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세계편 1권 5화 – 비어 있는 관 5 : 한밤중의 수색
한밤중의 수색
“어디냐, 승희야!”
박신부는 답답한 심정으로 차를 몰면서 승희를 독촉했다. 그 러나 승희의 마음이 급해지자 오히려 투시가 잘 안 됐다. 할 수 없이 박 신부는 또다시 나타난 갈림길에서 차의 속도를 줄였다.
“이젠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 같네. 차에서 내린 것 같아요.”
승희가 눈을 감은 채 소리쳤다. 현암이 맡긴 월향검이 승희의 품속에서 아련하게 울었다. 박 신부는 한숨을 쉬면서 급한 마음과는 달리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천천히 그 주변을 살펴보렴.”
승희가 정신을 모으자 이제는 휙휙 지나가는 광경이 아닌 일 정한 장소가 투시되었다. 매우 어둡고 상당히 넓었다. 그리고 뭔 가가 있었다. 많이 있었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울부짖는 소리 비슷한 것들이.
승희가 번쩍 눈을 뜨면서 소리를 질렀다.
“부두교! 폐허가 된 공장의 지하예요. 현암 군이 제대로 찾아 들어갔어요. 아아.”
“제대로 찾아갔구나. 하지만 위험할 텐데.”
“소리, 울부짖는 소리들이…………. 부두교의 의식이에요! 위험해 요!”
“서둘러야겠군. 어느 쪽이냐?”
“바닷가. 항구에서 좀 떨어진 바닷가. 문을 닫은 공장 지대예 요. 여기서 약간 떨어져 있어요.”
“가자!”
박 신부의 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앞으로 전진했다. 경찰의 특수 차량이어서인지 성능이 아주 좋았다.
“아이고 이런! 리매야, 리매야!”
같이 밀려 들어온 두 명의 좀비가 서서히 준후에게로 몸을 향 하자 준후는 리매들을 소리쳐 불렀다. 그러나 준후의 목소리는 철문에 반향이 되어 메아리칠 뿐 리매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듯 했다. 주문을 외워 리매의 기운을 다시 불러 모으면 안 될 것도 없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그사이 좀비들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오지 마! 오지 말라구!”
준후는 겁을 주기 위해 양손에 바지직거리는 뇌전과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덩어리를 일으켜 보았으나 오감이 마비된 좀비들은 아무 생각도 없는 멍한 눈으로 준후에게 서서히 다가섰다. 그나 마 다행이라면 좀비들이 들고 있던 쇠 파이프를 놓친 것 정도라 고 할까? 준후는 계속 좀비들을 노려보면서 뒤로 물러섰으나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몸이 벽에 닿았다. 그렇다고 해서 넋 을 빼앗긴 좀비들에게 주술의 타격을 줄 수는 없었다. 한 방이면 보내버릴 수 있었지만 만약 그들이 멀쩡한 사람들이라면…………….
‘아아, 이걸 어떻게 하지?’
좀비들이 서서히 다가오며 손을 치켜들었다. 준후의 발치에 쏟아지고 남은 바닷물이 들어 있는 물통이 있었지만 테이프로 입이 봉해진 좀비들에게 바닷물을 끼얹어 봤자 효과도 없을 것 같았다. 준후는 마음을 굳게 먹고 손의 기운을 지웠다. 아무리 급해도 사람에게 주술을 쓴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었다. 준후가 눈을 크게 뜬 순간 한 놈의 좀비가 열 손가락을 뻗으며 와락 달려들었다.
“거기서!”
키 작은 외국 남자를 쫓던 현암은 그자가 비틀거리는 틈을 타 서 허공에 몸을 날렸다. 와장창하고 두 사람은 근처에 쌓여 있던 쓰레기 더미 속으로 파묻혀 버렸고 현암은 놈이 비명을 지르는 것도 아랑곳 않고 재빨리 몸을 일으키면서 오른손에 기공력을 모아 놈의 멱살을 잡고 그대로 들어 올렸다. 기공을 모은 상태에 서는 한 사람의 체중쯤이야 책 한 권 정도의 무게로밖에 느껴지 지 않았다.
“캑캑!”
놈의 몸이 허공에 매달려서 버둥거렸다. 현암은 놈을 그대로 벽에다 밀어붙였다.
“너는 좀비가 아니지? 네가 아는 걸 어서 말해라, 어섯!”
“캑! Oh・・・・・・ I can not speak……”
“우리말로 햇! 나는 무식한 놈이야. 서양 말로 지껄이면 좀 사 나워진단 말이다!”
현암이 놈을 개구리처럼 패대기치자 놈은 부르르르 떨면서 땅 에 뒹굴었다. 조금 가련하기도 했으나 지금 이놈과 말씨름할 틈 이 없었다. 약간 과격한 방법이라도 써야 했다. 또 아까 벌어진 무참한 싸움에 진저리를 치고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있던 참이라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현암이 놈의 덜미를 잡고 쓰레기통에 처박으며 소리를 질렀다.
“한국에 왔으면 한국말을 해야 할 거 아냐, 이놈아! 생각이 안 나? 생각나게 해 줄까?”
현암이 쓰레기 더미에 박혀 말도 하지 못하고 캑캑거리는 남 자를 다시 번쩍 들어 올리자 남자의 겁에 질린 얼굴이 새하얗게 변해갔다.
“아…… 말…… 말하겠습………… 제, 제발…………….”
“진작에 그럴 것이지!”
현암은 분풀이를 하듯 놈을 발밑에 대고 태질을 했다. 놈은 끅끅거리면서 버둥대더니 현암의 다리를 붙잡고 매달렸다.
“살, 살려 주세요. 제발…………..”
“저리 떨어져. 이 더러운 놈!”
현암은 매달리는 놈을 발길질해 버렸다.
“묻는 말에만 대답해. 군소리 지껄이면 나는 점점 화가 난단 말이다! 알았지?”
“저….저….”
“묻는 말에만 대답해!”
현암이 발뒷굽으로 놈의 턱을 차자 놈은 픽 하고 고개를 꺾으며 휘청하다가 벌떡 일어났다.
“예, 예!”
현암은 속으로 참 비겁하고 더러운 놈이라 욕을 하면서 놈에게 물었다.
“여기가 너희 부두교 놈들의 본부쯤 되나? 그런가?”
“예. 그렇습니다!”
“여기에 너희 두목인 호웅간이란 놈이 있나?”
“예? 아, 예!”
“좋다. 지금까지 좀비로 만든 사람이 얼마나 되지?”
“그, 글쎄요……. 대략 백여 명…….”
“죽은 자들만인가? 아니면 산사람도?”
“한 반반쯤……. 자세히는 모, 모릅니다. 정말……………”
현암은 한숨을 내쉬었다. 백여 명・・・・・・ 그것도 생사람을 좀비 로 만든 숫자를 반으로 잡아도 벌써 오십 명이 되는 셈 아닌가.
“죽일 놈들! 방금 몇 명이 잡혀 왔는데 그 사실을 아나?”
“아, 예. 그들은 지하의 의식장으로 갔습니다.”
“좀비로 만들려구?”
“그건・・・・・・ 모릅니다.”
“산사람을 좀비로 만들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지?”
“그, 글쎄요……. 대략 하루 정도….. 저는 잘 모릅니다. 그 광경은 아무도 보지 못하게 되어 있어요. 좀비들과 호웅간님만 빼고는…………….”
일단 현암은 마음을 놓았다. 만약 이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방금 잡혀간 윌리엄스 신부나 요원들이 좀비가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한숨을 내쉬는데 불현듯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아무리 호웅간이라고 하더라도 의식이 없는 기계가 된 좀비 만으로 많은 일을 할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맨 정신으로 놈의 일을 돕는 자가 없을 것이라 분명히 단정할 수 있겠는 가? 이놈을 보면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너 같은 놈들이 얼마나 더 있지? 좀비가 아닌 놈들 말이다!”
“예?”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호웅간 놈의 일을 돕는 맨 정신을 가 진 너 같은 쓰레기들이 얼마나 되느냔 말이다!”
현암이 다시 한번 놈의 가슴팍을 발로 차자 놈은 컥 소리를 내 며 숨이 막혔는지 말을 하지 못했다. 현암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 다. 세상에 이런 흉악한 놈들이 있다니. 좀비가 된 자들은 자기 의 의지대로 한 것이 아니니 동정의 여지가 있지만, 이렇게 맨 정신으로 죽은 자와 산 자들을 희롱하는 잔혹한 일에 가담하는 자들이 더더욱 미워서 참을 수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기공력으 로 한 방 갈겨서 박살을 내 버리고 싶었지만 그래도 산목숨을 해 칠 수는 없기에 심호흡을 길게 하며 성질을 가라앉히려 무던히 애쓰는 중이었다.
“한, 한 십여 명・・・・・・・.”
현암은 무릎을 굽히고 놈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직하게 말했다.
“지금부턴 네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해라. 전부! 만일 한 가지라 도 빼놓거나 속이기라도 한다면 이렇게 될 줄 알아라!”
현암이 반쯤 앉은 자세로 기공력을 모아 옆에 있는 빈 드럼통 을 갈기자 커다란 드럼통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저만치에 있는 벽에 부딪히더니 튕겨져 나왔다. 놈은 경악과 공포의 눈으로 몸 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자, 그럼 시작해! 난 성질이 급하니까!”
남자는 더듬거리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털어놓기 시작했 다. 한국에 온지 꽤 된 듯 말하는 게 제법 유창했다.
입이 막힌 채 이상한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좀비의 공격을 간신히 피했으나 준후가 입고 있는 흰 한복 자락이 주욱 찢겼다. 그러면서도 준후는 재빨리 이놈이 정말 죽은 사람으로 만든 좀 비인지 아닌지를 재빨리 투시해 보았다. 역시 생각한 대로 놈들 은 산 사람들이었다. 주술을 쓸 수 없어 난처해하고 있는 준후에 게 좀비 하나가 재차 덮쳐들었다. 준후는 할 수 없이 뇌전을 약 하게 일으켜서 좀비의 뻗어 오는 손가락에 쏘아 보았으나 그 정 도의 위력으로는 충격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좀비를 막으려 면 강한 뇌전을 쏘아야 하는데, 그러면 크게 다치거나 죽게 될 수도 있었다. 죽은 자를 상대로 한다면 몸은 박살을 내더라도 영 혼은 편히 쉬게 해 주는 것이니 아무 부담 없이 주술을 쓸 수 있 었으나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준후는 할 수 없이 다람쥐처럼 몸을 굴려서 물통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호신령을 불러서 몸을 강하게 보호한 뒤 덮쳐드는 좀비의 손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이를 악문 채 버티고 섰다.
좀비의 손가락은 사정없이 후의 어깨를 꽉 조였다. 영의 기 운으로 어느 정도는 보호받고 있다고 하지만 직접적인 물리력 에 의한 타격은 고통이 그대로 느껴지기 때문에 준후는 아픔에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면서 준후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손을 뻗 어 자신을 움켜쥔 좀비의 입에 붙어 있는 테이프를 힘껏 잡아떼 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좀비의 입에 붙은 것을 떼지 않고서는 달리 이들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캬아아악!”
좀비는 입이 열리자 괴성을 지르며 다른 손을 뻗어 준후의 목 덜미를 힘껏 움켜쥐었다. 목을 잡힌 준후는 자기도 모르게 컥 하 고 소리를 질렀다. 실로 엄청난 힘이었다. 준후는 후들후들 떨면 서 손에 들고 있던 물통을 끌어 올려서 좀비의 입에 끼얹으려 했 다. 그러나 다른 좀비가 준후를 냅다 후려쳐 물통을 땅에 떨어뜨 리고 말았다. 다른 좀비 하나가 준후의 다리를 잡고 엄청난 힘으 로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아아악!”
준후는 급한 나머지 손을 휘두르며 좀비의 얼굴을 밀어내려 했으나 좀비는 끄덕도 하지 않고 목을 졸라 댔다. 더구나 다리 를 잡아당기는 놈은 준후를 산 채로 찢어 버리려는 듯 전신에 힘 을 주고 있었다. 눈앞에 별까지 오락가락했다.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준후는 주술을 쓰기는 싫었다. 주 술만 쓰면 쉽게 벗어날 수 있겠지만 그랬다가는 자신을 평생 용 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죽기는 싫고……………. 손에 흘러내 리는 땀이 아물아물 보이는 순간,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땀, 땀에도 소금이!’
준후는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신의 손을 좀비의 입에 밀어 넣었고 좀비는 무의식중에 입안으로 들어온 손을 있는 힘을 다 해 깨물었다.
현암은 점점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놈이 더듬더듬 털어놓는 이 야기는 두서가 없었지만 대강 정리해 본 바로는 다음과 같았다. 호웅간이 무슨 이유로 한국에 왔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처 음에는 다른 외국인 근로자들처럼 이곳에 취직을 하기 위해 들 어왔다. 이곳은 공장이 아니라 하역과 창고업을 하는 곳으로 종 업원 모두를 싼 외국인 근로자들로 고용하고 있었다. 사장이 악덕 기업주였는지 근로 조건은 형편없었고 근로자들은 쉴 새 없이 노무에 시달렸다. 그사이에 호웅간은 알 수 없는 마약을 퍼뜨 려서 근로자들이 고통을 잊고 일하도록 만들었다. 아마도 좀비 를 만드는 약과 같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처음에는 극소량만을 복용시켰으므로 이성이 모두 마비되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에게 약을 복용한다는 사실이 발각되었다. 그러나 사장 은 그것을 금하기는커녕 오히려 약을 이용하여 노무자들을 착취 할 궁리를 하게 되었다. 호웅간은 그런 사장의 심리를 이용하여 근로자들을 하나둘씩 좀비로 만들어 갔다. 인건비가 전혀 들지 않을뿐더러 호웅간의 명령에 따라 피곤도 느끼지 않고 불만도 없이 일하는 좀비들에게 사장은 매력을 느꼈는지 호웅간을 신임 하여 급기야는 일을 거의 맡기다시피 했다.
“그러면 좀비들을 싸게 부리는 맛에 사장은 호웅간에게 일을 맡겼다는 말인가?”
“우리는 연고도 없고 죽어도 누구 하나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 사장 높은…… 정말…….”
“계속 이야기 해! 딴소리하지 말고!”
급기야 호웅간은 죽은 자들을 이용하여 좀비를 만들 수 있다 고 사장에게 귀띔을 했고, 돈에 눈이 뒤집힌 사장은 근처의 묘지 에 사람들을 보내 죽은 지 얼마 안 되는 시체들을 관째로 파오 기 시작했다. 그러자 호웅간은 이 창고- 현암이 들어온 건물이 업체의 보관 창고였다의 지하에 의식장을 만들어서 그들을 좀비로 만들었고 좀비들에게 노역을 하게 했다.
현암이 분을 이기지 못해서 주먹을 콘크리트 바닥에 내려치자 푸석하면서 주먹 자국이 깊숙이 났다. 놈은 겁을 먹었는지 말을 끊었다. 현암의 눈이 이글이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 굴은 정반대로 싸늘하면서도 무표정했다.
“더 이야기해. 어서!”
좀비의 수가 어느 정도 늘어났을 때 호웅간은 본색을 드러냈 다. 일단 호웅간은 사장을 잡아 놓고 좀비들을 시켜 협박을 해 폐 업 신고를 냈고, 그때까지 좀비가 되지 않고 사정을 모르던 사람 들을 해고시켜 버렸다. 내막을 알고 있던 자들은 대부분 좀비로 만들어 버렸고, 몇몇의 심복들만 그대로 남겨서 자신의 명령을 전달하거나 차를 몰고 좀비를 운반하는 등의 일을 시킨 것이다.
“너희는 그런 짓이 옳다고 여기나?”
“아닙니다! 으허허허헝.”
놈은 갑자기 땅에 머리를 박더니 목을 놓아 울기 시작했다. 현 암은 여전히 분노의 표정을 풀지 않았으나 남자의 행동이 의아 해서 눈을 치켜떴다.
“그러면?”
“무서웠습니다. 흐흐흐. 말할 수 없이 무서웠어요. 무덤에서 파낸 자들이 다시 걷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썩어 갔어요. 그걸 그걸 옆에서 보면서…………… 아아. 으흐흐흐…..”
“그런데 왜 그런 짓을 계속했지? 왜?”
현암이 다그치자 놈은 눈물을 줄줄 흘리더니 한참 있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놈은 눈물과 콧물로 얼굴이 뒤범벅이 된 상태 였다.
“저주! 호웅간은 우리를 좀비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대신 저주 를 걸었어요. 무서움을 이기지 못하여 도망치려던 몇몇 사람들 은 어디서든 호웅간이 저주의 주문과 의식을 행하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죽어 버렸어요.”
“그들이 죽은 것을 어떻게 알지?”
“아아, 호웅간의 힘은 엄청납니다. 두 명은 도망치는 도중에 온몸이 부러지고 비틀린 채로 고통 속에서 죽어 갔지요. 제가 보 는 앞에서 허공에 뜬 채 몸이 꺾이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 그 비명소리 ・・・・・・ “
현암은 숨을 들이켜며 이를 악물었다. 만약 호웅간이 윌리엄 스 신부가 말한 정도로 부두교의 주술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저 주를 건 상대를 멀리서 처치하는 것도 가능하겠다 싶었다.
“무서웠어요. 도망칠 수 없었습니다. 아아, 차라리 죽고 싶었 지만 죽으면 저는 좀비가 되고 한없이 끌려다니다가 마침내 엉 망진창으로 망가져서 썩어 버린다는 게………… 너무도, 너무도 두 려워서…….”
“야아아!”
현암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허공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사자 후는 아니었지만 고통과 분노에 찬 고함 소리는 텅 빈 창고 안에 서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작은 외국 남자는 계속 흑흑거리며 흐느꼈다. 동정과 분노가 교차하고 있는 현암의 눈도 붉게 충혈되어 갔다. 호웅간을 막아 야만 했다. 죽은 자들을 위해서도, 그리고 아직 살아 있는 자들 을 위해서도……………. 현암은 이를 악물고 몸을 부르르 떨면서 외국인 남자를 일으켰다.
“나를 안내해! 내가 모두를 해방시켜 주겠다!”
“혼자서요? 안 됩니다! 당신의 힘도 엄청나지만 호웅간을 이 길 수는 없어요. 수십 명의 좀비들이 우글거립니다. 그들 대부분 이 죽은 자들이에요. 그들을 모두 어떻게………….”
현암은 조용히 남자를 쳐다보았다. 눈빛이 너무나 형형해서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힘이 모자라더라도 그냥 갈 수는 없다. 절대, 절대 용서할 수 없어!”
현암은 뒤를 돌아보았다. 준후가 오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걱 정이 되기도 했으나 현암은 리매까지 데리고 있는 준후가 그깟 좀비 둘을 어쩌지 못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조금 있으면 올 테지. 놈들을 잡아 정신이 드는 것까지 보고 오려고 그러나? 하여간 한시라도 지체할 수 없다.’
현암은 남자를 쳐다보았다.
“길을 안내해라!”
남자는 현암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에 압도된 것 같았 다. 남자는 겁을 먹은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현암에게 저만치에 있는 작은 철 사다리를 가리키더니 자신이 앞장서서 그리로 걸 음을 옮겨 갔다.
드디어 박 신부는 승희와 함께 목적지에 도달했다. 승희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아마 이곳일 거예요!”
“알고 있다.”
박신부가 조용히 답했다. 승희는 눈을 감고 계속 투시를 하느 라 몰랐지만 박 신부는 창고의 철문 앞에 안절부절못하는 두 마 리의 리매를 본 것이다.
“어서 가자. 준후와 현암 군은 저기에 있을 거야.”
박 신부는 차를 세우고 오라를 발하며 리매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승희는 리매들을 보고는 겁이 나 박 신부의 뒤를 조심조 심 따라갔다. 리매들은 으르렁거리며 박 신부를 경계하는 듯하 더니 뒤에 따라오는 승희를 보고는 잠잠해졌다. 승희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어라라라? 으아악, 저리 가!”
리매 한 놈이 다가오자 승희가 겁을 먹고 소리를 쳤다. 그러자 리매는 찔끔하더니 뒤로 물러섰다. 박 신부가 미소를 지으며 승희에게 말했다.
“리매들은 순진하단다. 그런데 준후가 보이지 않으니 이상하구나.”
박신부가 눈을 감고 리매들과 소통을 시도했다. 원래 투시나 마음을 읽는 것은 승희를 따를 자가 없었지만 그건 일방적인 능 력이었고, 마음으로 대화하는 능력은 친화력을 오래 수련한 바 있는 박 신부가 더 능했다. 박 신부는 마음속으로 준후의 행방을 물었다. 그러자 리매는 벽을 탕탕 두드렸다. 그러고 보니 철문에 는 현암의 솜씨인 듯 두꺼운 철판을 갈겨서 움푹 파이게 만든 홈 이 여러 개 있었고 그 부분은 벽으로 위장한 칠이 떨어져 나가서 단순히 벽이 아니라 철문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렇구나. 아마 이리로 간 모양이다.”
박 신부가 리매들을 시켜서 철문을 들어 올리도록 하자 철문 은 삐걱거리며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자 어둡기는 했지만 내부의 광경이 대강 눈에 들어 왔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두 명의 남자들이 엎치락뒤치락하며 싸우고 있었고 한쪽 구석에서는 옷이 찢긴 채 질린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준후가 울고 있었다.
“준후야!”
박 신부는 소리를 지르면서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보다 먼저 승희가 달려가서 준후를 와락 껴안았다. 준후는 말도 하지 못하 고 다급히 손가락으로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을 가리켰다. 박 신부 가보니 둘은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거의 한쪽이 일방적으로 맞고 있었다. 다른 자를 인정사정없이 돌로 때리고 꺾고 있는 자 의 입에는 테이프가 붙어 있었고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좀비가 분명했다.
“야아아앗!”
박신부가 뛰어들면서 기도력을 발휘하자 좀비는 오라에 밀려 서 때리고 있던 자를 놓고는 뒤로 넘어져 버렸다. 살아 있는 사 람이 변해서 된 좀비라 주술이 먹혀들지는 않았지만 박 신부의 오라에는 그래도 약간의 반응을 보였다. 좀비 한 명 정도야 문 제가 되지 않았다. 박 신부는 기도력을 발휘해서 금세 놈을 꼼짝 못하게 오라 막 안에 가두고는 소리쳤다.
“소금, 소금이 있니?”
준후가 피가 흐르는 손으로 바닥의 물통을 가리키자 승희가 물통을 집어서 아직도 피 묻은 돌을 든 채 버둥거리며 떨고 있는 좀비의 입에 붙은 테이프를 떼어 낸 후 소금물을 끼얹었다. 박 신부가 기도력을 가해 좀비의 입을 밀어 올려 다물게 만들었다. 정신 차리도록 박 신부가 좀비를 붙들고 있는 동안 승희는 넘어져 있는 남자에게 몸을 돌렸다. 준후가 그 옆에 서서 주룩주룩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승희가 혹시나 해서 쓰러진 남자를 건드 려 봤으나 남자는 심하게 얻어맞아 코와 입에서 피를 흠뻑 흘린 채 숨져 있었다.
“흑흑………… 아아, 불쌍하게도…………. 흑흑 이 아저씨..”
준후가 계속 흐느끼고 있었다. 승희가 다독거려 보았으나 준 후는 계속 부들부들 떨면서 말을 했다.
“괜찮다. 준후야. 응? 네 잘못이 아니야.”
“좀비였다가 흑흑 내, 내 손에서 땀을 맛보고 정, 정신을 차렸 는데…………. 흑흑 그, 그래서 저, 저 좀비가 내게 덤비는 것을 보고…… 흑흑…… 나, 나 대신……”
승희는 사건의 전후를 대략 눈치챌 수 있었다. 죽어도 사람에 게 주술을 쓰지 않는 준후는 죽어 있는 남자가 좀비였을 때 급한 대로 손의 땀을 맛보게 한 것 같았다. 그래서 준후의 손에 상처 가 생겼을 것이다. 정신을 차린 남자는 아이가 어른에게 공격을 받는 것을 보자 영문도 모른 채 준후를 구하려고 다른 좀비에게 덤벼들었다가 이 모양이 된 것이 틀림없었다. 그 광경을 본 준후 가 어떤 심정이었을까 생각하니 승희도 눈에서 눈물이 솟았다.
“준후야, 말하지 마라.”
“내가 내가 주술만 썼어도…………… 흑….. 저.. 저 아저씨를 구할 수 있었을 텐데………… 흑흑.”
“아니야. 네 잘못이 아니야.”
“승희 누나. 내가 내가 어떻게………… 흑………… 해야 했지? 응? 말해 줘…………. 으흐흐흑.”
준후는 승희에게 얼굴을 파묻고 울음을 터뜨렸다. 나이보다 도 훨씬 작아 보이는 조그마한 준후의 가녀린 목에 악몽처럼 새 겨져 있는 손 모양의 멍 자국과 깨물린 상처에서 조금씩 흐르는 피, 그리고 애처롭게 떨고 있는 준후의 어깨를 보자 승희도 그만 눈물이 나서 허공을 쳐다보았다.
다른 좀비가 정신을 차렸다. 그 남자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묵묵히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박 신부와 울고 있는 여자와 아이, 그리고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있는 남자 를 보고는 기겁을 했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인 듯했다.
“이, 이건 어떻게….. 된 일이죠?”
박 신부는 고개를 돌렸다. 남자는 손에 아직도 꽉 쥐고 있는 피 묻은 돌멩이와 쓰러져 있는 시체를 보더니 기겁을 하며 소리 쳤다.
“으아아악! 아니야! 내가 아니야! 으아아악!”
박신부가 묵묵히 승희에게 다가가서 준후와 승희를 다독거려 주었다. 세상에 누가 이 일을 사실대로 믿어 주겠는가? 눈을 부릅 뜨고 죽은 사람과 제정신을 차리고 소리를 지르며 발작하는 사 람 사이에서 박 신부는 묵묵히 한숨을 내쉬고는 조용히 말했다.
“울지 마라. 지금은 아직 울 때가 아니다. 이기고 난 다음 실컷 울자꾸나.”
“이쪽입니다.”
남자는 이제 현암에게 완전히 동조한 듯 현암을 데리고 지하 깊은 곳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마 이 건물은 지하에 여러 층 이 있는 모양이었다.
“지금 내려온 곳은 지하 이층입니다. 호웅간의 의식 장소는 지 하 삼층이지요. 한 층만 더 내려가면……………”
남자는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현암 도 움찔하면서 귀를 기울였다. 무슨 소리가 들렸다. 아우성도 비슷하고 뜻이 있는 것 같기도 한 소리.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 는 듯한 소리였다. 맞다! 갑자기 생각이 났다.
“만트라! 아이티의 저주의 만트라!”
같이 따라온 남자가 귀를 막으며 고통스러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아아악! 호, 호웅간이……… 아아악!”
“이봐 정신 차려! 정신을!”
소리는 점점 크게 울렸다. 분명 지하의 소리가 반사되어 들려오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건 마치…….
“스피커! 스피커로 틀어 놓고 있구나!”
어느 공장이든지 공실(室)에는 중앙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스피커가 붙어 있는 곳이 많았다. 아마도, 호웅간이 먼저 보낸 두 명의 좀비와 이 남자가 돌아오지 않는 것을 눈치채고 입 을 막으려 저주의 만트라를 보내고 있는 듯했다. 현암은 이를 악 물고 눈에 신경을 집중하여 사방을 둘러보았다. 스피커가 걸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현암은 습관적으로 월향검을 날리려고 했 으나 왼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망할!”
남자는 이제 고통으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고 자리에 뒹굴 며 발버둥을 쳤다. 남자의 허리가 이상하게 꺾여 갔다.
“어허허허엉!”
현암은 공력을 가득 모아 사자후의 일갈성을 사방에 뿌렸다. 벽들이 덜덜덜 떨면서 여기저기서 걸려 있던 물건들과 먼지들이 떨어져 내렸다. 그러자 남자도 잠시 정신을 차린 듯했다. 현암은 땅에 굴러다니던 쇳조각 하나를 집어 맞은편 벽에 걸린 스피커 를 향해 힘껏 던졌다. 공력이 응집된 쇳조각에 스피커는 와장창 소리를 내면서 터져 버렸고 주변은 잠잠해졌다.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지금 당장 만트라는 들리지 않더라도 호웅간이 이 사실을 알면 저주의 의식을 할 겁니다. 그러면 저는 죽고 말아요!”
“더 이상 아무도 죽게 할 수는 없다.”
현암은 이를 갈면서 그대로 사다리 아래로 뛰어내렸다. 남자 는 망연히 뒤에 남아 현암에게 외쳤다.
“지하 삼층! 지하 삼층의 푸른색 문입니다. 좀비들을 조심………..!”
사다리에서 뛰어내려 그대로 달려가던 현암은 문득 땅에 떨어 져 있는 이상한 것을 보고는 잠시 발을 멈추었다. 온전한 담배. 별것은 아니었지만 태우지 않은 담배의 필터 부분은 이빨로 여 러 번 깨문 듯 잇자국이 나 있었다. 현암은 담배를 집어 들면서 중얼거렸다.
“백호? 백호가?”
현암의 중얼거림이 신호이기라도 한 듯 앞쪽의 캄캄한 문이 열리면서 남자들이 와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한 무리의 좀비들 이었다.
‘제길! 나는 죽은 자로 만든 좀비와 산자로 만든 좀비를 구분 할 수 없으니 무턱대고 후려갈길 수도 없고.’
현암은 근처에 있던 쇠사슬을 집어 들고 허공에 흩뿌렸다. 좀 비들은 무기를 들고 있었다. 저것에 한 번 맞으면 제아무리 기공으로 몸을 굳힌 현암이라도 두 동강이 날 판이었다.
‘급하다. 조금 부상을 입히더라도 할 수 없다!’
현암은 들고 있던 쇠사슬에 공력을 넣어 채찍처럼 휘둘렀다.
“덤벼! 덤볏!”
현암이 위협하자 좀비들은 으르릉거리는 듯한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현암은 쇠사슬을 크게 후려서 채찍처럼 좀 비들의 몸을 감았다.
좀비들은 쇠줄에 밀려서 비명을 지르며 마치 쇠사슬에 둘둘 감긴 굴비처럼 묶여 나뒹굴었다. 현암은 팔에 기공을 넣어 다섯 명의 좀비들을 한꺼번에 주욱 끌어당겨서 쇠사슬로 묶어 버렸다.
“별것도 아닌 놈들이………….”
현암은 흉기들을 저만치 던져 버리고 반대쪽에 열려 있는 문 너머로 보이는 푸른색 문을 주시했다. 분명 저 너머에 호웅간이 있을 것 같았다.
“문을 부수려면 공력을 아껴야지.”
현암은 좀비가 떨어뜨린 전동 톱을 들고 문 쪽으로 서서히 걸 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잠겨 있는 철문을 다짜고짜 전동 톱으로 긁어서 자물쇠가 있음 직한 부분을 토막 내고는 톱을 땅바닥에 힘껏 내던져서 부숴 버렸다. 왈칵 문을 열었다. 현암의 눈에 환 한 불빛이 강렬하게 들어왔다.
“아니 이 이럴 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