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88화
수직으로 떨어지는 라미아의 검신을 따라 아마 글이라면 샤라라랑이라는 글이 들어갔을 모양으로 붉은 꽃잎이 생겨나 가공할 만한 속도로 모르카나를 향해 폭사되었다.
쿠구구구…………………
이드의 검에서 화령인의 강기가 나오는 것과 동시에 모르카나의 앞에 위치해 있던 다섯 개의 흙의 소용돌이들이 모르카나와 이드 주위의 땅을 뒤흔들며 모르카나의 앞으로 나란히 모여들었다.
그리고 붉은 색의 화령인이 가까워지자 다섯 개의 흙의 소용돌이 중 모르카나의 앞에 위치한 세 번째 흙의 소용돌이에서 마치 굵은 물기둥이 솟아오르듯이 짙은 고동색의 흙기둥이 솟아올라 모르카나의 앞을 가로막아 버렸다.
그리고 그것과 함께 퍼퍼퍼퍽 거리는 화령인이 흙기둥을 때리는 충돌음과 함께 흙 기둥의 표면이 푹푹 파였으나, 파인 부분이 마치 개울에 나뭇잎을 띄운 듯이 위쪽으로 올라가며 사라져 버렸다.
그런 모습에 이드는 다시 긴장감을 조이며 라미아를 쥔 손에 힘을 가했다.
“젠장…. 심상찮은 줄은 알았지만… 어떻게 된 게 화령인을 맞아 놓고도 아무런 표시도 나지 않는 거지?”
이드가 그렇게 화령인을 맞고도 시치미 뚝 떼고 서 있는 흙의 기둥을 보며 난색을 표할 때였다.
중앙의 흙기둥을 중심으로 양쪽에 회전하고 있던 네 개의 흙의 소용돌이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단순히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넓게 펴서 움직이는 것이 마치 이드를 에워싸는 느낌이었다.
그 모습에 라미아도 심상찮음을 느꼈는지 이드에게 경고성을 보냈다.
[이드님, 조심하세요. 저 다섯 개의 소용돌이에서 느껴지는 마나가 심상치 않아요…]
이드는 그런 라미아의 경고성에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역시 눈앞에서 움직이고 있는 다섯 개의 소용돌이로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후~ 무공도 아니고 마법이다 보니 전혀 공격을 예측하기가 어려워… 게다가 라미아, 네 말대로 심상찮으니… 언제든지 마법 가능하지?”
[물론이죠. 언제든지 가능해요.]
이드는 자신 있다는 듯이 밝게 대답하는 라미아의 목소리를 들으며 싱긋이 웃음을 지었다.
어느새 중앙의 소용돌이와 같이 흙의 기둥을 솟구쳐 올리며 이드의 주위로 널찍하게 오행(五行)의 방위를 점하며 둘러싸고 있는 소용돌이, 아니 이제는 높다랗게 치솟아 있는 흙 기둥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런 거꾸로 치솟는 흙 기둥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모르카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한 번 도망갈 기회를 줄게요. 이번엔 진짜 위험한 거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도망가세요.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꽤나 걱정해주는 듯한 모르카나의 말을 들으며 이드는 긴장감 없이 미소짓고 말았다.
그녀가 하는 행동과 그녀의 말과 지금 상황이 도저히 어울리지가 않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녀의 목소리는 장난이 아닌 진심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에 그런 느낌은 더했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그렇지만 나도 그냥 갈 수는 없거든.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 이래 봬도 나 꽤 강하다고…”
“그래도… 이건 진짜 위험한데….”
이드는 다시 한 번 들려오는 모르카나의 목소리에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 이드의 얼굴에는 조금 전보다 더욱 큰 웃음기가 떠올라 있었다.
“괜찮다니까 그러네… 자, 모르카나. 걱정하지 말고 공격해.”
적에게 걱정하지 말고 공격하라고 말하는 이드나 그 말에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르카나의 모습은 전혀 적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잘 아는 사이가 연습대무라도 하는 듯한 모습으로 보였기에 주위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하지만 지켜보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 것도 잠시, 곧 이어질 전투의 여파를 생각한 사람들이 재빨리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그들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모르카나의 목소리가 천천히 물러서기 시작하던 기사들과 병사들의 등을 확실하게 밀어버렸다.
“그럼… 할게요. 다섯 대지의 뿌리들이여… 그 흐름을 역류하여 하늘의 천뢰, 땅의 굉뢰로 하늘을 부수어라.”
쿠콰콰콰………
모르카나의 주문성과 동시에 이드의 주위로 얌전히 대기하고 있던 흙 기둥들이 맹렬히 회전하며 이드를 중심으로 조여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회전하는 다섯 개의 흙 기둥들의 속도가 얼마나 가공할지, 지켜보는 병사들과 기사들의 눈에는 이드의 주위로 얇은 갈색 천이 둘러쳐져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한편, 그런 가공할 속도로 회전하는 흙 기둥들의 중앙에 서 있는 이드는 흙 기둥들의 회전으로 발생하는 압력으로 인해 무겁게 가라앉는 공기를 느끼며 서서히 진기를 유도하기 시작했다.
“정말, 위험한데…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런 압력이라니… 그럼 나도 보통 위력으로는 안 되겠지…”
그렇게 말하는 이드의 몸 위로 묵직한 검은 색의 기운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검은 기운은 붉은 검신의 라미아까지 감싸며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이드는 진기가 충만히 차오르며 운용되는 것을 느끼고는 양손으로 라미아를 잡고 머리 위로 들어 올려 천중검(天中劍)의 간단한 자세를 잡았다.
천중검, 검도의 기본 자세 중 하나인 천중검, 상중검, 중중검, 하중검, 지중검 중의 하나이지만, 검은 기운에 둘러싸인 이드가 유지하고 있는 천중검의 기도는 이름 그대로 하늘의 검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드의 주위를 압박하던 다섯 개의 흙 기둥이 서서히 거리를 좁혀 오자, 장중하고 패도적인 기도를 유지하고 있던 이드의 입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세상을 멸한다. 12대식 패황멸천붕(覇荒滅天鵬)!”
끄아아아악………….
이드의 조용하면서도 주위를 내리누르는 듯한 묵직한 음성과 함께 아래로 완만하게 내려진 라미아를 따라 칠흑빛의 거대한 붕조가 몸을 꿈틀리며 커다란 붕명(鵬鳴)과 함께 날아올라 이드의 앞에서 회전하며 벽을 만들고 있는 흙의 벽으로 돌진했다.
꾸아아아악…………….
콰아아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