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말세편 1권 19화 –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여자 5 : 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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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말세편 1권 19화 –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여자 5 : 혼전


혼전

위기일발의 순간, 갑자기 승희가 더글러스의 손에 들린 총을 쳐서 떨어뜨리고는 비명을 질렀다.

“아악!!!”

째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면서 승희는 마피아들의 차 쪽으로 양손을 휘저으며 달려 나갔다. 더글러스가 무슨 영문인지 생각 할 겨를도 없이. 차들이 승희 옆으로 방향을 급히 틀면서 끼익끼 익 소리를 내며 급정거했다.

“뭐야, 넌?”

한 녀석이 험상궂은 말투로 소리를 지르자 승희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승희는 이자들이 앞서 당한 자들에게서 아직 정확한 보고를 받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투시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키건을 이자들에게 떼어 넘기고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기지를 발휘한 것이다. 승희는 외모상 평범하고 힘없는 여자 같 아 보이니 의심을 받을 우려도 없었다.

“저기…………… 저기 괴물이……………! 총 든 사람들을 모조리 해쳤어요!”

“뭐? 괴물?”

곧이어 키건이 쿵쿵거리며 나타났다. 그리고 더글러스가 키 을 피해 반은 기듯이 달음질치는 모습도 보였다.

“으아아!”

축축한 안개비를 뚫고 지축을 흔들며 걸어오는 키건의 모습은 괴물이라 표현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 광경을 보고 마피 아 단원들은 잠시 주춤하다 곧 총을 쏘아댔다. 승희는 무섭다는 듯 일부러 꺅꺅 소리를 지르며 그들 뒤로 도망쳐 숨었다. 다행히 마피아들은 무시무시한 키건의 형상에 정신이 팔려 승희가 뒤로 슬그머니 빠지는 것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했다.

키건이 쿵쿵거리를 내며 거대한 체구를 이끌고 다가오자 마 피아들은 소나기처럼 총을 쏘아 대었다. 그러나 총알은 모조리 나이트 아머에 맞고 사방으로 튕겨 나갈 뿐이었다. 그 모습에 마 피아들은 겁에 질린 듯 뒤로 움찔거리며 물러섰다. 그 상황에 승 희가 다급해졌다. 저들이 이대로 그냥 물러나 버린다면 결국 키 건은 자신을 잡을 것이 아닌가? 승희는 냅다 소리를 질렀다. 

“저 거인이 책을 갖고 있어요! 레인 마스터의 책을…..”

말을 해 놓고 승희는 아차 싶었다. 마피아들 중 나이가 꽤 들 고 눈매가 유난히 날카로운 자가 승희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기 때문이다.

‘레인 마스터의 책이라고? 저 여자는 어떻게 그걸 알고 있지?’

그 남자의 마음을 투시한 승희는 큰일이다 싶어서 이자도 처 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힘을 쓰자 그 사람은 몸을 한 번 움찔했을 뿐, 마비된다거나 정신을 잃지도 않았다. 이자 도 키건처럼 염력이 잘 통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다만 키건처 럼 무슨 술수를 부리는 것 같지는 않고, 신경과 근육 조직이 대 단히 튼튼한데다 뭔가 알 수 없는 힘으로 자신의 염력을 차단하 는 것 같았다. 이런 반응은 전에 현암에게 시험해 보았을 때와 비슷했다. 현암의 몸은 내공이 가득 차 있어서 승희의 작은 염력 이 통하지 않았다. 비록 현암보다 저자가 몇 수 아래인 것 같았지만…………….

그렇다면 저자도 내공을 쌓은 고수란 말인가? 이 미국 땅에 내가 고수가 있었단 말인가?’

승희는 의아했다. 그러나 그자는 승희를 그리 대수롭게 여기 진 않았는지, 곧 거구의 키건만을 형형한 눈매로 쏘아보았다. 승 희는 그가 승희를 수상쩍게 여기기는 하지만 일단 저 괴물을 물 리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의 마음을 놓치지 않고 읽었다. 

“이 여자를 도망 못가게 지켜!”

그자는 그 말을 남기고는 양 손바닥을 휘두르며 키건에게 몸 을 날렸다. 몸놀림이 대단히 날렵했다. 그러자 마피아들 중 한 녀석이 소리를 질렀다.

“우사부가 나갔다! 사격 중지!”

승희는 일단 그들에게 감시를 받게 되었지만, 그런 것은 신경 쓸 게 못 되었다. 다만 우 사부라는 자의 내력이 궁금해져서 마 피아 녀석들의 마음을 휙 둘러보았다.

우 사부는 치이도파의 숨은 고수로 통배권(通背拳)의 대가였 다. 승희는 통배권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일종 의 장법(掌法)으로 물체를 통과하여 타격을 전달하는 권법인 것 같았다. 과거에 우 사부는 물이 가득 든 항아리를 후려쳐, 손바 닥을 댄 쪽에는 조금의 흠집도 내지 않고 그 반대쪽의 항아리 벽 만 터져 나가게 했던 일도 있는 듯싶었다. 그러니 키건이 비록 총알을 튕겨 내는 갑옷을 입었다고는 하나 싸워 볼 자신이 있는 것 같았다.

“으음, 상당한 고수로구나. 통배권은 현암 군의 ‘투’자 결과 비슷한건가 보군!’

승희는 흥미를 느끼며 과연 우 사부가 키건과 싸워 이길 수 있 을까 흥미진진하게 바라보았다.

우사부는 고수였지만 키건의 검술도 만만치 않았다. 중국 무 예처럼 화려한 동작은 없었어도, 키건의 한 동작 한동작은 조금 도 빈틈이 없는데다가 엄청난 힘이 실려 있었다. 더구나 그 칼은 총알을 튕겨 내는 나이트 아머와 한 쌍을 이루는 다크 헌터이니 단 한 번만 맞아도 우사부는 토막이 나 버릴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우 사부는 날렵한 보법과 상대적으로 작은 체구의 장 점을 이용하여 재빠르게 키건의 몸 주위를 돌며 그의 칼을 피했 다. 그러면서 우 사부는 계속 양 손바닥을 펴서 휘둘렀는데, 손 바닥을 휘두를 때마다 팟팟 하는 바람 소리가 났다. 그사이에 더 글러스가 얼굴이 시퍼렇게 질려서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여 승희 쪽으로 왔다.

“어서………… 어서 여길 피합시다! 어서요!”

더글러스가 급히 승희에게 외치자 승희를 감시하던 마피아 녀 석이 더글러스의 어깨를 탁 밀며 외쳤다.

“네 마음대로 오고 갈 수 있다고 보냐? 거기서 꼼짝 말고 있어!”

그러는 사이 우사부가 키건의 배 부위를 손바닥으로 한 번 명 중시키는 데 성공했다. 과연 통배권의 위력은 대단해서 나이트 아머를 뚫고도 그 충격이 전달되었는지 키건의 거대한 어깨가 움찔하고 흔들렸다. 그 틈을 타서 우사부가 양손을 동시에 뻗어 키건의 가슴과 배를 연달아 후려치자 키건이 휘청거리며 뒷걸음 질을 했다.

하지만 키건은 다시 다크 헌터를 휘둘렀고 우 사부는 칼을 아 슬아슬하게 피했다. 바로 그때 다크 헌터가 놀랍게도 차르릉 하 는 쇳소리와 함께 쫙 늘어나면서 채찍 같은 기다란 줄 세 개로 변했고 삽시간에 사방을 뒤덮었다.

너무도 의외의 일이라, 우 사부는 몸을 팽이처럼 돌리면서 뒤 로 피하려 했으나 어깨와 옆구리의 옷이 찢기고 말았다. 그는 넘 어지지 않고 간신히 뒤로 물러서서 착지했지만, 어깨와 옆구리 에서는 선혈이 배어나고 있었다. 다크 헌터는 차르릉 소리와 함 께 원래의 칼 모양으로 돌아가 있었다. 승희는 키건이 자신에게 저런 수법을 썼다면 벌써 당했을지도 모른다 싶어 몸이 떨렸다. 키건이 일단 위기를 모면하기는 했지만, 그의 발걸음은 조금 흔들렸으며 더 이상 우 사부를 공격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상처를 입은 우 사부는 노호성을 터뜨리면서 부하들에게 소리 쳤다.

“저건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어 서 해치워버렷!”

그러자 트럭 뒤에서 두 명의 기이한 옷을 입은 사람이 내렸다. 번쩍거리는 옷과 반투명한 큰 안경이 달린 헬멧을 쓰고 등에 무 엇인가를 메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손에 든 막대기 같은 것을 움직이자 끝에 확 하고 불꽃이 맺혔다. 방호복을 입고 화염 방사기를 든 자들이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승희는 몸을 움찔했다. 화염 방사기를 가져오 라고 마피아들이 전했던 것을 투시력으로 읽기는 했지만 정말로 그걸 사람에게 들이댈 줄이야……………. 그 두 녀석은 다른 녀석들이 키건을 향해 총을 쏘는 사이 화염 방사기의 가스 압력을 조작하려는 듯 등에 진 봄베 (고압 상태의 기체를 저장하는 데 쓰이는 두꺼운 강철로 만든 둥근 원통)를 만지작거렸다. 인정사정 볼 것 없이 키건을 태워 버리려는 모양이었다.

“죽어랏! 이 괴물!”

두 녀석이 기세 좋게 외치면서 앞으로 달려 나가자 키건도 놀 란 듯 멈칫했다. 그리고 뭔가 각오한 듯 소리를 길게 지르면서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거의 자포자기에 가까운 몸짓 같았 다. 기세등등하게 달려 나갔던 두 녀석이 그만 놀라서 멈칫 뒤로 물러서며 발사 스위치를 당겼으나 화염 방사기가 발사되지 않 았다.

“어어?”

녀석들이 놀라는 사이 키건의 검이 옆으로 부딪치자 두 녀석 은 아까의 그 당당하던 기세에도 불구하고 저만치 엎어져서 나 뒹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키건은 칼 몸으로 후려갈긴 것에 불 과했지만, 녀석들은 죽은 것처럼 쓰러져서 꿈틀대지도 못했다. 키건은 칼을 똑바로 세우고 승희 쪽을 쳐다보았다. 화염 방사 기가 발사되지 못하게 힘을 쓴 것은 승희였던 것이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승희는 순수한 호의에서 그런 것 이 아니라 다른 꿍꿍이가 있었다.

‘휴……. 이제 이 떨거지들은 키건이 알아서 쓸어버릴 것이고, 키건은 나한테 빚을 진 셈이니 우사경을 도로 빼앗아 가지 않겠지. 이로써 해결이다.’

그런 깜찍한 생각으로 승희는 차이나 마피아와 키건의 싸움 을 재미있게 지켜보았다. 화염 방사기가 무용지물이 되고 우사 부마저도 부상당한 상태에서 차이나 마피아들은 더 이상 키건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들이 뺑소니를 치려고 하자 승희는 자신 과 더글러스를 감시하던 녀석에게 염력을 가해 그 자리에서 쓰 러뜨리고 박수를 치면서 키건에게 말했다.

“브라보! 정말 멋지네. 그럼 다음에 보자구.”

그러자 키건은 인상을 찌푸리며 안 그래도 무시무시하게 변한 얼굴을 더 험상궂게 일그러뜨렸다.

“그건 안 된다. 레인 마스터의 스크롤은 놓고 가라.”

“내가 아니었으면 넌 지금쯤 불고기가 되었을 텐데도?”

“그건 그거고, 임무는 임무다. 난 반드시 그것을 가지고 돌아 가야 한다.”

때마침 차에 기대어 상처를 동여매던 우 사부가 그 소리를 들었다.

“잠깐! 저 여자가 그 책을 가지고 있나 보다!”

그 외침에 마피아들의 총부리가 이번에는 일제히 승희 쪽으로 몰렸다. 승희는 상황이 악화되자 버럭 화를 냈다.

“뭐야! 치사한 방법을 쓰고! 무슨 기사가 이래?”

그러나 키건이 무표정한 얼굴로 승희에게 다가오면서 말했다.

“너도 마찬가지 아닌가?”

“좋다구! 어디 보자! 덤벼 봐!”

승희는 외치면서 자신을 겨누고 있던 차이나 마피아들에게 최 대의 힘을 발휘했다. 곧 앞줄에 있던 일곱 명이 자지러지게 비명 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이번에는 승희도 독이 올라서 그냥 기절 시키지 않고 극도의 고통을 주는 혈을 찌른 것이다. 그러나 역효 과가 났다. 뒤쪽에 있던 몇몇 놈들이 승희의 정체에 대해 눈치를 채고 말했다.

“그 여자다! 핑과 링을 습격한 건 저 여자야!”

“무서운 술법을 부린다! 인정사정 두지 말고 쏴라!”

그 소리와 함께 열다섯 명에 가까운 차이나 마피아들이 일제 히 총과 무기를 승희에게 겨누었다. 일촉즉발의 순간. 아무리 승 희라도 열다섯 명이 한꺼번에 총을 쏘아댄다면 꼼짝없이 당할 판이었다. 하지만 승희는 갈 데까지 가보자는 오기로 그 자리에 꼼짝도 않고 서서 놈들의 마음을 헤아렸다. 무리를 해서라도 좀 많은 숫자의 놈들을 쓰러뜨려 볼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별안간 놈들의 뒤편에서 코요테의 울부짖음 같은 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처절한 소리라서 모든 사람들이 움찔하며 잠시 그 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기 회를 노리고 있던 승희만은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먼저 겁을 주기 위해 아까 쓰러뜨린 일곱 명의 총을 허공으로 치켜올 리자 역시나 마피아들은 기겁을 하면 놀라는 것 같았다. 일곱 명 을 더 쓰러뜨릴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여덟 명이 남는다는 것을 계산하고 승희는 놈들의 공포심을 자극한 것이다. 다행히 놈들 은 유령이라도 나와 자신들에게 총을 겨누기라도 한 것처럼 비 명을 지르며 놀랐다.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가관이라 승희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빽 소리를 질렀다.

“너희들, 덤비면 모조리 몰살시켜 버릴 줄 알아!”

놈들이 얼굴이 창백해져 머뭇거리는 사이 뒤편에서 다시 쾅 하는 소리가 났다. 그 틈을 타고 키건이 다크 헌터를 휘두르며 승희에게 달려들었다. 승희라도 키건만은 염력이 통하지 않으니 그저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순간 승희의 마음이 흐트러져서 일곱 자루의 총이 바닥으로 우르르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또다시 놀라운 일이 벌어지자 마피아들은 다시 한번 기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타고 온 차가 그 자리에 서 쾅쾅 뒤집히는 것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남은 차 한 대가 쓰 러지자 키건 못지않게 커다란 덩치를 한 사람이 빗속을 뚫고 서 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를 땋고 상체에는 몇 개의 천 조각만 을 둘렀으며 얼굴에 무늬를 그려 넣은 거대한 남자. 인디언 강신 술사인 성난큰곰이었다. 원래 성난큰곰의 덩치가 거대하기도 했 지만, 강신술로 몸을 불린 상태라서 지금의 덩치는 키건에 못지 않았다.

사실 승희는 미국에 와서 먼저 성난큰곰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다가 더글러스를 쫓아 연락도 없이 서둘러 이 774번가로 왔던 것인데, 성난큰곰은 용케 승희를 쫓아 이 부근까지 왔던 것이다.

성난큰곰이 나타나자 승희는 반가움에 소리를 질렀다.

“왜 이리 늦었어요!”

성난큰곰은 그 특유의 마음을 울리는 대화법으로 승희에게 뜻을 전달했다.

난 늦지 않았다. 오히려 일찍 온 것이지.

성난큰곰은 다시 길게 코요테의 울음소리 같은 소리를 질렀 다. 그 소리는 샌프란시스코의 도심 전체를 괴이한 분위기로 몰 아넣을 정도로 우렁찼다. 승희가 외쳤다.

우사경을 찾았어요! 일단 여기 조무래기들 말고 이 덩치 큰 남자 좀 상대해 줘요!”

알았다.

키건과 강신술을 펼친 성난큰곰의 덩치는 막상막하였다. 키건 은 자신 못지않은 거인이 나타나자 의외라는 듯 약간 눈살을 찌 푸리며 성난큰곰을 바라보았고 성난큰곰도 부릅뜬 눈으로 키 을 마주 보았다.

“넌 뭐냐? 저 여자와 한패냐?”

키건이 묻자 성난큰곰이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친구다.”

그 말에 돌연 키건이 다크 헌터를 휘두르며 달려들었고 성난 큰곰은 왼손으로 날쌔게 키건의 팔을 잡았다. 그 상태에서 힘을 주고 전진하자 키건의 몸은 와르르 뒤로 밀려 나가 건너편의 건 물 벽에 쾅 하고 부딪혔다. 성난큰곰은 무지무지한 오른 주먹으 로 키건의 몸을 삽시간에 대여섯 번이나 쳤고, 그 힘에 키건의 몸은 벽에 조금씩 박혀 들어갔다. 성난큰곰의 힘은 그야말로 위 력적이었다. 일곱 번째로 주먹을 날리자 키건의 몸이 닿아 있던 건물 벽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키건이 뒤로 넘어졌다.

이때를 놓칠세라 성난큰곰은 양손을 하늘로 벌리면서 인디언 의 주술을 외웠다. 곧 흰색 정령 같은 기운들이 사방에서 솟아 나와 넘어진 키건의 몸을 밧줄처럼 엮었다. 그에 맞서 키건이 커 다랗게 고함을 지르자 그의 나이트 아머가 광채를 냈다. 성난큰 곰이 불러낸 정령들은 키건의 몸을 묶고 있다가 나이트 아머의 검은 광채를 쐬자마자 얼음이 햇볕에 녹듯이 녹아 없어져 갔다. 성난큰곰이 의외의 사태에 놀라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서자 키건 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전혀 타격을 받지 않은 듯한 날랜 동작 이었다.

“아아…… 저 갑옷이…………….”

성난큰곰은 식은땀을 흘렸다. 강신술을 펼쳐서 힘으로는 키건을 압도할 수 있었지만 키건의 갑옷과 검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 한 것이다. 키건의 갑옷인 나이트 아머는 주술을 막아 내거나 물 리칠 수 있으며, 총알까지도 막는 힘을 지닌 것 같았다. 그 때문 에 성난큰곰이 무시무시한 힘으로 키건을 일곱 차례나 후려치고 인디언의 주술을 썼어도 그에게 조금의 타격도 주지 못한 것이 다. 키건이 차분하게 성난큰곰에게 말했다.

“죽이고 싶지는 않다. 물러서라.”

그의 얼굴은 오히려 성난큰곰을 봐주고 싶다는 표정이라 성난 큰곰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승희 또한 편한 입장은 아니었다. 마피아들이 차를 타고 자꾸 몰려오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벌써 스무 명에 가까운 자들을 처리했으니 제아무리 쥐이띵파라도 사람이 그리 많을 리는 없을 텐데. 이상하게 생각한 승희가 남은 놈들의 마음을 읽어 보니 몰 려오는 녀석들은 놀랍게도 치이도와 빼륭 등의 다른 파들인 것 같았다. 아마도 놈들은 전 조직원의 목숨을 걸고 우사경을 빼 앗겠다는 심산인 것 같았다.

“제기랄, 이거 어떻게 하나?”

제아무리 승희라도 눈앞이 막막했다. 솔직히 염력을 쓰는 것 도 한도가 있었다. 아까부터 수십 차례나 염력을 사용했는데, 저 렇듯 많은 인간들을 상대하다가는 탈진해 버릴 가능성이 컸다. 승희는 도움을 얻을 수 없을까 궁리하며 힐끗 성난큰곰 쪽을 돌아보고는 그와 함께 행동해야겠다고 결정했다. 서로 각각의 적과 싸우기보다는 둘이 힘을 합해 한쪽의 적을 먼저 해치우고 나 머지 한쪽을 대적하는 것이 옳은 것 같았다. 그러나 더글러스가 양손을 저으면서 승희를 막아섰다.

“뭐예요?”

“어서 도망쳐요! 당신이 가 봐야 도움이 되지 않소!”

“어디로 가란 말이에요! 마피아들이 가득 몰려오는데.”

“저자들은 당신을 알지 못할 거요! 아까처럼 빠져나가요! 이 미 책은 얻은 것 아니오?”

애당초 승희 혼자라면 쉽게 빠져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승희는 자기를 도우러 온 성난큰곰을 두고 혼자 가기는 싫었다.

“안돼요!”

“당신도 상대가 안 된다면서요?”

승희는 더글러스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

“도망칠 건가요?”

그러자 더글러스가 잠시 숨을 들이마시더니 눈을 빛냈다.

“물론 그럴 순 없지.”

더글러스가 총을 손에 꽉 쥐자 승희는 씩 웃어 보였다.

“훌륭해요, 더글러스 씨.”

더글러스는 소리를 지르면서 총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달려오는 마피아들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달려오던 자들도 급히 몸을 숨기면서 응사해 왔으나 더글러스는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여기

저기 뛰어다니며 정신없이 총을 쏘아댔다. 총을 쏘는 것은 더글 러스 혼자였지만 그렇게 하자 상대는 이편의 숫자가 많은 것으 로 오해했는지 섣불리 다가오지 못했다.

“겨우 이 정도냐? 응? 더 해 봐! 해 보라구!”

더글러스는 마구 외치면서 전쟁 영웅처럼 날뛰었다. 혼자서 십 여 명도 넘어 보이는 적의 발목을 완전히 묶어 두고 있었다. 그 러다가 어느 순간 상대편의 총성이 멎었다. 상대가 많은 줄 알고 전진을 멈춘 것이다. 그러자 더글러스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저 괴물에게 뭔가 하시오. 당장은 다가오지 않겠지만 나 혼자 란게 들통나면 끝이야.”

문득 승희의 눈동자가 빛났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승희는 곧 더글러스에게 손짓을 했다.


성난큰곰은 이제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고 반은 위협조로 휘 둘러 대는 키건의 다크 헌터를 피하고 막느라 정신이 없었다. 키 건은 나이트 아머로 알 수 없는 이상한 힘을 끌어내어 뿜곤 했 다. 그때마다 성난큰곰의 거대한 몸은 뒤로 날아갔다. 쓰레기통 이나 우체통, 전신주 등이 찌그러지고 부러졌으며, 벽과 창문도 무너지거나 깨어졌다. 일방적으로 성난큰곰이 당하고 있었다. 키건의 공격은 일정했다. 다크 헌터를 일부러 성난큰곰의 머리를 향해 휘두르면 성난큰곰이 그것을 애써 손으로 막는다. 그 러면 곧 나이트 아머에서 기운을 뿜어내어 성난큰곰을 밀어붙이 는 식이었다. 단순한 패턴이었지만 성난큰곰은 어떻게 다른 방 법을 강구해 낼 수가 없었다. 나이트 아머의 기운은 강한 펀치 정도라 맞아도 타격이 덜했지만 다크 헌터에 한번 베이기라도 한다면 머리가 두 쪽 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허나 그런 식으로 열 몇 차례를 얻어맞자 제아무리 강한 성난 큰곰이라도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성난큰곰이 헐떡이며 길에 불룩하게 솟아 있는 소화전을 감싸 안고 일어서 려고 애쓰자 키건이 다가오며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하겠다. 너를 죽이고 싶지는 않다. 포기하고 스 크롤을 넘겨 달라고 말해라.”

성난큰곰은 여전히 표정 없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키건은 음울한 얼굴로 다크 헌터를 붕 소리가 나게 옆으로 휘둘 렀다. 성난큰곰이 노린 것은 그 순간이었다. 그가 옆으로 급히 몸을 눕히자마자 다크 헌터가 아슬아슬하게 그의 목을 스쳐 가 면서 소화전을 쳤다. 소화전이 다크 헌터의 날에 맞아 잘려 나가 면서 물줄기가 분수처럼 솟구쳐 올라와 다크 헌터를 위로 밀어 올렸다. 키건이 놀라 다크 헌터를 놓치지 않으려고 힘을 주는 순 간, 성난큰곰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키건의 팔을 잡고 매달렸 다. 그리고 혼신의 힘을 다해 키건의 팔을 꺾으며 거대한 몸 전체를 뒤로 젖혔다. 키건의 오른팔이 뒤로 우두둑 소리를 내며 꺾였고, 다크 헌터는 물줄기에 휩쓸려 올라가다가 옆으로 땡그랑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됐다!”

성난큰곰은 키건의 팔을 부러뜨리는 데 성공하자 곧 손을 뻗 어 다크헌터를 집으려고 했다. 그러나 상상치도 못한 일격이 성 난큰곰의 뒷덜미를 내리쳤다. 키건은 팔이 부러진 것에는 꿈쩍 도 하지 않고 왼 주먹으로 성난큰곰을 내려진 것이다. 성난큰곰 이 비명을 지르면서 저만치로 엎어지자 키건은 뚜벅뚜벅 걸어서 왼손으로 다크헌터를 집어 들었다.

방금 성난큰곰에게 오른팔이 부러져 덜렁거렸지만 아무렇지 도 않은 표정이었다. 아니,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니었다. 무 척 심한 고통을 느끼는 듯,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고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오로지 정신력으로 그 무서운 아픔을 참 아내는 모양이었다. 성난큰곰이 인디언 고유의 환영 주술로 힘 을 써 보았지만 환영들은 나이트 아머에 차단되어 키건에게 조 금의 타격도 주지 못했다.

‘끝인가?’

성난큰곰은 자신을 향해 천천히 겨누어지는 키건의 다크 헌터 를 보면서 절망감을 느꼈다. 역시 맨몸으로 키건의 다크 헌터와 나이트 아머에 대항하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키건은 다크 헌터를 성난큰곰의 목에 닿을락 말락 하게 들이댄 채 멈췄다.

그러곤 성난큰곰 쪽으로 다가오려는 승희를 향해 소리쳤다.

“스크롤을 내놓아라. 마지막 경고다.”

승희는 입술을 깨물며 마피아 쪽과 키건을 번갈아 바라보고 말했다.

“이 사람을 놓아줘. 그러면 내가 남겠다.”

“스크롤을 내놓으면 당연히 놓아준다.”

“믿지 못하겠어. 일단 이 사람을 놓아 달라구. 이제 당신은 날 무서워할 것 없잖아? 내 염력은 당신에게 통하지 않으니까.” 

키건은 조금의 빈틈도 보이지 않고 되받았다. 그는 어느샌가 더글러스가 사라진 것을 놓치지 않았다.

“아까 당신과 같이 있던 남자가 보이지 않는데…………. 일단 스 크롤을 네가 가지고 있는지 보여 다오. 아까 그 녀석에게 줘서 빼돌린 것 아닌가?”

그러자 승희가 미소를 띠었다.

“정말 대단한 기사네. 나도 그럴까 했지만……………. 그러지 않았 어. 자, 봐. 여기에 있다구.”

승희는 비옷을 헤치고 재킷 주머니에서 『우사경』을 꺼내 키건 에게 보여 주었다가 뒤춤에 넣었다. 키건이 피식 웃었다.

“이번에도 나와 저들을 싸움 붙일 생각이라면 그만두는 게 좋 아. 저들은 나에게 고용된 빼륭파의 일원들이니까. 네 힘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네가 빠져나갈 길은 더 이상 없다구.”

“뭐? 저들이 당신 편이라구?”

“늦게 와서 화가 났는데…………. 차라리 잘된 것 같군그래. 어쨌든 이제는 포기하는 게 좋지 않을까?”

승희는 지긋지긋하다는 듯 성질을 부리며 소리쳤다.

“알았어! 알았다구! 일단 저 친구는 풀어 줘. 그리고 나랑 같 이 있던 남자도 그냥 보내 주고. 그 사람은 우연히 끼어든 것에 불과해. 어쨌거나 『우사경만 넘겨주면 되잖아.”

“알았다. 그렇게 하지. 아무튼 조금 더 이쪽으로 와라.”

“왜?”

“솔직히 안심이 안 돼서 그렇다. 너는 내 손에 닿는 곳에 있어야해.”

“후훗. 『우사경』을 그냥 빼앗을 생각은 하지 마. 나도 그렇게 되면 죽기 아니면 살기로 나올 거니까.”

“알았다. 내가 뭐 때문에 서두르겠나? 약속은 지킬 테니 염려 마라.”

승희가 마지못한 듯 키건 쪽으로 몇 발자국을 걸어가자 키건 은 다크 헌터를 칼집에 꽂은 뒤 승희의 어깨에 살짝 왼손을 얹었 다. 성난큰곰은 자신을 겨누던 칼이 사라지자 곧 몸을 일으켰지 만승희가 키건에게 잡혀 있는 것을 보자 마음이 불편한지 인상 을 썼다.

키건이 성난큰곰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염려 마라. 나는 기사다. 너희가 먼저 서툰 짓을 하지 않는 이상,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다.”

승희도 성난큰곰에게 말했다.

“일단 가세요. 여긴 나에게 맡기고요.”

“하지만…………….”

성난큰곰이 주저하는 듯하자 승희가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이 사람이 우릴 죽이려고 했다면 벌써 죽였을 거예 요. 하지만 그러지 않았잖아요? 우사경만 포기하면 그뿐이죠. 뭐. 그러니 일단 가요. 당신은 너무 눈에 띄어서 마피아들이 도 착하면 곤란해져요.”

그 말에 성난큰곰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재빨리 건물 구 석의 어두운 곳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성난큰곰이 사라진 지 몇 초도 되지 않아 차이나 마피아의 차들이 승희의 주변을 에워싸 며 요란한 소리와 함께 멈추어 섰다. 수십 명에 달하는 인원들이 차에서 우르르 내려서 총과 무기를 들고 승희의 주변을 그야말 로 첩첩이 에워싼 것이다. 차이나 마피아들의 인원이 워낙 많았 기 때문에 그들은 승희를 포위한 것은 물론이고, 주변에 쓰러진 녀석들을 순식간에 치워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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