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903화
1338화
아쉽다. 모자라다.
그런 말과 달리 사실 이드는 꽤 만족하고 있었다. 첫 실전치고도 그 효과가 예상보다 좋았으니까.
‘좀 더 가다듬을 필요는 있지만, 일리나에게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할까?’
아직 이렇다 할 이름조차 없는 수법.
그러나 이만하면 충분히 이름을 붙여 주어도 될 것 같지 않은가. 이드는 그 영광을 일리나에게 돌리기로 마음먹었다.
이드가 이 수법을 만들게 된 계기는 분신을 만드는 초인기를 통해서였다.
이 초인기를 가진 초인의 능력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객관적으로 그가 만들어 낸 분신의 레벨도 그리 높지 못했다.
전해 듣기로 초인기로 만드는 분신은 구성 요소와 방법, 활동성을 따져 급을 나누는데, 이 기준에 따르면 이드가 본 분신은 중하급에 해당했다. 그림자를 이용해 특별한 재료가 필요 없는 것은 장점이지만, 그로 인해 행사할 수 있는 물리력이 미미했기 때문이었다.
최대로 행사 가능한 수준이 1.5킬로였으니까.
그렇지만 이드에게 영감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이 당시 이드는 이 분신을 보고서 양신을 떠올렸다. 또 다른 나로서 분신의 극한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사실 양신은 너무 나간 면이 없잖아 있다. 비록 무진장한 내력을 가진 이드지만, 단순히 내력만으로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 양신이었으니까. 양신을 위해서는 특별한 계기가 될 수 있는 깨달음이 필요했다. 물론 그 이전에 상중하의 삼단전 개통이 필수지만.
아무튼, 그렇게 분신을 자신이 이해하기 편한 양신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인 이드는 분신의 구성 원리를 자신의 식으로 해석, 허상에 내력을 투사해 질량을 부여하는 방법으로 구체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내력을 격공하는 것의 연장선에 있는 수법이라고 할 수 있지만, 투사된 내력의 응집과 지속적인 형태의 변환에 있어서의 난이도는 차원이 달랐다.
그렇게 수개월의 연구를 통해 만들어 낸 수법에 대해 이드는 한마디로 정의했다.
이형환위의 상위 버전.
수법의 근간을 이형환위에 두고 있기 때문도 있었지만, 완전히 다른 갈래라고 정의 내릴 개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부가 설명이 없어서일까.
박하다면 박한 평가에 부담 없이 배움의 손길을 뻗었던 일리나는 수련 이틀 만에 화들짝 놀라 손을 떼고는 이드의 평가를 전면 부정해 버렸다. 어떻게 이런 걸 고작 ‘이형환위의 상위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말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근간은 이형환위였지만, 수법의 모티브는 양산이었으니. 아무렴 그런 수법이 쉬울 리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렇게 이드가 자신의 수법에 대한 보완점을 떠올리고 있을 때,
공격을 받아 독이 오를 대로 오른 네 마리의 뱀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이드를 향해 날아들었다.
어차피 본체가 아니기 때문일까.
네 마리 뱀의 움직임엔 거침이 없었다. 놈들은 화살처럼 빨랐고, 몸짓은 채찍처럼 현란했으며, 막상 공격해 오는 순간은 창검처럼 날카로웠다. 그야말로 전쟁터에 던져 놓으면 군단 하나를 순식간에 회쳐 버릴 것 같은 위험한 놈들.
‘뭐, 그래 봐야 뱀 대가리지만’
물론 그를 마주한 이드에겐 그저 귀찮은 몸짓일 뿐이었다.
상하좌우.
사방에서 달려드는 놈들을 보며 이드는 비어 있는 왼손을 뻗었다. 손이 향한 곳은 그 중앙.
뿌드드득.
앞으로 나아간 손이 허공을 틀어쥐었다. 그 속도는 결코 빠르지 않았다. 동시에 천천히 회전하는 손목.
그러자 느린 움직임과는 대조적인 강력한 흡입력이 장심에서부터 발생, 사방에서 달려드는 뱀 대가리를 단숨에 빨아들였고,
놈들의 몸뚱이가 손가락 끝에 걸린다 싶은 순간.
일순 금빛이 번뜩이며 뱀의 몸이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금령원환지의 파괴력과 파사의 힘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부관주가 떼어 낸 네 장의 날개를 순식간에 찢어발긴 이드는 재차 부관주의 추적에 나섰다.
네 마리 뱀 대가리의 처리는 쉬웠지만, 그 짧은 사이 부관주와의 간격은 다시 백 미터로 늘어나 있었다. 하지만 그걸 좁히는 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전력으로 분뢰보를 밟았을 때였다.
80. 60, 40.
곧 부관주에게 닿는다 싶은 순간.
쿠르르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아니, 정확히는 하늘이 아니라 하늘을 가리고 떠 있던 음파의 막대들이 떨어지며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어느새 부관주는 하늘을 채운 막대의 공격 범위 밖으로 물러난 상태였던 것.
그게 시작이었다. 앞을 막아 이드를 가둔 막대가, 조금의 틈도 없이 마치 공간을 압착하듯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뿐인가.
촤르르르륵!
여럿으로 나뉘어 있던 막대가 하강과 함께 자리를 옮겨 가장자리에 있던 이드의 위치를 공격의 중심으로 옮겨 놓기까지 했다.
“그……!”
밖에서 지켜보던 입장에서도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순간.
느긋하게 구경이나 하겠다던 플레타는 두 번째로 팔짱을 풀며 기어코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이대로라면 정말 이드가 쥐포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스스로 중량을 다루기에 쥐포를 만들어 본 경험이 없지 않은 플레타였다. 그런 그가 보기에 현재 이드의 상황은 매우 위태로웠다. 현재 저 상태, 저 위치에서 적의 공격을 벗어날 방법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게 마른침을 꿀떡 삼킨 플레타.
그러나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상대는 명예 후작. 그간 들은 것을 제외하고, 영혼의 관에 들어와 눈으로 본 것만으로 판단해도 이렇게 어이없이 당할 인물은 아닐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완전히 손을 놓을 생각은 없다.
‘아직은 괜찮다. 두 호흡 정도의 여유는 있다.’
그때까지 반응이 없다면?
그땐 당장 자신의 초인기를 쓸 것이다. 어쩌면 저 거대한 구름 덩어리 같은 것의 무게를 없앨 수 있을지 모르니까.
물론 장담할 수는 없다. 누가 보기에도 저 구름 덩이는 초인기의 결과물이고, 타인의 초인기에 간섭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정말 명예 후작이 이대로 당한다면 최소한 두 명예 후작 부인과 검후에게 할 말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부디 그럴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당연히 그럴 일은 없었다.
부릅뜬 플레타의 눈이 구름 덩이 속에서 붉은빛의 번뜩임을 잡아냈을 때였다.
쯔어엉!
단단한 강철 방패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뒤를 따르는 것과 동시였다. 대지를 압착해 버릴 기세였던 구름 덩이의 일각이, 말 그대로 강풍을 만난 구름처럼 힘없이 흩어지며 사라졌다.
“역시! 쉽게 당할 양반이 아니지!”
그리고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드를 본 플레타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부관주는 이런 플레타와 반대였다.
잠시 멈춰 서는가 싶던 부관주의 거체가 급격히 상승을 시작했다. 마치 따돌린 줄 알았던 맹수의 재출현에 혼비백산한 나무꾼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나무꾼에게는 불행하게도, 그가 도망치려는 맹수는 그저 그런 놈이 결코 아니었다. 산을 부술 정도로 강력한 힘에, 번개처럼 빠르고,
무엇보다.
“도망을 갈 거였으면 멈추질 말았어야지.”
날개가 없음에도 독수리보다 더 빠르고 능숙하게 하늘을 나는 능력이 있었다.
쿠구구궁!
은은한 뇌성벽력을 발끝에 달고서, 그야말로 이드가 불쑥 허공에 나타났다. 정확히는 급상승 중이던 부관주의 머리 위!
조금 더 넓게 살피면 저 아래, 직전까지 이드가 서 있던 자리가 폭탄이 터진 듯 움푹 팬 것이 눈에 들어온다. 이런 진각의 흔적은 그만큼 이드의 움직임이 빨랐다는 증거다.
덕분에 일순간이지만 음속의 몇 배를 능가했으니까.
이런 이드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누구보다 깜짝 놀란 것은 부관주였다. 그녀는 급히 거대한 날개와 같은 두 팔을 들었다.
아무리 형태가 변했어도 급하면 손부터 나가는 게 사람의 본능이랄까.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빨라도 이미 공격 준비를 완전히 마친 이드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이드가 검을 내리쳤다.
허공에 붉은 번개와 같은 자국을 남기는 강검.
아!
방어는 늦다. 그렇게 판단한 부관주가 뿔을 떨어 아리아를 노래했지만, 그것조차 늦었다. 아니, 수라섬광단의 살기를 막기에 아리아는 너무 말랑말랑했다.
쯔걱!
오른쪽 관자놀이에서 돋아난 뿔이 너무 쉽게 잘려 나갔다. 눈으로 보기 힘든 미세 진동을 견디는 강도를 가진 뿔이었지만, 이드의 강기를 견디지는 못했다. 뿐인가.
그러고도 기세등등한 수라섬광단의 살기는 부관주의 외골격을 뚫고 어깨를 깊이 베어 냈다. 쩍 갈라진 틈 사이로 검붉은 살덩이가 보이는가 싶더니, 곧 검은 피가 울컥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비명을 대신하는 것 같은 미묘한 울림.
부우!
외관을 봐서는 전혀 살아 있는 생명체 같지 않은데. 피를 흘리고 비명을 지르는 것으로 봐서는 살아 있는 게 확실했다.
온몸을 떨어 대는 걸 보면 고통이 상당한 듯하지만.
‘그렇다고 봐줄 생각은 안 들어. 고양이처럼 작고 귀여웠다면 또 어땠을지 모르지만.’
그런 쓸데없는 잡념을 한가득 담아, 부관주의 커다란 이마 한가운데 마각철황격을 박아 넣는다.
투쾅!
의지할 곳 없는 허공이지만, 마각철황격의 파괴력은 한 치의 모자람도 없다. 요란한 충격파에 공간이 울렁거린다.
그와 함께 부관주의 거체가 손바닥에 때려 맞은 파리처럼 추락했다.
콰르릉!
거체의 추락은 작은 지진을 만들어 냈다. 동시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거대한 흙먼지가 피어올라 부관주의 거체를 가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마를 걷어찬 자세에서 허리를 빙글 돌려 허공에 거꾸로 선 이드는 먼지 속 부관주가 보이기라도 하는 듯 그대로 일라이져를 휘둘러 수십에 이르는 검강의 포탄을 쏘아 냈다.
그리고 첫 포탄이 먼지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
퍼엉!
고막까지 찌릿찌릿하게 만드는 폭발과 함께 먼지가 터져 나가며 두 장의 날개를 앞으로 쭉 뻗어 낸 부관주의 모습이 나타났다. 반쯤 땅속에 몸이 박힌 그녀는 그대로 날개를 휘둘러 검강의 포탄들을 막아 낸 것이다.
하지만 그 단단한 뿔도 잘라 낸 검강이다.
당연히 내포된 검의가 다를지언정, 검강을 막아 낸 날개도 멀쩡하진 못했다. 곳곳에 크고 작은 구멍이 뚫린 날개.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할 찰나였다.
터엉!
누더기가 된 날개가 떨어지더니, 그 어깨에서 새로운 날개가 돋아났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떨어져 나간 날개보다 두 배 이상 커진 날개의 끝에 순식간에 네 개의 자국이 생기더니, 쩌억 갈라졌다.
갈라진 틈으로 주르륵 피가 흘러내렸지만, 그건 곧 멈췄다. 대신 다섯 갈래로 갈라진 날개 끝에 날카로운 칼날이 생겨나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아아아아~~!
라라~ 라라라~~!
왼쪽과 오른쪽.
열 개의 칼날이 소름 끼치는 합창을 시작하며 이드의 전신을 베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