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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897화


1332화

마주 선 이더비 부관주와 라울.

이드는 두 사람 사이에 과연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 궁금했다.

그도 그럴 것이, 참으로 흥미로운 관계가 아닌가 말이다.

어제의 아군이 오늘의 적이 된 상태였다.

적도 어디 보통 적인가. 토벌에 참가하는 정도를 넘어 직접 칼을 들고 달려든 참이다.

바벨의 입장에선 손절을 넘어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직접 배를 째러 온 것이지만, 미완의 마탑 입장에선 통수도 이만한 통수가 없는 상태이리라. 서로에 대한 감정이 없을 수가 없는 입장이랄까.

한데 이상하다.

정작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모습에선 그런 감정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미 지나간 일에 미련을 두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당장의 감정을 감추고 쿨한 척이라도 하는 걸까.

“역시 영혼의 관의 주인이시라 그런지. 참, 뵙기 어려운 분이십니다. 부관주.”

“잘못 알고 계시는군요. 저는 영혼의 관의 주인이 아닙니다. 모든 관의 주인은 오로지 탑주 님 한 분뿐이십니다.”

“이런, 이런 부관주를 부관주라 부르고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군요. 하하.”

“그리고 정중한 손님이라면 몰라도, 불청객이라면 굳이 내가 나서서 반길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 손님 대응이 형편없다고 욕하지 마라. 너희는 불청객이다.

그런 의미를 담은 말에 라울이 옳은 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기는 합니다. 갑자기 쳐들어온 주제에 이제라도 부관주를 뵐 수 있으니 다행이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으십니까?”

“……”

“불청객이라도 급이 있는 만큼, 부관주께서 먼저 나서 주셨다면 지금처럼 부하의 머리가 터져 나가는 꼴은 없었을 거라는 생각 말입니다.” 느릿한 미소를 머금은 라울의 얼굴이 참 밉살맞다는 생각이 든다.

그 때문인지 부관주의 무표정에도 금이 간다.

이런 두 사람의 모습에 이드는 내심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쿨은 개뿔.

느릿한 목소리로 상대를 비꼬는 것이 일품이다. 여느 조직의 간부는 모두 저런 것일까. 그야말로 명문정파 꼰대들의 언쟁을 보는 것 같다. 나이를 먹고 항렬이 높아져 나름 체면을 챙겨야 하는 나이 든 꼰대들은 언쟁을 할 때도 꼭 저렇게 예의를 차리는 척을 한다. 욕을 하려면 대놓고 할 것이지 말이다.

예의를 차리면 욕이 욕이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닌데.

아무튼, 그렇게 불이 붙었기 때문일까.

서로를 향한 부관주와 라울의 얼굴에서 선명한 감정의 그림자가 드러난다. 당연하게도 결코 호의적인 감정은 아니다.

옆에 누운 엘로자를 언급해서일까. 특히나 부관주의 미간에 검은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그 정체는 명백한 분노와 살의. 하지만 곧바로 터지지는 않았다.

대신 그녀는 머리가 사라진 엘로자의 시신을 향해 마법을 사용했다.

스팟!

다시 한번 마법진이 나타나고, 엘로자의 시신이 사라졌다. 장로가 있는 곳으로 옮긴 것이다. 전투가 시작되면 그에 휘말릴 시신을 치웠기 때문일까. 부관주의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 정도의 분명한 적의와 전의, 그리고 살기였다.

“당신의 말이 옳습니다. 진작 나섰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두 명의 귀한 마법사들이 희생당하는 일도 없었겠지요.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나서려 합니다. 두 명의 희생에 대한 대가를 당신들에게 받아 낼 것입니다.”

“이보시오, 부관주, 거, 말은 바로 합시다. 우리가 당신 부하들을 사로잡기는 했지만 죽이진 않았소. 그들을 죽인 건 오히려 당신들이 아니오? 그런데 우리에게 대가를 받겠다니. 이런 억울할 데가 있나.”

라울이 쿵쿵 가슴을 두드렸다.

억울하다는 표현이다. 그런데 왜 억울함을 외치는 입은 웃고 있는 걸까.

이 모습에 이드는 혀를 찼다. 그야말로 최상급의 도발이다. 저게 칼을 들고 달려드는 것과 뭐가 다른가.

하지만 라울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1층에서도, 그리고 여기 6층에서도 마법사들을 죽인 것은 결코 자신들이 아니었다. 과연 사실을 근거로 한 공격에는 부관주의 눈빛도 잠깐 흔들린다.

아무렴 신중한 결정에 의해서든, 실수에 의해서든 아군을 죽였다는 사실이 신경 쓰이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드는 이러한 부관주의 모습이 위선으로 비쳤다.

‘얌전한 척하는 저 부관주도 정상은 아니로군.’

여기 6층까지 도착하는 동안 이드와 일행들은 두 번의 전투를 넘어왔다. 첫 번째 전투는 몬스터가 상대였으니 넘어가더라도, 2층에서 싸웠던 인공 초인들의 숫자가 수백이다.

그런데 부관주가 ‘희생당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단 두 명.

오로지 영혼의 관에 속한 마법사들뿐인 것이다. 그녀에 있어 영혼의 관에 속한 마법사가 아닌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인공 초인은 그녀에게 있어 몬스터와 하등 다를 것이 없는, 인간 이하의 존재. 그러니까 실험체라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러한 스탠스야말로 부관주뿐 아니라, 영혼의 관에 속한 모든 마법사의 생각일 것이다.

실로 소름 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다니. 귀족 중에도 그런 이들이 종종 있지만, 분명히 말해 그들과 지금의 경우는 다르다. 지금 모습이야말로 제국이 일으킨 토벌의 정당성을 증거하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잠시 흔들리던 눈빛은 금방 단단해졌다.

부관주가 지팡이를 두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억울한지 아닌지는 죽어 그들에게 직접 물으세요.”

“부관주는 정말 우리를 죽일 수 있다고 자신하는 모양이오?”

“이곳은 영혼의 관이니까요.”

똥개도 자기 앞마당에서 반은 먹고 들어간다.

부관주가 그걸 말한 것은 아니겠지만, 결국 같은 의미다. 하지만 그건 앞선 마법사들도 같다.

그들이 부관주만큼 마탑의 보좌를 받지 못해 패했겠는가.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통하지 않은 것이다.

“용기 있는 대담한 발언이구려. 하지만 부관주, 과연 그대의 뜻대로 되겠소? 여기 어떤 분들이 함께하고 있는지. 설마 모르지는 않을 것이오.”

“……”

“역시 아는구려. 그럼 한마디만 하겠소.”

어느새 비꼬는 말투도, 비웃음도 거둔 라울이 부관주를 직시했다.

이드는 그 모습에 라울의 이어질 말을 어쩐지 알 것 같았다.

“항복하시오. 그리하면 바벨에서 부관주와 다른 마법사들의 안정을 보장하겠소. 또한 바벨 안에서 초인 마법의 연구를 이어 가는 것을 약속하겠소.”

“저 자식이…….”

생각지 못한 제안일까.

플레타가 조용히 이를 간다. 미리 상의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다.

‘당연하겠지. 부하들이 몇이나 죽었는데.’

이드는 그 마음이 이해가 갔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플레타가 들고 나서서 라울의 말을 반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한 부대의 대장이라고 최소한 상황을 살필 줄 아는 걸까.

어쨌거나 플레타의 이런 결정은 옳았다. 굳이 그가 반대할 필요도 없이 부관주의 대답이 즉시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거절합니다. 바벨의 그릇으로는 초인 마법을 담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탑주께서 바라시는 일이 아니죠. 그리고・・・・・・.”

선명한 거절.

그러나 부관주의 말은 다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두 손을 잡은 지팡이로 바닥을 찍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해서야 죽은 마법사들의 목숨값을 받아 낼 수 없지 않습니까.”

지팡이가 쿵 하고 바닥을 찍은 순간이다.

스팟!

마치 환상처럼 주변의 모든 환경이 일순간에 바뀌었다. 건조하던 공기가 습하고 무거워졌다.

돌바닥은 흙바닥으로 바뀌었으며, 등 뒤로는 끝없는 바다가 펼쳐져 있다. 무엇보다 사방을 가로막던 벽이 사라지고 대신 지평선과 수평선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중 가장 큰 변화는 일행들과의 거리다.

“내 부대원들이! 오탄!”

바로 옆에 선 플레타가 바다 저 멀리 사라진 부대원과 오탄을 부른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저 앞에 서 있던 라울도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공간이동 당한 것은 아니다.

이드는 공간이 변하는 순간 똑똑히 봤다.

순식간에 넓어지는 땅을 타고 축지술을 사용한 듯 저 멀리 멀어지는 라울과 일행들의 모습을.

라울은 저 땅끝으로 사라졌고, 라미아는 플레타 부대와, 일리나와 검후는 은색 기사단과 함께 저 바다 너머로 사라졌다.

바다는 물론이고 산도 없는 평야인데도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최소 수십 킬로미터 이상 떨어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설마 이런 식으로 일행들을 분리할 줄은 이드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래도 크게 난감하지는 않았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현상을 일으킨 부관주가 다른 이들이 아닌 자신의 눈앞에 있기 때문이었다.

‘일부러 그런 것이겠지?’

거리로 따지면 부관주보다 라울과의 거리가 더 가까웠다. 그런데 라울은 저 멀리 사라지고, 부관주는 남았다.

즉, 부관주가 그렇게 조정을 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이년이! 이게 무슨 짓이냐!”

그러거나 말거나 플레타는 번개처럼 대검을 뽑아 들고 부관주를 향해 냅다 달려들었다. 그야말로 앞뒤 생각없는 멧돼지를 보는 것 같다. 그만큼 부대원들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 당혹스러웠던 것일까. 성격이 급해 보이긴 했어도 저렇게 앞뒤 없어 보이진 않았는데.

이런 이드의 생각은 옳았다.

떠어엉!

성난 멧돼지처럼 돌격하던 플레타는 그 모습과 달리 어이진 공격은 음험하고도 섬세한 것이었다.

그야말로 허허실실.

태산 같은 검력 속에 암기를 대신해 초인기로 무게를 늘린 모래 알갱이를 뿌린 것이다. 하지만 상대도 만만치 않았다.

아아아~

아련한 노랫소리가 들리며 플레타의 공격이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혔다. 암기처럼 뿌려진 모래 알갱이는 보이지 않는 벽에 알알이 틀어박히더니, 곧 먼지처럼 부서져 내렸다.

“흡!”

콰콰콰쾅!

그에 플레타는 공격을 가속했다. 검의 무게를 최대한 늘려 방벽을 두른 부관주를 두드린 것.

하지만 부관주의 방벽은 상상 이상으로 단단했다. 그리고 부드럽고 질겼다. 마치 솜뭉치처럼 플레타의 모든 공격을 받아 흡수했다.

아아!

그리고 노랫소리가 바뀌며 뻗어 나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충격파. 그것은 마치 칼날처럼 플레타의 허리를 갈랐다.

“체잇!”

쩌러러렁!

플레타는 대검을 방패처럼 세워 충격파를 막아 냈다. 대신 그 충격으로 그는 훨훨 뒤로 날려 갔다.

“퉤, 역시 안 통하나.”

허공에서 몸을 틀어 그대로 이드 옆으로 떨어져 내린 플레타. 그의 침에 붉은 핏기가 섞였다.

보인 것과 달리 부관주의 공격을 완전히 막아 내지 못한 것이다.

이드는 포션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그렇게 쉬운 상대가 아니잖아요.”

“감사. 그래도 어지간한 놈은 어어, 하다 썰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꿀꺽꿀꺽.

이드는 포션을 입에 들이붓는 플레타를 뒤로하고 부관주를 바라보았다.

거리를 조율할 수 있는 부관주다.

그녀가 굳이 홀로 떨어진 라울 쪽이 아니라 이곳에 있다면, 분명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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