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말세편 3권 8화 – 두 사람의 기적 3 : 주교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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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말세편 3권 8화 – 두 사람의 기적 3 : 주교와의 만남


주교와의 만남

프란체스코 주교는 앉은 채 세 명의 일행을 미소로 맞이했다. 그는 이마의 핏자국은 닦아 냈지만 손에는 여전히 성흔에서 생 긴 핏자국이 번져 있었다. 그 옆에는 아우구스티노 수사가 불안 한 표정을 지으며 조용히 서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프란체스코 주교는 평소와 같이 쾌활한 라틴어 억양으로 그들 에게 앉기를 권했다. 윌리엄스 신부가 그들을 소개했다.

“이쪽은 미스터 박……………. 한국에서 오신 영능력자이시고…………… 그리고 이분은 스웨덴에서 오신 이반 교수, 흡혈귀학의 전문가 십니다. 그리고 저는 영국 성공회의 윌리엄스 신부라고 합니다.” 윌리엄스 신부는 이미 파문당한 박 신부의 정체를 밝히면 공 연히 껄끄러워질까 봐 그냥 미스터 박이라고만 소개했다. 이곳 정도라면 과거의 떠들썩했던 사건을 알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에.

그들이 접대용 소파에 앉자 프란체스코 주교도 나와서 그들의 앞에 앉았고 루카 수사와 아우구스티노 수사, 그리고 가브리엘 수사는 그 뒤에 조용히 섰다.

아우구스티노 수사가 물었다.

“지금 밖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죠? 당신들은 마녀 협회와 무슨 관계에 있는 겁니까?”

이반 교수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마녀 협회는 좋은 자들이 아니지요. 물론 그들이 좋은 의도를 가지고 온 것도 아닐 거구요.”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성격이 솔직하고 담백했지만 말재주는 형편없었다. 그래서 루카 수사가 대신 나섰다.

“바깥에 있는 자들을 물리쳐 주셨는데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그런데.”

루카 수사는 살진 얼굴에 미소를 지으면서도 의외로 날카로운 질문을 퍼부었다.

“그런데 그들이 쳐들어온다는 것을 미리 아신 겁니까, 아니면우연입니까?”

윌리엄스 신부가 말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여기를 방문하고자 했을 때는 분명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의 연락 을 받았습니다. 마녀 협회가 이쪽을 습격하려 한다는 기미가 보인다고요. 저희는 가톨릭 신앙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런 일을 알고도 그냥 두고 넘기기는 좀 그렇고 해서 가급적 돕기 위해 날짜를 맞추어 미리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마녀 협회의 움직임은 극도의 비밀일 텐데, 어떻게 아셨나요?” 

“우리 친구 중의 한 명이 마녀 협회 출신입니다. 아, 물론 지 금 마녀 협회가 저 모양이 되기 전, 그러니까 협회가 백마녀 ( 魔)의 성격을 지녔을 때의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지금의 마녀 협회 우두머리가 등장했을 때 그녀를 저지하려다가 하마터면 죽 을 뻔했죠. 하지만 아직도 암암리에 마녀 협회의 소식을 들을 수 있는 모양입니다.”

윌리엄스 신부는 여기까지 말하고 잠시 고개를 저어 보이다가 말을 이었다.

“제 라틴어 실력이 모자라서 좀 힘들군요. 그렇다고 이탈리아 어를 아는 것도 아니고…………… 혹시 영어 하실 수 있습니까?” 

라틴어는 윌리엄스 신부나 박 신부 모두 약간씩 할 수 있었지 만 라틴어 문장을 읽는 정도라면 몰라도 이런 특수한 주제의 회 화까지 능수능란하게 하기엔 조금 문제가 있었다. 바티칸은 비 록 그 자체가 국가여도 이탈리아 내에 있었지만 그들 중 누구도 이탈리아어를 할 줄 몰랐다.

다행히 아우구스티노 수사와 주교는 둘 다 고개를 끄덕였다. 루카 수사와 가브리엘 수사는 이미 대화를 나눈 바 있어서 그냥 잠자코 있었다. 그때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주교의 얼굴에 아직도 온화한 미소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았다. 주교는 이들이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다행이군요. 어릴 때 배운 라틴어로 말을 하자니 힘들어서.” 

일단 언어 소통이 쉬워졌는데도 박 신부는 조용히 앉은 채 입 을 열려 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이상하게도 몹시 심각한 표정 이었으며, 프란체스코 주교를 조용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박 신부님은 아무래도 파문당한 게 신경 쓰이나 보다. 여기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통 입을 열지 않으시는데.’

윌리엄스 신부는 박 신부의 눈치를 살피다가 말을 꺼냈다. 

“저희는 결코 여러분께 악의를 가지고 온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한 가지 청을 드릴 게 있어서 온 것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프란체스코 주교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윌리엄스 신부가 눈을 크게 떴다.

“예? 알고 계신다고요?”

“알고 있습니다. 저희에게 빌리고 싶은 물건이 있으신 것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아주 오래된 물건이겠군요. 그리고 그 물건은 여러 개로 나누어진 것인데, 우리는 그중의 상당수를 지니고 있고요.”

“맞습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밖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온 것이겠지요. 탐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물건이 탐나는 게 아닙니다. 좌우간…………… 어떻게 아셨습니까?”

프란체스코 주교는 자신의 양손을 내보였다. 성흔이 있는 손 을 윌리엄스 신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건 ・・・・・・ 성흔 아닙니까?”

주교가 담담히 웃자 윌리엄스 신부는 재빨리 경의를 표하고 고개를 숙였다. 이반 교수도 깜짝 놀라 고개를 꾸벅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박 신부는 눈을 감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치 무슨 생각에 깊이 빠졌다거나 선 채로 잠든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윌리엄스 신부나 이반 교수는 박 신부에게 무어라고 하 지 않았다.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마음속으로 짚이는 것이 있는데다 기적 을 무시하는 듯한 박 신부의 행동이 무례해서 화를 낼 뻔했지만 일단 억눌러 참았다. 루카 수사는 무표정한 얼굴이었고, 가브리 엘 수사는 화를 내기보다는 당혹해했다.

주교는 여전히 조용한 태도로 성호를 한 번 긋고 합장을 한 다음 담담하게 말했다.

“말씀이 계셨습니다. 뜻하지 않은 손님들이 오실 것이라고 저는 지금 우리가 만난 이 순간을 이미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말씀도……………..

“주교님!”

아우구스티노 수사가 뭔가 의혹이 있는 듯한 얼굴로 주교에게 속삭였으나 주교는 잠시 가만있으라는 듯한 손짓을 해 보였다. 그러자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곧 입을 다물었다. “당신들은 그것이 무엇 때문에 필요합니까?” 주교가 묻자 윌리엄스 신부가 곧 대답했다.

“우리도 그 내용을 알고 싶어서입니다.”

“그것이 무엇에 대해 언급한 것인지 아십니까?”

“정확히는 모릅니다. 다만…………….”

갑자기 주교는 물이 흐르는 것처럼 도도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것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미래의 예 언, 말세의 때에 벌어질 일에 대해 기록하고 있지요. 그 예언은 유대교의 사제들이 최초로 기록한 것이었으며,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침공했을 때 탈취당했습니다. 그러다 이후 점토판에기록된 것입니다. 그리고…………….”

주교는 잠시 말을 끊고 책상에서 가죽 가방 하나를 꺼내 그들 의 앞에 놓았다.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조금 의아했다. 그 점토판 은 아까 세 명의 가디언에게 주어 사방으로 흩어 놓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여기 이것은 가짜란 말인가?

“이것은 일곱 개가 모여야만 해독이 가능합니다. 부분적인 몇 개를 가지고서는 해독할 수가 없어요. 나도 이미 수차례에 걸쳐 학자들과 논의를 해 보았지만 이 일곱 개의 점토판은 연속된 문 장을 기록하고 있지 않으며, 일곱 개의 점토판에 문자를 하나씩 번갈아 기록하는 방법으로 되어 있어서 일곱 개 전부가 모이지 않으면 해석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주교는 그중 한 개의 점토판을 내보이며 말을 이었다. “이것이 맨 윗부분의 조각입니다. 여기에는 단 한 줄 해석할 수 있는 글이 씌어 있습니다. 이것의 내용 때문에 모두가 그 난리를 치는 거겠죠.”

윌리엄스 신부는 조금 망설여졌다. 사실 그들은 그 내용에 대 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악마에게서 그것을 얻으라는 권 고를 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윌리엄스 신부가 잠자코 있자 주교는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이 점토판은….. 소위 말세에 나타날 어떤 사람의 출생에 대한 비밀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실 테죠? 아직 태 어나지는 않았지만 그때가 임박했다고 믿습니다. 그 사람은 말 세와 아주 직접적인 연관이 있죠. 우리는 그 사람을 적그리스도 라고 부릅니다만……………..”


* ‘네부카드네자르’로도 읽으며, 성서에는 느부갓네살로 나온다. 신바빌로니아 (칼데아 제국)의 왕으로, B.C. 605~B.C. 562년까지 재위 성서에 나오는 느부 갓네살은 2세다. 칼데아 왕조의 왕 중 가장 위대한 왕으로 알려져 있으며, 뛰어 난 군사지도자였다. 시리아를 비롯해 유대, 팔레스타인 등과 전쟁을 벌여 많은 곳을 점령했으며,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공중 정원을 건조하게 했다는 전설을 남긴 왕이기도 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는 유대를 공격해 점령했으나 유대 역사에서는 대단히 호의적인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예레미야는 그를 신이 임명한 대행자로 보고 복종할 것을 주장했으며, 예언자 에 제키엘도 비슷한 평가를 했다. 그러나 다니엘서와 외경에는 악의 참소를 받아 들여 속아 넘어가지만 결국에는 진리를 찾는 사람으로 그리다가 후일에 가서는 완전히 바뀌어 신을 믿지 않는 무지막지하고 포악한 점령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고 기록되어 있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으로 유명한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에 나오는 전제자 나부코가 이 느부갓네살을 가리키며, 윌리엄 블레이크도 그를 미친 사람으로 묘사한 그림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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