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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 73화


그렇게 골고르가 쓰러졌지만, 파란 머리나 그 외 나머지들도 골고르가 쓰러질 때 약간 놀라는 표정을 지을 뿐 당황하거나 하는 것은 없었다.

또한 푸라하 역시 전혀 안심하는 기색이 아닌 듯 뒤로 물러서 다시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 모습에 파란 머리가 씨익하고 미소 지었다.

“너도 알지? 골고르는 상당히 맷집이 좋다는 거… 넌 안돼…”

그러나 그의 말에 푸라하 역시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인 듯 별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말이 있고도 골고르가 일어나지 않자 파란 머리와 나머지들, 그리고 푸라하가 이상한 듯 골고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원래의 그라면 이 정도로는 충격을 받은 것 같지도 않은 모습으로 일어났어야 하는 것인데 말이다.

그렇게 시선에 들어온 골고르는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 몸을 꿈틀거릴 뿐, 전혀 일어나지 않는 이상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골고르, 왜 그래? 일어나…”

그러자 파란 머리의 말에 이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던 골고르가 입을 열었다.

그 모습에 이드는 물론 주위의 사람까지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골고르가 일어나지 못하는 이유보다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던 것이다.

“못… 못 일어나겠어… 뒤에서 뭐가 붙잡고 있는 것 같아…”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상당히… 애때다고 해야 할까? 어든 그의 덩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런… 어린아이의 목소리였다.

“킥…킥…”

“크…큭…”

골고르의 말이 끝나자 큰 소리로 웃지 못하는 억눌린 듯한 웃음소리가 울려 나왔다.

그것은 이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후후… 왜 지금까지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간다… 저 덩치에 저런 목소리라니… 하하하… 흠… 그런데 뒤에서 뭐가 붙잡고 있는 듯하다라… 아!”

잠시 골고르를 살펴보던 이드는 무언가 느껴지는 느낌에 작은 감탄성과 함께 카리오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드와 눈이 마주친 카리오스가 이드를 향해 씩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때 골고르가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자 잠시 당황하던 파란 머리가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뒤에 서 있기만 하던 4명 역시 푸라하를 향해 2명, 골고르를 향해 2명씩 해서 앞으로 나섰다.

그 모습에 푸라하 역시 긴장한 듯 허리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그 모습에 주위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 역시 검의 예기에 몸을 뒤로 더 물러났다.

그렇게 푸라하와 세 명이 대치하고 섰을 때였다.

뒤에 서 있던 카리오스가 앞으로 걸어나와 푸라하의 옆에 나란히 몸을 세웠다.

“1대 3은 비겁하잖아?”

그러자 카리오스의 말에 화려한 검집을 가진 녀석이 가소롭다는 듯 킬킬거렸다.

그렇게 말하는 녀석은 아직 검도 뽑아 들지 않고 서 있었다.

“하하하… 그럼 꼬맹이 네가 같이 싸울래? 하하하하”

그 말에 카리오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물론 그럴 생각이야… 살라만다… 저기 저 녀석을 태워버려…”

카리오스의 떨어짐과 동시에 그의 옆으로 나타난 어른 팔뚝만 한 크기의 도마뱀 모습의 살라만다가 그 입을 벌려 화려한 검집을 가진 녀석을 향해 불꽃을 뿜어 댔다.

그러자 자신에게 갑자기 날아오는 불길에 당황하여 몸을 피하던 녀석은 그대로 땅에 쳐박혀 버렸고, 그런 그 녀석의 위로 붉은 화염이 그 빨간 혀를 낼름이며 지나갔다.

“제…젠장, 정령사잖아…”

붉은 빛이 도는 머리카락을 등까지 기른 녀석이 앞에 나타난 살라만다를 보고는 그렇게 소리치자 옆에 있던 갈색 머리의 기생오라비 같은 녀석이 뒤를 향해 소리쳤다.

“골고르는 잠시 놔둬, 여기가 먼저야… 젠장 저 꼬마놈이 정령사야…”

그 말에 한쪽에서 골고르를 일으키기 위해 킹킹대던 두 명이 즉시 검을 뽑아 들고 푸라하들 쪽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달려온 두 명 역시 붉은 불꽃의 도마뱀과 카리오스를 보고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중 금발의 머리를 짧게 기른 녀석이 앞으로 나서며 동료들을 향해 걱정 말라는 듯이 검을 들어 보였다.

그런 그의 롱소드의 검신에는 거뭇거뭇하게 무언가가 새겨져 있었다.

“걱정 말아… 저런 건 내가 처리하지… 이 마법검으로 말이야…”

그러자 마법검이라는 소리에 주변의 시선이 그곳에 머물렀다.

그리고 이드의 시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 저건…”

이드는 마법검을 슥 한 번 보고는 입을 열었다.

“싸구려잖아…”

이드가 그렇게 말하며 손에 잡힌 라미아를 바라보자 라미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드님, 싸구려라니요… 마법검을 보고 그렇게 말하는 건 이드님뿐일 거예요… 제가 보기엔 저번에 이드님이 그래이라는 분께 드렸던 검과 비슷한 수준인 것 같은데요…]

라미아의 말에 이드는 자신이 사서 그래이에게 주었던 롱소드가 생각났다.

“아~! 그거… 라이트닝과 프로텍터라는 마법이 걸렸던 그 검… 그럼 저 검은 무슨 마법이 걸린 검이야?”

이드가 한쪽에서 검을 들어 살라만다를 가리키고 있는 검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이드의 마음속으로 라미아의 대답이 들려왔다.

[음… 리페어런스 결과 파이어 볼, 파이어 블레이드와 원드 실드의 마법이 걸려 있어요.]

그리고 그렇게 라미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검을 들고 있던 금발의 입에서 시동어가 외쳐졌다.

“파이어 볼!”

그의 그런 외침과 동시에 살라만다를 향해 들려진 검에 새겨진 문양 중 일부가 붉게 빛나며 검 끝으로 붉은 화염구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 화염구가 순식간에 어른의 머리만 한 크기로 만들어졌을 때, 그 화염구가 정확하게 살라만다를 향해 날았다.

카리오스는 마법검이라는 말에 긴장하고 있다가 상대방으로부터 파이어 볼이 형성되어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비록 크기로 보아 초급처럼 보이지만, 저 정도라도 하급 정령이 맞게 된다면 상당한 피해를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살라만다, 화염구로 파이어 볼을 막아…”

크르륵… 화르르르르르…

카리오스의 말에 살라만다가 으르렁거리자 녀석의 몸에 일고 있던 불길이 한순간 거세어지며 녀석의 입쪽으로 작은 화염의 구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화염구는 곧바로 날아오는 파이어 볼을 향해 날았다.

그리고 공중에서 두 개의 화염구가 충돌하자 폭발음도 나지 않고, 단순히 불꽃이 이는 ‘화르르르르륵’ 하는 소리를 내며 사라져 버렸다.

그때 공중에서 잠깐 다오르던 불길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금발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파이어 볼, 파이어 블레이드…”

그 말과 함께 그의 검에서 파이어 볼이 생성됨과 동시에 그의 검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주위에서 신기하다는 듯이 “오!” 하는 감탄성이 터져 나왔다.

금발 머리가 검에서 파이어 볼을 날리자 뒤를 이어 몸을 날렸다.

그 모습에 카리오스는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멍해져 버렸다.

남은 시간은 화염구 하나 날릴 정도의 시간뿐인데… 그렇게 되면 하나는 맞아야 하는 것이다.

“에라… 살라만다, 화염구로 파이어 볼을 날려버려…”

그 말에 살라만다가 소환주의 명령에 충실히 화염구를 날렸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되어 날아간 화염구가 파이어 볼과 충돌해서 사라졌을 때였다.

불꽃이 사라진 사이로 불꽃을 머금은 검이 날아왔다.

“살라만다…”

투… 앙…

살라만다의 머리 위로 파이어 블레이드가 날아드는 모습에 저절로 눈을 감았던 카리오스는 뒤이어 들려오는 쇳소리에 눈을 떠 앞을 바라보았다.

“푸라하…?”

눈을 뜬 카리오스의 눈에 힘겨운 얼굴로 파이어 블레이드를 막아내고 있는 푸라하가 눈에 들어왔다.

금발이 자신의 검을 막은 것이 푸라하라는 것을 알자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다.

“푸라하, 이 자식… 좋다. 네 놈이 얼마나 버티나 보자… 크압!”

금발이 그렇게 말하며 힘을 가하자 그의 검에 일던 불길이 더욱더 강렬해졌다.

그러자 그와 검을 마주하고 있는 푸라하가 불길에 꽤 고통스러운 듯 주춤주춤 뒤로 밀려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이드가 멍하니 있는 카리오스를 바라보았다.

“얌마, 카리오스 뭐해… 살라만다로 확 구워 버려…”

그러자 잠시 멍하니 있던 카리오스가 순간 정신이 번쩍 드는지 잠깐 이드를 바라보더니, 앞에 있는 살라만다를 향해 소리쳤다.

“살라만다, 저놈 확 구워 버려…”

그 말에 살라만다가 알았다는 듯 으르렁거리며, 푸라하와 검을 맞대고 있느라 꼼짝하지 못하고 있는 금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힘쓰느라 붉게 달아올랐던 얼굴이 급속도로 파랗게 질려 버렸다.

“너… 너 이 자식…”

그리고 살라만다가 입속으로 가득 불길을 머금었을 때, 카리오스가 금발을 막아서고 있던 푸라하를 향해 소리쳤다.

“푸라하 형, 지금이에요! 뛰어요!”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살라만다의 입에서 마치 불기둥과 같은 불길이 내뿜어졌고, 곧바로 갑자기 떨어지는 푸라하 덕에 자세가 기우뚱해진 금발을 뒤덮어 버렸다.

“으아아악… 윈드 실드!!”

잠시 동안 금발을 뒤덮었던 불길의 안에서 들리는 비명성과도 같은 시동어에 불길이 확 갈라졌다.

그리고 그 갈라진 불길 사이로 투명한 연푸른색의 막에 싸인 시커멓게 그을린 인형이 뛰어나왔다.

“으으… 크… 컥…”

그렇게 튀어나와 땅에 드러누워 버린 인형은 시커멓게 그을린 손과 얼굴, 그리고 다 타버렸는지 연기가 피어오르는 머리…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뒤에 있던 로이드 백작의 아들과, 기생오라비 같은 모습의 녀석이 그를 향해 뛰어왔다.

“카르마… 카르마, 괜찮아?”

기생오라비가 카르마의 몸에서 일어나는 후끈후끈한 열기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 모습에 로이드 백작의 아들인 레토렛이 푸라하와 카리오스를 바라보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너희들이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그가 그렇게 말하자, 그 말의 뜻을 안 푸라하가 얼굴을 굳혔다.

지금까지 자신이 자존심을 죽이고서 행동한 것도 그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그런 푸라하의 옆에 있는 인물은 그 말을 조용히 들어줄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무사하지 않으면… 어쩔 건데? 로이드 백작님께 일러바치기라도 할 모양이지? 아니면 거기 누워 있는 마법검 양반의 아버님께?”

카리오스는 이미 회색 머리카락의 남자로부터 말을 들었기에 레토렛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때문에 왠지 모르게 올라오는 짜증에 레토렛을 향해 그렇게 쏘아붙였다.

그 말에 레토렛의 얼굴이 구겨지며 의문이 떠올랐다.

저렇게 말하는 것으로 보아 말뜻 또한 알고 있는 듯하고, 자신의 집안까지 알고 있는 듯한데 저렇게 당당할 수 있다니…

그렇게 생각하던 레토렛이 다시 카리오스를 바라보았다.

“네놈, 꼬맹이… 이름이 뭐지?”

레토렛은 저렇게 당당하다면 저 꼬맹이의 집안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카리오스의 이름에서 그의 집안을 알아볼 생각으로 그렇게 물었다.

카리오스는 레토렛의 물음에 입가로 짓궂은 미소를 띠었다.

그 모습이 꼭 어떻게 말해야 레토렛을 더 놀려줄까 하고 생각하는 듯했다.

잠시 생각하던 카리오스가 대답할 거리를 떠올리며 대답하려 할 때였다.

“컥…”

“어… 어… 으아!”

쿠당… 퍽…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카리오스와 푸라하, 그리고 카리오스를 바라보고 있던 레토렛 역시 동시에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시선을 돌린 곳에서는 땅에 검을 떨어뜨리고 구르고 있는 화려한 검의 주인과 빨강머리, 그리고 그런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이드가 서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두 사람이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그대로 쓰러진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자식들, 진짜 기사가 될 자격도 없잖아… 이런 것들이 기사가 된다면 그게 수치다, 수치야…”

그렇게 말한 이드가 다시 한번 주위를 훑어보았다. 어디로 갔는지 회색머리가 사라져 있었다.

“어디로 사라진 거야… 원래는 그 사람한테 시키려고 했는데… 야! 카리오스, 그만 돌아가자. 어째 네 녀석이 나보다 더 잘 놀아?”

“헤헤… 고마워, 이드… 같이 가요. 푸라하 형…”

“어?… 하… 하지만…”

카리오스는 이드의 말에 그렇게 대답하고는, 옆에서 이드의 말에 당황해하는 푸라하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몇 발자국 앞으로 나가던 카리오스가 걷던 자세 그대로 고개만 돌려 레토렛을 향해 아까 생각해 두었던 말을 던졌다.

“이름은 들었겠고… 기억 못하는 모양이지? 하기사 그럴지도. 그때는 누나에게 잘 보이려고 아양떠느라 잠깐 본 날 기억 못할지도…”

그 말을 끝으로 카리오스는 이드에게로 다가가, 같이 발길을 저택 쪽으로 옮겼다.

그리고 이드는 가기 전에 쓰러진 두 사람을 향해 슬쩍 발길질을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혈도를 풀어놓지 않으면, 아마 평생 이 모양으로 살아야 할지도 모를 두 사람을 위한 배려였다.

카리오스 일행이 시야에서 사라질 즈음, 레토렛이 작게 중얼거렸다.

“카리오스 웨이어 드 케이사…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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