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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732화


1167화

두 사람은 곧장 이드가 탄 마차로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피터 자작님과 자작 부인, 바벨의 에단 님과 부인분들께 인사드립니다. 여기서부터는 저희들이 안내하겠습니다.”

직후 한 사람은 말의 고삐를 잡았고, 다른 사람은 길게 늘어선 마차를 이동시켜 길을 텄다.

그러자 곧 멈춰 있던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휘익. 부럽구먼.”

“거기 아가씨들, 말 말고 날 끌어 주면 좋겠는데. 하하.”

그와 함께 무슨 일인가 하고 지켜보고 있던 다른 일행의 마부와 하인들이 저마다 작은 휘파람과 함께 추파를 던졌다.

원래 다 비슷한 신분으로 보여도, 하는 일에 따라서 알게 모르게 급이 나뉘는 법이다. 그랬기에 처음엔 갑작스러운 여인들의 등장에도 섣불리 접근하기는커녕 호기심만 보였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고삐를 잡고 직접 나서서 길을 트는 순간, 그 부담감이 사라졌다. 그건 직급이 낮은 하인들이나 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나 조금만 생각하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으리라.

두 사람은 블레인이 호위 겸 파트너로 파티에 동행시켰을 정도로 뛰어난 외모를 가졌다. 그런 이들을 굳이 바깥으로 돌릴 리가 없지 않은가. 하다못해 침실 메이드로 써도 쓸 것을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마부 중 그렇게 머리를 굴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드는 그런 상황 아래, 묵묵히 자기들의 일을 하는 두 기사를 안쓰럽게 바라봤다.

“낯빛이 말이 아니네.”

“수치스러울 겁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당당히 결투에 나섰던 기사가, 갑옷은 입지 못할망정 메이드복 같은 걸 걸치고 있으니까요. 다만.”

피터가 가늘어진 눈으로 점점 가까워지는 저택을 노려보았다.

“저택 주인이 무슨 의도로 이러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전 그보단 저 기사들이 왜 주종 계약을 파기하고 떠나지 않는지가 더 궁금해요. 기사 자존심에 메이드복이라니. 어지간한 기사라면 벌써 검을 꺾었을걸요.”

보통 기사들이 쓰는 검은 그들의 주군이 내려 준다. 그걸 꺾는다는 건 그 관계의 끝을 의미한다.

“드레스는 괜찮고?”

“파티에 참석하는데 갑옷을 걸치고 있으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하죠. 그때 입은 드레스도 이쁘기만 하던데.”

물론 원해서 입었느냐, 명령으로 입었느냐가 문제긴 하지만, 드레스를 입은 자체는 기사로서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다. 메이드복과는 의미가 달랐으니까.

이드 일행이 그러는 사이에도, 밖에서는 크고 작은 휘파람이 멈추지 않았다.

보통 주인을 모시고 있는 상태에선 행동을 조심하기 마련이지만, 두 사람의 미모가 어디 보통이어야지. 이미 반쯤 정신 줄을 놓은 상태로 보였다. “저 인간들, 상대가 기사라는 걸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궁금하면 확인해 보면 되지. 엇차! 자작님도 장난이 심하시지. 나는 누군가 했소. 바로 알아보지 못해서 미안하오, 바인 경! 하하하.”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문을 열고 마차에서 내린 이드가 큰 목소리로 둘 중 한 명에게 말했다. 그에 라미아가 이드에게 속삭였다. 

“이름을 알아요?”

“당연하지. 결투 때 들었잖아.”

사방에서 넘쳐나던 휘파람은 어느새 뚝 멈춰 있었다. 화살 한 방으로 숲속 새를 몰살시켜 버린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몇 초 전까지 휘파람을 불어 대던 인간들은 어느새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입술을 쭉 내민 흉한 모습 그대로.


그리고, 창가에 선 저택의 주인이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떤 것 같나.”

“묘합니다. 얼마나 강한지 전혀 감이 오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감이 대단해 보입니다. 행동에 거침이 없어요.”

톤 자작이 묻자, 떡 벌어진 어깨에 부리부리한 눈을 한 남자가 답했다.

그의 이름은 솔론. 자작이 가장 아끼는 기사이자, 가문을 지키는 창인 수칵 기사단의 단장이었다.

“바벨의 감찰관이야. 상대가 눈치를 보면 봤지, 본인이 눈치를 볼 위치는 아니지. 그러니 시골뜨기 자작 놈을 부추겨 블레인을 몰아붙인 것이 아니겠나.”

“그보다는, 전날 자작님을 앞에 두고도 안중에 두지 않는 것 같은 태도가 더 굉장해 보였습니다.”

“흥! 닥치게. 그나저나…… 자네가 재기 힘든 인물이란 말이지. 자네가 무능한 걸까, 아니면 저놈이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걸까.”

“제 입으로 인정하긴 싫지만, 둘 다가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무인과는 결이 다른 초인이란 점도 한몫할 테고요.”

제 입으로 스스로의 무능을 말하고 있음에도, 솔론 남작은 당당했다.

자작은 그런 모습이 익숙한 듯 신경도 쓰지 않았다. 괜한 자존심을 내세우는 대신, 객관적으로 본인과 상대를 파악할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그가 솔론을 아끼는 가장 큰 이유였으니까.

그야말로 상인으로서 가장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겠는가. 물론 솔론은 기사지만 말이다.

“그렇게 보는 것이 옳겠지. 바벨이 스스로를 지킬 힘도 없는 자를 감찰관으로 쓰는 얼간이 집단은 아닐 테니까. 역시 계획대로 직접 상대하는 건 피해야겠군.”

“그런데…… 정말 하실 겁니까?”

솔론이 멈추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말했다.

“그런 말 말아. 이렇게 끝나서야 보일런은 물론이고, 내 체면이 꺾인단 말일세. 깔끔하게 마무리해 두지 않으면, 두고두고 우리 가문을 욕보일 거리가 될 거야. 그런 건 용납할 수 없지.”

“하지만 바벨이 마음에 걸립니다.”

“쓸데없는 걱정.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야. 자넨 바벨이 개인적인 문제에 관여한다는 말을 들은 적 있나?”

“그야…… 없지요.”

바벨은 어디까지나 초인 공공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다. 초인을 박해하거나 부당한 일에 사용하는 사건에는 개입하지만, 개인적인 은원이나 충돌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그런 분명한 기준이 있기에 각국에서 바벨의 활동을 그냥 두고 보는 것이기도 했다.

“알면 말한 대로 준비나 해 둬.”

단단히 마음을 먹은 톤 자작에 솔론도 결국 고개를 숙였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의견을 내놓는 것. 그걸 받아들이고 말고는 순전히 주군인 톤 자작의 마음에 달린 문제였다. 그런 만큼, 기사로서 주군이 어떤 쪽으로 결정을 내리든 한번 정한 일은 따라야 했다.

하지만 이후 창밖을 향해 시선을 준 솔론은 한 가지 미련만은 털어 버리기가 힘들었다.

바로 검 대신 마차의 고삐를 잡은 두 기사에 대한 것이었다.

“・・・・・・ 저 아이들에 대한 문제만은, 생각을 바꿔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망설이던 솔론이 입을 열었다.

그건 저들을 부하로 두고 있는 기사단장으로서 최소한의 의리이며, 재능 있는 후배를 아끼는 선배 기사로서의 기본적인 도리에서 나온 말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창문에서 등을 돌려 솔론을 내려다보는 톤 자작의 눈은 냉혹하게 주판을 튕기는 상인의 그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보일런의 몸값 대신 저 아이들을 내놓는 건 반대라는 건가.”

“재능 있는 아이들입니다. 보일런 공자님도 아끼시고요.”

“글쎄.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이미 더 아름다운 꽃을 본 보일런이 저 아이들에게 다시 눈길을 줄 것 같아?”

톤 자작은 마차 안에 있을 두 여성을 떠올렸다.

제국이 좁다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본 그로서도 그만한 미녀를 본 건 손에 꼽힌다.

딱 두 번 마주친 엘프에 비견될 만한 미모.

그런 아름다움에 눈을 떴으니, 자신의 아들이 저 여기사들을 찾을 일은 두 번 다시 없으리라. 원래 한 번 관심에서 벗어난 것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 아이니까.

“무엇보다, 저년들 남겨 두고 내놔야 할 보일런의 몸값이 얼만지 알아? 그 돈이면 저년들보다 훨씬 뛰어난 기사 일곱은 더 구할 수 있어. 자넨 내게 이런 손해 보는 장사를 하란 말인가?”

“아닙니다.”

“그래. 당연하지. 차라리 그 몸값으로 기사를 새로 들이는 편이 기사단을 이끄는 자네와 우리 가문에 득이야. 자네가 그 손해를 메꿀 것이 아니라면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한 말은 꺼내지 말게.” 

“알겠습니다.”

단호한 톤 자작의 말에 솔론은 쓴 입맛을 다시며 미련을 깔끔하게 접었다.

톤 자작이 저렇게까지 말한다면, 이제 와 생각을 바꾸는 건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돈에 관련한 문제에서 톤 자작은 한 치도 물러서는 경우가 없다. 손해를 보는 일 역시 병적으로 싫어한다.

보일런의 몸값과 두 명의 기사를 올려 둔 저울은 처음부터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던 것이다.

자신의 주군인 톤 자작은 사람을 부림에 있어 가성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하나 사람에 가성비를 따지는 게 잘못되었다 말하기엔, 여태 이런 톤 자작의 판단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실패하지 않은 일에 대해 지적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었다.

최소한 톤 자작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결론이 날 때까지는 말이다.

‘이젠 남아 있는 녀석들이나 추슬러야겠군. 저 아이들에 호감을 가진 놈들이 한둘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설득할 수 없다는 걸 확인한 솔론은 창밖에 있는 기사들에 대한 미련을 깔끔히 접고, 아직 자신 아래 남은 기사들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주군의 결정이라지만, 그는 실로 빠르게 미련을 접어 버렸다. 칼같이 관계를 정리하는 모습 하나만은 참으로 닮아 있는 둘이었다.


저택 정문에 마차가 멈춰서고, 이드 일행이 내려섰다.

그러자 두 기사가 그 뒤로 붙어 섰다.

“오늘 하루는 저희가 두 분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무엇이든 지시해 주십시오.”

이래서야 정말이지 시종과 다를 바가 없다.

아래로 향한 눈빛은 가라앉았지만, 얼굴엔 살짝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아까 이드가 나서 난처한 상황을 처리해 주었기 때문이다.

‘톤 자작의 장난’이라는 간단한 말이 그녀들의 수치심을 감하는 건 물론이고, 허튼짓을 하는 놈들에 대한 경고까지 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때, 일리나가 바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기사님이 저희를 안내해 주신다니, 영광이에요.”

“・・・・・・ 모시겠습니다.”

복장과 관계없이 기사로서 존중받고 있다는 기분 때문일까. 설움이 북받친 듯 살짝 손을 마주 잡았다 놓는 바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는 곧 앞장서서 일행을 저택 안으로 안내했다.

“일리나도 신경이 쓰이나 보죠?”

그 뒤를 따르며 이드가 말했다.

“어쩐지 저 두 사람, 앞으로 오래 보게 될 것 같아서요.’

“그걸 알아차렸어요?”

“아무리 괴팍해도 자신의 기사들에게 저런 짓까지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있어도 그런 관계는 금방 파탄이 날 수밖에 없죠.”

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실 두 사람이 메이드복으로 나타나 마차의 고삐를 잡는 순간, 그도 짐작하고 있었다.

버리는 카드.

내 것이라면 절대 함부로 할 수 없지만, 어차피 버릴 것이라면 어떤 식으로 쓰든 상관이 없다. 더욱이 그녀들을 자신들 옆에 붙여 둔 모양새도 그렇다.

‘결투가 끝나고, 스윔 남작이 돈 대신 기사들을 내놔도 된다고 했었지?’

갑자기 그 말이 떠올랐다. 그녀들을 굳이 자신들에게 붙여 놓은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도 저택에 발을 들이기 전부터 말이다.

‘어쩌면 오늘 연극 한 편 찍게 될지도 모르겠는데.’

원해서 출연하는 건 아니지만, 이왕 나가게 된다면 열심히 해 줘야 할 것 같다. 무대가 뒤집어질 정도로.

그러려면 우선 준비해야 할 게 있었다.

“바인 경.”

“말씀하십시오.”

“스윔 남작 일행이 와 있다면, 우선 그분들부터 먼저 보고 싶은데, 안내해 주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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