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71화
“넌 정령을 다룰수 있잖아….. 그럼 소드 마스터가 아니더라도 스피릿나이트(spirit knight:정령기사)가 될 수도 있잖아…….내가 보기에는 어줍잖은 소드 마스터보다 그게 나을 것 같구만……”
“아~! 그런데 어떻게 알았지? 우리 가족들 말고는 모르는데….
하지만 그것도 검을 잘써야 된다구… 거기다 나는 정령술을 그렇게 잘하지도 못한다구….
거기다 스피릿 나이트라도 소드 마스터면 더 좋잖아…….빨리~~!!”
카리오스는 그렇게 말하며 이드의 팔을 놓고는 이번에는 목에 매달려 떼를 써대기 시작했다.
당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어린아이가 이렇게 떼를 쓰며 달려들면 얼마나 곤란한지… 특히 맘 약한 사람은 함부로 떼어 버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쉽게 들어주기도 뭐하고…. 지금 이드의 상황이 딱 그랬다.
‘으~ 요놈의 입을 함부로 놀리는게 아닌데…..’
이드는 함부로 입을 놀린 것을 후회하며 우선은 카리오스를 달래고 보자는 생각에 카리오스를 떼어내며 카리오스를 향해 말했다.
“알았어… 그만해, 생각해 보자…. 응? 우선은 좀 떨어져라~~~”
하지만 그런 말에 쉽게 떨어질 만큼 호락호락한 카리오스가 아닌 듯 여전히 이드의 목을 양팔로 감싼채 딱 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럼 해줄거야? 응? 응?”
이제는 완전히 몸에 딱 달라붙어서 귀에다 데고서 하는 말에 이드는 이 녀석을 혈도를 집어 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하다가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다시 설득해 볼 요량으로 입을 열었다.
“그럼 생각해보자… 응? 우선은 내려와 내려와서 같이 생각해 보자구……..
그래 …… 나 아직 수도에 와서는 구경도 못해 봤거든 그러니까 같이 구경이나 하면서 생각해 보자….
응? 카리오스~”
그렇게 한참을 진땀을 흘리며 카리오스를 구슬린 이드는 간신히 카리오스를 떼어 놓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빨리 둘러보고 생각해보자고 잡아끄는 카리오스에게 잡혀 가이스등이 가자고 할 때도 가지 않은 수도의 대로쪽으로 끌려 가기 시작하는 이드였다.
그리고 그런 이드의 머릿속에 강호의 풍문 한 가지가 떠올랐다.
‘아이와 여인과 노인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 그 말이 딱 이구나….’
와글와글……….. 시끌시끌…………
흙도 없이 돌로 깨끗하게 정돈된 대로(大路)는 옆으로 굽지 않고 똑바르게 정돈되어 있었고 그런 길의 양옆으로 여러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각자의 물건들을 꺼내 놓고 각자의 물건들을 펼쳐 팔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상점들 앞으로는 여러 사람들이 몰려 들어 있었다.
그리고 이리저리 각자의 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과 이드와 같은 목적으로 이리저리 구경하며 돌아다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로 시끄러운 거리에 이드와 카리오스가 들어서고 있었다.
‘후~ 대단하구만….. 그런데… 사람이 너무 많찬아……’
그렇게 잠시 대로를 훓어 보고 다시 카리오스를 향해 시선을 돌린 이드의 눈에 아직까지 그의 손에 들려있는 나무로 깎은 목검이 보였다.
“너 그건 왜 들고왔어? 쓸데없이…..”
이드가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목검을 가리키며 말하자 카리오스가 잠시 목검을 바라보더니 다시 이드를 향해 고개를 돌려 입을 열었다.
“벨레포 아저씨가 항상 들고 다니랬어….. 진검은 아직 들고 다니기 힘드니까 목검이라도 항상 들고 다니면서 손에 익히라고…. 그래서 항상 이렇게 들고 다니는 건데……. “
그렇게 말하며 손에 들린 목검을 공중으로 휙휙 휘둘러 보이는 카리오스였다.
이드는 카리오스가 하는 말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벨레포가 카리오스에게 시킨 수련이 꽤 적절하다는 생각에서였다.
나무로 만든 검일지라도 항상 지니고 다니며 몸에 검을 각인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 검을 자신의 몸처럼 사용하는 것…. 그것은 중원에서 검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기초로 하는 수련 법이니 말이다.
“좋은 방법이야……. 그런데 그런 가벼운 것보다는 좀 묵직한 게 좋을 텐데…..”
그러자 카리오스가 이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목검을 들어 보였다.
“응, 벨레포 아저씨도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쇠로 하면 차차 무게를 늘려나가기가 어렵다고 여기에 누나가 리스 그래비티(rise gravity:중력증가) 마법을 걸어줬어…. 그래서 수시로 목검에 무게도 늘리고…..”
그 말에 다시 목검을 바라보니 과연 목검의 검신 표면으로 마법의 룬어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나무 검신의 룬어에서는 약하긴 하지만 마나의 흐름이 느껴지고 있었다.
“음~ 이렇게 사용하는 방법도 있네……. 과연 마법으로 이렇게 하면 엄청 편하겠어. 수시로 새로 검을 만들 필요도 없고……. 나도 한번 해볼까?”
그렇게 이드가 검에 걸린 마법에 관심을 보이자 자신의 목검을 자랑하듯 앞으로 내밀고 있던 카리오스가 이상하다는 듯이 이드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마법도 할 줄 알아? 응? 응? 응?”
다시 눈을 반짝이며 물어오는 카리오스의 반응에 이드는 아까의 일을 생각해 내고는 급히 고개를 저어댔다. 역시 인간은 학습하는 동물이다.
“아니… 내 말은 마법사 동료에게 마법을 걸어 달랠까 하는 말이야…..”
“음~ 그런 거야? 하지만 이것도 꽤 뛰어난 마법사가 아니면 안 된다던데…. 우리 누나야 천재로 불리우니까 괜찮지만… 용병 중에 그런 마법사 있어?”
조금 돌려서 자신의 누나인 메이라를 자랑하는 듯한 카리오스의 말에 이드는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잘못했으면 마법을 한다는 것까지 말할 뻔했는데 그렇게 됐다면 저 녀석이 또 무슨 떼를 쓸지…. 애초에 입 조심하는 게 좋은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얼굴 맞대고 대화하는 걸 좀 삼가하는 게 좋은 것이다.
그렇게 이드는 카리오스를 옆에 달고는 대로에 넘쳐나는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이것저것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사람의 생활이란 것이 다 비슷비슷하기에 색다르게 눈에 띄는 것 외에는 특별히 볼만한 것이 없는 이드였다. 하기사 여기에 나온 사람들도 그것을 보기 위한 것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드가 눈길을 끄는 것 중에서 한쪽에 책상을 놓고 간단한 내기 체스를 하는 모습에 관심을 두고 있을 때였다.
옆에서 같이 있던 카리오스가 그 모습이 지겨웠는지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다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유심히 체스판을 바라보고 있는 이드의 팔을 흔들었다.
“이드, 이드… 저기 좀 봐 봐…..”
“응? 뭐…. 뭔데?”
이드는 자신의 팔을 흔들어 대며 말하는 카리오스의 말에 그가 가리키고 있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시선을 돌린 이드의 눈에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눈에 확 띄는 몇몇의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대로의 중앙으로 걸어오고 있었는데 주위의 사람들은 그들을 알고 있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서 그들이 가는 길을 피해 버려 오히려 그들이 눈에 더 잘 띄었다.
그렇게 눈에 띄는 7명의 인원은 모두 허리에 검을 걸고 같은 모양에 검은색과 백색의 단조로운 색으로 이루어진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런 그들의 옷의 어깨 부분에 둥근 원 안에 검이 있는 문장이 새겨져 있어 어떻게 보면 그 모습이 기사들의 제복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7명 중 뒤에서 걷고 있는 여섯 명과는 달리 그 여섯 명의 앞에서 걷고 있는 19~20 정도로 보이는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의 남자가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앞서 걷고 있는 그의 손에는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없는 꽤 묵직해 보이는 짐들이 들려있었는데, 그 짐을 들고 있는 그의 얼굴은 우울하게 굳어 있었다.
그에 반해 뒤에 오는 여섯은 연신 뭐가 재미있는지 킬킬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꽤 보기 좋은 것은 되지 못하는 듯 보고 있는 이드와 카리오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저 녀석들 뭐야? 혹시 아니? 카리오스….”
이드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서 카리오스에게 묻자 카리오스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잘은 몰라….. 저기 뒤에 여섯 명 중에 왼쪽에서 두 번째 금발 머리가 로이드 백작의 아들이라는 것 외에는…. 파티에서 얼굴을 본 적 있어…”
카리오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한마디를 추가적으로 넣었다.
“…… 왠지 기분 나쁜 인간이야. 그 파티 때도 괜히 우리 누나한테 잘 보이려고 아양 떠는 모습이…. 아마….. 가일라 기사학교에 다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저 옷도 거기 껀가 본데… 저 문장을 본 적이 있거든…..”
그때 이드와 카리오스의 뒤에서 앞의 인물들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이 들려왔다.
“저기 뒤에 걷고 있는 여섯 명은 여기서는 꽤 악명 높은 녀석들이지…. 괜히 시비를 걸기도 하고, 꽤 예뻐 보인다 싶은 소녀들에게 찝쩍거리기도 하고….. 하지만 여섯 모두 귀족 집안의 자제 아니면 돈 좀 있다는 집안의 녀석들이다 보니 경비대에 말해도 별 소용없지. 덕분에 사람들은 알아서 피할 수밖에…..”
그렇게 말하며 이드와 카리오스의 옆으로 나서는 인물은 이십대 중반의 용모에 특이하게도 회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였다.
그런 그의 움직임에서는 거의 기척이 나질 않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카리오스와 이드를 향해 씨익 웃어 보이더니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저기 그들의 앞에서 걷고 있는 녀석은 쿼튼, 푸라하 미라 쿼튼……. 지금은 말뿐인 쿼튼 백작가… 아, 지금은 남작으로 강등당했군… 그곳의 차남이지…….. 갑자기 도망치듯 사라져 버린 형 대신 집안을 다시 세우기 위해 기사학교에 들어간 놈이지…..”
회색 머리카락 남자의 꽤 자세한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던 카리오스가 다시 궁금한 점이 있는 듯 그 남자를 향해 물었다.
“그런데 저기…. 푸라하라는 사람은 왜 저렇게 짐을 들고 앞서 가는 거죠?”
카리오스의 물음에 앞을 보고 있는 그의 입가로 씁쓸한 웃음이 감돌았다.
하지만 그런 그의 눈은 여전히 푸라하라는 사람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 집안 때문이지….. 죽어버린 아버지와 사라져 버린 형 대신에 집안을 다시 세워야 하기에 자존심을 죽이고서 저들이 하라는 대로 따르고 있는 거지…. 만약에 그들에게 대들었다가는 이제 이름뿐인 쿼튼 가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그리고….. 녀석은 원래부터 싸움을 좋아하지 않았어 …. 머리 쓰는 걸 좋아했지…”
‘그리고’라는 말부터는 아주 조용히, 마치 옛일을 생각하며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듯한 그의 말은 너무 작아 옆에 있는 카리오스조차 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카리오스까지 일뿐 이드는 제외였다. 이미 그의 말에 흥미를 가지고 듣고 있었던지라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아지자 저절로 공력이 귀에 집중돼 천시지청술(千視祗聽術)이 발동되어 버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