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8권 – 7화 : 패어드는 관공의 발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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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8권 – 7화 : 패어드는 관공의 발밑


패어드는 관공의 발밑

한편 관공이 우금을 사로잡고 방덕을 목 벴다는 소문은 중원에까 지 널리 퍼졌다. 천지를 떨쳐 울리는 관공의 위엄에 온 화하華夏, 중 국을 높이는 말)가 모두 놀랐다. 그 소식을 들은 조조 또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곧 문무 벼슬아치들을 모아놓고 의논했다.

“나는 일찍부터 관운장의 용맹과 지모가 세상을 뒤덮을 만함을 알 고 있었다. 이제 형주, 양양에 발판을 마련했으니 이는 호랑이에 날 개가 돋친 것이나 다름없다. 우금을 사로잡고 방덕을 죽인 기세로 허 도를 향해 밀고 들어오면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도읍을 옮겨서 관 운장의 날카로운 기세를 피해보려 하는데 그대들의 생각은 어떤가?” 

“아니 됩니다. 우금과 방덕이 낭패를 본 것은 물에 잠긴 탓이지 싸움에 져서가 아닙니다. 거기다가 그들을 잃었다 해서 국가의 대계까지 허물어진 것은 아니니 대왕께서는 고정하십시오. 지금 유비와 손권의 사이가 틀어진 데다 관우는 또 한창 멋대로 설치고 있습니 다. 틀림없이 손권이 그리 기뻐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강동으로 다시 한번 사람을 보내 손권을 달래보도록 하십시오. 가만 히 군사를 일으켜 관우의 뒤를 치게 하고 일이 끝난 뒤에는 강남의 땅을 떼어주겠다고 약속하시면 번성의 위태로움은 절로 풀릴 것입 니다.”

사마의가 여럿 가운데서 일어나 그렇게 말했다. 주부 장제(張濟) 가 그런 사마의를 편들고 나섰다.

“사마중달의 말이 옳습니다. 어서 사자를 동오로 보내도록 하십시 오. 도읍을 옮겨서 공연히 사람들의 마음이 흔들리게 해서는 아니 됩니다.”

사실 관우에 대한 조조의 평가는 거의 지나치다 싶을 만큼 대단 했다. 그러나 사마의와 장제의 말을 듣자 조조도 얼른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곧 도읍을 옮기려던 생각을 버리고 그들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우금이 관우에게 항복해버린 일만은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지 여러 장수들을 돌아보며 탄식처럼 말했다.

“우금은 나를 따라다닌 지 삼십 년이나 되었다. 그런데도 목숨이 위태롭자 나를 저버리니 오히려 내 사람이 된지 오래잖은 방덕만 못하구나!”

그런 다음 한편으로는 사람을 뽑아 동오로 가게 하고, 다른 한편 으로는 관공의 날카로운 기세를 막을 대장 하나를 뽑았다.

“누가 가서 관우를 막아보겠는가?”

조조의 그 같은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 장수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제가 가보겠습니다.”

조조가 보니 서황이었다. 다른 여러 장수들을 제치고 서황이 나선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지난날 관우가 조조 아래 있을 때 그와 가장 친했던 사람이 서황이었다. 따라서 조조가 관우에게 들인 정성 을 가장 잘 알게 된 것도 그였는데, 그 관우가 조조를 괴롭혀도 너무 괴롭힌다는 생각에 무장다운 의분이 터진 까닭이었다.

서황이 나선 걸 보고 조조는 기뻐해 마지않았다. 그날로 오만의 가려 뽑은 군사를 주고 여건(呂建)을 부장으로 딸려 떠나게 했다. “먼저 양릉파(陽陵陂)로 가서 기다리다가 동오가 움직이거든 곧 관우와 싸우러 가라.”

그게 조조가 서황에게 내린 영이었다.

한편 조조의 글을 받은 손권도 기꺼이 조조의 뜻을 받아들였다. 바로 응낙의 글을 써서 사자에게 주어 돌려보낸 다음 문무 벼슬아치 들을 불러 모아놓고 형주를 칠 의논을 시작했다.

먼저 장소가 나와 말했다.

“요사이 듣자니 관운장은 우금을 사로잡고 방덕을 베어 그 위세 가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합니다. 조조는 도읍을 옮겨서라도 그 의 칼끝을 피하려 들 정도입니다. 이제 번성이 위급하니 사자를 보 내 구해주기를 빌고 있지만, 일이 끝난 뒤에는 제 말을 뒤집을까 걱 정됩니다.”

언제나 신중하고 온건한 사람답게 먼저 조조의 속셈부터 의심했다. 손권이 그런 장소의 말에 대꾸하기도 전에 문득 사람이 들어와 알렸다.

“여몽 장군이 육구에서 작은 배로 급히 돌아오셨습니다. 주공을 뵙고 급히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

이에 손권이 여몽부터 불러들여 물었다.

“무슨 일이 있어 이리 급하게 오셨소?”

“지금 관운장은 군사를 이끌고 번성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그가 멀리 나가 있는 틈을 타 형주를 치면 되찾을 수 있습니다.”

여몽이 그렇게 대답했다. 바라던 소리였으나 손권은 짐짓 딴청을 피웠다.

“나는 북쪽으로 올라가 서주를 빼앗고자 하는데 그건 어떻소?” 

“조조는 멀리 하북에 있어 동쪽을 돌아볼 겨를이 없습니다. 거기 다가 서주를 지키는 군사도 많지 않으니 가시면 뺏을 수는 있을 것 입니다. 그러나 서주의 지세는 뭍에서의 싸움에는 유리해도 물에서 의 싸움은 불리합니다. 또 끝내 얻더라도 지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먼저 형주를 뺏으시어 장강을 독차지하신 뒤 따로 좋은 계 책을 내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여몽이 한층 열을 올려 그렇게 주장했다. 그제서야 손권도 속마음 을 털어놓았다.

“나도 실은 형주를 칠 마음을 먹고 있었소. 좀 전에 한 말은 경의 속을 떠본 것뿐이오. 경은 되도록이면 빨리 이 몸이 뜻하는 바를 손대도록 하시오. 이 몸도 마땅히 그 뒤를 따라 크게 군사를 일으키 리라.”

결국 여몽이 갑작스레 나타남에 따라 의논이고 뭐고 할 것 없이 형주를 치는 일은 결정나고 말았다.

손권의 허락을 받은 여몽은 육구로 돌아가 사람을 풀어 형주 쪽 을 살펴보게 했다. 곧 소식이 들어왔다.

“강물을 따라 이십 리 또는 삼십 리마다 높은 곳에는 모두 봉화대 가 서 있습니다. 급한 연락을 하기 위함인 듯싶습니다.”

“형주의 군마는 매우 정돈되고 안정되어 있습니다. 급작스런 습격 에 여러 가지로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합니다.”

그 소리를 들은 여몽은 몹시 놀라 말했다.

“만약 그렇다면 급하게 일을 몰고 나가기는 어렵겠구나. 나는 한 때의 생각으로 오후(吳侯)께 형주를 뺏으라고 권했으나 그게 힘들게 되었으니 어찌해야 되겠는가?”

그리고 곰곰 생각해보았지만 아무래도 관공의 물 샐 틈 없는 채 비를 뚫고 들어갈 뾰족한 수가 나지 않았다. 이에 여몽은 병을 핑계 하여 문밖을 나가지 않고 손권에게도 그렇게 알렸다.

손권은 큰소리치고 떠난 여몽이 일은 손에 대보지도 않고 병이 나서 드러누웠다는 말을 듣자 마음이 즐겁지 못했다. 오만상을 찌푸 리고 여몽이 보낸 사람의 얘기를 듣고 있는데, 육손이 끼어들며 말 했다.

“여자명(明, 여몽의 자)의 병은 거짓입니다. 정말로 아픈 게 아닐 것입니다.”

그러자 손권이 대뜸 말했다.

“경이 이미 그 병이 거짓인 줄 알았으니, 도대체 어찌 되어 이러는지 한번 가서 알아보시오.”

명을 받은 육손은 그 밤으로 여몽이 있는 육구로 달려갔다. 여몽을 만나보니 정말로 얼굴에는 이렇다 할 병색이 없었다.

“나는 오후의 명을 받들고 자명의 병환을 알아보러 왔소.”

육손이 아무것도 모르는 체 그렇게 말했다. 여몽이 머뭇머뭇 그말을 받았다.

“이 천한 몸이 병들었기로 일부러 보러 오실 것까지야 무에 있겠소?” 

그러자 육손이 문득 정색을 하고 다그쳤다.

“오후께서는 공에게 무거운 책임을 맡기셨는데, 공은 때맞추어 움

직이시지 않고 공연히 울적해 계시니 어찌 된 까닭이오?”

그러나 여몽은 눈을 들어 육손을 가만히 바라볼 뿐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육손이 다시 슬몃 말했다.

“어리석은 소견이나 내게 장군의 병을 다스릴 처방이 하나 있는데 한번 써보시겠소?”

그러자 여몽은 먼저 곁의 사람들부터 물러가게 해놓고 물었다.

“백언(言, 육손의 자)의 좋은 처방이 무엇인지 어서 가르침을 내리시오.”

육손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자명의 병은 형주의 군마가 정돈되어 있고 또 강가에는 봉화대 가 잇대어 선 것 때문에 난 것이 아니오? 내게 한 가지 계책이 있어 강가의 봉수꾼들은 봉화를 올리지 못하고, 형주의 군사들은 스스로 손을 묶어 우리에게 항복하게 할 수 있소. 어떠시오? 이만하면 병이 나을 듯싶소?”

“백언의 말씀은 꼭 내 마음속을 환히 들여다보고 하시는 말씀 같 소. 그래, 그 훌륭한 계책이란 무엇이오?”

여몽이 반가운 빛을 감추지 못하고 그렇게 물었다. 육손이 대답했다.

“관운장은 스스로를 영웅이라 믿고 아무도 자신에 맞설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나 오직 장군만은 두려워하고 있소. 장군은 이번 기회 에 병을 핑계로 물러나고 이 육구의 일은 딴사람에게 넘기도록 하시 오. 그리고 새로 온 그 사람으로 하여금 갖은 말로 관운장을 추켜세 우게 하시오. 그러면 관운장은 반드시 교만한 마음이 생겨 형주의 군사들을 모조리 번성으로 불러들일 것이외다. 만약 형주의 방비가 없게 되면 많지 않은 군사로도 기계를 써서 빼앗을 수 있소. 곧 형주 는 우리 손안에 들어온 것과 다름없게 될 것이외다.”

“참으로 훌륭한 계책이오!”

듣고 난 여몽이 기뻐해 마지않으며 그렇게 감탄했다. 그리고 곧 자리에 누운 채로 손권에게 글을 올려 병을 핑계로 사직을 청했다. 돌아간 육손으로부터 귀띔을 받은 손권은 못 이긴 체 허락했다. 

“여몽이 병들어 육구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다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그로 하여금 건업으로 돌아와 병을 다스리게 하라.” 

그리고 여몽이 돌아오자 가만히 불러 말했다.

“육구의 일은 전에 주공근이 맡았다가 그가 자경을 천거했고, 자 경이 다시 자명을 천거해 자명이 대신하게 된 것이오. 이제 자명이 그만두게 되었으니 자명도 자신을 대신할 사람을 하나 천거하시오. 반드시 여럿의 기대를 받는 사람으로 자경의 묘책을 대신할 수 있어야 할 것이오.”

그러자 여몽이 무겁게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만약 그 자리에 여럿의 기대를 받는 인재를 세우면 관운장은 여 전히 방비를 게을리하지 않을 것입니다. 육손은 뜻이 깊으면서도 아 직은 널리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으니 그를 써보시지요. 그러면 관운 장도 그를 두려워하지 않아 저를 대신해 이번 일을 잘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손권도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그날로 육손을 편장군 우도독(都 督)으로 삼아 여몽을 대신해 육구로 보냈다. 떠나기 전에 육손이 손 권을 찾아보고 사양의 뜻을 비쳤다.

“저는 아직 나이가 어리고 배운 게 없어 이같이 큰일을 해낼 것 같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뽑아 보내도록 하십시오.”

그런 육손을 떼밀어 보내듯 손권이 말했다.

“자명이 경을 보증했으니 반드시 어긋남이 없을 것이오. 경은 부 디 사양하지 마시오.”

이에 육손은 절하여 인수를 받고 그날 밤으로 육구를 향해 떠나 갔다. 나름으로는 눈부신 육손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육구에 이르러 마, 보, 수삼군을 인계받은 육손은 곧 관운장을 상 대로 일을 시작했다. 갖은 추켜세우는 말을 다한 글 한 통을 다듬은 뒤, 좋은 말과 귀한 비단에 술과 안주까지 갖추어 사자에게 주고 멀 리 번성에 있는 관공을 찾아보게 했다.

이때 관공은 화살에 맞은 상처가 낫기를 기다리며 군사들을 묶어 둔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사람이 들어와 알렸다.

“강동 육구를 지키던 장수 여몽이 병들어 손권은 그를 불러들였다고 합니다. 여몽이 병을 다스리는 동안 육구를 지킬 장수로는 육 손을 세웠는데, 이제 그가 예물을 갖추어 사람을 보내왔습니다.”

그 말을 듣자 관공은 그 끝 모를 자부심의 병이 다시 도졌다. 동오 에서는 노숙 하나밖에 없다고 알고 있는 그에게 육손은 손책의 사위 인 덕분에 장수 자리에까지 오른 한낱 풋내기에 지나지 않았다. 육 구 같은 북방 진출의 요충을 맡아 밖으로 뻗어나가기는커녕 지키기 도 급급할 어린애로만 보였다.

사자를 불러들인 관공은 예를 받자마자 거침없이 말했다.

“손권이 보는 눈이 얕고 짧아 이 같은 어린아이를 장수로 삼았구나!”

실로 한 지역을 맡아 지키는 장수에게는 지나치게 무례한 말이었 으나 사자는 땅에 엎드려 말했다.

“육장군께서는 글과 함께 예물을 갖추어 한편으로는 군후의 대승 을 축하하고 또 한편으로는 두 집안의 화호를 구하고 계십니다. 부 디 웃어넘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관공은 말없이 사자가 올리는 글을 받아 펼쳤다. 쓰인 것은 자기 를 한없이 낮추고 상대인 관공을 하늘같이 치켜세운 내용이었다. 읽 기를 마친 관공은 자기를 알아주는 육손의 사람됨에 크게 만족하여 껄껄 웃으며 예물을 거두었다. 노란 털도 덜 벗은 풋내기치고는 제 법 사람을 알아본다 싶어 그 뜻을 받아들여주었을 뿐, 그 뒤에 무서 운 계획이 숨어 있는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육구로 돌아간 사자는 육손에게 말했다.

“관공은 몹시 기뻐하며 예물을 거두었습니다. 우리 동오의 일은 두 번 다시 걱정하지 않을 듯 싶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육손은 기뻐해 마지않으며 사람을 풀어 형주의 사 정을 살펴보게 했다. 오래잖아 소식이 들어오는데 관공은 과연 형주 군사의 태반을 번성으로 불러모으고 화살에 다친 곳이 낫기만을 기 다린다는 것이었다.

육손은 더욱 세밀하게 형주의 사정을 알아본 뒤 곧 사람을 보내 손권에게 그 같은 소식을 알렸다. 소식을 들은 손권이 여몽을 불러 말했다.

“지금 운장은 정말로 형주 군사를 번성으로 빼돌려 번성을 치는 데 쓰려 하고 있소. 빨리 계책을 세워 형주를 빼앗도록 해야겠소. 경은 내 아우 교()와 더불어 먼저 대군을 이끌고 가보시는 게 어떻소?” 손교의 자는 숙명(明)인데 손권의 숙부인 손정의 둘째 아 들이었다. 그 말을 들은 여몽이 문득 정색을 하고 말했다.

“주공께서는 이 여몽을 쓰시려면 여몽만 쓰시고, 숙명을 쓰시려면 숙명만 쓰십시오. 어찌하여 지난날 주유와 정보를 좌우(左右, 정사에 서는 좌·우 도독으로 썼으나 앞에서는 대부로 함께 썼음) 도독으로 함께 쓰시어 겪으셨던 어려움을 하마 잊으셨습니까? 그때 비록 모든 결 단은 주유에게 맡기셨으나, 정보는 오래된 장수로서 젊은 주유 밑에 서게 되니 아무래도 그 사이가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뒷날 주유의 재주를 알고서야 비로소 정보는 주유를 따르게 되지 않았습니까? 지금 이 여몽은 재주가 주유에게 미치지 못하고 숙명은 주공과 가깝 기가 정보보다 더합니다. 서로 화합하여 일을 치러내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듣고 나니 손권도 크게 깨닫는 게 있었다. 여몽을 대도독(都督)으로 삼아 강동의 모든 군사를 맡아 거느리게 하고 손교는 뒤에서 군량과 마초만 대주도록 했다. 두 사람에 군권(軍權)을 나누어주어 생기는 폐단을 막기 위함이었다.

여몽은 엎드려 인수를 받고 군사 삼만과 빠른 배 여든 척을 모아 형주로 나아갔다. 앞선 배는 물질 잘하는 군사들에게 흰옷을 입혀 장사치로 보이게 꾸미도록 한 뒤 노를 젓게 하고, 골라 뽑은 군사들 은 모두 선창 안에 숨어 있게 했다. 그리고 뒤로는 한당, 장흠, 주태, 주연, 반장, 서성, 정봉 일곱 장수를 세워 배로 뒤따르게 했다. 손권 은 나머지 장수들과 함께 뒤에 호응하기로 하고 채비하는 한편 조조 에게 글을 보내 관공의 뒤를 치라 했다.

육구에 있는 육손에게까지 대군이 움직인다는 것을 알린 다음에 야 흰옷 입고 장사치로 보이게 꾸민 군사들이 탄 배가 움직였다. 빠 르게 노를 저어 밤낮으로 심양강을 거슬러 올라간 배는 곧 강 북편 언덕에 닿았다.

“누구냐?”

강가의 봉수대를 지키던 형주 군사들이 흰옷 입은 동오의 수군들 에게 물었다. 동오 수군들이 능청스레 대꾸했다.

“우리는 모두 떠돌이 장사치들입니다. 강물 위에서 험한 바람을 만나 잠시 이곳에 배를 대고 피하려고 합니다.”

그러고는 재물을 꺼내 봉수대를 지키던 형주 군사들에게 한아름 건네주었다. 재물에 입이 벌어진 형주 군사들은 별로 의심하지 않고 강변에 배를 대는 걸 눈감아주었다.

한 이경쯤 지났을까, 갑자기 선창 안에 숨어 있던 오병(吳兵)들이 한꺼번에 뛰쳐나와 봉수대 위에 있는 군관(軍官)을 덮쳐 꽁꽁 묶어 버렸다. 그리고 저희끼리 정한 군호를 내지르니 곧 여든 척 넘는 배 가 나타나 군사를 강변에 부렸다.

그 배에 타고 있던 오병들이 또한 한꺼번에 쏟아져 봉수대 근처 에 군막을 얽고 있던 군사들을 모조리 사로잡아 가두니 그 봉수대는 그대로 끝이었다.

첫 번째 봉수대에서 불이 오르지 않자 다음 봉수대부터는 있으나 마나였다. 동오의 여든 척 싸움배가 기세 좋게 나아가 형주에 이르 도록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형주에 이르렀을 무렵 여몽은 봉수대에서 사로잡은 형주의 군관 들을 달랬다.

“너희들은 봉수대를 지키지 못했으니 돌아가봤자 그 죄만으로도 살기 어렵다. 차라리 우리를 도와 살길을 찾아보는 게 어떠냐? 성문 앞에 가서 거짓말로 성문을 열게 하고 불을 놓아 신호하도록 하라. 너희는 모두 무거운 상과 높은 벼슬을 받게 될 것이다.”

형주의 군관들도 달리 도리가 없는지 여몽의 말대로 따랐다. 여몽은 군사들에게 성문에서 불이 오르거든 일제히 들이치라는 영을 내리고 자신은 군관들을 앞장세워 성문 앞으로 갔다. 한밤중에 성문 앞에 이른 여몽은 사로잡은 군관들을 시켜 소리치게 했다. 

“성문을 열어라, 우리가 왔다.”

성문 안의 병사들은 자기편 군관의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무슨 일이 있어 왔겠거니 하며 별 의심 없이 성문을 열어주었다.

사로잡힌 군관들을 앞세우고 왔던 오병들이 크게 함성을 지르며 성문 안으로 몰려들어 가 불을 질렀다. 그 군호를 본 나머지 동오의 대병이 열린 성문으로 다시 함성소리 드높게 밀고 들어갔다.

형주 군사들은 너무도 갑자기 당한 습격이라 제대로 맞서보지도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다. 잠깐 동안에 형주성을 빼앗은 여몽 은 장졸들에게 영을 내렸다.

“함부로 사람을 죽이는 자나 함부로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는 자 는 모두 군법에 따라 처단하리라!”

그리고 형주의 벼슬아치들은 모두 원래대로 일을 보게 하였다. 또 관공의 가족들은 별도로 집을 주어 살게 하고 사람이 일 없이 뛰어 들어 시끄럽게 하는 걸 엄하게 막는 한편 손권에게도 형주를 뺏은 일을 알렸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여몽이 거세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네 성문을 두루 돌아보고 있는데 어떤 군사 하나가 지나가는 백성의 삿갓을 뺏어 투구 위에 쓰는 게 보였다.

“저놈을 잡아오너라!”

여몽이 그 군사를 가리키며 소리치자 따르던 군사들이 우르르 달 려가 그를 잡아왔다. 얼굴을 보니 같은 고향 사람이었다. 여몽이 얼 굴빛을 굳게 하여 꾸짖었다.

“너는 비록 나와 같은 고향 사람이나 이미 나의 군령이 내려졌음을 알면서 어겼으니 군법에 걸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자 그 군사가 울며 빌었다.

“저는 위에서 받은 투구가 젖을까 봐 잠시 백성의 삿갓을 빌렸을 뿐입니다. 결코 사사로이 쓰려고 빼앗은 게 아닙니다. 고향이 같은 정을 보아서라도 너그러이 보아주십시오.”

하지만 여몽은 낯빛을 풀지 않았다.

“나도 네가 그 삿갓으로 관물(物)인 투구를 덮었음은 알고 있다. 그러나 백성의 물건을 빼앗지 말라는 영을 어겼으니 그냥 보아 넘길 수가 없다!”

그러고는 좌우를 꾸짖어 그 군사를 끌어내 목 베게 했다.

그 군사의 목은 성문에 높이 달리고 동오의 모든 장졸들은 그걸 보고 더욱 몸가짐을 조심했다. 여몽은 그 뒤에야 그 군사의 시체를 거두어 울며 장사 지내주었다.

하루도 안 돼 소식을 받은 손권이 뒤처졌던 장수들과 더불어 형 주에 이르렀다. 여몽은 성곽을 나가 손권을 관아로 맞아들였다.

손권은 장졸들의 노고를 위로한 뒤 반준을 치중治中)으로 삼아 형주를 다스리게 하고, 옥에 갇혀 있던 우금을 꺼내 조조에게로 보 냈다. 백성을 안정시키고 공 있는 장졸들을 상 주는 일이 끝난 뒤에 는 큰 잔치였다. 흥겹게 잔을 들던 손권이 문득 여몽에게 물었다. 

“이제 형주는 얻었지만, 공안의 부사인과 남군의 미방이 아직 남 았구려. 그 두 곳은 어찌했으면 좋겠소?”

그러자 여몽이 미처 대꾸하기도 전에 한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 

“구태여 시위를 당기고 화살을 쏘지 않아도 되는 길이 있습니다. 제가 세치 썩지 않은 혀로 공안의 부사인을 달래 항복해 오도록 할 수 있습니다.”

여럿이 보니 그는 바로 우번(虞翻)이었다. 손권이 그를 보고 물었다.

“공은 무슨 좋은 계책이 있어 부사인을 우리에게 항복하게 할 수있소?”

“저는 부사인과 어릴 적부터 교분이 두텁습니다. 제가 가서 이해 로 달랜다면 그는 반드시 항복해 올 것입니다.”

우번이 자신 있다는 듯 그렇게 대답했다. 손권은 크게 기뻐하며 우번에게 군사 오백을 주며 공안으로 달려가게 했다.

한편 부사인은 형주가 이미 동오의 손에 떨어졌단 소리를 듣자 급히 영을 내려 성문을 닫아 걸고 굳게 지키기만 했다. 성문 앞에 이 른 우번은 화살 끝에다 글을 묶어 안으로 쏘아 보냈다. 군사 하나가 그 화살을 주워 부사인에게 전했다.

부사인이 글을 펴서 읽어보니 항복을 권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읽기를 마친 부사인은 전에 관공이 매질하여 내쫓은 일을 떠올리고 일찍 항복하는 게 낫다고 여겼다. 성문을 활짝 열고 우번을 성안으 로 맞아들였다.

서로 예를 마친 부사인과 우번은 오래 끊어져 있던 옛 정을 새로 이 나눴다. 우번은 오후 손권이 너그럽고 도량이 넓으며 어진 이를 우러르고 선비를 아낌을 침이 마르도록 늘어놓았다. 부사인은 크게 기뻐하며 그날로 우번과 함께 형주로 가서 손권에게 항복했다.

손권은 기꺼이 그를 받아들이고, 전처럼 공안을 맡아 다스리게 해주었다.

여몽이 가만히 손권에게 말했다.

“아직 관운장을 사로잡지 못한 터에 부사인을 공안에 그대로 있게 하면 자칫 변고가 있을까 걱정됩니다. 남군의 미방마저 항복을 받아두는 게 좋겠습니다.”

손권도 그 말을 옳게 들었다. 곧 부사인을 불러 말했다.

“미방과 경은 교분이 두터우니 경이 미방을 달래 우리에게 항복하게 해주시오. 그리만 되면 경에게 큰 상을 내릴 것이오.”

“알겠습니다. 반드시 미방을 달래 항복하도록 만들겠습니다.” 

부사인은 그렇게 말하고 여남은 기(騎)만 이끈 채 남군으로 달려 갔다.

이때 남군의 미방도 형주가 이미 떨어졌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 나 혼자 힘으로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 마음만 죄고 있는데 문득 사람이 들어와 알렸다.

“부사인 장군이 이르셨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미방은 반갑게 달려 나가 부사인을 맞아들였다. 

“장군께서 어쩐 일로 이렇게 오셨소?”

예를 끝낸 뒤에 미방이 물었다. 부사인이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내가 충성되지 못해서가 아니라 형세는 위태롭고 힘은 다해 지 켜낼 수가 없었소. 나는 이미 동오에 항복했으니 장군도 빨리 항복 하는 편이 낫겠소.”

미방도 적잖이 마음이 움직였으나 얼른 결단하지 못하고 부사인에게 되물었다.

“우리들은 모두 한중왕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는데 어찌 차마 저버릴 수 있겠소이까?”

“그렇지만 관공이 지난날 우리에게 한 짓을 생각해보시오. 그는 마음을 다 풀고 가지 않았으니 이번에 이기고 돌아온다 해도 우리를 가볍게 용서하지는 아니할 것이오. 공은 부디 그 점을 헤아려 정하 시오.”

부사인이 다시 미방을 충동질했다. 그러나 미방은 여전히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형 미축이 촉에서 유비를 섬기고 있는 게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우리 형제는 한중왕을 섬겨온 지 오래되오. 어찌 하루아침에 그 를 저버린단 말이오?”

그렇게 말하고 머뭇거리는데 문득 군사 하나가 들어와 알렸다. 

“관공께서 보내신 사자가 왔습니다.”

미방은 잠시 부사인과의 얘기를 뒤로 미루고 그 사자부터 불러들였다.

“그래, 무슨 일로 왔는가?”

미방이 묻자 그 사자는 추상같은 관공의 영을 전했다.

“관공께서는 군중에 양식이 떨어졌음을 보고 이곳 남군과 공안 두 곳으로부터 쌀 십만 석을 가져오라 하셨소. 두 장군께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 보내 군중에 바치도록 하시오. 만약 늦어지면 두 분을 선 채 목 베시겠다는 게 관공의 엄명이셨소.”

그 말을 들은 미방이 놀란 얼굴로 부사인을 돌아보며 물었다.

“지금 형주가 이미 둘러빠졌는데 이 양식을 어느 길로 보낼 수 있겠소?”

“걱정하실 것 없소!”

부사인은 그렇게 말해놓고는 문득 칼을 뽑아 관공이 보내온 사자를 그 자리에서 베어버렸다.

“이게 무슨 짓이오?”

미방이 펄쩍 뛰며 물었다. 부사인이 자르듯 말했다.

“관공의 뜻은 이번 일을 핑계로 우리 두 사람을 베어 없애려는 것 이오. 그런데도 우리가 어찌 두 손 처매놓고 죽여주기만을 기다릴 수 있겠소? 공은 빨리 동오에 항복하도록 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뒷 날 반드시 관우에게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오.”

그 말에 다시 마음이 흔들린 미방이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데 문 득 여몽이 대군을 이끌고 성으로 밀려들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깜짝 놀란 미방은 그제서야 생각을 굳히고 부사인과 함께 성을 나가 항복하고 말았다. 여몽은 몹시 기뻐하며 미방을 데리고 손권에게로 갔다.

손권은 부사인과 미방에게 큰 상을 내리고 성안의 백성들을 안심 시킨 뒤 소를 잡고 술을 걸러 삼군을 배불리 먹였다.

한편 조조는 허도에서 여러 모사들을 모아놓고 연일 형주의 일을 의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동오에서 사자가 왔다는 전갈이 들 어왔다. 조조가 사자를 불러들이자 사자는 조조에게 손권이 보낸 글 을 올렸다.

조조가 읽어보니 동오가 형주를 들이칠 작정이란 말과 함께 조조 에게 협공을 청하면서 아울러 그 일이 관운장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 록 비밀을 지켜달라는 당부를 하고 있었다. 운장이 알고 대비할까 두려워해서 하는 당부였다.

그걸 읽은 조조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여러 모사들 앞에서 손권의 글을 펴 보이며 거기 따른 계책을 물었다. 동소(董昭)가 일어나 말했다.

“지금 번성은 매우 지쳐 목을 빼고 우리가 구해주기를 기다릴 것 입니다. 먼저 사람을 시켜 화살 끝에 글을 매달아 성안으로 쏘아 넣 게 하십시오. 곧 구원병이 이를 것임을 알려 성안 군사들의 마음을 풀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다음은 관운장에게 사람을 보내 동오 가 형주를 들이치려 한다는 걸 알려주십시오. 그러면 그는 형주를 잃게 될까 두려워 반드시 군사를 그리로 물릴 것입니다. 그때 서황 을 시켜 그 뒤를 들이치면 승리는 틀림없이 우리 것입니다.”

조조도 그 말을 옳게 들었다. 곧 그대로 따르기로 하고, 서황에게 글을 보내 싸움을 재촉하는 한편 자신도 몸소 대군을 이끌고 낙양 남쪽 양릉파로 나아갔다.

서황은 장막 안에 앉았다가 위왕 조조가 보낸 사자가 왔다는 말 을 들었다. 얼른 나가 그를 맞아들이고 물었다.

“무슨 일로 왔는가?”

“지금 위왕께서는 대군을 이끌고 벌써 낙양을 지나셨습니다. 장군 께 명하시기를 어서 관운장과 싸워 번성의 어려움을 풀어주도록 하 라 하셨습니다.”

사자가 그렇게 대답했다. 바로 그때 탐마가 달려와 알렸다.

“관평은 군사를 언성에 머물게 하고, 요화는 사에 진을 치고 있는데 앞뒤로 열두 개의 진채와 책(柵)이 서로 이어져 있습니다.”

싸우러 나가려 하는데 때맞추어 들어온 보고였다. 서황은 먼저 부장 서상과 여건에게 자신의 깃발을 주어 언성의 관평과 싸우도록 했다. 그리고 자신은 따로이 날랜 군사 오백을 뽑아 면수沔)를 돌았 다. 서상과 여건이 앞으로 나가 관평과 싸우는 동안 자신은 언성을 돌아 관평의 등 뒤를 들이칠 작정이었다.

언성을 지키던 관평은 서황이 몸소 군사를 이끌고 왔다는 소리를 듣자 대뜸 군사를 이끌고 성을 나아가 적병을 맞았다. 양편 군사가 둥그렇게 마주 보고 진을 친 가운데로 관평이 말을 몰고 달려 나오 자 위군 쪽에서는 서상이 달려 나왔다.

하지만 어찌 된 셈인지 서상은 싸운 지 삼 합도 되기 전에 못 견 디겠다는 듯 말 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관평이 뒤쫓으려는 데 이번에는 여건이 달려 나왔다. 그러나 그 또한 대여섯 합도 넘기 지 못하고 뒤돌아서서 달아나니 관평은 이긴 기세를 타고 그 뒤를 쫓았다.

그런데 한 이십 리나 달렸을까, 갑자기 뒤따르던 군사들이 등 뒤에서 소리쳤다.

“장군님, 이상합니다. 성안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습니다.”

그제서야 관평은 속은 걸 깨달았다. 급히 군사를 돌려 언성을 구 하러 달려갔다. 얼마 가지 않아 한 떼의 군마가 관평의 앞을 가로막 았다.

문기 아래 말을 타고 우뚝 서 있는 것은 그때껏 보이지 않던 서황 이었다. 놀라는 관평을 보고 서황이 크게 소리쳤다.

“조카 관평은 들어라. 너는 죽고 사는 것도 모르느냐? 너희 형주 는 이미 동오의 손에 떨어졌다. 그런데도 여기서 이 무슨 미친 짓거리들이냐?”

서황이 관평을 조카라 부른 것은 전에 관우와 형제처럼 지낸 것을 앞세운 소리였다. 그러나 관평은 자기를 깔보는 듯한 서황의 말 에 화부터 먼저 났다. 대꾸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대로 말을 달 려 서황에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오래는 싸울 틈이 없었다. 서황과 창칼을 부딪기 서너 번 이나 했을까. 갑자기 군사들 틈에서 고함 소리가 터져 보니 언성 안 의 불길이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관평은 더 싸울 마음이 없었다. 한 줄기 살길을 열어 사에 있는 자기편 진채로 달아났다. 그곳을 지키던 요화가 얼른 달려 나와 관 평을 맞아들였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형주는 이미 여몽에게 빼앗겼다고 하네. 군사 들이 놀라고 들떠 있으니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요화가 관평을 보고 물었다. 관평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그것은 틀림없이 잘못 전해진 말일 것이네. 군사들 가운데 또다시 그런 소리를 하는 자는 목을 베어야겠네.”

그때 문득 유성마가 달려와 급한 소식을 전했다.

“북쪽에 있는 첫 번째 진채가 서황의 군사들로부터 공격을 받고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관평이 요화를 보고 말했다.

“첫 번째 진채를 잃어버리고 어떻게 나머지 진채가 온전할 수 있겠 나? 이곳은 면수에 붙어 있는 곳이니 적병이 감히 여기까지 이르지 는 못할 것이네. 나와 자네가 함께 가서 첫 번째 진채를 구해야겠네.”

요화도 그 말이 옳은 것 같았다. 관평과 함께 갈 생각으로 부장을 불렀다.

“너희들은 이곳을 굳게 지켜라. 그리고 만약 적병이 오거든 바로 불을 피워 알리도록 하라.”

“이곳 사의 진채는 녹각(角)이 열 겹으로 둘러쳐져 비록 나는 새라 해도 들어올 수 없을 것입니다. 조금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부장이 자신 있게 말했다. 이에 관평과 요화는 마음을 놓고 사의 진채에 있는 정병들을 모조리 끌어내 첫째 진채로 달려갔다.

가다가 얕은 산기슭에 있는 위병들을 본 관평이 요화에게 말했다.

“서황은 지세가 이롭지 못한 곳에 군사를 머무르게 해두었군. 오 늘밤 군사를 이끌고 갑작스레 그 진채를 들이쳐보도록 하세.” 

“장군이 군사 절반을 이끌고 먼저 가도록 하시오. 나는 절반으로 뒤에서 받쳐주겠소.”

요화가 관평의 뜻에 찬동하며 그렇게 말했다.

그날 밤 관평은 낮에 요화와 정한 대로 군사 절반을 이끌고 가만 히 다가가 위병들의 진채를 들이쳤다. 그러나 진채 안까지 밀고 들 어가도 적병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제서야 오히려 적의 계책에 떨어졌음을 깨달은 관평이 급히 소리쳤다.

“속았다. 어서 물러나라!”

그 순간 왼쪽에서는 적장 서상이 나타나고 오른쪽에서는 여건이 나타나 양쪽에서 치고 들었다. 관평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쫓 기기 시작했다. 기세가 오른 위병들은 벌 떼처럼 쫓아와 형주군의 사방을 에워쌌다.

관평과 요화는 버텨볼래야 버텨볼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첫째 진채를 버리고 사에 있는 진채로 쫓겨갔다.

그런데 이 어찌 된 일인가. 그토록 믿었던 그 진채에서도 불길이 솟고 있었다.

아무래도 알 수가 없어 진채 앞까지 달려가보았으나 모든 것이 이미 끝나 있었다. 형주 군사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보이느니 위 병들의 깃발뿐이었다.

갈 곳이 없어진 관평과 요화는 황망히 번성으로 가는 큰길로 달 아났다. 관공에게로 가려고 한 것이지만 그마저 쉽지는 않았다. 도 중에 다시 서황을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긴 뒤에 겨우 길을 앗아 관공 이 있는 대채로 돌아갔다.

관공을 찾아본 관평은 아는 대로 말했다.

“지금 서황은 언성을 비롯한 여러 곳을 빼앗았고, 조조도 스스로 대군을 일으켜 세 갈래 길로 번성을 구하러 오고 있다고 합니다. 또 여러 사람이 말하기를 형주는 이미 여몽에게 빼앗겼다고 합니다.” 

“그것은 모두 적이 우리 군사들의 마음을 어지럽게 만들기 위해 지어낸 말이다. 동오는 여몽이 병들어 위중한 까닭에 어린애 같은 육손으로 대신했는데 무슨 걱정이 있단 말이냐!”

관공이 문득 그렇게 목소리를 높여 관평의 말문을 막아버렸다. 그 때 군사 하나가 뛰어들어와 서황의 군사들이 이르렀음을 알렸다. 관 공이 그 말을 듣고 말을 준비하라는 영을 내렸다. 관평이 그런 관공 을 말렸다.

“아버님께서는 몸이 아직 온전치 못하시니 나가 싸우셔서는 아니 됩니다.” 

그러나 관공은 듣지 않았다.

“서황은 나와 가까이 지낸 적이 있는 사람이다. 이제 그가 무얼 얼마나 잘하는지 알아봐야겠다. 만약 그가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다 면 먼저 그를 목 베 조조의 장수들을 깨우쳐주겠다.”

그 말과 함께 갑옷을 걸친 뒤 청룡도를 잡고 말등에 뛰어올라 분연히 달려 나갔다.

관공이 세 갈래 수염을 흩날리며 나타나자 위의 군사들은 그 모습만 보고도 모두 두려워 떨었다.

“서공명(明)은 어디 계시오?”

관공이 고삐를 당겨 말을 세우고 크게 소리쳐 서황을 찾았다. 위 의 문기가 열리며 서황이 말을 타고 달려 나왔다.

“군후와 헤어진 지도 벌써 여러 해가 되었구려. 오늘 벌써 수염이 다 희끗희끗해지신 군후를 뵈오니 젊은 날 함께 지내던 때가 그립소 이다. 그때 여러 가지로 어리석은 이 몸을 가르치고 깨우쳐주신고 마움 아직껏 잊지 못하고 있소. 요사이 군후께서 영걸스런 위풍으로 온화하를 떨게 하셨다는 말을 들으니 옛 벗의 한 사람으로 놀라움 과 부러움을 이길 수가 없구려. 이제 다행히 이렇게 만나게 되니 가 슴 가득한 회포가 절로 풀어지는 듯하외다.”

서황이 말 위에서 몸을 그려 관공에게 예를 표하며 그렇게 말했다.

“나와 공명은 교분이 두텁기가 딴사람과는 견주기 어려울 것이오. 그런데 공명은 무슨 까닭으로 여러 차례 내 아들을 몰아대셨소?”

그러자 서황은 아무 대꾸 없이 자기편 장수들을 돌아보더니 갑자기 소리 높이 외쳤다.

“만일 관운장의 머리를 베어 오는 자가 있으면 천금(金)으로 상주리라! 모두 그리 알고 힘을 다하라!”

그 갑작스런 외침에 관공이 놀랍고 어이없어 물었다.

“공명, 그게 무슨 소리요?”

“오늘 나는 나라의 일을 하러 왔소. 사사로운 정으로 나랏일을 그 르칠 순 없소이다.”

서황이 그렇게 대꾸하고는 큰 도끼를 휘두르며 똑바로 관공에게 덮쳐왔다. 관공도 그제서야 벌컥 성이 나 역시 청룡도를 휘두르며 서황을 맞았다. 곧 용과 호랑이가 어우러진 듯한 싸움이 벌어져 잠 깐 사이에 여든 합이 지나갔다.

그러나 관공의 무예가 아무리 뛰어났다 해도 아직 독화살에 맞은 오른팔이 다 낫지 않아 제대로 힘을 쓸 수가 없었다. 관평은 혹시라 도 그런 관공에게 실수라도 있을까 겁나 급히 징을 쳐 관공을 불러 들였다.

징소리를 들은 관공이 싸움을 그치고 말 머리를 돌리려는데 갑자 기사방에서 함성이 크게 울렸다. 번성 안에 갇혀 있던 조인이 구원 병이 왔다는 말을 듣고 달려 나온 것이었다.

서황과 조인이 앞뒤에서 힘을 합쳐 들이치니 형주 군사들은 금세 크게 어지러워졌다. 관공은 할 수 없이 장졸들을 이끌고 양강 상류 쪽으로 달아났다.

하지만 위병의 추격이 심해 거기서도 맞서지 못하고 곧장 강을 건너 양양으로 향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갑자기 맞은편에서 유성마가 달려와 관공에게 알렸다.

“형주는 이미 여몽에게 빼앗기고 가족들은 모두 사로잡혔습니다.”

그 소리를 듣자 관공은 발밑이 그대로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설마 했던 일이 정말로 벌어지고 만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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