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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819화


1254화

검후가 전쟁에 대해 언급한 이후 사흘이 지났다.

내일 당장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말과 달리, 시간은 조용히 흘렀다.

양국 간의 긴장은 높아갔지만, 생각처럼 쉽게 전쟁이 시작되진 않았다. 대신 황녀가 전해 주는 말에 따르면 황궁의 분위기는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한다.

그사이 저택에선 바인과 해쉬의 입단 시험이 별다른 문제 없이 끝났다.

결과는 예상대로 통과.

더욱이 시험 성적이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고.

그리고 이런 시험 결과에 만족한 검후는 곧바로 두 사람의 입단을 허락했고,

드디어 오늘. 연무장에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두 사람의 기사 임명이 이뤄지게 되었다.

검후가 사람들 앞에서 검을 높이 들었다.

“……그리하여 명예로운 아나크렌 제국의 기사가 되었음을 위대한 황제 폐하의 이름을 대신해 선언하는 바이다!”

“이 생이 다하는 날까지 기사도를 지키며 주군께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합니다.’

“이 생이 다하는 날까지 기사도를 지키며 주군께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합니다.’

한쪽 무릎을 꿇은 바인과 해쉬가 한목소리를 냈다.

검후가 높이 들었던 검을 스폴에게 넘기고, 바인과 해쉬를 직접 일으켜 세우며 가볍게 안아 주었다.

“은색 기사단의 기사가 된 것을 축하한다.”

앞서 태산 같은 위험을 뽐내던 때와는 백팔십도 다른, 자상한 어머니를 떠올리게 만드는 한마디.

그 커다란 차이에 바인과 해쉬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뻣뻣이 굳어 버렸다. 검후는 그런 반응이 익숙한 듯 한걸음 물러났고.

그 자리를 이젠 동료가 된 은색 기사단이 박수로 채웠다. 축하와 함께 따뜻한 환영의 인사를 건네는 그녀들의 얼굴엔 진심이 가득했다. 바인과 해쉬가 은근히 걱정하던 텃세나 견제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절대 검후나 쉴라가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명성이 높은 기사단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다 있구나.’

바인과 해쉬는 새삼 묘한 구석에서 감동했다.

그러나 이런 두 사람이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오색 기사단에 텃세가 없는 게 아니라, 은색 기사단이기에 텃세를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오색 기사단이라는 자부심이 어지간한 바보에게는 손을 내밀지 않도록 브레이크 역할을 해 주지만, 인간이 모인 이상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는 일. 하지만 은색 기사단은 단단한 동료애로 이런 바보짓을 차단하고 있었다.

은색 기사단이 이러할 수 있는 이유는, 검후를 최측근에서 모시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검후 앞에서 멍청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는 고집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이런 고집은 검후가 실종된 후 오직 그들의 힘만으로 전 대륙을 달리며 더욱 강해졌다.

자신들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같은 은색 기사단의 동료들뿐이라고 말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여타 다른 기사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든 바보짓거리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면 귀여움받는 막내 같은 거 말이다.

다른 기사들을 뚫고 나온 케마란과 네리베르가 두 사람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우리는 진심으로 해쉬 경과 바인 경을 환영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던 기사단 막내 자리는 오늘부터 두 사람의 것이에요. 축하해요!”

“네. 네?”

사실 나이를 따져도 그렇고, 실제 기사 생활을 한 기간을 따져도 그렇고. 막내는 케마란과 네리베르지만, 두 사람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막내 탈출에 아주 대놓고 신이 난 그 모습에 다른 기사들이 어이가 없는지 웃음을 터트렸다.

“저 쪼꼬미들이 뭐래니?”

“일 년도 못 채우고 막내 탈출은 좀 아니지 않나?”

“그렇지. 잘못하면 버릇 나빠진단 말이야. 야, 너희들 그냥 이대로 일 년만 더 막내 하지 않으련?”

“꺄하하하. 그거 재밌겠다!”

“아악! 선배님!! 그런 게 어딨어요!”

신입에 대한 축하는 어느새 막내들에 대한 놀림으로 변해 있었다. 왁왁하며 시끌벅적해진 모습에 바인과 해쉬는 일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게・・・・・・ 은색 기사단・・・・・・ 진짜?’

멋지게 빛나던 모습 어디에서 이런 말괄량이들이 나온 걸까.

다행히 이런 혼란에서 두 사람을 구해 줄 사람이 나타났다. 이드가 두 사람을 손짓해 부른 것이다.

“명예 후작님.”

“바인 경, 해쉬 경. 입단 축하해요.”

“모두 명예 후작님께서 이끌어 주신 덕분입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해쉬 말이 맞습니다.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미력한 힘이지만 필요하시다 하시면 대륙 끝까지 달려가겠습니다.”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바인의 말.

이드는 그녀가 제법 말을 이쁘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저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하. 마음만 받죠. 우선은 이것부터.”

말과 함께 이드가 꺼내 놓은 것은 커다란 보따리 두 개였다.

혼자 들기에도 버거워 보이는 커다란 보따리에 엉거주춤한 두 사람을 대신해, 무슨 일인가 하고 다가온 케마란이 호기심을 보였다.

“이게 뭐예요?”

“기사단 입단 선물. 아무래도 두 사람이 거의 맨몸으로 왔으니까. 기사단에 있으면서 필요할 만한 것들을 좀 준비했지.”

“헤에~ 한번 풀어 봐도 되요?”

“너무 어지르지 말고.”

이드의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케마란이 보따리의 입구를 풀었다. 그러자 가장 위에 있는 파츠 아머를 시작으로 갖가지 물건들이 나타났다. 하나같이 반짝거리는 신품들.

“우와! 나 이거 본 적 있어!! 엄청 비싼 거였는데!!”

더구나 사소한 물품 하나까지 명품 아닌 것이 없었다. 이런 장비에 있어 누구보다 눈이 밝은 기사들이 가치를 단번에 알아보고는 왁 하고 소리를 냈다.

그건 선물을 받은 당사자들도 마찬가지.

해쉬가 손을 내저었다.

“이, 이런 선물은 저희에게 너무 과분합니다. 저희들을 이곳까지 이끌어 주신 것만도 감사한 일인데, 어떻게………….”

“충분히 받을 자격 있어요. 두 사람은 날 믿고 이곳까지 따라왔잖아요. 그리고 우리 때문에 지금까지의 삶이 완전히 바뀌기도 했고. 이건 그에 대한 작은 보상이에요. 그러니 받아요.”

“하지만…….”

해쉬와 바인은 쉽게 수긍하지 못했다.

이런 중간에 끼어든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케마란이다.

“선배의 첫 번째 명령이니까. 이 선물은 그냥 받아요. 선물을 챙길 수 있을 때 챙기는 것이 좋단 말씀. 그런데, 이드 님도 너무하세요.”

“저희는 입단했을 때 이 정도로 챙겨 주진 않으셨잖아요. 섭섭해요윽! ・・・・・・왜 때려!”

괜히 쓸데없는 소리를 더하던 케마란이 네리베르에게 뒤통수를 맞고는 억울해했다. 하지만 이미 네리베르는 그녀를 보지 않고 이드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이 바보가 또 헛소리를 했어요.”

“아니,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그리고 케마란. 너도 선물을 받고 싶으면 줄 수는 있어. 대신 여기 바인 경과 해쉬 경이 카논에서 이곳으로 온 것처럼, 너도 카논으로 자리를 옮겨서 기사단에 입단한다면 말이야. 그래 볼래?”

도리도리,

고개만 끄덕이면 당장이라도 카논까지 날려 보내 줄 것 같은 이드의 모습에 케마란이 시퍼레진 얼굴로 냉큼 고개를 저었다.

그에 이드는 아쉽다고 말하고는 라미아로부터 검 두 자루를 건네받아 바인과 해쉬를 향해 내밀었다.

“그리고 이 검도 선물이에요. 이건 상하지 않도록 따로 챙겼어요. 참고로 이 검을 선물한 건 우리가 아니라 저기 라울 자작이에요.”

이드가 손짓하는 곳에는 어느새 나타난 라울이 삐딱한 자세를 하고 있었다.

“자작님, 저희를 이곳까지 데려와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이런 선물까지.”

“너무 감사드립니다. 이런 검은 평생 처음입니다. 정말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그・・・・・・ 러게. 잘 써 주면 기쁘겠어.”

어느새 자신에게 모여드는 눈들에 자세를 바로 한 라울이 간단히 답했다. 이런 라울의 눈은 이드를 향해 희게 번득였다.

저 갑옷과 검. 그리고 여타 장비들. 그 계산서를 받고 얼마나 손을 떨었는데.

여기서 이렇게 공을 돌려 버리면 이후에 불만을 말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렇게 라울의 속이 쓰리거나 말거나. 감격스러운 은색 기사단 입단에 더해 선물까지 받아 든 바인과 해쉬가 결국에는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이드는 그런 두 사란 주변으로 이제는 동료가 된 은색 기사단의 기사들이 모여드는 것을 보고는 연무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런 이드를 따라 검후와 라울이 뒤를 따랐다.

쉴라와 스폴이 궁금한 듯 이쪽을 보지만, 여전히 연무장에 남았다. 두 사람 역시 기사단의 일원으로 새로운 동료를 맞이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자작은 오늘 어쩐 일로 방문하였는가? 설마 입단식을 축하하기 위해서는 아닐 테고.”

의심 가득한 검후의 눈이 라울을 향했다.

그만큼 라울의 방문은 갑작스러웠다. 보통은 사전에 알리고 왔었지만, 오늘은 그런 것도 없었다.

그야말로 깜짝 방문이었다.

“하하하. 왜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굳이 듣고 싶은가?”

“쩝. 듣지 않도록 하지요. 아무튼, 다시 한번 갑작스럽게 실례한 것은 사죄드립니다. 하지만 워낙 급한 일이기에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찾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급한 일이 무엇인가?”

“그것이…… 이곳에서는 그렇고. 안으로 들어가서 말씀드려도 될지?”

“접객실로 가죠.”

앞장서 걸으며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드가 접객실로 방향을 잡았다. 모든 기사가 연무장에 모여든 지금, 저택 안은 조용했다. 이드는 대기 중인 하녀에게 차를 부탁하고는 접객실로 들어섰다. 잠시 후 하녀가 차와 과일을 가져온 후 문이 닫혔다.

이드가 일리나가 건네주는 찻잔을 받아 들고는 라울을 보았다.

“자, 이제 말해 봐요. 급한 일이라는 게 뭡니까?”

“크흠. 본론을 꺼내기 전에 혹시 여기 계신 분들은 마스의 현 상황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요리조리 눈을 돌리며 꺼낸 라울의 말에 이드는 검후 쪽을 한번 돌아보고는 간단히 답했다.

“내부 사정을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제국이 알고 있는 사실은 알고 있죠. 거의 매일 황궁으로부터 상황 변화를 전해 듣고 있으니까.”

“잘됐군요. 그럼 마스가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도 당연히?”

끄덕끄덕.

이드와 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알고 있지. 그대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가?”

“이런. 제가 말을 너무 돌렸나요. 그럼 본론을 바로 말씀드리죠. 혹시 저 마스가 전쟁을 결정한 이유에 대해서도 아십니까? 제국을 상대로 전쟁을 결심하게 만든 계기가 말입니다.”

“그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았지. 하지만 대충 짐작은 하고 있네. 미완의 마탑 때문 아닌가?”

왜 자꾸 당연한 일들을 묻느냐.

그런 얼굴로 답하는 듯한 검후에 라울이 말을 더했다.

“맞습니다. 그럼 저들이 초인 마법을 완성했다는 것도 아십니까? 제국의 초인 전력을 한 번에 무너뜨릴 방법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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