아는 그 형태를 검으로 바꿔 일리나의 허리에 매어져 있었다. 이드의 생각에 라미아가 답했다.

‘윗사람이 용감할수록 아랫사람의 속이 썩어 들어가는 법이죠.

‘그거야 내 속이 아니니까 알 바 아니지. 그런데, 황제 표정이 왜 저렇게 안 좋아?’

아닌 게 아니라, 근위 기사들에 둘러싸인 황제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잘 보면 근위 기사들의 낯빛 역시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

‘후후후. 이게 다~ 우리 일리나 덕분이죠.’

‘일리나가 어땠기에?’

‘황궁의 경비가 전시 상황 수준으로 강해졌잖아요. 그래서 황제가 아무리 일리나라도 경비를 뚫고 나가는 게 쉽지 않을 거라고 했었는데. 시간만 좀 더 걸렸을 뿐이지, 그 경고가 우스우리만치 어제와 똑같은 방식으로 황궁을 빠져나와 버렸거든요.’

그에 이드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한마디로 자존심이 상한 거다. 나름 이 정도 경비면 일리나도 움직이기 쉽지 않을 거라는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으니 말이다.

‘그래도 어제 습격으로 인한 심리적 타격은 없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그랬으면 이렇게 나오지도 못했겠죠. 그래서, 위쪽은 어때요?’

‘조용해, 아무래도 완전히 물러난 모양이야.’

이드는 사방을 꼼꼼히 살핀 다음 답했다. 그의 감각 안으로 숨어드는 수상한 움직임은 하나도 없었다.

움직이는 건 오로지 은밀히 몸을 숨기고 있는 은색 기사단, 그리고 그보다 먼 곳에서 몇 개의 그룹으로 뭉쳐 있는 기사들뿐이었다. 저들은 아마도 황제가 준비했으리라.

그렇게 수많은 눈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리나가 저택의 정원을 가로질러 정문 앞에 멈췄다.

활짝 열린 문양옆에는 쉴라와 스폴이 자리했고, 드레스를 휘감은 검후가 그들 사이에 서 있었다.

드디어 검후와 황제가 마주한 것이다.

그 둘 사이에 흐르는 기묘한 분위기 때문일까. 이드가 일리나 옆으로 조용히 내려섰지만 그를 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먼저 움직인 것은 황제였다.

“할마마마.”

담담하지만 희미하게 떨리는 목소리.

“할마마마!”

다행히도 그 뒤를 따르는 낭랑한 황녀의 목소리에 그걸 눈치챈 사람은 극소수다.

팔랑거리며 달려온 황녀의 손을 잡아 준 검후가 황제를 돌아보았다.

“어서 오세요, 황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할마마마.”

“이곳에 계속 있을 수는 없으니, 일단 들어갑시다.”

황녀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가는 검후에 다른 사람들도 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 심지어 황제마저도 말이다.

그리고 모두가 들어선 이후, 저택의 문이 닫히는 순간.

뚜벅뚜벅,

스스스슥.

저택 주변에서 은밀히 몸을 숨기고 있던 은색 기사단의 기사들이 나타나 포위하듯 저택 주변을 감쌌다. 마치 자신들의 허락 없이는 그 누구도 저택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는 양 말이다.


검후는 황제와 둘이서 2층 서재로 자리를 옮겼고, 다른 사람들은 검후의 명령에 의해 1층에 남았다. 황제도 근위 기사를 1층에 남겼다. 아무렴 황제의 약한 모습을 다른 이에게 보여 줄 수는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행동이었다.

물론 이드 일행은 황제가 돌아간 후, 검후를 통해 2층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드 일행에게까지 황제의 권위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없는 검후였다.

조용한 서재에 마주 앉은 황제와 검후.

사람을 들이지 않았기에 검후가 직접 차를 우렸다. 찻잔이 달그락거리고, 차향이 방안을 가득 채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검후와 마주 앉은 황제는 어땠을까.

그는 자신 앞에 놓인 찻잔에는 손도 대지 않고, 검후만을 바라보다 문득 눅눅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이렇게 할마마마를 다시 뵐 수 있어 참으로………… 다행입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황제가 여전히 강건한 듯하니, 마음이 퍽 놓입니다.”

겨우 안부를 물으려던 것이 아니었다.

황제는 쉽게 나오지 않는 말에 찻잔을 단숨에 비워 냈다.

“・・・제 실수를 용서해 주십시오. 할마마마.”

“욕심과 어리석은 생각에 하지 말아야 할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제 독선으로 품에 안아야 할 소드 팰러스를 할마마마를 미워하고 말았습니다.”

황제는 마치 신에게 고백하듯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하나하나 뱉어 냈다. 그의 목소리는 점차 선명해졌다.

검후는 말없이 그런 황제를 바라보았다.

맑고 투명한 눈에는 한 점의 번뇌도 없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무슨 마음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모든 말을 마친 황제가 그 눈을 피해 고개를 숙이려는 찰나.

“제국의 황제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함부로 고개를 숙여서는 안 됩니다.”

검후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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