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877화
1312화
미완의 마탑은 생명의 관의 붕괴 원인인 이드에 주목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런 이드와 싸운 늑대 괴물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늑대 괴물이 어디서 왔고, 그 정체가 무엇인지는 아직도 알아내지 못했다. 대신 분석할 수는 있었다.
정보의 출처는 정신의 관과 쉐어 가든에서 벌어진 전투였다. 정신의 관은 직접 목격한 것이 있고, 쉐어 가든은 마스의 협조를 통해 필요한 자료를 얻었다.
그렇게 추려진 정보에 따르면, 늑대 괴물의 전력은 오랫동안 출현하지 않은 드래곤에 필적했다.
마법사의 입장에서는 꼭 대면하고 싶은 마법 생명체.
각국에서는 자연재해로 취급되는 최강의 종족.
그런 드래곤에 비견된 것이다.
드래곤이라니. 마탑 내에서는 이 결과에 부정하는 마법사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인정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직접 공격을 당한 것도 아니고 오로지 전투의 여파만으로 폭삭 주저앉은 정신의 관과 쉐어 가든이 그 증거였기 때문이다. 그저 옆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거대한 건축물을 폐허로 만들 수 있다니.
이것이야말로 자연재해가 아니고 무엇인가.
물론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런 말에 질색을 했다.
“아니, 그럼 그런 늑대 괴물과 싸운 명예 후작은 뭡니까? 거의 동등하게 싸웠고, 쉐어 가든에선 명예 후작의 손에 늑대 괴물이 죽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는데. 그럼 명예 후작이 드래곤과 같은 존재라는 거 아닙니까!”
명예 후작과 적대 관계에 있는 입장으로서는 억장이 무너지는 답답한 소리였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더 인정하지 않으려 했을지도.
하지만 늑대 괴물의 전력을 분석한 마법사들은 이를 다르게 해석했다.
“전설에도 드래곤 슬레이어는 있습니다. 하지만 드래곤 슬레이어들이 꼭 드래곤만큼 강력한 존재인 건 아니었습니다. 동료도 있었고, 특별한 장비도 있었으며, 상성의 문제도 있었지요. 정말 쉐어 가든에서 늑대 괴물이 죽었다면 그건 앞서 말한 그런 이유 때문이지, 결코 명예 후작이 드래곤만큼 강력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 겁니다.”
“…..”
늑대 괴물은 드래곤급이지만, 그런 늑대 괴물을 죽였을지도 모르는 명예 후작은 드래곤급이 아니다.
그야말로 제 편할 대로 행복회로를 돌린 결과였다.
이에 납득하지 못한 사람도 있었지만,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반박하기에는 그 결과가 너무 끔찍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공격해서 두 개의 관을 붕괴시킨 적이 드래곤만큼이나 강력하다니, 누구라도 믿고 싶지 않을 것이다.
좌우간 이미 꽤 많은 영혼의 관 마법사들이 이렇게 결론이 난 내용에 대해 알고 있었다. 명예 후작은 둘째 치고, 늑대 괴물의 존재는 호기심과 실험 정신이 투철한 마법사에 있어 이 이상 궁금할 수 없는 흥미 덩어리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엘로자의 물음에 눈이 마주친 어느 마법사는 자신도 모르게 답해 버린 것이다.
문제라면 타이밍이랄까.
장로가 쓸데없이 입을 놀린 마법사를 노려보았고, 그 시선에 마법사는 슬그머니 다른 누군가의 등 뒤로 숨었다.
그래 봤자 그의 대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엘로자가 말했다.
“들으셨다시피 저희는 그런 강력한 전력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물론 우리 영혼의 관이 지닌 힘은 강력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완성되고 있는 초인 마법을 보면, 세상의 그 어떤 마탑보다도 뛰어나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오늘의 문제는, 적은 그런 우리보다 더욱 강하다는 겁니다.”
이어지는 말에 슬쩍 마주친 장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말을 막지는 않았다.
“우리에겐 늑대 괴물과 같은 전력이 없지만, 적에겐 그런 늑대 괴물을 죽인 명예 후작이 있습니다. 또 그 뒤에는 검후가 있고, 은색 기사단이 있습니다. 그뿐이 아니죠. 지금이야 전력의 대부분을 상실한 상태이긴 해도, 바벨의 정예도 있습니다. 아마 이들 중 몇은 베이몬의 약속 아래서도 충분히 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들일 겁니다. 장로께선 이런 전력을 상대로 우리 플로어 마스터들이 어떻게 싸워 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사실과 합리적인 의견을 앞세운 엘로자의 주장은 그야말로 한 점의 오류도 없었다.
그에 비해 근성론을 주장하던 장로는 대답이 궁색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 어쩌자는 말인가. 적이 강력하다고 영혼의 관을 버리고 도망이라도 가자는 건가. 정말 그랬으면 좋겠냔 말이다. 세상에 마탑을 버리는 마법사라니!”
엘로자의 주장이 장로의 귀에는 마탑을 버리자는 양 들리기라도 한 것일까.
장로의 반응에 언쟁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내심 고개를 저었다.
‘하여튼, 저 양반은 불리하면 없는 말 만들어 내는 데 선수라니까.’
‘마법사가 말이야, 말로 밀렸으면 얌전히 물러날 것이지.’
‘추하다 추해~’
“장로님, 전 마탑을 버리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엘로자도 장로의 반응에 나직이 한숨을 쉬며 반박했다. 그리고 장로를 설득할 말을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엘로자보다 먼저 말문을 연 사람이 있었다.
“엘로자 마법사의 말은 강적과 싸울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닐까요. 페로나 장로.”
“부, 부관주!”
“언제 오셨습니까. 오셨으면 기척을 해 주시지요.”
“부관주! 탑주께선, 탑주께선 어떤 말씀을 내려 주셨습니까.”
목소리가 들려온 곳.
그곳에는 탑주를 만나기 위해 자리를 비웠던 부관주가 어느새 돌아와 있었다.
부관주의 등장에 사람들의 얼굴에 어떤 기대의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적이 강력한 만큼 그들을 기댈 대상이 필요했고, 영혼의 관 마법사들이 그 누구보다 믿고 따르는 이는 다름 아닌 그들을 초인 마법으로 이끌어 주는 탑주였다.
그런 탑주를 만나고 왔다면 어떤 대응 방법을 내려 주시지 않았을까.
빈손으로 돌아온 부관주를 보면 그런 기대가 섣부른 것이란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기대를 놓지 못했다.
부관주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요크 장로에게 다가갔다.
“부관주.”
“요크 장로. 일단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부터 알려 주시겠어요?”
“가란의 거울을 보시지요.”
조급한 사람들과 달리 중심을 잡고 있는 요크 장로가 가란의 거울을 조작했다. 그러자 부관주가 자리를 비운 이후의 상황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영상의 흐름은 매우 빨랐다.
이드의 손에 네트나가 피떡이 되는 장면을 끝으로, 영상은 다시 2층의 전장을 비추기 시작했다.
의도한 것일까. 이때 영상의 중심에 선 인물은 다름 아닌 이드였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검후 이상의 강자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자가 바로 문제의 명예 후작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겠지요. 저런 자가 갑자기 나타날 리는 없을 테니까요. 명예 후작에 대해 분석한 내용대로군요. 강력한 힘이 느껴집니다.”
“실제로도 저자의 마나 파동이 몇 개의 층을 뛰어넘어 여기까지 닿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부관주의 시선이 짧은 순간 엘로자와 그 주변 사람들을 스쳤다.
자신이 다시 돌아왔을 때 장내에 느껴지던 어수선한 분위기.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사실 마법사들이 꽤 곤혹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상대가 워낙 대단하다 보니, 대응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각 플로어에 준비된 전력으로는 명예 후작을 비롯한 침입자를 막아 내기가 상당히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요.”
“・・・탑주께선 뭐라 하셨습니까?”
결국 요크 장로가 먼저 탑주의 반응에 대해 묻고 만다.
부관주는 그의 물음에 바로 답하지 않았다. 아니, 답할 수 없었다.
요트 장로를 비롯해 이 자리의 모든 마법사는 탑주가 문제를 해결해 주길 원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만난 탑주는 아무런 해답을 주지 않았다.
아니, 바이트 타블렛에 온 정신을 쏟은 탑주는 애초에 침입자의 존재에도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지극히 무관심했다.
“지금은 바이트 타블렛의 완성에 있어 중요한 순간이다. 침입자에 대한 처리는 네가 알아서 하려무나.”
바이트 타블렛을 위해서는 영혼의 관이 어찌 되어도 상관이 없다는 듯한 태도.
순간 말문이 막혔던 부관주는 현 상황을 다시 설명했다.
바벨과 검후, 검후를 따르는 은색 기사단.
그리고 명예 후작.
바벨뿐이라면 차라리 쉽다.
거기에 검후가 더해지더라도 각 플로어 마스터들이 최선을 다하면 어찌어찌 감당할 수 있다.
은색 기사단이 있어도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영혼의 관 마법사들이 나서서 플로어 마스터들을 보좌하면 어렵기는 해도 상대가 가능하다. 정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면 자신과 장로들이 나설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미완의 마탑의 가장 큰 적이라고 할 수 있는 명예 후작에 대해서는 장담하기 어려웠다.
자리를 비우기 전 명예 후작의 존재를 확인하라 했지만, 이미 그 시점에 그녀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부관주의 우려도 탑주의 관심을 돌릴 수는 없었다. 그나마 탑주의 시선이 잠시나마 떨어진 것은 침입자들에 의해 바이트 타블렛이 파괴될 가능성을 언급했을 때였다.
“그래서는 곤란하지. 초인 마법의 완성을 방해받을 수는 없지. 그래, 아무래도 그냥 넘길 수는 없겠구나.”
“탑주께서 나서 주세요.’
“음…….”
부관주의 간절한 부탁에 탑주는 고심하는 듯했다. 그런 그의 시선은 연신 바이트 타블렛을 오갔다.
부관주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바이트 타블렛의 중요성은 그녀라고 모르지 않았다. 아니, 탑주를 제외하고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으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탑주의 이런 반응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일에는 우선순위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바이트 타블렛의 연구와 완성을 위해서라도 침입자의 퇴치가 우선이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지금 탑주의 반응은 그 잠깐 바이트 타블렛과 떨어지는 것도 힘들어하고 있다.
그 모습은 마치 마약에 중독된 중독자와 다름이 없을 정도다.
‘존 워스’
이런 탑주의 모습에 부관주는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탑주가 이렇게 변하기 전, 영혼의 관을 다녀간 인물.
그의 손에서 건네진, 바이트 타블렛의 복제품.
부관주는 그 둘에 대한 칙칙한 불안감이 깊어졌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어쩌면 지금 중요한 것은 침입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그러한가.”
“탑주?”
“곧 방법이 나올 것 같구나. 아니, 해결 방법을 찾았다. 일단 내려가 기다린다면 내가 곧 그 해결 방법을 내려보내겠다.”
그 말을 끝으로, 부관주는 탑주의 방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때를 떠올린 부관주는 요크 장로와 마법사들을 돌아보았다.
“탑주께서 해결 방법을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