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세계편 2권 2화 – 왕은 아발론 섬에 잠들고 2 : 연속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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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세계편 2권 2화 – 왕은 아발론 섬에 잠들고 2 : 연속 살인


연속 살인

퇴마사 일행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윌리엄스 신부의 따뜻 한 영접을 받았다. 생전 처음 비행기를 타 본 준후는 멀미를 심 하게 해서 얼굴이 해쓱하게 질려 비틀거렸다. 현암도 비행기를 타 본 것은 처음이라 비행기가 뜨고 내릴 때 아랫배가 뜨끈해지 는 느낌이 있었지만 별 지장은 없었다. 준후는 아예 비닐봉지를 끌어안고 잠들었다가 깨어나기를 몇 번씩이나 반복했다. 비행기 가 착륙하고 트랩을 내리면서부터는 거의 눈이 풀려 있었다. 윌리엄스 신부가 다른 두 명의 백인 남자와 함께 일행을 맞이 해 주었다.

“오우, 반갑습네다. 얼마 만입네까? 하하하.”

퇴마사 일행이 제대로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윌리엄스 신부는 그들을 안내하여 공항 밖으로 빠져나갔다. 어조는 평온했으나 왠지 모르게 조급해 보였다. 박 신부가 슬쩍 말을 걸었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이렇게 서두르시다니 무슨 일이 생긴것 아닙니까?”

“아, 일단 호텔로 가십시다. 가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일행은 공항 밖으로 나가서 대기하고 있던 자그마한 셔틀버스에 올라탔다.

“자세한 이야기는 가면서 말하겠습네다. 또 이상한 일이 생겨 제대로 환영도 못하고 부탁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오우.” 

윌리엄스 신부는 차에 타면서 겸연쩍었던지 눈을 찡긋했다. 차를 타고 일행이 묵게 될 호텔로 가면서, 윌리엄스 신부는 자 신이 한국에 머물렀던 동안 영국에서 생긴 일들을 이야기해 주 었다. 바로 드루이드에 관련된 사건이었다.

영국에는 스톤헨지에서 열리는 드루이드의 정기적인 회합이 있다. 물론 진짜 켈트족의 드루이드는 로마 시대를 거치면서 전 멸되어 맥이 끊어진 것으로 알려졌고, 현재 치러지는 의식은 반 쯤 흥밋거리인 행사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그 의식중에 중대한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흰옷을 입은 드루이드의 행렬 가운데에서 갑자기 사제를 자칭 하는 두 사람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러고는 드루이드 복색으로 행진을 하고 있던 한 사람을 느닷없이 납치하여 사라져 버렸다. 납치된 남자는 잔인하게 난자당한 채 스톤헨지의 돌 위에서 시 체로 발견되었고, 납치한 드루이드의 정체나 신원은 아직까지 전 혀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남자입네다. 고든 케사르라고 하구요.”

윌리엄스 신부가 사진 한 장을 꺼내어 일행에게 보여 주었다.

평범한 남자였다. 준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진으로는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그다지 영기가 느껴지는 사람은 아닌데요?”

“그 사람에게 영능력이 있었다는 증거는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습네다. 아주 아주 평범한 사람입네다. 그러나 문제는 또 있습네다.”

“뭐죠?”

윌리엄스 신부는 한국어로 하기가 어려운 듯, 영어로 이야기 했고 승희가 통역을 해 주었다. 윌리엄스 신부의 얘기인즉슨, 드루이드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소행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그 이전에도 몇몇 사람들이 스톤헨지와 런던탑 근교에서 같은 방법 으로 살해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옥타비아 크루거, 줄리우스 데 커 등의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수법은 위의 경우처럼 매우 참혹했고,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부활한 면도날 잭’이라며 연일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면도날 잭이요?”

서양 쪽의 일에 대해서는 깜깜한 준후가 묻자, 현암이 간략히 답해 주었다.

“면도날 잭은 약 백 년 전에 영국 전체를 떠들썩하게 했던 희 대의 살인마야. 면도날을 이용해 잔인하게 해부하는 방법으로 여자 수십 명을 살해했지. 그러나 아직까지도 그자는 잡히지 않 았을뿐더러 살해 동기조차 밝혀진 게 거의 없단다.”

윌리엄스 신부는 살해 방법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했지 만, 이번 경우도 면도날 잭에 못지않게 수법이 잔인한 것만은 틀림없었다. 그러나 박 신부가 궁금증을 품었던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다.

“그러나 그런 연속 살인 사건이 꼭 이번의 드루이드를 자처하 는 자들에 의해 일어났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아닙네다. 끝까지 들으십시오.”

윌리엄스 신부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말을 이었다.

“문제는 사람들이 죽은 것에도 있습네다만, 그 사람들이 죽을 때에 다른 사람들이 같이 죽는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죽어요?”

“예. 그것도 고위급이라 할 수 있는………… 음, 그러니까 중요한 인물들이 변사체로 발견됩네다.”

윌리엄스 신부의 말에 의하면 최고위직은 아니지만 중요 실무 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꾸만 죽어 간다는 것이고, 그 사망 의 이유도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고 했다. 경찰청의 한 관리는 근 무중에 갑자기 외마디 소리와 함께 피를 토하고 죽었다. 그 후 비슷한 시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사체는 목이 으 깨어져 있었다. 그다음, 보건부에 근무하는 관리는 집에서 자다 가 갑자기 창문으로 뛰어내려 머리가 깨져서 자살한 것으로 알 려졌다. 다음 날 새벽, 런던탑 부근에서 발견된 사체 역시 머리 가 부서져 있었고 그 사람의 사망 시각 역시 자살한 관리의 사망 시각과 비슷했다. 이런 일들이 벌써 여섯 차례나 계속 일어났다는 것이다.

승희의 통역으로 자세한 내용을 들은 현암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렇다면 그 관리들의 죽음은 저주에 의한 살인이고, 변사체들은 저주를 내리는 제물로 쓰이기 위해 살해당했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그, 그렇습네다. 경찰도 이제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네다. 아무런 단서도 없으니까 더욱 그렇습네다. 그 관리들은 절대 자살하거나 급사할 이유가 없었는데도 순식간에 죽어갔습 네다.”

“죽은 관리들에게 공통점은 없었나요?”

“없었습네다. 업무상의 연관도 없었습네다. 그러나 그들이 연 달아 죽은 이유가 있을 것입네다.”

“조사를 해야겠군요.”

“저주의 방법도 알아내야 합네다. 브리튼에서 제일 투시력이 강한 사람에게 물어보았는데 고대의 분노가 관계있다는 것, 자 칫하면 큰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밖에는 알아내지 못했습네 다. 그래서 가능하면 뛰어난 능력을 지닌 여러분의 도움을 받고 싶습네다.”

대강 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엽기적인 사건들이 발생하고, 또 아무런 단서를 찾을 수 없어 민심이 흉흉해지니 어쩔 수 없이 영국 정부에서도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에 이쪽으로 눈을 돌리는 모양이었다. 단, 이런 일들은 알려지면 더 큰 여파를 불러올 수 있어서 비공식적으로 하는 것이 상례인 만큼 일단 모든 사항들 은 비밀이라고 했다.

일행은 마음이 무거웠다. 더 알아보아야 하겠지만, 만약 윌리 엄스 신부의 추측이 맞다면 문제가 컸다. 주술로 멀쩡한 사람을 죽이기는 쉽지 않다. 더군다나 관련 없는 많은 사람들을 어떤 목 적에 의해 주술로 해쳤다면 아마 십중팔구는 블랙서클이 저지르 는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윌리엄스 신부가 물어보았다는 영능 력자가 경고한 대로 이번 일에 고대의 힘이 개입되어 있는 것이라면 더더욱.

지난번 한국에서는 그 고대의 힘 때문에 자칫 내전의 위기까 지 겪은 터였다. 블랙서클, 일체의 보통 인간을 증오하는 자들의 모임. 윌리엄스 신부도 그렇게 생각하고 퇴마사들을 초청했을 것이고, 퇴마사 일행도 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블랙서 클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을 꾸미려 는 것일까.

차는 어느덧 런던 시내로 들어와 일행이 묵게 될 호텔 앞에 섰 다. 런던 시내에는 안개가 내려서고 있었다.

윌리엄스 신부는 오후에 다시 오겠다고 하고 밖으로 나가며 오후까지 푹 쉴 것을 당부했고, 사건의 내용을 간략하게 적은 기록을 일행에게 넘겨주었다. 호텔 안에서 현암과 박 신부, 그리고 승희는 사망자들에 관한 기록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살해당한 사람들은 그 자체의 기록만으로는 전혀 공통점을 찾을 수 없었 다. 고든 케사르는 오십 대로 직업이 확실치 않은 남자였고, 옥 타비아 크루거는 삼십 대 사무원, 줄리우스 데커는 사십 대 가정 주부였다. 다른 사람들도 그와 비슷한 평범한 사람이었고, 특별히 드루이드 의식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고든 케사르 한 사람뿐이었다. 별다른 단서를 찾아내지 못하고 눈만 껌벅이고 있는데 영어를 읽을 줄 모르는 준후가 끼어들었다. 

“여기 뭐라고 씌어 있어요? 이 사람들 이름이 뭐죠?”

현암은 준후에게 대강 이름들을 말해 주었다.

“고든 케사르, 옥타비아 크루거…”

“잠깐잠깐 뭐라고요? 고두・・・・・・ 케자르요?”

“케사르, 케사르라고…………. 음!”

준후가 잘 알아듣지 못하자 현암도 Caesar를 어떻게 읽어야 올바른지 혼동이 되었다.

“신부님, 시저하고 스펠링이 같지만 케사르라고 읽는 것이 맞겠지요?”

박신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케사르라고 읽는 게 맞을 걸세.”

“음? 하하하.”

갑자기 듣고만 있던 승희가 뭔가 생각난 듯,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승희를 보고 박 신부와 현암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물었다.

“뭐지?”

승희는 씩 웃으며 사망자 명단에 씌어 있는 이름들을 하나씩 짚어 보았다.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공통점? 도대체 무슨 공통점을 찾아냈다는거지?”

“이 사람들의 이름과 성을 보세요. 이 사람들은 모두 로마 시대 사람들과 비슷한 이름 또는 성을 가지고 있어요.”

현암과 박 신부도 승희의 말을 듣고는 눈을 크게 뜨고 기록들 을 다시 훑어보았다. 박 신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케사르는 로마 시대의 황제인 시저고 옥타비아는 옥타비아누 스, 줄리우스도 대표적인 로마 시대의 이름이었고, 여기 타키투 스라는 이름도 로마의 유명한 역사가 이름과 같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승희가 박 신부의 말에 덧붙였다.

“이건 남방 라틴족들의 대표적인 이름이라 할 수 있겠군요. 약간 고풍스러운 이름들이 섞여 있구요.”

박신부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말했다.

“그래, 그렇구나. 아니! 그렇다면 이름 때문에 살해당한 것일까?”

뜻밖의 말에 승희가 더듬더듬 말했다.

“단지 이름 때문에요? 그건 너무……”

현암이 보충 설명을 했다.

“알 수 없어. 이름이나 철자에 주술적인 힘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이 있으니까. 조금 다른 이야기인지는 모르지 만, 우리나라에서도 작명이나 획수에 의해 사람의 운명이 바뀐 다고 신경을 많이 쓰지 않든?”

“그러나 단지 이름 때문에 사람이 살해당했다고 보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아.”

둘 사이의 대화에 박 신부가 끼어들었다.

“하지만 다른 단서가 없는 한 이것이 중요한 실마리가 될지도 모르지. 잘 기억해 두고 다음으로 넘어가세.”

박 신부도 이름 때문에 제물이 됐을 가능성은 전혀 배제할 수 없었다. 이름이라는 것은 원래 그러한 특이성, 또는 별도의 한 개체를 상징하는 말이니만큼 그 이름에 주문이나 만트라, 진언 같은 힘이 꼭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 그런 것까지 승 희에게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박 신부의 생각을 눈치챈 듯, 그 일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으 나 속으로는 각자 생각하는 바가 달랐다.

승희는 영어를 몰라서 궁금해하는 준후에게 목록을 보여 주며 차근차근 설명을 했다. 현암과 박 신부는 이번엔 저주에 의해 살해당한 것으로 보이는 관리들의 명단을 훑어보았다.

그 사람들 사이에서도 공통점을 찾아낼 수는 없었다. 한 사람 은 보건부에 근무하면서 독일과의 방역 협정 관계를 다루던 관 리였고, 한 사람은 이탈리아와의 관세 협정을 한 사람은 프랑스 와 도버 해협의 해저 터널 공사에 대한 실무를 협의하던 관리였 다. 그 외에 나토(NATO)와 관련된 군 장성도 한 사람 끼어 있었 다. 이 사람들의 공통점에 대해서는 찾을 수 없었으나 윌리엄스 신부가 이야기한 대로 이 사람들의 사망 원인 및 죽음의 경위는 하나같이 주술적인 냄새가 짙게 배어 나왔다. 이런 일에 전문가 인 퇴마사 일행이 아닌 평범한 사람의 눈으로 보더라도 이상하 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윌리엄스 신부에게 들은 대로 희생자들의 사망 추정 시각은 제물로 보이는 사람들과 거의 동일했다. 제물과 희생자들의 죽 음은 서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일어났고,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상해 부위나 죽음의 형태도 흡사하거나 연관이 있어 보였다. 도착하자마자 기록들을 훑어보는 데 지친 일행들은 여 독을 풀기 위해서라도 일단 푹 쉬기로 하고, 잠시 기록에 대한 것들은 잊기로 했다.

오후가 되어서 도착할 예정이라고 했던 윌리엄스 신부는 나 간지 한 시간도 안 되어 돌아왔다. 윌리엄스 신부의 안색이 창 백한 것을 보고 소파에 몸을 묻고 있던 박 신부가 벌떡 일어나서 말했다.

“아니, 윌리엄스 신부님. 왜 이렇게 빨리 오셨습니까?”

윌리엄스 신부가 영어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까 잠시 제 사제관에 들렸었지요. 그랬더니 급 한 전갈이 와 있기에 여러분의 도움을 받을까 해서 왔습니다. 정 신없이 일들이 터지는군요.”

“전갈이라뇨?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건가요?”

“런던탑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런던탑이요?”

현암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

런던탑이라고 하면 영국 역대의 정치범과 학대받는 왕족, 그 리고 정치적 살인 사건이나 무서운 음모가 꾸며지는 곳의 대명 사였던 장소다. 간혹 유령 소동이 있기도 했지만, 지금은 관광 명소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옆방에서 준후와 승희도 달려 나왔다.

“런던탑에서 무슨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죠?” 

윌리엄스 신부가 박 신부를 보고 말했다.

“같이 가주시면 감사하겠습네다. 심령학자들에게 연락해 보니 도저히 수습할 수가 없어 출입만 금지하고 있답네다. 속히 가시는 것이 좋습네다.”

“무슨 일인・・・・・・ “

“저도 잘은 모릅네다. 가 보시면 직접 보실 수 있겠지요. 쉴 틈도 없이 죄송합네다만……………..

“아닙니다. 가 보도록 하지요.”

박 신부의 말에 준후가 빨개진 눈을 약간 찡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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