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말세편 1권 21화 –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여자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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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말세편 1권 21화 –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여자 7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여자

우사경을 다오. 아니면 죽인 후 빼앗을까?”

그 협박에 승희는 눈을 일부러 크게 뜨고 사방을 둘러본 다음 휘파람을 휙 불었다.

“와우, 대단한데, 이거 어쩔 수 없겠는걸?”

승희가 『우사경을 꺼내자 키건은 조금 미소를 띠며 손을 벌렸다.

“나도 내키지 않지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자를 협박하다니…… 이해해 다오.”

승희는 키건에게 씩 웃어 보이면서 키건의 커다란 손바닥에 우사경을 탁하고 놓았다.

“분명히 줬다?”

그리고 승희는 뒤로 싹 물러섰다. 키건이 만족스럽게 우사을 바라보는 순간, 별안간 『우사경이 허공으로 휙 솟아 날아가 는 것이 아닌가?

“어엇!”

키건은 너무 놀라 그것을 도로 잡으려고 손을 버둥거렸지만 이미 우사경』은 새처럼 날아 건물 하나를 넘어 사라져 버렸다. 

“쫓아!”

키건이 외치자 마피아들이 우르르 몰려 나갔다. 키건은 승희 를 바라보며 분노에 가득 찬 고함을 질렀다.

“날 속이다니!”

“난 속인 적 없어. 확실하게 당신 손에 『우사경을 줬다구. 다 시 빼앗아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적도 없고…….”

승희가 말을 마치자마자 저쪽에서 전신주 하나가 우지직 소 리를 내며 쓰러졌다. 키건과 달려 나가던 마피아들이 놀라서 전 신주를 피하는 사이, 승희는 가볍게 깡충 뛰어서 옆에 있던 나무 벤치 위로 뛰어 올라갔다. 그때였다.

“으아아악!”

“끄아아아!”

갑자기 수십 명이나 되는 차이나 마피아들이 몸을 덜덜 떨면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전기가 그들의 몸을 지져 댄 것이다.

마피아들이 차를 타고 몰려올 때부터 승희는 이 생각을 해냈 다. 비가 내려 바닥에 흥건히 고여 있는 물을 보고 힌트를 얻은 것이다.

그래서 성난큰곰을 미리 대피시키면서 자신의 마음을 보고 있 다가 자신이 신호를 하면 전신주를 쓰러뜨려 달라고 부탁한 것 이다. 보통 전압선은 땅속에 매설되지만 이곳은 워낙 낙후된 지 역이라 아직도 전신주 위를 타고 있었다.

전봇대가 쓰러지며 전압선이 끊어지자마자 승희는 염력을 발 동하여 끊어진 전압선 끝을 땅에 박아 버렸다. 고압 전기가 흐르 는 것이라 손으로 잡을 수는 없었지만 승희의 염력으로는 간단 한 일이었다.

전선이 두꺼워서 힘이 들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우사경 은 허공을 훨훨 날아 저쪽에 숨어 있는 더글러스의 손에 들어간 다음이었다. 승희와 더글러스가 이런 작전을 짠 만한 여유는 없 었다. 그러나 더글러스에게는 사이코메트리 능력이 있었다. 위 기에 처해서 그의 능력이 살아나는 것을 투시로 느낀 승희는 더 글러스에게 손을 내밀었고, 손끝이 닿는 순간, 이 작전은 말 한 마디 없이도 더글러스에게 전달될 수 있었다. 물론 아무도 엿듣지 못하게. 그럴 시간도 없었지만 만약 그들이 대화로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키건이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때마침 발동된 더글러스의 사이코메트리 능력은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해 주었 다. 성난큰곰은 원래부터 마음으로 대화를 하는 능력이 있기에 조금의 눈치도 보이지 않고 이런 일을 해내는 것이 가능했던 것 이다.

승희는 덜덜 떨고 있는 수많은 차이나 마피아들을 보다가 행 여 그들이 다 죽어 버릴까 염려되어 다시 전선을 끊었다. 모든 녀석들이 신음 소리를 내며 풀썩 땅에 쓰러졌다. 빙 둘러선 수십 명의 마피아 중 한 명의 예외도 없었다.

하지만 키건은 전기 쇼크를 버텨 내며 꿋꿋하게 서 있었다. 키 건은 마피아들이 모두 쓰러지는 것을 보고 온몸에 힘을 주었다. 그러고는 다크 헌터를 꺼내 크게 휘두르며 승희를 향해 달려들 었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땅이 다 흔들릴 정도로 무서운 기세였 다. 그러나 승희는 슬픈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미안해요. 키건 나야말로 이러고 싶지는 않았는데…. “

순간, 키건이 느닷없이 다크 헌터를 떨어뜨리고 외마디 비명 을 지르며 얼굴을 감쌌다. 승희는 키건의 눈동자에 힘을 집중한 것이다. 제아무리 키건이라도 혈압을 올려 온몸에 강한 힘을 줄 수는 있지만 눈동자에까지 힘을 주어 단단하게 할 수는 없는 노 릇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게 되자 키건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왼팔 을 휘둘렀으나 승희를 맞히지는 못했다. 그러자 성난큰곰이 달 려와 키건을 뒤에서 끌어안아 제압한 다음 나이트 아머를 벗겨 내었다. 다크 헌터와 나이트 아머가 없어지고 한 팔이 부러진데 다 눈까지 보이지 않게 된 키건은 더 이상 성난큰곰의 적수가 되 지 못했다. 성난큰곰은 키건의 아래턱을 호되게 갈겨 그를 쓰러 뜨렸다.

“안됐군. 푹 쉬게.”

툭툭 손을 털고 난 성난큰곰은 돌연 승희가 울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왜 그러냐?”

성난큰곰이 다급하게 묻자 승희가 눈물을 닦으면서 말했다. “이 사람은 악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런데………… 그런데 난 그 의 두 눈을 멀게 했어요. 그러고 싶지는 않았는데…………..

저쪽에서 더글러스도 달려 나왔다. 그는 수십 명의 마피아가 쓰러져 있는 것과 천하무적인 것 같던 키건마저도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는 놀라서 외쳤다.

“이건 정말 놀랍군! 당신은 정말…….”

더글러스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자신이 들고 있던 우사경을 들 여다보았다. 여기에 불사의 비밀이 정말 있을까. 이것을 가지고 도망가버리면 어떨까 하는 그의 생각을 읽어 낸 승희는 훗 하고 웃었다. 물론 더글러스의 진심이 아니었고, 한번 농담처럼 상상 해본 것에 지나지 않았다. 더글러스는 승희의 얼굴을 보더니 쑥 스러운 듯 웃으면서 우사경을 건네주었다.

“내가 또 바보짓을 했군.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여자 앞에서 허튼 생각을 하다니. 하하, 한 번만 봐주시오.”

“탐정님께는 정말 신세가 많았어요.”

“별말씀을. 한 가지만 말해 주시오. 난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았소. 그렇지 않소?”

승희는 환하게 웃었다.

“물론이에요.”

성난큰곰은 승희의 기분이 풀린 것 같자 그녀의 어깨를 툭 치고 나섰다.

“너희는 목숨을 걸고 정당하게 싸웠다. 키건도 결코 너를 원망 하지는 않을 것이다.”

승희가 성난큰곰을 보며 말했다.

“아닌 것 같은데요. 이 사람은 다음에 나를 만나면 반드시 죽 여 버린다고 이를 갈고 있어요. 이제 이 사람은 지금까지의 키건 이 아닐걸요. 내가 여자였기 때문에 키건은 마지막 순간 말고는 전력으로 나를 상대하지 않았어요. 덕분에 내가 이긴 거예요. 하 지만 아마 앞으로 이 사람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잔 혹한 사람이 될 거예요.”

말끝을 흐리면서 승희는 쓸쓸히 몸을 일으켰다. 저쪽에서 다 시 빼륭인지 치이도인지 마피아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기 때문이 다. 저들은 겁을 먹었는지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간혹 총을 쏘아 댔다. 그러자 성난큰곰은 좀 인상을 찌푸리면서 키건에게서 벗 겨 낸 나이트 아머를 주워 들고 말했다.

“좀 빌리기로 하겠다. 전리품이라 여겨 다오.”

성난큰곰이 키건의 나이트 아머로 앞을 막는 사이 승희는 다 시 한번 키건을 바라보며 속으로 말했다.

“당신 눈을 멀게 한 것은 미안하지 않아요. 그러나 나는 당신 의 긍지와 자부심을 없애고…………… 당신을 야수로 만든 셈이군요. 미안해요. 정말…….’

승희는 성난큰곰과 더글러스와 함께 골목을 빠져나갔다. 간간 이 총소리가 울렸지만 정작 총알이 비 오듯 날아오지는 않았으 며, 마피아들도 빽빽이 쓰러진 자들의 몰골에 질려 버렸는지 총 만 쏠 뿐 아무도 접근하려고 하지 않았다. 가끔 총알이 날아들었 지만 거인 키건이 입었던 나이트 아머가 워낙 커서 그들의 몸을 충분히 가려 주었다.

일단 안전한 곳으로 빠져나오게 되자 승희는 다른 고민에 빠졌다.

우사경을 얻었다.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하나? 『해동감결의 내용은 과연 무엇일까? 연희 언니는 또 어떻게 설득하여 힘을 빌리나? 지금까지 내가 한 행동은……… 과연 옳은 것일까?’

생각할 것은 정말 아득할 정도로 많았다. 토트의 예언, 라미드 우프닉스, 『해동감결」, 「우사경』, 말세, 성당 기사단・・・・・・

 ‘원 참, 난 이번 일로 성당 기사단의 원수가 된 셈인가? 키건이 나 그 단장 같은 녀석들이 줄줄이 따라다닌다면…………. 지난번 첩 보기관에 쫓기는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할 텐데…….’

골목을 나가면서 승희는 몸서리쳤다.

그러고 보니 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여자가 아니라………… 세 상에서 가장 무서운 처지에 빠진 여자 아냐? 이런 제길!’

하지만 승희는 곧 그런 마음을 깨끗이 털어 버렸다. 우사경 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박 신부나 준후, 그리고 특히 현암 이 얼마나 기뻐할까를 상상하자 지금까지의 모든 고생은 아무것 도 아닌 것 같았다.

‘그래,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지경에 빠지면 어때. 언제는 안 그랬나. 뭐?’

앞으로도 골치 아픈 일은 끝없이 많겠지만 승희는 이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로 했다. 무사히 우사경』을 모두에게 전할 때 까지는.

골목을 나오자 사람들이 많은 곳이 나왔다. 이제 안심이라고 생각하니 승희는 다시 기운이 솟아났다. 앞으로 미국을 빠져나 갈 때까지 난관이 많겠지만, 이제는 자신이 있었다. 승희가 웃으며 어느새 평상시 덩치로 몸을 줄인 성난큰곰에게 말했다.

“어서 가요! 미련퉁이 현암군에게로!”

성난큰곰은 이 귀엽게 웃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여자에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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