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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893화


1328화

너무도 말끔한 이드의 모습에 그 말 많던 마법사들이 말문을 닫았다.

“…..”

영상 너머 이드를 향한 시선은 차라리 억울해 보일 정도다.

아닌 게 아니라, 저게 어딜 봐서 용암을 뒤집어쓴 모습이냐고 당장에라도 따지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왜 그렇지 않을까.

무려 화산 폭발이다. 자연이 가진 아주 강력한 무기 중 하나로 손꼽히는 재앙.

그 일부를 흉내 낸 마법이 무려 8클래스에 속한다.

그런데 그런 화산 폭발이,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가 터졌다.

아무리 명예 후작이 강해도 제법 애를 먹어야 정상이었다.

어쩌면 팔다리 하나는 태워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그런데 웬걸.

영상 속 명예 후작은 멀쩡해도 너무 멀쩡하지 않은가.

그 모습은 차라리 불합리하게 여겨질 정도.

과연 자신들이라면 저 폭발하는 용암 속에서 멀쩡할 수 있을까?

순간 떠오른 상상에 대한 답은 뻔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담이 작은 몇몇은 지릴 것 같은 오싹함에 엉덩이를 힘껏 조였다.

하지만 진짜 지릴 것 같은 사람은 따로 있었다.

영상이 아닌, 같은 공간에서 이드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

바로 6층의 플로어 마스터 엘로자 말이다.

“젠장, 너무한 것도 정도가 있지…. 이런 개 같은….”

현재 엘로자는 눈앞이 캄캄했다.

죽을 것 같은 압박감에 당장이라도 화장실에 달려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있는 힘껏 현장으로 달려올 때만 해도 지금과 같은 상황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그는 펠튼과 달리 침입자의 정확한 정체를 알고 있었다.

검후와 명예 후작.

하지만 그 정체 앞에서도 엘로자는 겁나지 않았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오만해서도 아니었다.

반대로 철저하게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플로어 마스터로 탑주에게 인정받은 자신의 실력이었으며, 둘째는 공간 중첩 소환진의 위력이었다.

그 둘을 잘만 이용하면 검후와 명예 후작과도 싸워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혹여 그 생각이 틀려도 상관없었다.

자신이 지는 일이 벌어져도, 앞서 언급한 두 개의 요소를 잘 이용하면 거의 모든 상황 속에서 이 한 몸은 빼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절대 죽을 일이 없다는 사실은 그에게 용기를 주기에 충분한 요소였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화산 지형을 소환할 때까지, 그리고 화산을 폭발시킬 때까지 전혀 변하지 않았었다.

문제는 그 후다.

화산이 폭발한 후의 결과가 그의 상상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가 소환한 화산 지형은 어떤 강력한 몬스터도 단숨에 죽여 버릴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저 명예 후작은 어떻게 된 것인지, 그 화산 폭발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아니, 통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봄바람 속을 거닐듯 태연하기까지 하다.

그런 그의 모습만 보면 화산 폭발이 환상이었던 것 같지만, 그건 또 아니다.

당장 명예 후작의 발아래만 봐도 커다랗게 뭉쳐 있는 용암과 분진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 모습 또한 엘로자에겐 이해가 가진 않는 일이었다.

용암과 분진이 저렇게 커다랗게 뭉치면 그 무게가 얼마인데, 그걸 띄우고 있단 말인가. 그리고 저걸 굳이 저렇게 띄워 놓고 있는 이유는 또 뭐냔 말이다.

머리가 혼란스럽다.

하지만 뭔가 심상치 않다는 예감이 들었다.

이대로 있으면 위험하다고 본능이 속삭인다.

“아직, 아직 보여 줄 것이 한참 남았다고!”

엘로자는 뻣뻣하게 굳은 혓바닥을 움직여 스스로를 독려했다.

어차피 공간 중첩 소환진 안에 있는 이상 상대는 자신을 죽일 수도, 잡을 수도 없다.

다시 한번 속으로 되뇐 사실에 용기가 솟는다.

“무한에서 뻗어 나온 일곱의 가지. 칠흑이 맺은 여섯 개의 과실. 죽어 버린 다섯 마리의 여왕벌을 증거로 삼아 너의 주인이 명하노니…….” 

화산 폭발은 약하다.

어쩌면 명예 후작은 불에 강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불과 반대인 물은 어떨까?

아니면 극한의 냉기는?

엘로자는 어떤 환경이 명예 후작에게 더 치명적일까를 상상하며 공간을 바꾸려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에게 더 이상의 기회는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검게 변한 용암 덩어리 위에 선 이드가 그에게 기회를 줄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초인 마법은 충분히 보았고, 공간 중첩 소환진의 근간이 되는 무차원도 경험했다.

무엇보다 시간을 더 끌기에는 아군의 피해가 크다.

당장 자신이 뚫어 놓은 구멍 속으로 쏟아지는 용암에 그 속은 이미 난장판이 난 상태였다. 아마도 영혼의 관에 들어선 후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된다. 

“우선 용암부터 멈출까.”

담담한 목소리.

용암이 아니라 수도꼭지를 돌려 수돗물을 멈추겠다는 말 같다. 이드에겐 정말 그 정도로 쉬운 일인 것일까.

다음 순간.

용천혈에서 뻗어 나온 한 줄기 내력이 그의 발아래 뭉친, 집채만 한 암석 덩이 위로 떨어졌다.

파가각!

그와 함께 검은 암석 덩이가 스물여섯 개의 조각으로 활짝 피어났다.

검게 변한 겉면과 달리 열기로 인해 아직 붉은 내부.

그 모습은 마치 수박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건 결코 수박이 아니었다.

그걸 확인시키듯 또 한 줄기의 내력이 뻗어 나왔다. 내력은 스물여섯으로 조각난 암석 덩이의 바닥 부분을 쳤다.

휘익! 휘리릭!

그와 함께 사방으로 튕겨 날아가는 스물여섯 개의 조각들.

그 속도는 화살보다 몇십 배 빨랐다.

콰콰콰쾅!

암석 조각은 사방 스물여섯 개의 포인트를 직격했다. 무게와 속도가 더해진 충격량은 엄청났다.

분화구는 다시 폭발했고, 검은 분진이 가득하던 하늘엔 구멍이 생겼으며, 검은 대지는 쪼개졌다.

분명 강력하지만 하나하나 따로 두고 보면 의미를 알 수 없는 폭력.

그러나 그 결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두두두둥!

천지 사방이 흔들렸다. 지진? 아니다.

이건 공간이 통째로 흔들리는 것이었다.

소규모의 차원진.

그 결과는 뻔했다.

이드가 내던진 스물여섯 개의 암석 덩이.

그 의미 없는 폭력이 마치 도미노처럼 충격을 쌓고 쌓아 공간 전체를 흔드는 차원진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 어이없는 결과에 엘로자가 찢어질 듯 눈을 크게 떴다.

입으로는 주문을 외우고 있지만, 그의 두 눈은 당혹감에 비명을 지르는 중이었다.

‘고, 공간 좌표가 흔들린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스물여섯 개의 시공간 교차점을 정확히 찾아냈다고? 대마법사도 힘든 일을, 무공을 익힌 무인이 어떻게?’

엘로자는 현 상황을 전력으로 부정하고 싶었다.

공간 중첩 소환진의 핵이 고작 돌팔매질에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에는 그간 피땀 흘려 배우고 익힌 마법에 대한 믿음이 너무 강했다.

무엇보다 공간 중첩 소환진이 있어야 자신의 안전을 챙길 수가 있다.

공간 중첩 소환진이 파괴되면 자신의 안전도 결코 장담할 수가 없다.

‘…….지금이라도 도망갈까?’

어쩔 수 없이 생존 본능이라는 놈이 꿈틀거린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곧 ‘어떻게’라는 질문에 가로막혔다.

과연 지금 도망치면 명예 후작이 놓아줄까?

고민은 짧았다.

공격도 그렇고, 도망칠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공간 중첩 소환진의 변형을 완성해야 한다.

그런 결론에 닿은 엘로자는 그의 인생 중 가장 현란하게 혓바닥을 놀려 주문을 외웠다.

하지만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손은 혓바닥보다 빠르다고.

아무리 엘로자가 열과 성을 다해 주문을 외워도, 이드의 손이 움직이는 것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마음이 급한 엘로자와 달리 주문에 자꾸 딜레이가 발생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드가 만들어 낸 차원진으로 인해 공간 좌표가 불안정해졌기 때문.

‘이익! 빨리! 좀 더 빨리!’

급한 마음에 손끝이 벌벌 떨리는 엘로자.

그러거나 말거나 용암을 멈추기 위한 이드의 다음 작업이 이어졌다.

라미아의 검신에서 티 없이 맑은 백색의 검강이 길쭉하게 뻗어 나왔다.

이드는 무형대천강의 검강으로 공간을 찔렀다.

그리고 단번에 스물여섯 개 지점을 공간째로 베어 냈다.

찌지지지직!

마치 비단을 베어 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스물여섯 개 지점이 검으로 연결되는 순간.

팟!

한없이 넓은 공간을 가로지르는 검은 선이 나타났다.

어떻게 보면 지평선처럼 보이는 검은 선은 분진 가득한 하늘에도 생겨났고, 흐르는 용암 위에도 생겨났다.

사방 모든 곳에 검은 것이 있었다.

선이 닿지 못하는 곳은 오로지 이드뿐.

직후 검은 선에서부터 생겨난 흡입력이 화산 지대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아, 안 돼!”

그와 같은 현상에 엘로자가 머리를 잡아 뜯었다.

그래 봤자 이미 시작된 변화는 멈추지 않았다.

검은 선은 공간을 잡아먹듯 두꺼워졌고, 거기에서 일어나는 흡입력은 점점 강력해졌다.

종국에는 태풍처럼 강력해진 흡입력에 이드의 옷자락이 어지럽게 휘날렸다.

하지만 이러한 혼란은 길지 않았다.

3초.

하늘 끝에서 땅끝까지 검은 선에 잡아먹히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그리고 세상을 검게 물들인 검은 선은 자신의 일을 마쳤다는 듯 그대로 사라졌다.

직후 나타난 것은 1층과 2층에서 보았던 익숙한 공간이었다.

돌로 된 천장과 바닥과 그 사이를 잊는 돌기둥.

그리고 바닥에 뚫린 커다란 구멍.

그렇게 공간이 바뀐 직후다.

콰앙!

“끄아아아아악! 내, 내 팔! 내 파아알!”

갑작스러운 폭발과 함께 들려 온 비명 소리의 주인은 엘로자였다.

그는 찢겨 나간 어깨를 손으로 틀어쥐고서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발아래로 지팡이가 산산조각 나뒹굴었다.

이드는 그러한 모습을 대수롭지 않게 바라보았다.

대충 무슨 일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공간이 붕괴된 리바운드가 그쪽으로 간 모양이네. 미안해서 어쩌지?” 이드는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문제라면 말과 달리 그 얼굴에는 미안한 감정이 1도 없다는 점일까.

오히려 지극히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서 엘로자에게 다가갔다.

그 모습에선 손톱만큼의 호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러한 이드의 모습은 엘로자에겐 공포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상황은 그에게 나쁘게만 흘렀다.

“빌어먹을 마법사 놈들아!”

“우리가 겨우 용암에 타 죽을 줄 알았느냐!”

“네놈들도 모조리 태워 주마!”

마침 용암에 고생한 플레타 부대원들이 구멍 속에서 뛰쳐나왔기 때문이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용암에 고생한 그들의 분노는 실로 대단했다.

그에 엘로자의 안색은 더욱 창백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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