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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725화


1160화

결투. 그 말에 파티장이 술렁거렸다.

“자,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남작님. 그저 술에 취해서 헛소릴 좀 지껄였을 뿐입니다. 한데 결투라니요.”

무리를 이루던 자 중 하나가 다급히 나섰다.

당장이라도 인연을 끊어 버리고 싶은 놈이지만, 그래도 아직 친구가 아니던가. 더욱이 진짜 일이 심각해질 경우, 그들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

“당신이 저자를 대신해 결투에 나설 것이 아니라면 물러서시오.”

물론 눈앞의 상대가 아니더라도 그간 당해 온 게 있는 세 사람은 순순히 물러설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드는 한순간에 파티의 주인공 자리를 빼앗겨 버렸다.

당연히 티끌만큼의 불만도 없다. 도리어 고마울 지경이었다.

목적도 이뤘으니, 이제 언제든 떠나면 되지만.

“이거, 상황이 흥미진진해졌네요.”

이 좋은 구경거리를 두고 갈 수는 없지.

하지만 이런 이드와 달리, 피터는 계획에 없던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죄송합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모으려다 보니, 그중에 쓰레기도 같이 딸려 온 모양입니다.” 말과 함께 남자를 향하는 피터의 눈꼬리가 심상치 않다.

바벨의 지부장 자리를 짬밥으로 얻은 건 아니다. 응당 목표에 대한 견적을 내는 일도 익숙하다.

그런 그의 관점에서, 현재 문제가 되는 남자는 최악이었다. 행동과 눈빛, 말 속에 담긴 초인에 대한 질투와 혐오를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중 질투의 방향은 살짝 다른 듯도 하지만,

“피터 씨가 사과할 일은 아닙니다. 나는 개가 짖는다고 화내는 사람이 아니에요.”

물론 짖기만 하던 개가 이빨을 보이며 달려들면 사정없이 몽둥이를 휘둘러 주겠지만 말이다.

“급히 모셔 놓고 이런 일이 일어나니 면목이 없어서 그렇지요.”

“전혀요. 대신 저들의 무공을 직접 볼 기회잖습니까. 중간에 그만둘 것 같진 않지요?”

산뜻하기까지 한 이드의 말에 피터가 고소를 지었다.

“그간 참았던 것을 작정하고 터트리려나 봅니다.”

“서류에서 봤습니다만, 그게 이런 결과를 불러일으킬 줄은 몰랐죠.”

조사 내용에 의하면, 저들은 여러 이유로 주목받지 못하던 자들이다. 집안이 좋은 것도 아니고, 인맥이 든든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실력이 향상된 지금까지도 무시하는 자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확인은 하셨습니까? 아니라면 제가 나서서…………….”

피터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드가 아니라고 대답한다면 당장이라도 저 사이에 끼어들어 문제를 만든 놈을 반쪽 내 버릴 기세였다.

하지만.

“다행히 피터 자작님이 고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누군가에게는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결과가 어찌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피터는 더 묻지 않고 조용히 입을 닫았다. 카논무파에 대한 일은 파티가 끝난 후 들어도 늦지 않으니까.

지금은 사람이 너무 많았다. 누군가 엿들을 위험이 있었다.

어느새 옆으로 다가선 와튼 백작처럼 말이다.

“쯧쯧쯧. 귀한 손님을 두고서 이게 무슨 일들인지. 이래서 젊은 것들이란・・・・・・ 크흠. 실례했소.”

“하하. 괜찮습니다. 백작님 말씀처럼 실수는 젊음의 특권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그 이후의 대응이 정정당당했느냐 아니냐가 문제지요.” 

“하하하. 과연 감찰관다운 명쾌한 해석이오.”

자신의 말실수를 유하게 넘어가 주었기 때문일까. 가슴을 쓸어내린 와튼 백작이 피터에게 눈치를 줬다.

“슬슬 자작이 나서야지 않겠소? 이 좋은 날 결투라니, 귀한 분을 앞에 두고 피를 보는 것도 실례요.”

그럼 이 많은 사람 앞에서 대놓고 모욕을 주는 건 괜찮다는 뜻인가?

은근히 일을 무마하라는 와튼 백작의 말에 이드가 고개를 저었다.

이 좋은 구경거리를 왜 끊는단 말인가. 혹시 문제의 저술 취한 돼지 가문과 친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서 뭐?

“백작님의 말씀은 감사하지만, 그냥 두시죠. 딱히 피 보는 걸 즐기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무엇보다 지금 자작님이 나선다면 결투라는 말을 꺼낸 스윔 남작님의 명예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또 저들과 제가 당한 모욕은 어떻고요. 저도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르니, 말이 나온 김에 끝을 보는 편이 좋겠습니다.

“・・・・・・ 감찰관이 그렇다면. 알겠소.”

잠시 말이 없던 와튼 백작이 말했다. 아무래도 그렇게 깊은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사실 와튼 백작도 쉽게 일을 끝낼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으리라.

당사자와 가문의 명예, 그리고 목숨이 걸렸으니까. 그런 만큼 ‘결투’라는 말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한 번 뱉었다면 어떤 형태로든 승부를 내야 한다. 결투를 신청하고 제대로 검도 뽑지 못한다면, 두고두고 조롱거리가 되기 마련이다.

결투를 막으려면 최소한 백작이 직접 나서서 함부로 입을 나불거린 술 취한 돼지에게 강력한 처벌을 내려야 했다.

한데 아무래도 그러긴 싫은 모양이다.

그러는 사이 상황은 점점 악화되었다.

“결투? 내가 누군 줄 알고! 당장 따라 나와!”

술 취한 돼지가 입에서 술 냄새를 뿜어 대며 소리쳤다.


저택 앞마당이 순식간에 결투장으로 변했다.

자리를 옮기는 동안 동행한 여자들과 친구들이 말렸지만, 술 취한 돼지는 콧바람을 거칠게 내쉬며 모두 무시했다.

대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내가 왜 결투 신청을 받고 참아! 싸움에 진 개가 되기라도 해야 한단 말이야? 그게 아니라면 닥쳐!”

“빌어먹을! 어차피 네가 직접 싸울 것도 아니면서 뭐가 싸움에 진 개야! 맘대로 해! 하지만 잊지 말아. 우린 분명 자네를 말렸어!”

“도와줄 게 아니면 꺼져!”

소리를 지르며 술기운이 더 오른 모양이다. 눈이 반쯤 돌아간 술 취한 돼지가 연신 허공에 삿대질을 해 댔다.

결국 그를 말리던 사람들도 완전히 포기했다는 듯, 다른 사람들처럼 뒤로 멀찍이 물러났다.

그때까지 그들을 노려보던 술 취한 돼지는 그제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이내 이드와 함께 있는 라미아와 일리나를 보고는 혀를 날름거린 뒤 동행한 여자들을 향해 돌아섰다.

“저놈은 도대체 뭡니까?”

이드는 자신도 모르게 나갈 뻔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풀어 주었다.

감히 어딜 보고 날름거리는지, 보는 사람만 없었다면 그 건방진 혓바닥을 뽑아 버렸을 것이다.

이건 시비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보일런이라고, 발라파루에선 힘깨나 쓰는 자작의 아들입니다. 사교계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인이지요.”

“당연히 나쁜 쪽이겠군요.”

•반대입니다. 돈을 잘 써서 싫어하는 사람은 없거든요.”

“방금 말리던 사람들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던데요.”

“아무래도 결투라는 게 돈으로 만든 친분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무거운 주제니까요. 그나저나,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결투 신청을 받아들인 건지 모르겠습니다. 무공을 익혔다는 말은 듣지 못했고, 오늘은 호위 기사도 동행하지 않았다고 하던데 말입니다.”

혹시 최근에 초인기라도 각성했나? 아니, 그랬다면 초인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질 이유가 없지.

이드는 고개를 갸웃하는 피터에 보일런이라는 돼지와 동행한 여자들을 가리켜 보였다.

“저기 있잖습니까, 호위 기사. 가장 가까이에 말입니다.”

이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여자 중 하나가 입고 있던 드레스의 치마 부분을 뜯어 냈다. 정확히는 리본으로 묶어 놨던 부분을 풀어 분리한 것이다.

그러자 하얀 스타킹을 신은 길쭉한 다리와 함께, 허벅지를 감싸고 있는 파츠 아머의 일부가 나타났다.

“허! 그렇다면 여태 기사들을 저렇게 대한 거란 말입니까?”

피터뿐만이 아니다.

구경을 위해 밖으로 나온 사람들의 입에서 오! 하는 감탄성이 터졌다. 재밌는 건 그 탄성이 대부분 남자들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이드도 신기하긴 했다.

기사의 자부심은 보통이 아니다. 그런 이들이 여태 파티에 동원된 여자처럼 행동하고 있었다니,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도 이렇게 보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

“실력도 나빠 보이지 않는데.”

그에 이드의 팔짱을 끼고 있던 일리나가 말했다.

“은색 기사단의 평기사 수준은 되는 것 같아요. 막 입단한 케마란이나 네리베르 이상.”

은색 기사단을 목표로 해서 그렇지, 당시에도 두 사람의 실력은 평범한 기사단에 속한 기사 수준은 되었다.

“요즘의 그들과 비교하면요?”

“승패를 가르는 것이라면 마흔 합, 죽이는 것은 예순 합 안에 끝낼 수 있겠죠.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수련했는데요.” 

제자에 대한 애정일까. 일리나는 살포시 웃어 보였다. 이드는 그런 그녀를 향해 슬쩍 문제의 세 사람을 눈짓해 보였다.

그들은 평범한 아가씨에서 갑자기 섹시한 여기사로 변신한 상대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중이었다.

“저들은 어떨 것 같아요? 저 여기사를 상대로.”

어느새 하인으로 보이는 자가 들고 온 검까지 장비를 마쳤다.

“마흔 합 정도에서 비슷하지 않을까요? 다른가요?”

두 사람의 수준쯤이야 일리나의 눈을 피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상단전을 확인하는 게 아니라면, 실력을 파악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걸 뻔히 아는 이드가 이유 없이 물었을 리가 없었다.

이드는 의문을 가진 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일리나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의 결투라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흥미로운 장면을 보게 될 수도 있겠어요. 혹시 결투 중에 흥분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유심히 봐요.”

이드는 그 말을 남긴 후, 세 사람을 향해 다가갔다.

“중요한 때 잠시 방해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저희 때문에 파티를 망친 것 같아 죄송합니다.”

“하하, 그런 사과라면 파티의 주인공인 자작님께 하셔야죠. 저도 손님일 뿐입니다. 저자의 목표 중에는 저도 있는 것 같았는데, 그 몫까지 여러분께 돌아간 것 같아서 유감이군요.”

“원하시면 나눠 드릴 수도 있습니다.”

네이탠이 검자루를 만지작거리며 너스레를 떨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려는 경주마 같은 모습에 이드가 사양했다.

“그보다는 제 몫까지 철저히 상대해 주십사 하고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역시 감찰관님도 불쾌하셨군요. 전 아무 말씀도 없으셔서, 그냥 넘기나 했습니다.’

“사실 개 짖는 소리에 일일이 반응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크크큭. 저놈 입에서 나온 것이 개소리이기는 하지요.”

“다만 음심을 가지고 제 아내들을 보는 더러운 행동까지 그냥 넘길 생각은 없습니다.”

“당연! 당연한 일이지요. 내 아내를 그렇게 보는 놈이 있다면 저라도 그 눈을 뽑아 버릴 겁니다. 맡겨 주십시오. 제가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확실히 말을 걸기 전보다 더 흥분한 듯했다.

“제대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사라져 아쉽군요. 오늘 파티가 끝나면, 제가 자리를 한번 만들겠습니다.”

그렇게 적당히 그들을 다시 불러 모을 약속까지 만든 이드는 이번엔 스윔에게 다가갔다.

“제가 들어 보니 상대의 가문이 만만치 않은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걱정은 감사하지만, 전혀 문제없습니다. 아무리 힘이 있어도 이런 공식적인 자리의 일로 문제 삼지는 못합니다. 특히 저놈의 시비 상대엔 감찰관님도 끼어 있으시고, 일부러 이렇게 저희를 찾아와 주시기까지하지 않으셨습니까.”

스웜이 확신하듯 말했다.

“오히려 결투가 끝나면 자작가에서 화해를 청해 올 겁니다.”

“……”

이드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셋 중엔 이 사람이 머리로군. 그렇다면 뱅커올슨에게 연락을 한 것도 이자일 가능성이 가장 큰가.’

물론 그 와중에도 그의 머리는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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