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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956화


1391화

라울의 희생은 눈부셨다.

그로 인해 세 마리 야생마에 포위되어 있던 쉴라는 구함을 받았고, 이드도 더 늦지 않게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다. 라울만 빼고.

실로 유쾌하고 평화로운 아침. 그러나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마스와 그 주변 다섯 개 나라의 아침은 결코 유쾌하지도, 평화롭지도 않았다. 새벽부터 불려 온 대신들은 맛있는 아침 식사 대신 폭풍 같은 질문에

이은 고성을 감당해야 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오늘 새벽, 검은 하늘이 초록으로 빛나던 이유를 알 수 없는 기이한 현상 때문이었다. 이 충격적인 현상에 잠 중에 제일 맛있는 새벽잠을 즐기고 있던 각국의 황제와 왕들은 강제로 침대에서 끌려 나와야 했다.

무엄하게 자신의 잠을 방해하다니. 적국이 국경이라도 넘었나? 그런 것이 아니라면 반드시 그 죄를 물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지배자들의 짜증은 초록빛으로 물든 하늘을 보는 순간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도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저 현상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하긴 누군들 모를까.

현상을 확인한 왕과 황제는 긴급히 대신들을 소집시켰다. 동시에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마법사를 불러 궁을 보호하게 하고 그 안에 들어앉았다. 그들이 겁쟁이라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들에게 일이 생길 시 생겨날 더 큰 혼란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뭐, 겁쟁이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긴 했지만. 아무튼!

그렇게 각국의 궁에서 난리가 일어나는 사이, 일반 평민들과 귀족들 사이에도 불안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들이라고 눈이 없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왕족보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대부분의 평민들은 초록빛 하늘에 불안에 떨었다. 다만 불행하게도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뿐이었다. 왕들처럼 마법사를 부를 수도, 대책을 세울 수도, 그리고 하늘 아래서 도망칠 곳도 없었으니까.

그저 누군가 나타나 무슨 일인지 해명해 주길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 평민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러나 다행이랄까.

하늘을 밝히던 초록빛은 오래가지 않아 사라졌다. 초록빛이 사라진 직후 떠오르기 시작하는 태양에 누군가는 악마의 장난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신이 내리는 빛이 악마의 장난을 거둬 냈다는 것이다. 그걸 시작으로 민간에는 창의성이 돋보이는 별별 해괴한 소문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정작 이거다, 하는 시원한 답은 없었다. 곧이어 목소리를 높이던 이들은 하나둘 자신들의 일터로 떠나갔다. 평민인 그들은 오늘 하루도 열심히 일을 해야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늘이 초록빛이 아니라 붉은빛으로 물들어도, 세상이 망하지 않은 이상 그들은 돈을 벌어야 했다.

며칠이 지나면 누가 술자리에서 그러겠지.

“응? 초록빛? 뭐, 그런 일이 있기는 했는데. 아무 일도 없잖아. 알 게 뭐야. 그보다 그 이야기 들었나? 톰슨이 벤의 마누라랑 그 짓을 하다가 벤에게 정통으로 들켰다는구만! 크하하하!”

그들에겐 결국 그 정도의 일이었다. 어떻게 보면 능력의 한계를 잘 아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민들과 달리, 귀족들은 그렇게 ‘좋으면 좋은 거 아니냐’는 식으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명령을 받아 궁으로 달려가는 사이 초록빛이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돌아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때부터는 이유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했다. 불만을 가지는 대신들은 없었다. 만약 초록빛이 그냥 빛이 아니고, 공격 마법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늘에서 불길이라도 쏟아졌다면?

그런 위기감을 느낀 왕과 귀족들은 가장 먼저 마법사들을 닦달했다.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현상에는 무조건 마법이 관련되어 있기 마련이니까. 지금까지 그랬다. 갑자기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 싶으면 열에 아홉은 마법이 원인이었다.

그야말로 마법이 쌓은 업보다.

하지만 마법사라고 모든 것을 아는 건 아니었다. 높은 하늘에 퍼지는 마나 파장은 너무나 미약해서 그들이 감지할 수 있는 범위 밖이었다. 또 감지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진리의 서를 펼쳐 새로운 법칙을 세우는 법을 알고 있는 마법사들이 얼마나 될까. 아마 대륙을 통틀어 세 명이 넘지 않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배우고 익혀야 하는 마법이 산더미인데 몇백 년을 살아도 사용할 일이 없는 걸 왜 연구하겠냔 말이다.

그렇다고 왕과 대신들 앞에서 모른다고 고백할 수도 없는 노릇.

그랬다가는 지금까지 받고 있던 지원금이 날아갈 테니까. 당연히 마법사들은 동분서주하고, 덩달아 대신들도 발에 땀 나도록 뛰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쉽게 답이 나올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당연히 왕의 목소리는 높아지다 못해 호통이 터졌다.

그런 재촉 때문일까. 메뚜기처럼 날뛰던 마법사들은 결국 작은 단서를 찾아내는 것에 성공했다.

하늘이 초록빛으로 물든 이유? 여전히 모른다.

초록빛으로 물든 하늘이 자국에 미칠 영향? 현재로서는 없는 것 같지만, 모르겠다.

“이 밥버러지 새끼들이!! 그럼 아는 게 뭐야!”

“이 현상의 발현지를 찾았습니다. 정확한 위치까지는 어렵지만, 방향은 잡았습니다!”

“그곳이 어디냐!”

두 개 제국과 세 개 왕국의 지배자들이 물었다.

그러자 다섯 개 국가의 마법사들이 거의 동시에 지도의 한 부분을 가리켜 보였다.

“마스입니다!”

“……이 깡패 새끼들이 결국 사고를 쳤구나!”

신기한 일이었다.

왜 마스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대신 ‘어쩐지 그럴 것 같았어!’라고 분노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이 역시 마스가 그간 쌓은 업보랄까.

무엇보다 최근의 행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무려 제국을 상대로 전쟁 각을 보고 있던 미친놈들이 아니었던가. 거기에 새벽에 일어났던 듣도 보도 못한 현상에 대해 합리적 의심이 가는 부분 역시 있었다.

영혼의 관.

마스가 제국과 전쟁을 해서라도 가지려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마스에 있었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초인 마법이라면 이런 일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있었다.

“가능성이 아니라, 무조건 그놈들입니다. 당장 마스에 강력한 항의와 함께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지 명명백백히 밝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새벽부터 불려 나와 눈에 핏발이 선 대신들은 목에 핏대를 세워 가며 소리쳤다.

물론 모두 그런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특히 마법사들의 의견은 대신들과 달랐다.

“분명 마스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이제 문을 연 학파다. 그들에게 이만한 규모의 현상을 발생시킬 능력이 있을 리가 없다!”

단순히 하늘을 초록빛으로 밝힌 것뿐이다.

다른 물리적인 형상이나, 피해를 동반한 것도 없다. 보기에 따라 1클래스의 댄싱라이트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현상.

그러나 그 규모를 생각하면 아연할 수밖에 없다.

마스를 중심으로 사방 수백 킬로를 뻗어 나간 빛이다. 도대체 어느 정도의 마나가 있어야 이런 일이 가능한가. 계산이 힘들 정도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일을 역사가 깊은 마탑도 아니고, 이제 막 문을 연 초인 마법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마법으로 만들어 냈다고?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그렇지만, 이건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인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런 마법사들의 말은 왕과 대신들에게 통하지 않았다.

마스를 지목한 것이 바로 그들이었으니까.

그리고 마스에서 의심되는 것은 영혼의 관뿐이었다. 그들이라고 마스를 모를까. 국경을 마주하고 지겹도록 싸워 댄 것이 수백 년이다. 마스에 대해서라면 마스의 왕만큼 잘 안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이들의 정보에는 오늘과 같은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새롭게 등장한 영혼의 관 말고는 말이다.

그러니 무조건 마스와 영혼의 관이 오늘 현상의 원인이다.

아니, 원인이 아니라도 일단은 그들이 원인이어야 했다.

‘이건 기회다. 이걸 잘만 이용하면 마스가 초인 마법을 독점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거기에 조금 더 힘을 쓰면 우리도 영혼의 관이 보유한 초인 마법을 얻을 수 있겠지.’

다섯 개 국가의 지배자들과 대신들이 가진 꿍꿍이는 대동소이했다.

물론 이런 꿍꿍이는 아직 영혼의 관이 무너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에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섣부른 김칫국이랄까.

그래도 그들은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기대감에 행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스는 아니었다.

다섯 개 국가의 새벽이 소란스러웠다면, 마스의 새벽은 역동적이었다. 좀 직설적으로 비유하면 시장통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난장판이었다. 이미 심상치 않은 신호는 하늘이 초록빛으로 물들기도 전에 확인되고 있었다.

영혼의 관이 자리한 땅의 영주로부터 폭음에 대한 보고가 들어온 상태였기 때문이다. 모두가 잠든 밤에 폭음이 일어날 일이 무엇인가. 처음엔 긴가민가했다.

어쩌면 영혼의 관에서 진행한 마법 실험으로 인한 폭음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마스는 이를 가볍게 넘기지 않았다.

무려 제국과 싸워서라도 지켜야 하는 보물이 아니던가.

그에 마스는 영혼의 관을 지키고 있을 타란 백작에게 연락을 넣었고, 타란 백작은 답하지 않았다.

이에 마스는 무언가 사고가 터졌음을 확신했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타란 백작이 이끄는 전력은 어떤 상황에도 쉽게 무너질 정도로 약하지 않았으며, 영혼의 관이 자체적으로 보유한 전력도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낙관도 하늘이 초록빛으로 물들며 깔끔하게 날아갔다.

당연히 마스의 왕은 급보에 침대에서 뛰쳐나와야 했다. 그는 지근거리에 있는 영지에 명령을 내려 병력을 움직였다.

그러나 아무리 가깝다고 해도 새벽에 긴급으로 병력을 움직이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던가. 명령을 받은 병력이 서두른다고 서둘렀지만,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난 후였다.

그들이 한 일이라고는 부상병을 치료하고 급히 식사를 준비하는 한편, 타란 백작과 왕궁 사이에 통신을 연결하는 것이 전부였다.

통신을 연결됨을 확인한 영주와 마법사는 잽싸게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막사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들은 스스로의 판단을 칭찬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까딱했다가는 저 터질 것 같은 왕의 분노를 같이 뒤집어쓸 뻔하지 않았나.

‘쯧쯧쯧, 전하가 저렇게 분노하실 정도의 일이라니. 타란 백작도 이제 끝이구나.’

그게 모두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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