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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737화


1172화

라미아가 보관하고 있는 이드의 보물 양은 그야말로 어마무시하다.

한번은 이드가 아공간에 든 보물들의 목록을 만들어 볼 생각으로 창고를 열었다가 결국 열흘 만에 포기한 적이 있었다.

보물의 가치와 기능 확인에 시간이 걸리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해도 해도 줄어들지 않는 양에 질려 버린 것이다.

그레이드론에게 물려받은 보물에 더해 드레곤 레어를 두 개나 털어 넣었으니, 양과 질 어느 면에서나 압도적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 물론 그 중 레어 한 개분은 반환 시점이 코앞이었다.

‘그땐 당연히 라일로시드가가 죽은 줄 알았지. 세상 밖으로 튕겨 나갔을 줄 짐작이나 했겠냐고.’

들을 사람도 없는데 변명이 자동으로 나온다.

시기를 놓치면 점유물이탈죄를 물으려고 달려들 드래곤 한 마리가 대기 중이니 조심해야 했다.

당시 주인이 죽은 줄 알고 추가 조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사하면 보물을 털어 간 범인이 누구인지 다 나온다!

아무튼, 이렇게 그 원래 소유주가 드래곤인 물건들이다. 양은 둘째 치고 유, 무형적인 가치에 더해 기능적인 면에서도 역사에 기록될 만큼 뛰어난

물건들이다.

톡. 툭. 투툭.

헙.

다시 말해 라미아의 손에 들린 장비들이 하나하나 탁자 위에 올라올 때마다 그걸 지켜보는 이들이 목 졸린 듯 숨을 삼키는 게 결코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검뿐 아니라 가지런히 놓인 반지와 귀걸이 등 각종 장신구에 마리는 벌써 탁자에 달라붙어 구경 중이다.

명색이 지부장으로 있으며 그래도 귀중품을 보고 만질 기회가 많았던 에단마저 몇 번이나 눈을 비볐다.

“이・・・・・・ 아니, 아니. 에단 님. 이것들이 전부 진품…..

인 거지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국의 명예 후작이자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가 가짜를 내놓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그의 눈으로 봐도 그 가치가 어중간해야 말이지.

“가짜라면 아티팩트가 아니죠.”

“역시…… 단순한 보석이 아니었군요.”

아무렴 싸움을 앞두고 이쁘기만 한 장신구를 장비라고 내놓을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피터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럼 저기, 친칠라의 심장과 똑같이 생긴 저 목걸이도 진짜 친칠라의 심장일까요?”

이드는 처음부터 피터의 눈길이 떨어지지 않던 목걸이를 확인하고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뭔진 몰라도 똑같이 생겼다면 그게 맞겠죠? 굳이 장비의 이름이나 역사에 대해서까지 상세하고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진품은 확실할 겁니다.” 아무렴 드래곤이 가짜를 애지중지하지는 않겠지.

그리고 가짜라도 상관없다. 드래곤의 눈을 속일 정도의 품질이라면 그건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진품이나 마찬가지니까.

그에 라미아가 나서 답을 공개했다.

“맞아요. 친칠라의 심장. 보석에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하지만 피터는 라미아의 말에 답하지 못했다.

떡 벌어진 목구멍에서 튀어나오는 비명을 찍어 누르는 한편, 기묘한 자세로 이쪽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을 가리기 위해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 마리가 흉한 꼴을 봤다는 듯 말했다.

“갑자기 미치셨어요?”

“네가 진실을 몰라서 그런 말을 하지. 헛소리 말고 치마로 사람들 눈이나 좀 막아 봐.”

“자작님이나 헛소리 멈춰요. 그랬다간 내가 창피해서 죽는다고요.”

“이 답답이가! 아니다, 에단 님. 이거 빨리 집어넣으시죠. 만약 여기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난리 납니다. 무려 백 년 전에도 오만 골덴에 거래된 보물을 꺼내 놓으면 어쩝니까.”

“오만…….”

작은 마을 하나가 오십 년은 편히 놀고먹을 수 있는 금액.

뭘 그렇게 호들갑이냐고 바라보던 마리가 액수를 듣고 나서는 슬그머니 피터 옆으로 붙어서며 손가락을 바르르 떨었다.

바로 직전까지 그 손가락으로 오만 골덴짜리 목걸이를 이리저리 굴려 봤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일주일은 씻지 말아야지.’

“오만 골덴이면 내 수업료 최고 금액과 같군요.”

“……신이 되는 방법이라도 배우는 겁니까?”

“신은 아니고. 제게 무공을 배우는 수업권을 사겠다고 사람들끼리 다툰 일이 있었는데, 거기서 불린 최고 금액이 오만 골덴이었죠.” 

“……친칠라도 지금은 더 비쌀 겁니다.”

피터가 파리한 안색으로 말했다. 일반적으로 잘 관리된 보물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법이니, 근거 없는 말은 아니었다.

“뭐, 십만 골덴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이대로 쓸 겁니다. 그러니 그 이상한 동작 좀 멈추고 똑바로 서요.”

과연 친칠라가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현 피터의 행동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이 더 모이고 있다. 같은 일행으로서 심히 부끄럽다.

이드까지 그렇게 말하자 피터도 엉거주춤 자세를 바로 했다.

“에단 님 생각은 알겠지만, 과연 이걸 바인 경이나 해쉬 경이 쓸 수 있겠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피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사람이 거세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렴 보통 간담이 아니고서야 십만 골덴을 목에 걸 생각은 쉽게 하지 못하는 법이다.

그에 이드는 피터를 살짝 노려봤다.

그가 호들갑만 떨지 않았어도 친칠라의 심장이라는 거창한 이름에 붙은 가치는 밝혀지지 않았을 테니까.

정체를 모르는 목걸이는 그냥 부가 기능이 붙은 액세서리일 뿐이란 거다.

“두 사람 다 신경 쓰지 말아요. 어차피 검이나 갑옷도 아니에요. 잠시 쓴다고 부서질 것도 아니고, 또 부서져도 상관없어요. 이 정도의 물건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 톤 자작의 장비가 부실하다고 말했던 건 한 치의 거짓도 없다는 말입니다.”

“확실히…… 친칠라 하나만 해도 수칵 기사단의 모든 장비보다 대단하긴 하겠네요.”

찌릿.

이드는 또다시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피터를 한 번 노려봐 주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부담스러워할 거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이번 대결을 위해 두 사람에게 빌려주는 거니까요. 다른 물건들도 마찬가지고요. 피터 자작님이 너무 설레발을 쳐서 그렇지, 결국 몸을 보호하고 신체를 강화해 주는 평범한 아티팩트일 뿐이에요.”

사실 두 가지 기능 모두 최상의 능력치로 끌어올려 준다는 점에서 ‘평범’과는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지만, 굳이 그런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혹시 다른 장비들도 이름이 있을까요? 전부 다 친칠라 이상으로 대단해 보이는데요.’

이드와 피터가 떠들어 대는 사이 혼자 열심히 반짝이는 장신구를 살피던 마리가 물었다. 과연 보통의 눈썰미는 아니라고 할까.

“있는지 없는지 모릅니다. 알아도 알려 주고 싶지 않네요.”

라미아에게 물으면 답이 나오겠지만, 여기서 더 말했다가는 바인과 해쉬가 도망이라도 가 버릴 것 같았다.

“그런데, 장신구 형태의 장비는 있는데 정작 중요한 파츠 아머가 없습니다? 뭐, 친칠라만 해도 풀플레이트 이상의 방어력을 발휘하긴 합니다만.” 

결국 포기한 듯 익룡처럼 어색하게 펼치고 있던 양팔을 내려놓은 피터의 말이었다.

그 말처럼 탁자 위에는 검과 자잘한 장신구는 있지만, 정작 직접적으로 몸을 보호할 갑옷이 없었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창고에 보관 중인 갑옷은 모두 이드가 대륙에 무공을 풀기 전의 물건들로, 고루한 형태의 풀플레이트뿐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기능적인 면에선 더없이 훌륭하지만, 아무래도 이런 자리에 꺼내 놓기에는 어색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고 할까.

‘거기다 제일 큰 문제는 백 미터 밖에서도 알아볼 정도로 화려하다는 거지. 친칠라의 심장 이상으로다가.’

설마 피터가 친칠라의 심장을 알아볼 줄은 몰랐다. 덕분에 그와 같은 우려를 풀플레이트에 대해서 하게 되었고, 그래서 꺼내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파츠 아머 없이 대결에 나가게 할 생각은 없어요.”

아무렴 톤 자작에 말해 둔 것이 있는데,

그렇다고 이 사람들 앞에서 친칠라의 심장을 들고 ‘이것 하나만 해도 톤 자작의 기사단이 가진 모든 장비보다 값어치 있다’고 소리칠 수도 없는 일 아니겠는가.

“설마 갑옷도?”

“그건 아니고, 갑옷은 제가 직접 만들 겁니다.”

생각지도 못한 발언에 피터는 물론이고, 마리와 두 기사마저 어리둥절하고 있는 사이, 라미아가 잘 정련된 철과 미스릴를 꺼냈다. 그리고 그걸 받아든 이드는.

주물주물,

밀가루 반죽처럼 두 금속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저거 금속이 아니었나?”

“바벨이잖소. 초인기겠지. 그나저나 대체 무슨 능력이기에 금속을 저렇게 주무르지?”

피터가 애쓴 덕분에 탁자에 올려진 작은 장신구까지 보지는 못한 사람들이 큼직한 철괘를 보곤 신기해했다.

그러는 사이 철과 미스릴은 이드의 손안에서 하나의 합금이 되어 길게 늘어났다 뭉쳐지길 반복했다.

그리고 반죽이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때, 이드는 그 일부를 떼어 내 이리저리 구부리고, 접기를 반복했다. 그 후,

텅.

어깨 보호구 하나를 완성해 냈다. 화려한 문양이 없는 대신, 매끈하고 실용적으로 보이는 파츠 아머였다.

그걸 시작으로 머리와 가슴, 팔목과 허벅지를 보호하는 파츠 아머도 쑥쑥 뽑혀 나왔다. 한 부위가 완성되어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삼분 내외.

모든 부위를 더하면 대략 이십오 분 정도가 걸렸지만, 구경하고 있는 사람 중 누구도 그 시간을 지루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명작을 감상하는 것처럼, 연극에 푹 빠진 관람객처럼 침묵을 지키며 이드의 손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금속의 모습에 빠져들 뿐이었다. 그렇게 고요한 가운데,

마리가 피터의 귀에 속삭였다.

“제가 혹시 착각하는 건가 싶어서 그런데, 저분 이드 님 맞죠? 이드 님이 초인이셨어요?”

“정신 차려. 그럴 리가 없잖아. 너까지 속으면 어쩌자는 거야? 당연히 무공이겠지. 딱 보면 몰라?”

“역시 그렇죠? 그나저나 마인드 마스터의 무공이란 대단하네요. 저도 깜빡 속을 뻔했어요.”

사실 정말 모르는 건 피터였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금 금속을 다루는 이드의 솜씨의 근원이 초인기라는 사실을 그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다. 마인드 마스터에게 무공이 아닌 초인기라니.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사람이 한둘이 아니리라.

그렇게 총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아 두 사람의 파츠 아머가 완성되었다. 파츠 아머를 고정할 가죽 끈을 연결하는 것까지 포함한 시간이다. 그렇다고 결코 허술한 물건은 아니었다. 오히려 어중간한 대장장이의 손을 거친 것 이상으로 완성도가 높았다.

외부의 힘을 이용해 억지로 금속의 형태를 바꾸는 방법과 초인기를 통해 금속 스스로 그 형태를 바꾸게 하는 방법의 차이였다.

“당장 추가 가공을 하지 않아도 방어구로서는 충분하겠지?”

“당연하죠. 여기서 추가할 거라면 항마 기능 정도인데. 어차피 지금 상대는 마법사가 아닌 기사잖아요. 마법 가공은 나중에 천천히 하면 돼요.” 

보통은 하나하나의 작업이 굉장한 수고와 자금이 소모되는 작업인데, 그걸 이드와 라미아는 너무나 쉽게 말하고 있었다. 그에 둘을 둘러싼 사람들은 그저 어안이 벙벙한 얼굴들이다.

하지만 그들도 한 가지 생각하지 못한 바가 있었다.

따로 파츠 아머에 마법 가공을 더하지 않더라도, 앞서 꺼내 놓은 장신구에 각인된 기능만으로도 어지간한 명품으로 이름난 파츠 아머를 씹어 먹고도 남는다는 사실 말이다.

“자, 대결을 시작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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