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말세편 3권 9화 – 두 사람의 기적 4 : 적그리스도

랜덤 이미지

퇴마록 말세편 3권 9화 – 두 사람의 기적 4 : 적그리스도


적그리스도

윌리엄스 신부나 이반 교수는 겉으로는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몹시 놀랐다. 현암에게 악마가 나타나 그 점토판을 얻 어야 한다고 악을 썼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점토판이 그 정 도로 직접적인 단서라고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주교는 담담히 말을 계속했다.

“자, 모두 이것을 얻으려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죠.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우리 같은 경우는 어떻게든 적그리스도의 탄생을 저지할 생각으로 이것을 모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 녀 협회 같은 곳에서는 적그리스도의 탄생을 이루기 위해 그것 을 얻으려는 걸 테죠.”

윌리엄스 신부는 자기도 모르게 땀을 흘렸다. 물론 자신들은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적그리스도 또는 징벌자라 부르는 사람의 탄생을 막으면 안 된다고 믿고 있었다.

그렇다면 의도는 같으면서도 이 사람들과 반대의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이니 지금 당장 주교가 질문을 한다면 대답하기가 곤란 했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들을 설득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지 않 았고.

주교는 살짝 말꼬리를 돌렸다. 그는 마치 연극배우가 관객에 게 방백을 하듯이 말했다.

“당신들은…… 무엇을 바라는 걸까요? 우리를 도와주신 건 고맙지만 왜 그러셨을까요?”

주교는 반짝이는 눈으로 세 사람과 아우구스티노 수사까지 돌 아보더니 덧붙였다.

“아우구스티노 수사님, 말씀해 주십시오. 오로지 사실만을.”

“예.”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긴장하며 대답했다. 주교는 아마도 이자들 앞에서 직접 말하게 하기 위해 자신을 남아 있으라고 한 것 같았다.

“수사님은 근래 몹시 애를 써서 이 세 개의 점토판 외에 다른 한 개의 점토판을 얻었습니다. 그렇지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곧 잃어버리게 되었지요? 어디서죠?”

“한국에서…………였습니다.”

“누가 그것을 가져갔지요?”

“한 젊은이였습니다. 악마의 힘을 업은, 아니 악마를 조종할 수 있는 엄청난 능력자였습니다.”

그 말을 듣자 윌리엄스 신부와 이반 교수의 안색이 조금 변했 다. 그들은 박 신부와 합류해 대화를 나누면서, 현암이 점토판 하나를 블랙 엔젤의 도움으로 얻기는 했지만 그 때문에 수사의 오해를 사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수사가 이 사람이란 말인 가? 뭔가 일이 꼬이는 것 같다고 생각한 두 사람은 박 신부가 어 떻게 대처할지 궁금했지만 박 신부는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주교가 다시 말했다.

“그 젊은이의 이름을 수사님은 아시나요?”

“모릅니다.”

“저는 압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이현암. 과거 퇴마사라는 이 름으로 행동했던 네 사람의 멤버 중 한 사람입니다. 한때 사방을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모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죠. 그리고 내 추측이 틀리지 않는다면.”

주교는 온화한 표정으로 박 신부를 바라보았다.

“이분은 그중의 한 명인 박윤규 씨일 겁니다. 한때 사제의 길 을 걷다가 파문당했지요. 그때의 기록도 찾아보았고, 그 외에도 많은 사항을 알고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몹시 놀랐다. 언제 프란체스코 주교가 거기까지 조사를 했을까?

“그 사람들이 모두 살아 있다고요? 주교님은 그것을 어떻게….”

주교는 웃으며 작은 소리로 짧게 말했다.

“아녜스 수녀와 루카 수사.”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이제야 짐작이 갔다. 루카 수사는 천리 안을 지닌 가디언이며, 아녜스 수녀는 비록 여자이지만 그녀의 능력이야말로 세븐 가디언 중에서도 발군의 것이었다. 아니, 아 무리 현대라고 해도 남자를 중심으로 하는 가톨릭 교단의 구조 상 여자가 세븐 가디언에 발탁될 정도라면 그 힘에 상당히 무서 운 면모가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녀의 능력은 무서우리만치 다양하고 특이했다. 그녀의 가장 놀라운 능력은 원소를 조종하는 힘이었다. 특히 불과 전기를 조 종하는 힘은 가히 경천동지할 것이었으며, 가디언의 우두머리인 베드로 수사도 아녜스 수녀와 싸운다면 십 초도 버텨 낼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아녜스 수녀는 고집이 몹시 세고 성격이 괴팍하기 이 를 데 없는 여자라 자신의 그런 힘을 마술적이라 보고 자신의 신 앙과 위배된다고 여겨 늘 스스로를 괴롭혔으며 힘을 사용하는 것을 극도로 혐오했다.

그 힘을 제외하고도 그녀는 또 특이한 능력이 있었다. 독심술 이었다. 주교는 세븐 가디언의 다른 사람들을 활발하게 지휘하 면서도 아녜스 수녀에게 일을 시킨 적이 거의 없었는데, 이번에 는 그녀에게 특별히 지시한 것 같았다.

아녜스 수녀는 맡겨진 일을 하려면 힘을 써야 했는데, 힘을 쓰고 난 후 그 속죄를 위해 정말 죽음을 불사한 무서운 고행을 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세븐 가디언 내에서조차 웬만해서는 아녜스 수녀에게 일을 맡기지 않았다. 물론 이번 일 이 심각한 것인 줄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단 말 인가?

아우구스티노 수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주교는 말 을 이어 나갔다.

“나는 오래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 했어요. 아구구스티노 수사님, 솔직하게, 정확하게 말씀해 주세 요. 수사님이 이야기해 주셨던 일들이 모두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여기 이분들을 믿어야 할까요, 아니면 믿지 말아야할까요? 수사님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그・・・・・・ 그건……..”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곧 마음을 정했다. 

“믿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을 듣고 윌리엄스 신부와 이반 교수는 안색이 변했다. 그 때 박 신부는 감고 있던 눈을 조용히 떴다. 그 순간 모두 깜짝 놀 랐다. 박 신부의 이마에 혈흔이 비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프란체스코 주교의 성흔과 너무도 흡사해 보였다.

이반 교수는 몹시 놀랐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윌리엄스 신부는 몇 마디를 중얼거렸다.

“오 주여, 한 장소에서 두 번씩이나…………”

박신부에게 나타난 성흔을 보자 주교도 안색이 조금 변했다. 주교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미스터 박?”

프란체스코 주교는 파문당한 박 신부를 신부라 부를 수 없었 으므로 그냥 일반적인 호칭을 썼다. 주교가 말하자 박 신부는 주교와 비슷한 잔잔한 미소를 띠어 보이며 대답했다.

“왜 그러십니까?”

“손을 좀.”

주교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자신이 먼저 성흔이 나 있는 양 손바닥을 펴 보였다. 박 신부도 곧 손을 천천히 펴 보였다. 놀랍 게도 박 신부의 손에도 프란체스코 주교와 같은 성흔이 나 있었 다. 다만 박 신부의 성흔은 새로 난 것이라 선혈이 흘렀고, 프란 체스코 주교의 성흔은 이제 자국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것을 본 주교가 천천히 말했다.

“나는 조금 전까지 어떻게 할 것인지 작정하고 있었어요. 그러 나 지금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주・・・・・・ 주교님……………”

그 말을 듣고 이반 교수와 윌리엄스 신부는 눈을 빛내며 서로 의 얼굴을 보았다. 주교는 깊은 한숨을 쉬며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협조할 수 없습니다. 아아……………. 당신들은 정말 너무하 군요. 기적까지도 가짜로 만들어 내다뇨.”

이 말에 이반 교수나 윌리엄스 신부는 물론 아우구스티노 수사까지 깜짝 놀랐다.

“기적을 만들다니요? 그게 무슨.”

주교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나의 이 성흔, 그리고 미스터 박의 성흔, 모두 가짜입니다. 영 능력으로 만들어 낸 것일 뿐 어떤 성스러움도, 어떤 축복도 그 안에는 없습니다. 아아, 주여.”

말과 함께 주교는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가죽 가방을 들어 책상 옆의 쓰레기통에 넣었다. 이반 교수가 어깨를 조금 움찔했으나 그 행동을 막지는 않았다. 그런데 쓰레기통에는 내부에 복잡 한 장치가 되어 있는 듯, 가죽 가방이 들어가자 곧 기계 돌아가 는 소리와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반 교수는 깜짝 놀라 급히 쓰레기통의 뚜껑을 열어 보았다. 쓰레기통은 겉으로 보기에 보통의 용기 같았지만 실은 바닥 아 래 깊이 장치된 기계와 연결되는 통로로, 무엇이든 들어가면 분 쇄해 없애 버리는 기계의 입구였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걸…………!”

주교가 천천히 말했다.

“우리는 당신들을 이겨 낼 수 없어요. 그러니 이러는 편이 나 을 것입니다. 이제 마음대로 하십시오.”

세븐 가디언들은 지금 주교가 분쇄한 것이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주교의 마음을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었다.

“주교님.”

박 신부는 주교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주교님, 주교님은 틀리셨습니다.”

“나는 틀리지 않았어요. 나에게 일어난 기적은 가짜였습니다.

현상은 그럴듯했지만 성스러움이 없었어요. 나는 특별한 능력이 없지만 그런 것은 느낄 수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수사가 오히려 다른 사람보다 더 놀라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 주교는 아우구스티노 수사에게 설명하듯 계속 말을 이었다.

“나는 이단심판관입니다. 아울러 기적을 심사하는 위원회에 도 다년간 참가했죠. 이보다 더한 거짓 기적과 징조를 많이 봐 왔습니다. 내 몸에 일어난 일이라고 그런 것을 구별 못할 정도로 제가 무디지는 않지요. 제게 일어난 기적이 가짜라면 제게 들린 말씀도 가짜겠지요. 제가 알고 있는 당신의 능력을 반만 발휘한 다면 이 정도 기적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었을 겁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당신은 너무 자신의 지식을 과신하는 것이 아닙니까?”

윌리엄스 신부가 날카로운 어조로 따지고 들었다. 그러자 박신부가 말했다.

“주교님의 말은 맞습니다. 단 절반만.”

“무슨 말인가요?”

주교가 되묻자 박 신부가 천천히 말했다.

“주교님에게 일어난 성흔은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그러나.” 

주교는 크게 웃었다.

“그러면 당신이 주께서 선택하신 사람이란 말인가요? 오, 주 여. 사람의 혈행을 초능력이나 하찮은 최면술로라도 조종하여 상처를 나게 하고, 피가 흐르게 하는 것 정도는 당신의 능력으로 볼 때 쉬운 일일 겁니다. 자기 최면이나 영능력, 초능력으로 엉터리 기적을 일으키는 사례를 나는 몇십 년 동안 몇백 건이나 봐 왔어요. 그러나 그만큼 불경스럽고 용서받지 못할 죄는 드문 겁니다.”

“당신의 그 성흔은 내가 한 짓이 아닙니다.”

“오, 그러면 누가 했나요? 내가 자기 최면에 걸려서 한 건가요? 그때 나에게 속삭인 그 소리는 누구의 것이지요?”

“나도 말씀을 들었습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주교는 비웃듯 되물었다.

“무엇을 들었나요?”

박신부가 엄숙하게 말했다

“제 손에 모든 것을 붙이셨소.”

“당연히 그랬겠죠. 당신 마음대로 하기 위해서.”

주교는 비로소 날카로운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당신의 일파는 악마와 사통하고 일을 꾸미는 자들이오. 자, 말해 봐요. 당신들, 무엇을 바라고 있죠? 그 점토판을 왜 찾으려 는 거죠? 당신들과 마녀 협회가 다르다고 어떻게 증명할 수 있소?”

“우리는 악마와 사통하지 않소.”

“그럼 여기 아우구스티노 수사가 한국에서 만난 그 젊은이가 이현암이 아닌가요?”

“이현암 맞소.”

“그렇다면 당신은 그 청년과 같은 편이 아니란 말이오?”

“우리는 서로를 믿소.”

“그러면서 나에게 점토판을 내놓으라는 건가요?”

그때 이반 교수는 화가 난 듯이 끼어들었다.

“분명 그 점토판은 가짜일 겁니다. 아무리 급해도 그런 것을 그냥 분쇄해 버렸을 리 없어요.”

그러면서 이반 교수는 주교에게 말했다. 이반 교수는 침착한 신 사이지만 한번 화가 나면 아무도 말릴 수 없는 성격이기도 했다. 

“주교님, 당신은 선입관을 지니고 있군요!”

윌리엄스 신부가 손을 저으며 나섰다.

“그때의 모든 일은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오. 원한다면 내가 설 명을 해드리겠소. 내 신앙을 걸고요. 그러니.”

주교가 냉정하게 되받았다.

“성공회의 윌리엄스 신부님, 성공회에서는 모를지 몰라도 나 는 압니다. 흑암의 힘을 몸속에 두고 부리는 사람이 자신의 신앙 을 건다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윌리엄스 신부의 얼굴이 백지장같이 창백해졌다. 그것은 평소 윌리엄스 신부가 수년에 걸쳐 고민하던 문제이기도 했으니까. 이번에도 이반 교수가 화를 냈다.

“흑암의 힘? 이것 보시오. 윌리엄스 신부는 교황청이 아닌 성공회 소속이오! 당신이 함부로 말할 수도 없을뿐더러 그럴 수 있다 해도 그런 식으로 말을 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오!”

“무례해도 말해야겠소. 당신, 사람의 피를 많이 마십니까?” 

주교가 더 날카롭게 이야기하자 이반 교수는 정말 화가 난 듯 책상을 쾅 치면서 외쳤다.

“나는 팔 대째 흡혈귀 퇴치를 숙명으로 안고 살아온 집안의 후 손이오! 내 증조부님, 조부님, 조모님, 어머니와 두 형제와 그들 의 자식까지도 모두 흡혈귀에게 죽었소! 당신 말이 맞다면 내가 어찌 윌리엄스 신부님과 동행을 하겠소? 내 조상들까지 욕되게 하지 마시오! 나는 교인이 아니니 당신에게 거리낄 것도 없단 말이오!”

주교는 차갑게 냉소를 흘릴 뿐 대답하지 않았다. 이반 교수가 흥분하자 박 신부가 이반 교수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흥분은 금물입니다.”

그러나 이반 교수는 다시 한마디를 내뱉었다.

“당신 말대로 우리가 악인이고, 욕심이 앞섰다면 어째서 힘으로 점토판을 빼앗지 않았겠소?”

“글쎄요. 지금은 후회하고 있지 않은가요?”

“그렇다면 왜 우리 동료가 목숨을 걸고 마녀 협회에 맞서고 있겠소!”

“거짓 기적도 만드는 이들이 무엇을 못하겠어요?”

이반 교수는 답답하다는 듯 큰 소리로 외쳤다.

“정말 우리가 점토판에만 관심이 있다면 마녀 협회가 당신들 을 털어 낸 다음에 그들을 덮치는 편이 훨씬 쉬웠을 겁니다! 어 째서 번거로운 일을 하겠소? 그리고 왜 우리가 가진 한 개의 점 토판을 여기 가지고 왔겠소!”

그러자 아우구스티노 수사가 물었다.

“점토판을 가지고 왔다고요?”

“그렇소! 그 점토판은 우리가 얻은 것이 아니었소! 악마가 조 작을 하여 우리 손에 들어온 것뿐이오! 우리는 그것을 돌려주고, 당신들이 얻은 점토판들과 내용을 공유하자고 생각했소! 그런 데………… 그런데 이토록 앞뒤가 꽉 막힌 성직자라니. 원!”

박 신부는 이반 교수를 보고 고개를 한 번 저은 다음 품에서 가죽 가방을 꺼냈다. 그것은 바로 아우구스티노 수사가 한국에 서 잃어버린 것임이 분명했다. 아우구스티노는 영력이 뛰어났 고, 사이코메트리*의 아주 약한 힘을 기도력으로 얻고 있었다. 더글러스 탐정만큼 확실한 힘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것이 진품 이라는 것은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을 보고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 어떤 물체를 만지거나주시함으로써 그 물체 주변에 있었던 과거의 일 등을 읽 어 낼 수 있는 초능력이다. 투시력의 일종이나 매개가 필요하다는 점과 과거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투시력과 다르다.


‘정말 오해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정말 이들이 점토판에만 욕 심이 있다면 왜 이것을 굳이 가지고 왔단 말인가? 이걸 미끼로 쓴다 해도 이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이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이건 좀・・・・・・ 좀 이상하다……………..’

그때 박 신부가 창밖을 힐끗 보고 난 다음 말했다.

“주교님, 밖에서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니 이야기를 좀 빨리 진행하겠습니다.”

루카 수사는 의심스러운 눈길로 박 신부를 쳐다보았다. 적어 도 자신의 감각 능력만큼은 따를 자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로 서는 아무런 기척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편,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몹시 긴장하고 있었다. 전에 자신 이 만났던 그 젊은이가 퇴마사라 불리는 이단자들이었다니. 만 약 이들이 태도를 돌변하여 습격한다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 는 비록 박 신부의 능력을 직접 보지 못했으나 어렴풋이 느끼고 는 있었다.

‘전에 봤던 그 젊은이 한 명만 해도 세븐 가디언 전부를 대 적할 만하다. 더구나 이 노인도 그에 못지않을 것 아닌가? 물 론 아녜스 수녀가 전력을 다해 준다면 간신히 이길 수도 있겠지 만…………. 여기 있는 다른 두 노인도 기이한 사람들이니 이 둘만 더해져도 힘겨워진다.

아이구! 이들이 정말 퇴마사라는 자들이라면 혹시 전에 키건과 차이나 마피아 수십 명을 한 번에 해치웠다던 그 여자도 한편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들만으로는 상대도 되지 않는다. 교황 청경비대 전부를 불러도……………’

사실 승희는 키건 한 사람도 간신히 상대할 정도였고, 성난큰 곰의 보이지 않는 도움을 받고 기지를 발휘해서야 그들을 물리 칠 수 있었으나 소문은 으레 부풀려지는 법이었다. 아무튼 그렇 게 생각하자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더더욱 이들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우리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을 텐데. 그런데 무엇하러 이토록 점잖게 나온단 말인가. 정말로 마녀 협회가 우 리를 습격하게 두고 그다음에 점토판을 찾으면 손쉬웠을 게 아 닌가. 설마 이들이 정말 우리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아이구머리가 아프다!’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영능력이 강하고 신앙심이 독실하지만 성격이 급하고 머리가 그렇게 잘 돌아가는 편이 아니라 도저히 주교의 마음과 여기 있는 자들의 정체를 파악할 수 없었다. 루카 수사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고, 가브리엘 수사는 아우 구스티노 수사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듯했다.

아우구스티노 수사가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에도 박 신부는 계속 말했다.

“어찌 되었든 이것은 세븐 가디언이 찾은 것이니 돌려드리겠습니다. 물론 우리도 사본은 만들어 두었습니다만. 그리고 나머지 세 개의 점토판에 대해서도 더 이상 뭐라 드릴 말씀은 없군요. 허나.”

그러면서 박 신부는 조용히 양팔을 벌려 아우구스티노 수사와 프란체스코 주교에게 내밀어 보였다.

“저에게 내린 계시는 정말이라 믿습니다. 성스러움이 없다 하셨는데 확인해 보십시오.”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조금 머뭇거렸으나 주교는 눈 하나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궁금증이 일어 선 혈이 흐르는 박 신부의 손가락을 슬쩍 만져 보았다. 그 순간 아 우구스티노 수사는 느낄 수 있었다. 최소한 영력을 지니고 신앙 심이 독실한 사람이니 그 기운이 절대 사악하거나 어두운 기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만은 단언할 수 있었다. 아우 구스티노 수사는 고지식한 사람이라 현암의 공력이나 준후의 주 술이라면 삿된 것이라 여길 수도 있었겠지만 박 신부의 기도력 만큼은 자신의 영력과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곧 루카 수사가 급히 아우구스티노 수사를 뒤로 살짝 밀어 손 은 금방 떨어졌다.

“아아, 아멘. 주교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놀랍고도 반가워서 무심코 주교의 손을 잡았다. 그런데 주교의 손에서 느껴지는 느낌은 박 신부의 것과 전혀 달랐다. 밝고 거룩한 척하기는 했으나 어딘가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느낌. 딱딱하고 어두운 느낌이 있었다.

사실 세븐 가디언 모두가 주교의 기적을 직접 보기는 했지만 그냥 보기만 했을 뿐 누구도 직접 확인해 보진 못했다. 감히 그 러지 못했고, 그럴 틈도 없었다. 그러나 그 기적이 분명 거짓이 라는 것이 느껴지자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화들짝 놀라면서 손을 떼었다.

그때 주교의 차가운 눈초리가 수사를 향했다.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깜짝 놀라 말했다.

“주・・・・・・ 주교님, 이건・・・・・・ 이것은……….!”

“아우구스티노 수사, 이들의 힘은 정녕 놀라워요. 이들에게 불 가능은 없을 겁니다. 오감을 과신하지 마세요.”

주교의 목소리는 퍽 차분했고,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그 말 을 듣자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정말 어떻게 된 것인지 분간할 수 없어서 당황한 나머지 얼굴이 다 붉어지고 말았다.

박신부는 그대로 있다가 조용히 주교를 향해 말했다.

“주교님, 우리는 점토판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결코 주교님과 다투거나 주교님을 속일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주교는 싸늘하게 되받았다.

“당신이 점토판을 빼앗고 싶다면 빼앗아 보시오. 그러나 나는 당신들이 옳다고 믿지 않소. 절대로!”

“나는 절대 이런 거짓 기적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아니면 누가 했단 말이오?”

그때 이반 교수가 소리쳤다.

“그 거짓 기적은 분명 악마가 만든 것이오!”

“그렇군요. 악마와도 통하는 데가 있으시다는 것을 압니다.” 

주교가 냉랭하게 말하자 이반 교수는 말문이 막혔다. 주교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반 교수는 너 무도 억울해 다시 한번 호소했다.

“그 악마는 우리를 돕는다고 하면서 온갖 짓을 하고 돌아다닙 니다! 그러나 우리는 넘어간 적이 한 번도 없소! 주교님, 속지 마 시오! 이건 입니다! 우리를 오해에 빠뜨리려는…………!” 

“그러면 나는 악마의 간계에 놀아나는 주교란 겁니까?” 

주교가 싸늘하게 말하자 이반 교수도 그에 지지 않을 만큼 싸 늘한 어조로 말했다.

“자고로, 성직자들이라고 유혹당하지 않는 것은 아니오. 성 직자들이야말로 더 유혹이 크고, 더 많은 시련과 자성을 거쳐야 만………….”

“그만!”

주교는 크게 고함을 쳤다.

“당신들이 원한다면 점토판의 가루라도 뒤져 내든지, 나를 죽이든지, 포로로 잡아가든지 마음대로 하시오! 하지만 더 이상 떠들어 대지는 마시오!”

그 순간 박 신부의 온화하던 표정이 어두워졌다.

“당신은・・・・・・ 당신은 무엇을 생각합니까? 당신은 무엇을 바라고 있죠?”

주교는 대답하지 않았으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그리고 그 땀방울은 피와 섞여 마치 아까의 거짓 성혈처럼 붉은색을 띠 고 이마에서 흘러내렸다. 박 신부가 말했다.

“당신의 뜻은…………… 교황 성하의 뜻이 아닐 겁니다. 그리고…………… 그리고 ・・・・・・”

그 순간 프란체스코 주교는 여태껏 참고 건드리지 않았던 일 반 경보 스위치를 힘껏 눌러 버렸다. 그다지 크거나 소란스럽지 는 않았지만 건물 전체에 날카로운 경보음이 휩쓸고 지나갔다. 박신부는 깊은 한숨을 쉬고는 주교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저는 제 뜻대로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긍휼 히 여기시기를….”

“점토판은……?”

아우구스티노 수사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자 박 신부는 조 용히 말했다.

“우리는 처음부터 그것을 빼앗으러 온 것도 아니며, 그것에 그 리 큰 미련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나는 주교님을 만나 뵙고 싶었던 겁니다. 그리고 이제는・・・・・・ 되었습니다.”

박 신부는 아주 조용하게 미소까지 빙긋 지어 보이며 가지고 온 점토판을 책상 위에 조용히 올려놓았다. 그러면서 박 신부는 유머러스하게 말했다.

“이것은 원래 아우구스티노 수사님이 얻으셨던 물건입니다. 결코 저희가 빼앗으려 한 것이 아니니 돌려드립니다.”

“복사본을 만들어 두셨을 텐데?”

주교가 말하자 박 신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원래는 만에 하나를 대비한 것이었습니다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군요.”

그러고 난 후 박 신부는 조용히 돌아섰다.

“그럼 이만…………… 주께서 당신과 함께하시기를…………….”

주교는 여전히 냉랭하게 되받았다.

“당신이 지옥 불에 타는 모습을 보지 않게 된다면 좋겠소.”

그 말을 듣자 이반 교수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당신이 지옥 불 옆에 가게 되어도 볼 수 없을 거요. 이분은 그 곳에 계시지 않을 테니.”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긴장하여 오라를 끌어 올렸지만 세 사람은 조용히 썰물같이 방에서 빠져나갔다.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 고, 더 이상의 어떤 짓도 하지 않은 채.

루카 수사가 외쳤다.

“다시 만나게 되겠군요!”

윌리엄스 신부가 정말 슬픈 목소리로 대답했다.

“슬픈 만남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멘….. “

그리고 그들은 조용히 계단을 내려가 사라졌다. 아우구스티노 수사가 얻었던 점토판을 남겨둔 채,

루카 수사나 가브리엘 수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루카 수 사는 가브리엘 수사에게 눈짓으로 그들의 뒤를 따라가 보라는 시늉을 했고, 가브리엘 수사는 곧 모습을 감추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아까 손이 닿았을 때 박 신부에 게서 느껴졌던 힘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는 그만 질려 버렸다. 

‘저런 성령의 힘을 가진 사람이…………… 최소한 악마일 리는 없 어. 만약 그렇다면 나도 악마일 거야. 아주 작고 작은 새끼 악마….’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