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말세편 2권 3화 – 재회 3 : 오해
오해
아라가 손에 쥔 조요경에 힘을 불어 넣자 조요경에서 환한 빛 이 번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빛을 보며 준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어디서 났지?”
“네가 알아서 뭐할래?”
아라는 코웃음을 친 다음 조요경을 쥔 손을 살짝 폈다. 별안간 사방에서 푸드득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뭔가가 바스락거렸다. 준호는 굳은 얼굴로 주변을 한번 둘러보더니 말했다.
“대단한데?”
곧이어 열 마리가 넘는 비둘기 떼가 아라의 주변으로 날아들 었다. 이내 다른 방향에서 또 십여 마리의 비둘기가 날아들었다. 비둘기 떼는 계속 푸드득거리면서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백 마리가 넘는 많은 비둘기 떼가 아라와 준호의 주 변을 에워쌌다.
아라가 준호를 보며 쏘아붙였다.
“너 왜 준후 오빠인 척했지?”
준호는 훗 하고 코웃음을 치면서 대꾸했다.
“그런 적 없어. 난 장준호야.”
그 말에 아라는 화난듯 쓰러져 있는 원석을 가리켰다.
“저 애, 네가 기절시켰지?”
준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 되받았다.
“저 애를 조종하려고 한 건 너잖아! 사악한 힘을 함부로 쓰는 몹쓸 계집애 같으니!”
“사악한 힘? 아쭈, 한번 혼 좀 나 볼래?”
아라가 눈꼬리를 세우면서 눈빛을 번적이자 곧 백 마리가 넘는 비둘기 떼가 와르르 준호를 향해 덮쳐들었다.
준호는 호흡을 들이마시면서 손으로 크게 허공중에 원을 그리 며 부적을 뿌렸다. 그러자 부적이 공중에서 저절로 확 불이 붙으 면서 사방으로 날아갔다. 비둘기 떼는 부적의 열기에 놀라 준호 에게 덤벼들지 못하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몇 마리의 비둘기들 은 털에 불이 붙어 놀라 푸드득거리며 땅에 뒹굴었다. 그 모습에 아라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
“너・・・・・・ 그 부적 쓰는 법은 어디서 익혔지?”
“너야말로 어떻게 동물을 부리는 술수를 익힌 거지?”
“넌 준후 오빠를 어떻게 알지?”
“너야말로 장준후에 대해 어떻게 알았지?”
아라는 기가 막히기도 하고 분하기도 해서 발을 굴렀다.
“내 말만 따라 하다니! 나 화났어!”
그래도 준호는 여유 있게 능글맞은 웃음을 지었다.
“네가 화나면 어쩔 건데? 동물을 쓰려고 해도 여긴 시내 한복 판이야. 쓸 만한 동물들이 그리 많지 않을걸?”
“애들이 널 왕따라고 하더니만 그 이유를 알겠어. 너처럼 밥맛 없는 놈은 처음 본다!”
비아냥거리는 아라의 말에도 준호는 조금의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고 다그쳤다.
“네가 뭐라고 하건 상관없지만 장준후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 지어서 말해.”
준호는 다시 두어 장의 부적을 꺼내 오른손으로 수인을 맺었 다. 보통 사람은 알아볼 수 없을 것이지만 아라는 그 손끝에 무 형의 기운이 솟아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기운은 과거 준후가 사용하던 술법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
‘준후 오빠와 비교하면 형편없는 실력이기는 하지만 비슷해. 제길. 저 자식은 뭘까? 혹시 ・・・・・・ 혹시 준후 오빠를 저놈이 해치 고 술수를 얻은 거라면……………..’
그렇게 생각하자 아라는 치가 떨렸다. 아라는 다시 조요경 정신을 집중했다. 준호는 아라가 조요경에 힘을 주려는 것을 보 고는 손가락을 세워 아라를 가리켰다. 아라는 손에 화끈하면서 도 뜨거운 기운이 닿는 것을 느꼈다. 화상을 입은 것 같았다. 하 마터면 조요경을 떨어뜨릴 뻔했으나 아라는 도리어 조요경을 꽉 쥐었다.
“자꾸 서툰 짓 할래? 몇 군데 데어 보고서야 순순히 말하겠어?”
준호가 윽박지르자 아라는 비상수단을 쓰기로 했다. 아라는 갑자기 흑 하면서 얼굴을 찌푸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라의 모습에 준호는 조금 당황했다. 준호는 침착하려고 애 를 쓰며 입을 떼었다.
“뭐 하는 거야? 어서 장준후를 어떻게 알았는지 말하래두!” 난・・・・・・ 난 다만…….”
“말해 봐!”
“흐흑……. 그러니까…………… 흑……………”
준호는 침착하려 했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았 다. 그때 아라가 뚝 울음을 멈추고 돌연 휘파람을 불자 이번에는 열 마리가 넘는 크고 작은 개와 스무 마리가 넘는 고양이가 소리 도 없이 준호의 등 뒤에 나타났다.
“어엇!”
준호는 이상한 기운을 느끼고 놀라서 몸을 뒤로 돌리려 했지 만 하마터면 휘청하고 넘어질 뻔했다. 어느새 준호의 발밑에 풀 뿌리들이 자라 엉켜서 발을 땅에 못 박아 두고 있었던 것이다. 준호가 놀라 중심을 잡으려는 순간, 개들과 고양이들이 준호 에게 달려들었다. 고양이 세 마리가 준호의 등에 매달렸는데, 양 어깨에 한 마리씩, 그리고 머리 위에 한 마리의 고양이가 매달려 서 발톱을 곤두세웠다. 거기다 개 세 마리가 준호의 바짓가랑이 를 물고 늘어졌으며, 준호의 양팔에 개들이 한 마리씩 소맷자락 을 물고 늘어졌다. 나머지 개와 고양이는 이를 드러내며 준호를 에워쌌다.
순식간의 일인데다가 개와 고양이는 마치 로봇처럼 아무 소리 도 내지 않았고 준호의 옷만 물고 늘어질 뿐 준호의 몸은 건드리 지 않았다. 준호가 거의 꼼짝 못하게 된 것 같자 아라가 호호 웃 으면서 일어났다.
“숙맥이군그래.”
준호는 화가 치밀었다. 아라는 우는 척하면서 근방의 개와 고 양이가 달려올 시간을 버는 한편, 암암리에 준호의 발밑의 풀을 엉키게 해서 준호를 꼼짝 못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런 여우같은!”
준호가 이를 갈자 아라가 싱긋 웃으며 눈짓을 했다. 그러자 준호 머리 위의 고양이가 발톱을 세워서 준호의 이마를 살짝 긁 었다.
“아!”
준호가 아프다기보다는 놀라서 탄성을 지르자 아라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해 보지그래. 그 잘난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 해 봐. 얼굴을 바둑판으로 만들어 줄 테니.”
아라의 으름장에 준호는 무표정하게 입을 다물었다. 아라는 뒷짐을 지고 준호의 주변을 천천히 돌면서 물었다.
“넌 준후 오빠를 어떻게 알게 된 거야? 어서 불어. 만약 준후 오빠를 네가 어떻게 했다면 …………… 널 개밥으로 줄 거야.”
아라는 준호 머리 위의 고양이를 보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 실수, 개밥만 아니라 고양이 밥으로도 줘야지. 오 대 오로 나눠 줄까? 아니면 삼대 칠로 나눠 줄까?”
“서툰 수작 부리지 마. 여긴 우리 학교야. 소리만 지르면 사람들이 올 거라구.”
그 말에 아라가 깔깔 웃으며 말했다.
“오, 그래? 잘났다. 잘났어. 나같이 가냘픈 여자애한테 당해서 소리를 지르겠다구? 사람을 부른다구? 얼마든지 불러 봐. 난 가 버리면 그만이고, 네가 개밥이 되는 건 변하지 않는다구.”
아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개 한 마리가 펄쩍 뛰어올라 준 호의 목덜미에 이빨을 대고 물어뜯을 듯이 매달렸다. 준호의 얼 굴은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이마에는 송골송골 식은땀이 맺혔다.
“내가 가면 얘들이 날뛸 건데? 나는 연약해서 끔찍한 건 못 보거든? 그러니 서툰 짓하면 난 얘들 맘대로 하라 하고 그냥 가 버릴 거야. 아니, 이 기회에 구경 한번 해 볼까? 뭐 꺅꺅거리고 연 기 좀 하면 사람들이 내가 조종하는 건지는 아무도 모를 테니까.”
아라가 천연덕스럽게 끔찍한 이야기를 하자 준호의 이마에 솟 는 땀이 점점 늘어 갔다. 하지만 얼굴 표정만은 변함없었다. 그 러다가 준호가 목이 메는 듯 간신히 말했다.
“맘대로 해 봐.”
그 말에 아라는 준호의 코앞으로 다가가 얼굴을 바싹 들이대 면서 물었다.
“넌 준후 오빠를 어떻게 알지? 지금 준후 오빠는 어디 있지?”
준호가 고개를 가로젓는 순간 아라가 인상을 썼다. 그러자 고 양이와 개들이 조금 힘을 주어 준호의 몸 곳곳에 이빨과 발톱을 들이대었다. 아직 물어뜯기진 않았지만 준호는 조금씩 얼굴색이 하얗게 변해 갔다.
“어서 대. 넌 분명히 준후 오빠에 대해 알고 있잖아? 어디 있냐구?”
“죽어도 못 대.”
준호가 끈질기게 버티자 아라가 표독스럽게 깔깔 웃었다. 정 말로 화가 나면 아라는 이렇게 웃는 습관이 있었는데, 지금 정말 로 화가 난 것이다.
“내가 못 죽일까 봐? 흥. 좋아. 널 죽여 버리면 준후 오빠가 어 디 있는지 말할 사람이 없겠지. 하지만 안 죽여도 충분해. 눈부 터 빼줄까? 코부터 잘라줄까, 아니면 혀부터?”
준호는 끔찍한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말 그런 일을 당하는 것보다도 아라의 입에서 끔찍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더 겁났 다. 그러나 준호는 애써 무표정한 얼굴이 되어 되받았다.
“정말 잔혹하구나. 하지만.”
준호는 당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수록 더 말할 수 없지.”
그 말에 아라는 안달이 나는 듯 외쳤다.
“알긴 알고 있는거야? 야! 준후 오빠가 무사하긴 한 거야?”
그러나 준호는 묵묵부답이었다. 아라는 화가 치밀어 올라 준호의 뺨을 마구 후려쳤다.
“빨리 말 안 해? 나는 준후 오빠를 만나야한단 말야!”
순간 준호가 전광석화처럼 아라의 손을 쳤다. 아라가 술수 부 릴 겨를도 없었다. 아라의 손에 들려 있던 조요경이 땅에 떨어져 버렸고, 이내 준호는 희한한 동작으로 아라의 발을 걸었다.
조요경이 아라의 손에서 떨어져 나가고 아라마저 땅에 넘어지 자 고양이와 개는 깨갱거리며 준호의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 틈을 타 준호는 이상한 무예 같은 동작으로 서너 마리의 개 를 걷어찼다. 몇 번 긁히기는 했지만 준호가 쳐서 쫓아내자 개와 고양이들은 거미 새끼처럼 달아났다.
아라는 넘어지는 통에 정신이 조금 아찔했지만 조요경을 얼른 다시 쥐려고 손을 뻗었다. 그러나 간발의 차이로 아라의 손보다 준호의 발이 먼저 조요경을 콱 밟았다.
“너………… 혼 좀나 봐라.”
준호가 말하는 순간, 아라가 준호의 머리를 붙잡고 휙 공중에 던져 버렸다. 준호의 몸이 붕 허공에 뜨면서 땅에 나뒹구는가 싶 었는데, 준호는 이내 또다시 희한한 동작으로 팔을 짚고 스프링 처럼 튀어 올라서 몸을 일으켰다. 아라는 곧 휙휙 소리를 내며 세 번이나 준호의 얼굴을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준호는 유령처 럼 흐물흐물한 동작으로 아라의 발차기를 피했다. 그러나 아라 의 네 번째 발차기가 준호의 뺨을 스치자 뺨이 금방 벌겋게 부어 올랐다.
준호는 뒤로 조금 물러서서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제법이구나, 계집애가.”
아라는 으쓱거리며 폼을 잡았다.
“술수가 없어도 네까짓 건 문제없어. 난 무술 삼단이다.”
준호는 다시 흐늘흐늘 기이한 자세를 취하며 이죽거렸다.
“삼단씩이나 된다니, 여자라고 봐줄 건 없겠군.”
그 말에 아라가 흥하고 코웃음을 치면서 다시 준호에게 덤벼 들려는 순간, 준호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라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재차 돌려차기를 시도했다. 너무도 어이없 이 준호는 그 일격에 간단히 강타당해 저만치에 나가떨어졌다.
“짜식아 내가 그런 얼빵한 수에 속을 것 같아?”
아라는 흥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러고는 뒤로 막 몸을 돌리는 순간, 아라는 자신도 모르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자신의 뒤에 다리가 없는 형체가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것이 아닌가.
준호 또래 정도 되어 보이는 체구가 작은 아이의 모습. 그러나 끔찍한 것은 그 아이의 얼굴이었다. 아이의 얼굴은 눈과 코, 입 이 모두 실로 꿰매져 있는 끔찍한 형상이었던 것이다.
“이, 이건…….”
아라는 끔찍하기 짝이 없는 몰골에 기겁을 하며 채 일어나지 못했다. 뒤로 비척거리며 몸을 빼려 했으나 흉악한 망령은 아라 앞으로 서서히 다가왔다. 그제야 기억이 났다. 이 장소는 아이들이 잘 오지 않는 장소, 주석이라는 아이가 자살했다는 장소였다
는 것이. 하지만 자살한 아이의 망령이 어째서 저런 끔찍한 모습 을 하고 있는 것일까?
망령은 온통 꿰맨 얼굴을 아라의 코앞에까지 들이밀었다. 아 라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려는 찰나, 누군가가 뒤 에서 아라의 입을 덥석 틀어막았다.
아라는 소리를 지르려고 했으나 입을 틀어막은 손의 힘이 너 무 완강하여 그 어떤 소리도 밖으로 내지 못했다. 자신의 입을 틀어막은 것은 준호가 틀림없었다. 이 녀석이 왜 이러는 것일까? 얼굴 전체가 잔뜩 꿰매진 흉측한 망령이 서서히 아라의 앞쪽 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라는 무서웠다. 발버둥을 치며 몸을 빼 려 했지만 그마저도 잘되지 않았다. 준호라는 이 망할 자식을 가 만두지 않을 거야. 그때 아라의 눈에 저만치 쓰러져 있는 준호가 보였다.
‘그럼 ・・・・・・ 그럼 이건 누구……………?’
아라는 눈앞에 있는 망령의 존재도 잊어버릴 정도로 놀랐다. 순간 자신의 입을 막은 자가 다른 손으로 아라의 손을 탁 쳤다. 조요경이 땅에 떨어졌고, 그와 동시에 망령의 모습이 아라의 눈 앞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망령이 보이지 않게 되니 아라는 더 겁이 났다. 차라리 보이면 도망이라도 치겠지만, 보이지 않으면 망령이 자신에게 달라붙었는지 무슨 짓을 하는지 알 수가 없지 않은가!
아라는 조요경 쪽으로 발을 쭉 뻗었다. 조요경은 손에 쥐는 것 이 가장 좋았지만 몸 아무 곳이나 접촉해도 그런 대로 그 안에 내재된 힘을 끌어낼 수는 있었다. 발끝이 조요경에 닿자 아라는 이를 악물며 주변의 것들을 불러 모았다. 닥치는 대로,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그러나 주변의 동물들은 아까 다 불러서 없는 것인지, 발에 닿 은 것만으로는 조요경의 힘을 제대로 이끌어 낼 수 없기 때문인 지 아무 반응도 느껴지지 않았다. 놀란 아라는 기를 쓰면서 자신 의 입을 틀어막은 손을 이로 꽉 깨물었다.
다음 순간, 아라는 몸이 뒤로 붕 뜨면서 젖혀져 날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조요경에서 발이 떨어지자 몸이 갑자기 무엇에 부딪힌 것처럼 철컥 멈춰 세워졌다. 느닷없이 몸이 정지하는 바 람에 유원지의 바이킹을 타는 것처럼 속이 느글거렸다. 입을 막 았던 손이 풀렸다.
아라는 휙 몸을 돌려 입을 틀어막은 손아귀에서 빠져나왔다.
그런데………………
“아앗!”
뒤를 돌아본 순간 아라는 놀라 소리를 쳤다. 그리 크게 지른 소리는 아니었지만.
아라의 뒤에는 키 큰 한 남자가 풀썩 쓰러지는 참이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 제복 같은 것은 입은 얼굴이 붉고 작달만한 중년 남자가 보였다. 그 중년 남자는 손에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학 교수위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아라는 놀라면서도 안도감을 느꼈다. 쓰러진 녀석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자신을 잡아 무엇인가를 하려다가 수위 아저 씨에게 한 방 맞고 쓰러진 것이리라. 수위 아저씨는 아라를 이상 한 눈빛으로 살펴보았다. 아라는 당황하여 벌떡 몸을 일으켜 저 만치 나뒹굴고 있는 조요경 쪽으로 가려 했다. 아까 본 그 기분 나쁜 망령이 나타날까 봐 두려웠지만 지금 상황이 더 난처했다.
“너 누구야! 왜 여기 있는 거야?”
수위가 묻자아라는 막 조요경을 주우려다가 찔끔해서 수위를 바라보았다. 수위는 쓰러진 남자를 끌어다가 저만치에 던지듯 놓고 오는 참이었다. 그 남자는 키가 상당히 크고 날씬했는데 머 리가 마구 헝클어졌고 뒷모습이라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아라는 수위가 몽둥이를 내밀며 위협하듯 묻자 얼버무리려고 아무렇게나 말을 둘러댔다.
“아, 저, 저는 오빠를 만나러 왔거든요. 남자 친구가 아니 고…… 진짜 오빠예요.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누가…….”
수위는 험상궂은 표정으로 아라의 말은 듣지도 않는 듯 주변 을 두리번거리며 살피더니 준호를 발견했다. 수위는 준호를 덥석 잡아 번쩍 들어 올려서는 아까 쓰러진 남자 옆에 털썩 놓았다.
아라는 그 모습을 보고 조금 의아한 생각이 스쳤다. 이 수위는 덩치도 크지 않은데 힘이 어쩜 그렇게 센 것일까? 준호가 아무리 작은 아이라 할지라도 한 손으로 아이를 번쩍 들어 내던지다니. 왠지 아라는 찜찜해서 그만 가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저씨, 저 이만…… 이만 가볼게요.”
“거기서!”
서란다고 설 성격의 아라가 아니었다. 아라는 재빨리 조요경 을 주워서 저만치 달음박질치기 시작했다. 순간 뒤에서 무엇인 가휙 하고 날아오는 것 같은 느낌이 왔다.
섬뜩한 느낌에 얼른 고개를 숙이니 머리칼에 무엇인가가 아슬 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아까 수위가 들고 있던 몽둥이였다. 몽 둥이는 아라의 머리를 스치고 한참이나 더 날아가다가 벽에 부 딪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아라는 너무도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저 몽둥이에 맞았으면 머리가 깨졌을지도 모 른다.
“아저씨, 정말 너무하네! 맞았으면 어쩔 뻔했어요!”
아라는 자신도 모르게 성질이 치밀어 버럭 소리쳤다. 망령이 고 무서움이고 한번 치밀어 오르니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러면서 뒤를 돌아보는 순간, 아라는 자신도 모르게 헉 하며 신음 소리를 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분명 아까의 수위였다. 그러나 그에 겹쳐져 뭔가 이상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수위의 얼굴에 다른 두 사람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누구인지 알아보기는 어려웠지만 마치 유 령처럼, 필름이 겹쳐진 것처럼 수위의 원래 얼굴까지 세 사람의 얼굴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정상적인 모습이 결코 아니었다.
그 수위가 몽둥이를 집어 들더니 성큼 아라 앞으로 다가왔다. 아라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수위의 얼굴, 아 니 세 명의 얼굴이 동시에 물었다.
“너 ・・・・・・ 뭘 봤지?”
“아저씨……………. 왜 그래요? 아무것도・・・・・・ 아무것도 못 봤어 요…….”
“거짓말!”
아라는 손에 꽉 쥐고 있던 조요경에서 빛이 솟아 나오는 것을 느꼈다. 조요경이 이 정도의 반응을 보이는 것은 심상치 않은 일 이다. 무섭도록 큰 영력이 근방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어디에? 바로 저 수위의 몸에 무언가가 깃들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아라는 뒤로 물러서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라의 등이 벽 에 닿았다. 수위가 다짜고짜 몽둥이를 크게 휘두르며 달려들었 다. 무섭도록 빠른 속도였다. 아라는 합기도가 삼단이었고 수위 의 몽둥이를 눈이 빠지도록 주시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피하지 못할 뻔했다.
아라가 몸을 아래로 재빨리 숙이자마자 몽둥이는 아라의 어깨를 스치면서 벽에 맞고 부러져 튀어 올라 아라의 귀를 치고 저쪽 으로 날아갔다. 아라는 몸을 숙이면서 수위의 다리를 걸었다. 아 라는 합기도 외에 쿵후 도장에도 다니고 있었는데, 이것은 ‘지당 공부(地堂功夫)’라고 하는 남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는 수법이었 다. 아라의 발이 수위의 발목을 정통으로 가격했으나 수위는 비 틀거리지도 않았고 눈도 한 번 끔뻑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수위의 발목을 친 아라의 발목에 찡 하는 아픔이 왔을 뿐이다. 마치 나뭇등걸이나 전봇대를 찬 것 같았다. 아라가 너무 도 아파서 눈물을 찔끔거리는 사이 수위가 재빨리 손을 뻗어 아 라의 발목을 잡았는가 싶더니 놀랍게도 그대로 아라의 몸을 거 꾸로 들어 올렸다.
“으악! 이거 놔! 이 치한!”
치마가 뒤집혀 아라가 마구 소리를 지르자 수위는 인정사정없 이 아라의 옆구리를 대차게 걷어찼다. 아라는 숨이 막혀서 소리 도 지르지 못했다. 대뜸 수위가 아라를 종잇조각처럼 휙 내팽개 쳤다. 무서운 힘이었다.
아라는 끽 소리도 못하고 준호와 또 한 남자의 위에 엎어질 수 밖에 없었다.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아라는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