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세계편 3권 27화 – 아스타로트의 약속 5 – 지하 삼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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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세계편 3권 27화 – 아스타로트의 약속 5 – 지하 삼층에서


지하 삼층에서

박신부와 준후 그리고 연희는 계단을 내려가 지하 삼층으로 향했다. 준후가 달려가는 중에 헐떡거리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마스터의 술수인 것 같아요. 우리를 하나씩 하나씩 떨어지게 만들려고 층마다 그에 적합한 상대를 배치해 놓은 것 은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겠다.”

박 신부는 계단을 내려가면서 생각에 잠겼다. 준후의 말은 일 리가 있었다. 입구에서 월향검과 승희, 윌리엄스 신부가 떨어져 나갔고, 지하 일층에서는 좀비들을 풀어 놓아 이반 교수로 하여 금 좀비들을 대적케 했으며, 지하 이층에서는 인디언 주술사를 배치해 놓아 현암으로 하여금 빼도 박도 못하게 한 것 아닌가! 성난큰곰은 지하 삼층에 마스터가 있다고 말했다.

박 신부의 머릿속에 의문이 생겼다. 마스터는 정말 있는 것일 까? 엄청난 주술을 보이긴 했지만, 그게 정말 마스터의 힘이 맞을까? 만약 마스터가 그렇게 강하다면, 왜 자신이 직접 나서지는 않는 걸까? 애초부터 직접 나섰으면, 코제트를 비롯한 삼대 승정 이 전멸할 리도 없었을 텐데. 부하들의 능력을 믿고 퇴마사들의 능력을 과소평가했던 것일까? 그러나 삼대 승정들 중 다른 자들 은 몰라도 공포의 승정인 젠킨스의 영적인 능력은 그야말로 형편없었다. 그런데도 그자가 턱없는 함정을 파서 퇴마사들을 유 인하는 것을 왜 그냥 내버려 두었던 것일까? 지금도 마찬가지 다. 퇴마사들의 힘을 빼려는 술수일 수도 있지만, 부하들과 퇴마 사들이 싸우도록 내버려 두고 마스터가 기습을 한다면 힘들이지 않고도 블랙서클을 보존할 수 있고, 마음 편하게 지옥문을 열 수 있을 텐데.

상황은 박 신부에게 더 이상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박 신부와 준후, 그리고 연희가 지하 삼층에 걸음을 내딛는 순간, 또렷한 한국어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더 이상 그런 생각은 할 필요가 없답니다. 박 신부님 그리고 여러분! 아니, 동방의 나라에서 오신 퇴마사 여러분! 환영합니다!”

놀라서 주춤하며 걸음을 멈춘 박 신부와 준후, 연희의 앞에 터 번을 쓴 남자가 가부좌를 튼 자세로 앉아 있었다.

“마스터!”

준후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아 이럴수가! 저자의 몸에서 나오는 영기, 저건…………….”

“진짜였군.”

박 신부도 마스터의 몸에서 말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영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으나 아까 이미 기운을 느껴 본 준후가 새삼 왜 저렇게 몸을 떠는지 궁금했다.

“준후야, 왜 그러지?”

준후가 마스터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저자의 몸에서 모든 사람들의 영기가 느껴지고 있어요. 여태까지 우리가 상대해 왔던 모든 이들의 기운이!”

“무슨 말이냐, 모든 자들의 영기를 뿜어내고 있다니. 그렇다면………….”

“맨 처음에 우리가 만났던 호웅간, 현암 형이 상대했다는 그 아저씨, 늑대 인간을 부리던 카프너와 코제트, 그리고 젠킨스의 기운・・・・・・ 히루바바의 기운까지 저자의 몸에서 풍겨 나오고 있 어요. 한꺼번에!”

“아니, 그렇다면 마스터는!”

준후가 입술을 깨물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박 신부는 눈을 부 릅떠 태연한 자세로 앉아 있는 마스터를 노려보았다. 연희는 영 기 같은 것을 하나도 느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눈앞에 있는 자 가 여태까지 상대해 온 모든 블랙서클의 힙을 합한 것만큼 강하 다면, 박 신부와 준후가 마스터를 상대할 수 있을지 아득하게 생각되었다. 마스터는 복화술로 말을 한 것 같았는데 이제 마스터의 입에는 조용한 미소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박 신부와 준후는 긴장하여 힘을 끌어모았다.


‘탄’ 자 결의 힘을 모아 인디언 주술사에게 기공탄을 발출하려 는 순간, 현암은 양쪽 벽과 땅이 출렁거리면서 흉악한 모습을 한 그림과 조각들이 살아 있는 듯, 벽을 뚫고 나오는 것을 보고는 놀라서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저럴 수가!”

현암은 놀랐다. 필경 허상이나 환영일 거라고 생각하고 기공 탄의 공력을 단전 위쪽으로 돌려서 보관을 해 두고 남아 있는 기공력을 오른손에 모았다. 환영 따위에게 ‘탄’ 자 결의 기공탄을 쓰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으르렁거리면서 튀어나오는 괴 물들을 노려보았으나 뭔가 이상했다.

처음에는 그 괴물들이 인디언의 장난으로 만들어 낸 단순한 눈 속임 같았는데 자세히 보자 실체가 분명히 느껴졌다. 아무것도 없는 벽의 그림에서 어떻게 저런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놀 라웠으나, 흉악하게 생긴 괴물의 형상이 현암을 향하여 위협하 듯 이빨을 드러내며 다가오자, 현암은 더 이상 생각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현암은 시험 삼아 오른손에 오성(五)의 기공력을 돌려 다가오고 있는, 마치 곰과 사자의 잡종처럼 생긴 이상한 괴물을 향하여 벼락같이 주먹을 내뻗었다. 그러자 괴물은 쾅 소리 가 나면서 뒤로 우당탕탕 나가떨어졌다. 신기하게도 현암의 손에는 괴물을 친 감촉이 전해져 왔다. 이놈들은 환영이 아니었다. ‘정말로 환영이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면……..

귀엽지 않나?

성난큰곰은 이상하게도 성내거나 흥분하지 않은, 그렇다고 놀 리는 것 같지도 않은 차분한 목소리로 현암의 마음속으로 말을 했다.

옛적 우리 조상들이 상상해 왔고 손으로 빚어 만든 조각들일세. 그들에게 잠시 움직일 수 있도록 힘을 넣어 준 것뿐이네. 상대해 보게나. 

현암은 어안이 벙벙했으나 성난큰곰의 말을 듣고는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들은 완전히 실체가 없는 것이 아니라 성난큰곰의 말대 로 괴물들의 형상을 섞고 같은 것으로 조각을 한 뒤, 그것을 바 탕으로 환영을 덧씌운 거구나. 그래서 정말 실체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군. 그런데 왜 성난큰곰은 자신의 주술 유래를 밝히는 것일까.’

그러나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상하게 생긴 뱀 같은 괴물이 현 암의 다리를 노리고 꼬리를 휘두르는 바람에 현암은 위로 껑충 뛰어서 피한 뒤, 몸을 돌리면서 오른손에 육성)의 기공력을 모아서 ‘폭’ 자결로 괴물의 머리 부분을 갈겼다. 성난큰곰의 말대로라면 놈들은 환영이 아닐 테니 놈들의 공격을 직접 몸으로 받아 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놈들의 몸에서 가장 중량감이 느 껴지는 부분은 원래 환영을 씌울 수 있는 모체일 것 같았다. 기 공력에 적중당한 괴물은 소리도 지르지 못하면서 사방으로 폭발 하듯이 사라졌고, 약간의 돌 부스러기 같은 것이 사방에서 흘러 내렸다. 괴물의 조각을 한 번에 박살 내 버린 것 같았다.

좋다! 성난큰곰이 무슨 생각으로 주술의 유래를 말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후회할 거다. 후후훗..

현암은 몸을 한 바퀴 회전하여 이번에는 ‘흡’ 자결을 오른손 에 돌려 호박 덩어리처럼 몸을 둥글게 뭉쳐 날아오는 한 마리의 괴물을 오른손으로 짚었다. 발악하는 괴물의 몸뚱어리가 찌그러 지면서 손에 달라붙자 현암은 괴물을 볼링공을 던지듯이 아까 넘어진 괴물을 향해서 ‘발’ 자결을 운용하면서 던졌다. 그러자 그 괴물과 현암의 손에 잡혔던 괴물은 서로 부딪히며 쾅 소리를 내면서 사라졌다.

훌륭하군, 훌륭해.

성난큰곰의 목소리가 전달되어 왔다. 괴물은 서너 마리가 더 남아 있었으나 충분히 그들을 상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성난큰곰이 허공에 대고 두어 번 손바닥을 치며 무어라고 중얼거리자, 갑자기 그들의 형체가 와스스 부서지면서 보통의 인형으로 변하더니 땅바닥에 떨어져서 툭툭 깨져 버렸다. 현암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지 알 수 없어서 그를 쳐다보았다. 왜 괴물들을 만들어 냈다가 주술을 거두는 것일까? 힘의 소모가 과 다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현암에게 조각으로 만든 괴물들 정도 로는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일까?

다음엔 이것을 보게나. 우리 조상신의 힘을 내 몸에 부르는 것이라네. 

성난큰곰은 허공에 대고 소리를 치면서 팔을 저었다. 그러자 그렇지 않아도 큰 몸이, 쑥쑥 늘어나면서 근육이 터질 듯이 울퉁 불퉁 튀어나왔다. 언뜻 보기에도 삽시간에 힘이 철철 넘쳐나고 있는 것 같았고, 현암은 그 기세에 압도당하여 헉 하는 소리를 냈다.


이반 교수는 마지막 좀비를 제압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애당초 힘든 싸움이 벌어질 것을 예상하여 많은 장비를 갖고 온 것이 매 우 유용했다. 이반 교수는 인정사정을 봐주는 편이 아니었다. 처 음에는 소금이 많이 들어 있는 성수를 담은 물총으로 좀비들을 쏘아댔다. 이 좀비들은 만든 지 오래되었는지 입에 소금기가 들 어가자 흐물흐물해지면서 재로 변해 갔다. 이반 교수는 갖가지 무기를 있는 대로 꺼내서 쏘아 댔다. 현암과 박 신부 등이 계단 을 내려가고 계단 입구가 무너지자 이반 교수는 당장 아래로 내려 가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했고 그 화풀이를 좀비들에게 했다. 퇴마사들이 내려가면서 많은 좀비들을 해치우기는 했지만 아직 복도에는 십여 명가량의 좀비들이 남아 있었다. 네 명의 좀비 는 이반 교수에 의해서 화염 방사기로 불덩어리가 되었고, 은 총 알을 넣은 기관총으로 다섯 마리의 좀비를 가루로 만들었다. 그 다음 이반 교수가 꺼낸 총은, 은 총알을 장전한 산탄총이었는데 좀비가 은 총알에 특별히 영향받지 않는다 해도 성스러운 십자 가를 녹여 만든 은 총알을 맞은 좀비들은 그 자리에서 퍽퍽 소리 를 내며 사라졌다.

“별것도 아니군.”

이반 교수는 중얼거리면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무심코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에는 이상하게 생긴 글자들이 씌어 있었고 영 력이나 투시력이 없는 이반 교수의 눈에도 그 글자들이 수상쩍 다는 느낌이 들었다. 섬뜩하게 붉은 글씨였다. 이반 교수가 시험 삼아서 글자를 향해서 성수가 담긴 작은 병을 던져 보니, 병이 깨지면서 흘러나온 성수가 글씨의 기운과 충돌했는지 치지직 하 면서 하얀 연기가 일었고, 비명 소리가 방 안에 메아리쳤다. 

“음. 뭔가가 있긴 있군.”

이반 교수는 처절한 비명 소리에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글자들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저 글자들은 사악한 힘을 담고 있 는, 뭔가 목적을 가지고 씌인 것이 틀림없었다. 이반 교수의 머 리에 뭔가가 스치고 갔다.

“오우, 그래! 이게 위에 쳐 있는 주술의 장벽을 만들어 냈는지도 모르겠군!”

이반 교수는 남아 있는 자그마한 성수병들을 배낭에서 끄집어 내면서 꿈틀거리는 붉은 글씨들을 보고 멋없는 윙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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