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세계편 3권 6화 – 왈라키아의 밤 6 : 고군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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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세계편 3권 6화 – 왈라키아의 밤 6 : 고군분투


고군분투

“오 마이 갓. 너는 준, 준후…………?”

“네, 맞아요! 윌리엄스 신부님 무사하셔서 정말……………”

지하 깊숙한 토굴의 철창 속에서 윌리엄스 신부를 만나리라고 는 준후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윌리엄스 신부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나 윌 리엄스 신부의 안색은 마치 죽은 사람처럼 하얗고 떠듬떠듬 하 는 말엔 억센 억양이 배어 있었다. 안에서 터져 나오는 분노를 억지로 참고 있는 목소리였다.

“무사하셨네요. 다행이에요. 우리는 윌리엄스 신부님을 구하러…….”

준후는 말을 건네고는 가까이 가려고 했으나 윌리엄스 신부는 갑자기 소리를 지르더니 한쪽 팔로 얼굴을 가리고 다른 팔을 거 칠게 내저었다.

“오, 네버! 네버! 돈 컴 클로우저! 가까이 오지 마! 플리즈! 제 발! 제발, 준후야!”

윌리엄스 신부의 다급하고 절실한 외침에 준후는 다가가던 것을 멈추고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그러고는 재빨리 야명부의 힘을 강하게 일으켜서 주변을 밝게 만들었다. 윌리엄스 신부는 헐떡거리면서 온몸에 힘이 들어간 긴장된 모습이었으나, 팔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자세히 보이진 않았다. 윌리엄스 신부의 사제복은 너덜너덜할 정도로 더러워져 있었고 먼지까지 잔뜩 뒤 집어쓰고 있었다. 준후가 뒤로 물러서자 윌리엄스 신부는 목소 리가 밝아지더니 팔을 조금씩 내렸다.

“오, 웰. 잘했다. 멀리 떨어져. 가까이 오면 안 돼…………. 오, 마 이 갓 어쩌다가 내가 어쩌다가 이런………….”

“윌리엄스 신부님, 어디 편찮으신 데가 있나요?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예요?”

준후는 잠시 코를 쫑긋거렸다. 긴장한 나머지 여태까지는 이 토굴 안에서 풍기는 고약한 냄새에 별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이 곰팡이 비슷한 냄새는 윌리엄스 신부의 몸에서 풍겨 나는 것 같았다. 물론 이렇게 잡혀 있는 상황에서 목욕을 한다거 나 옷을 갈아입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니 냄새가 나는 것은 그럴 법도 했지만, 이건 그런 종류와는 전혀 달랐다. 무언가가 썩는 듯한, 아니 말라붙은 곰팡이 냄새라고나 할까? 윌리엄스 신 부가 몹시 다쳐서 상처에서 나는 냄새가 아닐까 하고 준후가 미 간을 찌푸리는데 윌리엄스 신부가 헐떡거리며 소리쳤다.

“오! 나는 나는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란다. 돈트・・・・・・ . 가까이 오지 마, 가까이 오면 안 돼. 나에게 피 냄새를 맡게 하면… 절대…..”

“예? 무슨 말이에요? 피 냄새를 맡다니요.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

“오, 뱀파이어! 흡………… 흡혈귀…………. 내 몸 안에는 흡혈귀의 기운이 숨 쉬고 있어. 흡혈귀의 기운. 오, 마이 갓!”

“예?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흡혈귀의 기운이라니요!”

“코제트 모든 게 코제트의 계략이야. 나를 잡아 온 것은 그 여자의 지시였어. 애당초 나나 너희가 자신들을 추적하고 있다는 것을 코제트도 알고 있었고 여기에 트랩⋯⋯⋯⋯ 함정을 파 놓은 거야. 내가 거기 제일 먼저 걸린 것뿐. 아…………. 좀 더! 좀 더 멀리 떨어져, 어서! 아, 더 이상 참기가 참기가 어려워!”

“신부님, 코제트의 함정에 걸렸다니 무슨 말씀이세요?” 

“모든 게 함정! 나를 잡아간 것도…………… 이반 교수를 잡지 않 고 일부러 도망가게 놔둔 것도 너희를 이리로 유인하기 위한 술 책……. 이건 함정이야. 그리고 그 여자는 나를………… 오, 마이 갓.” 

“윌리엄스 신부님! 그러면 윌리엄스 신부님의 몸에 흡혈귀의 힘이 들어가 있다는 건………… 그건……”

“투와이스! 두 번이나 물렸어! 기도하며 버티고 있지만…힘들어!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흡혈귀의 힘이 나를 지배하게 될 지도 몰라. 그러면 그때는 지금의 내가 아니야.”

“세상에 그런 일이………….”

준후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코제트는 윌리엄스 신부를 그 냥 잡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여 윌리엄스 신부를 산 채로 흡혈귀 로 만들어 버리려고 한 것이다. 박 신부와는 비교할 수가 없지 만, 윌리엄스 신부도 일류에 속하는 능력이라 여태껏 버텨 왔 으리라. 그러나 몸 안에서 꿈틀대는 다른 기운과 싸운다는 것은……………. 과거에 홍녀도 흡혈마의 기운을 받고는 버틸 수 없어서 분신자살을 하려고 하지 않았던가. 준후는 일단 윌리엄스 신부 를 진정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가 어떻게든 막아 드릴게요. 어떻게든 방법이⋯⋯⋯⋯⋯.” 

“가까이 오지 맛!”

윌리엄스 신부는 소리를 내지르면서 비로소 얼굴을 가렸던 팔 을 풀었다. 크게 뜬 눈…………. 눈은 옅은 어둠 속에서도 붉게 번뜩 거렸다. 거기다가 평상시에 익살스럽게 보였던 윌리엄스 신부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린 채, 경련을 일으키며 흉악하게 일그러졌 다 원래대로 돌아갔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윌리엄스 신부의 얼 굴에는 땀이 비 오듯 했고 꽉 쥔 주먹 안에는 손톱이 파고들어서 인지 숱한 상처 자국이 보였으나, 핏방울은 하나도 바깥으로 내 비치지 않았다. 가장 놀라운 것은 준후가 보고 있는 가운데에서 도 입술 바깥으로 조금씩 비집고 나오는 날카로운 두 개의 송곳니였다.

“아니! 윌리엄스 신부님. 설마∙∙∙∙∙∙. 정말로………….”

준후의 냄새를 맡아서인지 하필 지금 발작이 시작되려는 모양 이었다. 윌리엄스 신부의 입에서는 계속 신음 소리가 흘러나오 고 있었으나, 그 말은 준후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스스로에 게 다짐을 하는 독백이라고 하는 편이 옳았다.

“난 버틸 수 있어……. 버티고야 말 거야. 이블 파워에 내 몸 을 맡길 수는 없어. 오, 마이 갓! 힘을, 힘을!”

준후는 대강의 사정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애당초 윌리 엄스 신부를 죽이지 않고 생포해 온 것은 코제트의 술수였고, 윌 리엄스 신부와 같이 있던 이반 교수를 일부러 잡지 않고 도망가 게 해서 퇴마사들이 이리로 오게끔 만든 것도 계략의 일부였다. 또 자신이 이상한 마을 어귀로 들어서다가 난데없이 마취를 당 해산 채로 잡혀 오게 된 것도, 그런 자신을 해치지 않고 이곳으 로 끌고 온 것도 그녀의 짓이 분명했다. 코제트는 왜 자신들을 잡자마자 해치우지 않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이 준후의 머릿 속에 번갯불처럼 떠돌다 사라졌다. 준후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 렁 맺혔다.

윌리엄스 신부는 부르르 떨리고 잘 움직여지지도 않는 손으로 성호를 천천히 그어 나갔고, 그러자 신부의 상태가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 준후도 처음보다는 마음이 놓였다.

“저도 마취 약에 중독되어서 이리로 잡혀 온 거예요! 저들은 왜 저를 해치지 않고 이리로 데려왔을까요? 코제트의 목적이 도 대체 무엇이기에?”

“코제트, 코제트. 그 여자는 세이튼(Satan)! 악마! 우리 서로 가 죽고 죽이게끔 만들어 그 광경을 보고 즐기려고 하고 있어. 에이치 피티(H.P.T)! 그것이 그녀의 힘의 근원. 증오, 분노 그리고 고통・・・・・・ “

윌리엄스 신부는 말을 하다가 말고 하늘에 대고 고통에 겨운 비명을 질렀다. 신부의 몸이 꿈틀꿈틀하면서 얼굴 전체가 흉하 게 일그러졌다. 윌리엄스 신부는 용을 쓰면서 콱 막힌 듯한 목소 리로 라틴어의 기도문을 읊었다. 기도문을 읽는 동안 윌리엄스 신부의 몸 안의 변화는 조금 수그러드는 듯했지만, 대신 극도의 고통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윌리엄스 신부는 몇 번이나 그러기 를 반복하다가 인형처럼 엎어져서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준 후는 그런 윌리엄스 신부가 너무도 측은했고 가슴이 미어졌다. 준후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너무 불쌍해, 윌리엄스 신부님이………..?’

고개를 떨군 준후의 어깨에 한동안 심한 경련이 일었다. 잠시 후 눈물을 훔치고 고개를 쳐든 준후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안 돼. 침착하자! 침착! 신부님을 도와야 해!’

준후는 심호흡을 깊게 하고 나서, 자신이 윌리엄스 신부를 위 해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윌리엄스 신부의 몸 안의 악한 기운을 자신의 능력으로 몰아낼 수는 없을까?

준후가 윌리엄스 신부에게 다가가려 하자 신부는 비명을 내질렀다.

“가까이 오지 마. 네버, 네버! 절대 가까이 오지 말라구!”

“저는 신부님을 돕고 싶습니다. 분명히 무슨 방법이 있을 거예요!”

준후의 말에 아랑곳없이 윌리엄스 신부는 미친 듯 연신 고개를 저었다.

“가까이 오지 마! 가까이 오면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내가 일단 이성을 잃게 되면 그걸로 끝이야. 모든 게 끝이라구!”

윌리엄스 신부는 가까스로 말을 잇다가 몸을 뒤틀며 비명을 질러 댔다. 그러다가 몸을 덜덜 떨면서 손을 입안에 넣고 힘껏 깨무는 것이었다. 으드득 하는 소리가 윌리엄스 신부의 고통에 찬 비명 소리와 함께 토굴 감옥 안에 울려 퍼졌다. 그렇게 자해 를 해서라도 몸 안에 번져 가는 흡혈귀의 기운과 맞서 보려는 것 이었다. 준후는 차마 더 이상 그런 참혹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수 없었다.

“가! 어서! 멀리!”

준후는 반대편 벽에 붙어 서며 윌리엄스 신부에게서 눈을 돌 렸다. 울음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었는데도 목이 멘 울음소리가 안에서 새어 나왔다. 그런 준후에게 다시 윌리엄스 신부의 목소리 같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의 음성이 섞인 것 같기도 한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차라리 준후야, 나를 나를 죽여 다오. 제발 나를…………” 준후는 무슨 수가 있을 법도 한데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았다. “안 돼요! 그건…..”

준후는 소리쳤으나 윌리엄스 신부의 목소리는 점점 생기를 잃 고 풍선에서 바람이 빠져나가는 듯한,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변 해 갔다. 그러면서도 윌리엄스 신부는 계속 준후에게 참기 힘든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었다.

“플리즈…………… 나를 죽여 줘.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울 것 같 아. 제발 나를…………. 주님의 품 안으로 들어가면 그때야…………… 그 러면 모든 것이 편해지고…………. 제발, 제발…………….”

“그만! 그만해요!”

준후가 귀를 막고 외쳐 대는데 갑자기 또 다른 한 사람의 목소 리가 끼어들었다. 준후는 화들짝 놀라며 눈을 떠서 소리 나는 철 창문 바깥쪽을 쳐다보았다.

“호호호! 볼 만하군그래.”

그 목소리는 준후의 귀에도 익었다. 몇 번 들어 본 젊은 여자 의 목소리.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윌리엄스 신부의 입에서는 아 아아악 하고 엄청난 단말마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철창문 밖에 기대어 서 있는 자는 준후도 잘 알고 있는 금발 머리의 젊은 여자. 바로 코제트였다. 한참을 웃고 난 코제트가 이상한 손짓을 하고는 뭔가 중얼거리자 윌리엄스 신부가 풀썩 쓰러져 버렸다.

“코제트 당신은…….”

준후는 울먹거리면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눈꼬리를 파르르 치켜 올리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렇게 지고야 마는 것인가. 안 돼! 그럴 수는 없어!’

현암은 약해지려는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으며 대책을 찾으려 고 애를 썼다. 분명 저자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엄청난 힘을 가 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분명 인간일 터였다. 방법이 있을 텐데. 현암은 마치 조명처럼 빛을 발하고 있는 그의 주먹을 응시 했다. 월향검은 아직도 거인의 손안에서 파르스름한 빛을 띠며 날뛰고 있었다. 이번에는 월향검이 열기 대신 한기를 뿜어내는 지 그의 손 주변에 서리 같은 허연 기운이 맺혀 갔다.

월향검에 저러한 힘이 있는지는 현암도 미처 몰랐는데…………… 고통이 엄청날 텐데도 불구하고 그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지 월향검을 쥔 주먹을 펴지 않고 있었다.

‘아, 저런……. 월향이 저렇게까지 갖은 수를 쓰는데도 꼼짝 도 하지 않다니, 도대체 이건………….”

현암은 안간힘을 써서 태극기공의 여러 가지 술수를 부려 보 았으나 어느 하나도 제대로 먹혀드는 게 없었다. 하다못해 거인에게 두 대를 얻어맞으면서까지 가장 큰 파괴력을 지닌 ‘폭’ 자 결을 써서 가슴팍에 일격을 가했지만, 거인은 그 힘마저도 끄떡 없이 버텨냈던 것이다. 현암이 ‘폭’ 자결을 쓰면 두꺼운 강철판 도 뚫릴 정도였는데, 그 힘을 그대로 버텨 내다니 이건 도저히 인간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오히려 현암이 그 힘의 반탄력으 로 벽에 세게 부딪혔을 뿐이었다.

‘아, 이럴 수가…………. 월향검이 없으니 파사신검도 쓸수 없고 태 극기공의 구결도 하나도 먹혀들지 않다니. 방법이 없단 말인가.’ 

계속 가해지는 거인의 공격을 피하면서 현암은 속으로 비명을 질러 댔다. 분명히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텐데.

‘아, 이럴 줄 알았다면 평소 십팔자 구결의 운용을 어떻게든 익혀 놓을걸..’

현암은 못내 아쉬움을 참지 못하고 이를 갈았다. 한번 거사가 전수해 준 태극기공의 구결은 모두 십팔 구절로 되어 있었다. 열여덟자 중에 전반부의 아홉 자는 현암이 나름대로 습득하여 몸 에 익히고 있었지만, 후반의 아홉 자는 도대체 그 뜻이 어떤 것 인지 알 수가 없어서 구결만 암기해 놓고 실질적으로 응용하는 법은 몰랐기 때문이다. 원래 무공 구결이라는 것은 금방 보아 뜻 을 알 수 있게끔 구체적인 움직임이나 행동 방법 또는 기의 운행 방법이 씌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막연한 비유나 함유된 뜻으로 의 미를 알아내야 하기 때문에 여태껏 전반부의 아홉 자 구결밖에 해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전반부 아홉 자만으로도 보통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낼 수 있었기에 아직까지 후 반부 아홉 자 구결을 찾아내어 익히는 데에는 그다지 노력을 기 울이지 않았다. 현암은 평소 후회를 잘하지 않는 성격이었으나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상대가 이렇게 강할 줄 알았으면 진작 월 향검을 사용할 것을. 아니, 월향검이 아니라 다른 무기라도 하나 더 있었으면 검기를 주입해서 놈의 갑옷이라도 파괴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아! 도대체, 도대체………….’

현암은 몇 번이나 나가떨어져서인지 공력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거인에게 슬쩍 스치는 주먹 한 대라도 얻어맞 으면 참을 수 없을 정도의 통증이 오는 것이었다. 저자가 그렇게 현암의 기공력을 막아 내는 것을 보면 아무리 강철 갑옷이라고 해도 범상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주술에 의해 서 보호되는 갑옷을 입고 있고 또 주술력을 깃들인 공격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계속 몸을 피하던 현암은 완전히 구석에 몰렸다. 거인의 쇠사 슬이 다시 허공을 가르고 날아드는 순간, 현암은 기합성을 넣으 며 몸을 날렸다. 단전 아래까지는 아니지만 놈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무의식중에 양다리로 기공력을 밀어 보내며 몸을 솟구쳐 올린 것이다. 그러자 현암의 몸이 약 삼 미터 정도 솟아 무사히 거인의 머리 위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 그러나 허공으로 치솟자 무리한 기공을 운행한 탓인지 막힌 혈도들이 아렸고, 운공이 제 대로 되지 않아 기혈이 들끓어 올랐다. 현암은 거인의 공격을 피 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돌덩어리처럼 썩은 나무 더미 위로 떨어 져 내렸다. 다행히 떨어진 곳이 맨땅이 아니라서 그다지 다친 것 같지도 않았고, 나무 더미에서 먼지가 많이 일어나 거인의 시야 를 가렸는지 주춤거리며 더 이상 현암 쪽으로 다가오지 못했다. 그때 마침, 현암의 눈앞에 금속성의 물체가 보였다. 무너져 내린 나무더미 속에 숨겨져 있던 오래된 무기였다. 거인이 쥐고 있는 월향검이 은빛 광채를 내고 있어서 가까운 주변의 사물은 희미 하게 분간할 수 있었다.

창과 도끼가 한데 달린 핼버드라는 무기. 비록 녹이 잔뜩 슬어 있긴 했지만 현암은 일단 그것이라도 오른손에 움켜쥐었다. 그 리고 재차 거인의 쇠사슬 공격이 시작되기 전에 몸을 일으키면 서 오른손에 기공력을 집중했다. 시뻘겋게 녹이 슬어 있던 도끼 날에 기공력이 들어가자 녹이 사방으로 튀었고, 제법 번뜩거리 는 광채를 띠었다.

‘좋다. 이거라도 들고 싸울 수만 있다면……….

그러나 현암이 기공력을 집중하느라 몸을 움찔하는 사이. 거 인의 쇠사슬은 또다시 현암의 손을 노리며 날아들었고, 허무하 게도 현암은 기공력을 모아 놓은 도끼창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도끼창은 떨어지면서 남은 검기로 인해 뾰족한 창날 쪽이 땅에 푹 박혀 버렸다.

거인의 쇠사슬이 현암의 오른팔에 칭칭 감겼다. 잡아당기는 힘이 쇠사슬을 통해 현암에게 전해져 왔다. 현암도 오른 손목을 한 바퀴 비틀어 쇠사슬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태극기공 중 에 ‘단’ 자결을 써서 움켜잡고 있던 쇠사슬을 손목 힘으로 탁 하 고 당기면서 허공에 뿌린 뒤 혼신의 힘을 가해 내리치자 다행히 도 쇠사슬은 한 방에 끊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 반동력으로 현 암은 뒤로 두어 바퀴 굴러 내동댕이쳐졌다.

‘이런! 정말 방법이 없단 말인가.’

현암은 태극기공의 나머지 구절을 떠올려 보았다. 남은 아홉 자의 구결 중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을 법도 한데…………. 아니, 하 다못해 내팽겨쳐진 무기라도 손에 있으면 얼마라도 버틸 수도 있을 텐데.

‘가만 칼과 도끼? 칼과 도끼가 붙어 있다고?’

‘붙어 있다’는 것이 암시가 되어서였을까? 현암의 머릿속에서 아홉 개의 글자들이 일렬로 죽 붙어 서 있는 것이 빠른 영화 필 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글자들에 따라 구결들이 붙어 있는 모 습이 동시에 연상됐다.

첫 번째 글자에 따른 구결 중 첫 글자. 그리고 두 번째 구결에 따른 글자 중 두 번째 글자. 세로로 읽는 것이 아니라 그런 식으로 가로로 읽게 된다면…………. 그렇다! 그렇게 된다면 뭔가 뜻이 통하는 문구가 나올 수 있다!’

다시 한번 날아드는 거인의 쇠사슬을 피해 몸을 굴리면서 현 암은 방금 알아낸 것을 초조하게 되짚어 보기 시작했다.

태극기공의 열 번째 구결!

태극기공은 열여덟 자로 이루어져 있지만 자신의 생각이 맞 다면 구결은 열 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열 번째 구 결은 아홉 개의 글자로 위장되어 알아볼 수 없게끔 되어 있었다. 아홉 개의 글자는 의미가 전혀 없는 것 같았고 다만 그 글자들에 딸린 문장을 순서대로 번갈아 이어 나가면 하나의 무공 구결에 서 하나의 연이 만들어진다. 그것을 이용하면……….

거인의 쇠사슬이 자신을 노리고 정신없이 날아드는 바람에 현 암은 제대로 정신을 모으기 어려웠으나, 그래도 최선을 다해 피 해 가면서 구결들을 되짚어 보았다. 첫 번째 태극기공의 후반부 아홉 글자에 따른 구결들 중 첫 번째 글자들을 모으자 정말로 어 느 정도 뜻이 짐작이 가는 첫 번째 연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이거다! 태극기공의 열 번째 구결! 유(柔), 발(發), 금(擒), 나 (拿), 흡(吸), 추(推), 단(斷), 폭(), 투)에 이은 마지막 숨은 구결!’

두 번째 연, 그리고 세 번째 연.

현암은 어둠 속에서 날아오는 쇠사슬을 거의 본능적으로 피하면서도 구결들을 머릿속으로 하나씩 만들어 나가는 것에 일종의 희열을 느꼈다. 세 번째 연까지로 볼 때 이 구결은 이상하게도 기공력을 몸의 어느 부분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단전 부위로 모두 회수시키는 공력 운행법을 서술한 것이었다.

현암은 새로운 것을 알았다는 기쁨반 다급함 반에 지체 없이 구결대로 공력을 운행하기 시작했다. 몸 전체에서 공력을 단전으로 몰아 집중하자 단전에 화끈한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네 번째 연.

놈의 계속된 공격 때문에 제대로 정신을 모으기가 어려웠으나 현암은 이를 악물면서 구결을 좇아 공력을 돌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단전에 한데 몰린 공력을 집중된 상태에서 풀지 않고 겨울잠 에서 깬 뱀이 머리를 내밀듯이 다시 오른손으로 밀어 낸다. 그 래 이거다! 그렇게 되면 오른손 끝에 더 갈 곳이 없는 공력이 스 스로 엉기어 둥글게 응축되고…………….’

생각을 진행시키는데 거인의 쇠사슬이 차르르 소리를 내며 현 암의 발목에 감겼다. 현암의 몸이 휘청하면서 넘어진 채 주르륵 거인 쪽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지금 잡념이 들어가면 안 된다! 아・・・・・・・ 둥글게 엉긴 공력은 볼 수 있게 되고 시전자의 공력 깊이에 따라 측량할 수 없는 힘 을 내게 되니 이것이 바로……………’

거인은 이제 함성을 지르면서 현암을 끌어당겨서 강철 신발을 신은 육중한 발로 밟아 버리려는 모양이었다. 그 와중에도 현암 은 정신을 딴 데 쏟지 않고 마지막 구결을 머릿속에서 조합했다. ‘탄(彈)! 이게 바로 ‘탄’ 자결이다!’

더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현암은 오른손을 내뻗어서 그곳에 기공을 둥글게 뭉쳤다. 몸이 주르륵 끌려가고 있는 와중에서도 이를 악물고 공력을 모으자, 기공의 운행은 제대로 되었는지 오 른손 끝에 밝게 빛나는 구체 하나가 보였다. 오른손이 아니라 만 약 다른 부분에 맺는 수법이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손끝에 맺힌 기공탄(氣功彈)을 황홀한 듯이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리니 거인 이 발을 쳐드는 것이 보였다.

“탄!”

현암이 기합성을 지르며 거인을 향해 손가락을 튕기자 똘똘 뭉쳐 있던 기공의 덩어리는 총알 같은 속도로 날아 피할 틈도 없 이 거인에게 꽂혔다. 거인의 머리 위에 붙어 있던 또 하나의 작 은 머리에서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울리면서 사방이 번뜩하고 번갯불이 치는 것처럼 밝아졌고, 갑작스런 빛에 놀란 현암도 눈을 감으며 고개를 휙 돌렸다.


박 신부는 좁은 통로 안을 힘겹게 지나가고 있었다. 원래 덩치 가 커서 토굴로 된 좁은 통로를 지나가는 것은 상당히 힘들었고, 뒤따라오는 이반 교수도 훤칠한 키 때문에 여기저기 벽에 부딪 히면서 따라오고 있었다. 이반 교수가 가방 속에서 아주 작은 휴 대용 랜턴 하나를 꺼내서 박 신부에게 주었기 때문에, 어둠 속을 뚫고 나가는 데에는 별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도대체 코제트가 얼마나 빨리 이 동굴로 이동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분명 간발 의 차로 뒤를 쫓아 따라 들어왔으니 도망가는 발소리라도 들려야 마땅하건만, 그것조차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코제트는 공 간 이동 술수를 써서 먼 곳으로 이동해 버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박 신부의 뒤를 따라오던 이반 교수가 헐떡거리며 박 신부에게 물었다.

“그런데 코제트라는 여자의 공간 이동 술수라는 것은 정말 막 을 방법이 없나요? 그 여자가 그 방법을 쓴다면 이길 순 있더라 도 죽이지 않고 잡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글쎄요…….”

박 신부와 이반 교수는 잠시 쉬어 가기로 하고 숨을 돌렸다. 박 신부는 헐떡거리면서 이반 교수에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방법은 있을 겁니다. 어떤 흑주술도 완벽한 것은 없지요. 원 래 조화된 세상에서 일그러진 부분이 바로 그러한 힘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요. 힘을 몰아서 추구한다면 뭔가가 빠지게 마련입 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것처럼, 어떠한 강한 힘이 있 으면 분명히 그 힘에는 약점이나 깨뜨릴 수 있는 방법도 존재할겁니다.”

둘이 나누는 대화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두 사람의 사이 에 서서 따라가고 있는 여자아이는 뭐가 유쾌한지 콧노래를 흥 얼거리다가 둘이 멈추어 서자 자신도 멈추어서 헤헤거리는 것이 었다. 박 신부는 아무래도 아이를 데리고 가야 한다는 것이 마음 에 걸렸지만, 이제는 돌려보낼 수도 없었고, 돌아가라고 해 봤자 말을 들을 것 같지도 않았다. 이반 교수가 박 신부의 눈치를 살 피더니 말을 꺼냈다.

“다시 갑시다.”

일행은 걸음을 옮겨 한참이나 비밀 통로 속을 헤치고 나아갔 다. 일행이 한 모퉁이를 지나려 할 때 앞쪽에서 어떤 그림자가 랜턴 빛을 피해 어두운 뒤로 웅크리는 것이 언뜻 보였다. 박 신 부는 긴장하여 순간적으로 몸에서 오라를 뿜어냈고, 이반 교수 도 경계 자세를 취했다. 이반 교수가 박 신부를 향해 속삭였다.

“앞서 달아난 흡혈귀일지도 모릅니다. 조심하세요, 신부님.” 

“예. 염려 마세요.”

박 신부의 몸에서 밝은 오라가 뿜어 나오자 여자아이는 신기 한 듯 그것을 만져 보려 했으나 손에 잡힐 리 없었다. 박 신부가 일부러 힘을 가해서 밀어내지 않는 한, 박 신부의 오라는 사람에 게 위해를 주거나 물리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 박 신부는 랜턴 을 끈 다음 양손으로 베케트의 십자가를 쥐고 오라의 구체를 몇발 쏘았다. 그러자 고함 소리가 들리더니 두 명의 흡혈귀가 튀 어나왔다. 오라를 맞은 흡혈귀들의 얼굴은 고통과 분노의 표정 이 뒤엉킨 채 잔뜩 일그러져 있어서 흉물스러웠다. 박 신부가 오 라를 한층 더 강화시키며 베케트의 십자가를 내밀자 십자가에서 성령의 푸른 불길과 함께 묘한 노랫소리 같은 기도가 울려 나왔 고, 달려들던 흡혈귀들은 그 앞에서 꼼짝하지 못하고 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박 신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힘을 거두었 다. 지금은 코제트를 잡는 것이 우선이지 흡혈귀 몇몇이 문제가 아니었다.

“교수님, 어서 갑시다. 이제 빛을 비추면 적에게 들킬 것 같으 니 불을 켜지 말고 가죠.”

잔뜩 긴장해 있던 이반 교수가 긴장이 풀렸는지 고개를 설레 설레 저으며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신부님,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그런 힘을…………….”

“지금 그런 이야기 할 때가 아니오. 어서 지나갑시다. 저들을 따라가면 코제트가 있는 곳까지도 갈 수 있을 겁니다.”

박신부는 이반 교수의 랜턴도 끄게 한 후 어둠 속을 더듬으며 나아갔다. 마음은 급했지만 어디서 누가 또 덤벼들지 모르는 상 황인데다가 자꾸만 아이가 박 신부보다 먼저 앞으로 가려고 하 는 바람에 아이를 어르고 달래 뒤로 보내랴 사방을 경계하랴 자 연스레 걸음이 조금씩 늦춰졌다. 좁은 토굴을 따라 한참을 가던 중. 앞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뭔가 으르릉거리며 싸우는 소리, 그리고 비명 소리도 함께 어우러져 들려왔다.

“무슨 소리죠?”

박 신부는 혹시나 비명 소리가 앞서 뿔뿔이 흩어진 퇴마사 일 행이 내지르는 소리가 아닐까 하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온몸에 소름이 곤두섰다. 박 신부는 이반 교수에게 먼저 간다는 말 한마 디만 급히 던지고는 황급하게 벽에 붙어서 빠른 걸음으로 통로 끝에 다다랐다. 통로의 끝부분에 도착하자 널따란 광장이 눈에 들어왔다. 광장 안에는 어둠 속에서도 번쩍번쩍 빛나는 수십 개 의 발광체들이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니, 저건……”

박 신부는 떨리는 손으로 랜턴의 불을 켰다. 반짝거리는 것들 은 늑대들의 눈동자였다. 수십 마리는 족히 넘어 보이는 늑대들. 무리 사이에 늑대들과 같이 돌아다니는 사람의 모습도 보였다. 언뜻 보아 흡혈귀 같았다. 검은 망토를 두르고 있는 것이 다른 놈들과는 좀 다른 것 같았고, 한층 사악한 기운이 짙었다. 박 신 부는 직감적으로 그 남자가 늑대들을 부리고 있다고 느꼈다. 박 신부가 놀란 것은 비단 그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앞에는 갈 가리 찢긴 고깃덩어리와 핏자국이 널려 있었다. 그것은………….

“헉!”

참혹한 모습에 고개를 돌린 박 신부의 눈에 이번엔 저만치서 뒹굴고 있는 사람의 머리 하나가 보였다. 그건 방금 박 신부가 보았던 흡혈귀의 얼굴과 흡사했다. 늑대들과 같이 있던 흡혈귀 가 크크거리더니 머리를 발로 차서 늑대들 쪽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아니, 저건!’

짐작건대 그 머리는 방금 자신들을 막기 위해서 앞으로 나섰 다가 박 신부의 오라와 기도력에 눌려 뒤로 달아난 흡혈귀의 것 이 분명했다. 이 늑대들도 그냥 모여 있는 것은 아닐 테고, 눈에 서 저렇게 빛을 내는 것으로 보아 주술에 걸린 것 같았다. 일부 러 사람의 살을 맛보게 하기 위해 같은 편을 죽인 것일까?”

“도대체 저자들은, 저것들은……………..”

박 신부는 끔찍함에 치를 떨면서 분노에 찬 고함을 질렀다. 박 신부가 오라를 발하여 주변을 밝히자 늑대들은 으르릉거리며 위 협하는 듯했지만, 선뜻 박 신부에게 덤벼들지는 않았다. 잠시 후 여자아이가 박 신부를 따라 광장 안으로 들어왔고, 이어 이반 교 수가 들어오더니 검은 망토를 두른 흡혈귀를 보고 소리를 쳤다.

“저놈! 저놈이 바로 윌리엄스 신부님을 납치했던 그 흡혈귀, 흡혈귀 두목이 분명합니다!”

아이는 늑대들이 으르렁거리고 있는데도 개의치 않고 앞으로 나가려고 했고, 박 신부는 아이를 잡아 급한 김에 옆구리에 끼었 다. 여자아이는 신부가 자기를 잡자 크게 저항은 하지 않았으나 답답했던지 떼를 쓰듯 허공에서 손발을 휘저어 댔다. 박 신부는 무서움을 모르고 투정을 부리는 아이를 보고는 기가 막혔지만 지금은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박신부가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니 자신을 에워싸고 있 는 늑대 무리는 정상이 아니었다. 눈에서 번쩍번쩍 빛을 발하고 있고, 어떤 놈은 몸의 일부가 부스러지고 썩어 가고 있었다. 사 체를 가지고 만든 늑대였다. 토굴 안은 곰팡이 냄새와 사체 썩는 냄새로 가득해서 가슴이 답답했다. 뒤에서 이반 교수가 빠르게 중얼거렸다.

“저것들은 보통 늑대가 아니라 흡혈 늑대들입니다. 총을 맞아 도 죽지 않습니다. 저것들을 상대하자면……………”

이반 교수가 말을 꺼내는데 뒤에서 검은 망토로 몸을 둘러싼 흡혈귀가 높은 톤의 이상한 휘파람을 불었다. 토굴의 광장 안은 휘파람 소리로 메아리쳤고 그 소리를 들은 흡혈 늑대들은 일제히 박신부와 이반 교수를 향하여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제 쥐 떼는 승희에게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까지 다가온 모 양이었다. 사각사각하는 소리와 함께 파도가 치는 듯한, 수천 마 리의 쥐 떼가 몰려드는 소리가 지척에서 들려왔고, 그 끔찍한 느 낌은 당장에라도 손끝에 와 닿을 듯 온몸에 전해졌다. 쥐 떼는 승희의 흔적을 눈치채고 전력을 다해서 뒤를 쫓고 있었다.

‘절대, 절대 잡혀서는 안 돼!’

승희는 달리 갈 길이 없음을 깨달았다. 쥐 떼에서 조금이라도 멀리 도망치려면 흡혈귀 쪽으로 돌진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를 악물고 얼마나 달려갔을까? 갑자기 앞에서 뭔가 불빛 같은 것이 보였다. 보통의 촛불이나 횃불과 같은 빛이 아니라 형광등처럼 창백하고 암울한 빛이었다.

‘저 흡혈귀가 전등을 가지고 다니는 것일까?’

그러나 등 뒤에서 쥐 떼가 쫓아오고 있는 마당에 그런 것에까 지 세심히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승희가 다시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가자 램프를 들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얼굴이 묘하 게 일그러진 감정도 없고 지능이 모자라는 얼굴. 두 눈은 시뻘 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입 양쪽에는 뾰족한 송곳니가 튀어나와 있었다. 흡혈귀가 서 있는 뒤쪽으로 철문이 보였다. 저 철문은 미로를 빠져나가는 출구가 분명했다. 이 흡혈귀는 승희가 쥐 떼 에게 몰리다가 만에 하나 도망쳐 나갈 경우를 대비하여 출구 앞을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사각거리며 파도치는 듯한 소리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흡혈귀는 승희가 모습을 드러내자 히죽거리며 입을 벌리고 희한 한 괴성을 내질렀다. 승희는 눈앞의 흡혈귀도 무서웠지만 등 뒤 에서 닥쳐오는 쥐 떼 때문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승희는 가부좌를 틀 겨를도 없이 그 상태 그대로 몸에 힘을 모았다. 만약 안 된다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입가에는 도리어 허탈한 웃음이 터졌다.

‘안 되면 울어 버릴 거야!’

흡혈귀가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려는 순간, 승희는 눈을 질 끈 감으며 힘을 모아서 흡혈귀를 향해서 내뿜었다. 예기치 않은 엄청난 힘을 받은 흡혈귀는 감전된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면서 비명을 질러 댔다.

“자. 더! 더! 더! 죽어! 죽어, 인마!”

승희는 자신이 힘을 가하자 흡혈귀가 고통을 받는 것을 보고 는 소리를 질러 대면서 더욱더 힘을 모아 거세게 흡혈귀를 밀어 붙였다. 흡혈귀는 몸을 꼬다가 제대로 서 있기도 어려운 듯 뒤 로 물러서면서 철문에 몸을 기대더니 비명을 지르며 철문 뒤로 숨으려 했다. 승희는 닫히려는 철문 사이로 재빨리 손을 집어넣 었다. 그러자 안에서 뭔가가 승희의 손에 잡혔다. 누군가의 손 목…………. 승희는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이를 악물고는 문틈 사 이로 힘을 밀어 보내며 그 팔을 끌어당겼다. 철문을 닫지 못하게 하려면 이 수밖에 없었다. 문 뒤에서 캬악 하는 비명과 함께 손 목이 버둥거리는 느낌이 승희에게 전해졌다.

‘흡혈귀가 분명하지? 가만, 허공으로 힘을 실어 보낼 게 아니 라. 아예 이놈의 손목을 통해서………….’

승희가 흡혈귀의 손목을 통해서 힘을 밀어 보내려는 순간, 철컹하고 뭔가에 밀리면서 철문이 닫히려 했다. 놀란 승희가 문틈 사이로 더욱 힘을 밀어 넣었다. 그러자 문 뒤에서 처절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무언가에 세게 밀린 듯 철문이 쾅 소리를 내면서 닫혀 버렸다. 뭔지 알 수 없는 것이 퍼퍽 튀어 오르며 승 희가 잡고 있던 손목이 축 늘어졌다.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던 흡혈귀는 문틈으로 기운이 새어 들어오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팔을 자르면서 있는 힘을 다해 문을 밀어 닫은 것이다.

“아아악!”

승희는 떨어져 나간 팔목을 내팽개치며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지르고는 뒤로 나가떨어졌다. 흡혈귀가 떨어뜨린 램프의 빛에 비추어져 저만치에서 꾸물꾸물하며 밀려드는 검은 파도 같은 것 이 보였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쥐 떼………….

“아아악! 안 돼! 안 돼!”

승희는 다급하게 철문의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그러나 흡혈귀 가 잡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문을 잠가 버린 것인지 열리지 않 았다. 승희가 있는 힘을 다해 다시 한번 당기자 문이 조금 들썩 하다가 닫히는 것을 보아 안에서 그 빌어먹을 흡혈귀 놈이 문을 잡고 버티고 있는 듯했다.

“열어! 문 열어!”

승희는 발작적으로 소리를 쳤지만 그런다고 흡혈귀가 문을 열어 줄 리는 없었다.

“죽어 버렷!”

승희는 원망스러운 문을 향해 모든 힘을 모아 단숨에 밀어붙 였다. 승희가 혼신의 힘을 일격에 퍼붓자 문 안쪽에서 퍼버벅 하 는 소리가 들렸다. 승희는 힘을 다 쏟아부어서인지 몸조차 제대 로 가눌 수 없었다. 승희는 쓰러지려는 몸을 가누려 무의식중에 문고리를 쥐었고, 있는 힘을 다해 당기자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 다. 문은 빽빽했지만 적어도 흡혈귀의 저항은 없었다.

‘열렸다! 살았어!’

승희가 안도감에 긴장을 늦춘 순간, 어느새 쥐 떼 중 빠른 놈 몇이 승희의 다리께로 뛰어오르려고 했다. 승희는 비명을 지르 면서 자신도 모르게 몸을 튕겨서 쥐를 차 버린 뒤, 최후의 힘을 짜내어 재빨리 철문을 열고 안으로 쓰러지듯 몸을 당기면서 철 문을 닫았다. 승희가 문을 닫음과 동시에 문 바깥에서 아삭아삭 하는 소리와 쿵쿵쿵 부딪히는 소리, 철문을 속절없이 갉아 대는 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반대편, 즉 쥐들이 있는 쪽에서는 당겨 야만 문이 열리게끔 되어 있어서 쥐들이 아무리 부딪혀 봐야 문 이 열릴 염려는 없었지만, 승희는 그래도 빗장 같은 것이 없나 안쪽 고리를 살펴보다가 그만 기겁을 했다. 거기에는 사람 손목 하나가 쭈글쭈글하게 마른 채 박살이 나서 붙어 있었다. 놀란 승 희가 욕지기를 하며 문에서 물러나서 뒤로 몸을 돌렸다.

‘이건 흡혈귀의 손목일 텐데………… 그 흡혈귀는……………..’

그렇다면 자신이 힘을 몰아넣을 때 문이 울린 것이 흡혈귀가 터지는 소리였단 말인가? 승희는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천천 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흡혈귀의 형체를 한 것이 벽에 반 쯤 기대어 서 있었다. 승희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사방으로 터져 버린 듯, 아직도 건들거리면서 서 있는 모습. 그러나 흡혈귀는 만신창이가 된 채였는데도 완전히 쓰러지지 않고 금방이라도 승희에게 덮쳐들 것처럼 흔들거렸다.

“으아아악!”

승희는 참지 못하고 길게 비명을 질렀다


현암은 ‘탄’ 자결을 쓰고 난 후,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큰 술수를 쓸 때면 으레 그랬지만, 현암은 멀리 떨어져 있는 승희의 몸에서 힘을 조금 끌어다 쓸 생각을 하고 ‘탄’ 자결을 운용한 것 인데, 이상하게도 힘이 아주 조금밖에 전달되지 않았던 것이다. 온몸의 힘이 바닥난 연못처럼 고갈되어 버린 기분이었다. ‘탄’자 결은 아홉 개의 구결을 합친 것이라 그런지 힘의 소모 도 그만큼 큰 것 같았다. 부동심결 이상의 힘이 들었다. 만약에 자신의 공격이 태극기공의 다른 구결들을 사용했던 것처럼 수포 로 돌아간다면?

그러나 카메라 플래시를 눈앞에서 본 것처럼 ‘탄’ 자 결의 잔 상이 채 가시기도 전에, 쿵 하며 거대한 것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현암은 놀라 몸을 부르르 떨면서 간신히 눈을 떴다. 현암의 눈에 거대한 고목나무처럼 뒤로 넘어져 있는 거인의 모습이 들어왔다.

‘성공했구나! ‘탄’자결. 정말 무서운 힘을 지니고 있구나!’

현암은 후들거리는 몸을 일으켰다. 거인이 완전히 쓰러진 것 이 아니라면 이제 자신은 대적할 아무런 힘도 없었다. 현암은 경 계를 늦추지 않고 슬며시 다가갔다. 월향검이 귀에 익은 귀곡성 을 내면서 쓰러진 거인의 손을 빠져나와 현암의 왼손으로 날아 들었다. 현암은 왼팔이 부러진데다 월향검을 받기 위해 손을 올 릴 기운조차 없었다. 오른손으로 왼팔을 간신히 들어 올려서 왼 손 팔목에 묶어 놓은 칼집을 내밀어 월향검을 받아들였다. 월향 검이 현암의 손안으로 돌아가자 사방을 비춰주던 희미한 빛마 저도 사라져 쓰러진 거인의 모습을 자세히 확인할 수가 없었다. 현암은 조심스럽게 벽을 등지고 돌며, 불을 밝힐 만한 것이 없을 까 살펴보았다. 아까 벽난로를 통해서 들어왔던 것이 이 거인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억나는 바로는 거인은 빛을 내는 물건을 들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것이 근처에 떨 어져 있지 않은가 하여 주변을 찾고 있는데, 현암의 귓속으로 속 삭이는 듯한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암은 소름이 쭉 끼쳤다. 

‘이놈이 아직 쓰러지지 않았단 말인가? 머리 위에 있었던 또 하나의 머리가 내는 목소리인 것 같은데.’

목소리는 언뜻 듣기에도 기분 나쁜 욕설 같았다. 현암은 긴장 하여 잠시 숨을 멈추고 서서 동태를 살폈으나, 움직이는 것은 물 론이고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기분 나쁜 속삭임만 계속 들려올 뿐……. 현암은 운기하여 공력을 회복하려 애쓰면서 주 변을 밝힐 만한 것을 찾았다.

현암이 주섬주섬 사방을 뒤적이고 있는데 저쪽 통로에서 부 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기공력이 회복되려면 적어도 삼사십 분 이상 있어야 하는데 적과 또 마주친다면 곤란했다. 놀란 현암 이 흠칫하면서 몸을 뒤로 기대어 벽에 붙였다.

“현암 씨. 어디 있어요? 현암 씨!”

연희의 목소리였다. 귀에 익은 목소리가 반가워 현암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연희 씨, 여기예요!”

“현암 씨. 뭐 하고 있어요?”

“불을 가지고 이쪽으로 와 보세요. 나는 도대체……………”

현암이 뭐라고 말을 이으려는데 잠깐 방심한 사이 등 뒤에서 캭 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가 현암의 뒤통수를 노리고 덮쳐들었 다. 그 소리와 동시에 현암의 비명 소리가 들리자 연희도 덩달아 비명을 질렀다. 안쪽에서는 현암과 괴성을 지른 괴물이 뒤엉켜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 연희는 무섭고 놀랐지만 그래도 어떻게 도움을 줄 방법이 없을까 하고 무심코 손을 뻗다가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딱딱한 것에 손이 닿았다. 딱딱하면서도 온기가 남아있는 매끈한 감촉, 그리고 둥그런 금속 갓.

‘이건…………….”

램프였다. 불을 붙일 만한 것도 이 근처에 있을 터였다. 연희 는 램프를 집고 서둘러서 주변을 더듬어 보았다. 뭔가가 잡혔다. 성냥이었다.


승희가 비명을 지르자 한쪽 구석에 서 있던 참혹한 형상의 흡 혈귀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앞으로 털썩 쓰러졌다. 흡혈귀의 잔해가 으깨지면서 사방으로 튀었고, 그 모습을 본 승희는 비명을 질렀다.

‘내가 내가 방금・・・・・・ 이자를 이렇게…………’

속에서 뭔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던 승희가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참으려고 철문에 손을 기대는 순간, 철문 사이로 뭔가가 와글거리면서 밀려 들어왔다.

“앗! 쥐, 쥐 떼!”

승희는 쥐 떼가 자기를 쫓고 있었다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다. 승희는 흡혈귀를 돌아볼 새도 없이 비명을 지르면서 문을 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건 실수였다. 승희 쪽에선 당겨야 닫히는 문 이었는데 그걸 밀어 댔으니 오히려 문을 열어 버린 꼴이었다. 

“아아악! 저리 가!”

승희가 놀라서 문을 있는 힘을 다해서 당기자 틈새를 통해 들어오려던 쥐 몇 마리가 짹 소리를 내며 문틈에 끼어 으스러졌다. 그 촉감이 으드득하고 승희의 손에 전해졌다.

“으아악! 싫어! 싫어!”

승희는 비명을 지르며 울음과 욕지기를 한꺼번에 터뜨렸다. 눈앞에 어른어른하게 보이는 것은 쥐들의 눈동자와 흡혈귀의 터져 나간 뱃속. 그리고………….

승희의 의식이 희미해져 가는 중에도 문 바깥쪽에서는 수천 마리의 쥐들이 몸으로 문을 부딪치는 엄청나게 요란한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여러 마리의 흡혈 늑대가 기이한 소리를 내며 박 신부와 이반 교수를 향해 뛰어오르는 순간, 박 신부는 기도력의 오라 막을 폈 다. 박 신부의 오라는 물리력에는 그다지 강한 저항력을 가지지 못했다. 허나 이 흡혈 늑대들은 부정한 존재들이니 감당할 수 있 을 것 같았다. 박 신부의 예상은 맞아 늑대들은 성스러운 오라 막에 범접하지 못하고 달려들었다가 고통스러운 울음소리를 내 며 튕겨 나갔다. 예전에 독일에서 늑대 인간들과 싸웠을 때 그랬 던 것처럼. 그러나 늑대들이 부딪혀 오는 물리적인 힘은 오라 막 을 치고 있는 박 신부에게도 전해질 수밖에 없었다. 벌써 십여 마리나 되는 늑대가 몸으로 부딪쳤다가 튀어 나갔는데도 불구하고 늑대들은 계속해서 오라 막 속의 박 신부와 이반 교수, 그리고 여자아이를 향하여 달려들었다.

흡혈귀는 기묘하게 웃더니 반대쪽으로 슬며시 빠져나가 버렸 다. 아마 늑대들만으로도 이들을 상대하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박 신부가 힘이 부쳤는지 조금씩 주춤거리 며 물러서자, 이반 교수가 입술을 깨물고는 배낭 속을 뒤졌다. 이반 교수는 길쭉한 쇠뭉치 세 개를 꺼내더니 그중 두 개를 붙이 고 다른 하나를 철컥 소리가 나도록 끼었다. 자동으로 연사가 되 는 권총이었다. 도대체 이반 교수의 배낭 속에는 얼마나 많은 물 건이 들어 있는 것일까? 박 신부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흘렀다. 

“지옥으로!”

이반 교수가 맹렬한 기세로 총을 쏘아 대자 늑대들은 고통스러운 울부짖음과 함께 몸을 비틀다가 쓰러졌다.

“아니! 저것들은 흡혈 늑대일 텐데 어떻게 총으로…………”

이반 교수가 뛰어오르는 한 마리의 늑대에게 총을 쏘아서 벌 집을 만들고는 박 신부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이건 보통 총알이 아닙니다. 축복받은 십자가를 녹여 만든 은 총알이죠.”

자동 권총에는 기다란 탄창이 달려 있었다. 이반 교수는 박신 부의 오라 막을 향해 뛰어드는 늑대들을 쉴 새 없이 맞혀 쓰러뜨 렸고, 박 신부도 오라 구체를 쏘아 댔다. 땅바닥에 쓰러진 늑대들은 버둥거리다가 곧 늘어져 버렸고, 금세 몸이 썩어 먼지처럼 부스러지더니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십여 마리의 늑대들이 사라져 버리자 이반 교수의 총도 달 칵달칵하고 총알 떨어진 소리를 냈다. 이반 교수는 무표정한 얼 굴로 탄창을 갈아 끼웠다. 박 신부는 코제트와 싸우면서 기력을 많이 쓴데다 흡혈 늑대들의 공격을 막아내느라 지친 상태였다. 지친 것치고는 몸이 이상하게 뻐근했다. 그러나 박 신부는 너무 힘을 써서 그런가 보다. 가볍게 생각하고는 오라력을 반 정도로 줄인 다음 안을 둘러보았다. 안은 끔찍하게 뜯겨 버린 흡혈귀의 사체와 썩어 없어진 흡혈 늑대들의 흔적들, 그리고 땅바닥에 여 기저기 떨어져 있는 은 총알로 가득했다. 이반 교수도 박 신부의 시선을 따라가다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할까요. 박 신부님, 박 신부님은 준후를 구하러 가시 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저는…………….”

“아니, 그럼 이반 교수님은 같이 안 가십니까?”

“저는 도망친 흡혈귀를 상대하고 싶습니다. 저 흡혈귀야말로 저번에 윌리엄스 신부님을 납치해 간 놈이고, 최근 이 일대에서 벌어진 일련의 흡혈귀 사건에 주모자라고 할 수 있는 놈입니다. 저놈은 반드시 내 손으로 처치하고 싶어요.”

“하지만 이반 교수님. 혼자선・・・・・・ . 혼자의 힘으로 가능하겠습니까?”

“제 전공이 뭡니까? 코제트의 이상한 주술은 제가 감당할 수 없지만 흡혈귀에 대해서만은 자신 있습니다. 믿어 주시고 흡혈 귀는 제게 맡기세요. 신부님은 어서 코제트를 추적하세요. 둘로 분산되었지만 한쪽이라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어느 쪽이든 먼 저 일을 처리하고 난 후에 합류하기로 하지요.”

이반 교수는 자동 권총의 노리쇠를 철컥 소리 나게 당겨서 탄 알을 장전했다. 그러고는 박 신부가 옆구리에 끼고 있는 여자아 이를 쳐다보고 말을 계속했다.

“이 아이에게 어떤 힘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코제트가 이 아 이를 무서워하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박 신부님 코제트는 사악 한 여자입니다. 인정사정 봐주면 안 됩니다.”

“그렇지만………….”

이반 교수의 말은 박 신부의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사실 힘 하나만 가지고 따지면 퇴마사 개개인은 코제트를 이길 수 있었 다. 그러나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독한 수단은 피해 왔고, 그러 다 보니 자연히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지 못하고 언제나 열 세에 몰리게 되었다. 이반 교수의 말은 흡혈귀들과 상대할 때 박 신부의 행동을 보고 다시 한번 던지는 충고라고 할 수 있었다. 어쩌면 자신들의 그런 주춤거리는 행동 때문에 코제트와 같은 요녀를 번번이 놓쳐서 계속 큰 사상자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차 없는 수단으로 단번에 목숨을 빼앗아 버리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일일까? 정말 좋은 일일까? 박 신부는 아무 말 없이 이반 교수에게 끄덕 고갯짓을 하고 몸을 돌렸다.


현암은 등 뒤에 달라붙은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거 인이 자신의 ‘탄’자 결에 의해 쓰러진 마당에 또 무엇이 남아서 이렇게 덤벼드는 것일까. 적잖이 당황했다. 더군다나 그것은 현 암의 등 뒤에 바싹 달라붙어서 현암을 깨물고 괴성을 지르며 뭐 라 지껄여 대고 있었다. 높은 목소리는 조금 전의 목소리와 흡사 했다.

이건 그 목소린데……………

현암은 아찔했다. 어떻게 머리가 몸에서 자유롭게 분리되어 떨어져 나갈 수 있단 말인가. 현암은 손을 뒤로 뻗어서 정체 모 를 것을 떼어 내려 했으나, 머리카락이나 손에 잡힐 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고 잘 무두질된 부드러운 가죽 같은 감촉이 느껴졌 다. 현암이 손을 뒤로 뻗어 놈을 떼어 내려 하자 놈은 현암의 목 덜미를 인정사정없이 깨물었다.

“에잇! 이런……..

현암이 몸을 비틀면서 놈을 떼어 내려고 발버둥을 치는 사이, 저쪽에서 밝은 불빛이 확 하고 들어왔다. 불빛 바로 뒤에 연희의 모습이 보였다.

“연희 씨! 이게 도대체 뭐예요?”

현암이 말을 하려는데 등 뒤에 붙은 놈이 다시 한번 현암의 목 덜미를 꽉 깨물었다. 이번에는 통증이 굉장히 심했고, 통증을 이 기지 못한 현암이 하던 말도 멎은 채 신음 소리를 냈다. 그런 모 습을 본 연희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작은 사람이에요! 어서 그자를…………. 어. 그런데 이상…… 도 대체…….”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현암은 요란한 기합 소리를 내면서 있는 힘껏 빠르게 벽 쪽으로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반대 편 벽에 놈을 눌러 버릴 생각이었다. 현암이 무서운 속력으로 뒷 걸음쳐 가자 놈은 현암의 의도를 눈치챈 듯 힘을 풀고 떨어져 내 렸다. 몸을 굴려 피하려는 놈보다 현암이 놈의 의도를 간파하는 것이 더 빨랐다. 놈이 현암의 발 사이로 몸을 틀어 빠져나가려는 순간, 현암은 중심을 잡고 한쪽 다리를 뒤로 짚어서 속도를 늦추 며 다른 한쪽 발로 놈을 냅다 차 버렸다. 캥 하는 소리가 들리면 서 현암의 강한 발길질을 당한 놈은 거인이 쓰러져 있는 곳까지 힘없이 데굴데굴 굴러갔다.

현암은 간신히 한숨을 내쉬고는 목덜미 뒤쪽을 만졌다. 끈끈 하게 피가 배어 나온 것으로 보아 물어뜯긴 부위가 꽤 큰 것 같 았다. 행동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지만, 사람에게 물어뜯겼 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찜찜했다. 현암의 등 뒤에 붙었던 놈이 떨어져 나오자 연희가 램프를 들고 현암 곁으로 다가왔다.

“도, 도대체 저게 뭐예요?”

현암은 말없이 손짓으로 연희에게 조금 더 가까이 비추라고 하고는 거인과 거인 옆에 쓰러져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놈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쓰러져 있는 거인은 키만 큰 것이 아니라 덩치도 우람해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했다. 온몸에 굉장히 두꺼운 철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갑옷에는 희한한 도형 과 문자들이 잔뜩 새겨져 있었고, 철갑의 명치 부분에는 마구 깨 지고 움푹 팬 자국이 있었다. 현암의 ‘탄’ 자결을 맞은 부분 같 았다. 게다가 갑옷의 이음매들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서 지금 거인이 몸을 일으킨다 해도 갑옷을 몸에 걸칠 수는 없을 듯했다. 현암은 그 도형들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정확한 뜻이야 알 수 없었지만,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 었다.

이건 다른 주술이나 힘을 막는 주술이 깃들어진 도형인가 보 군. 그래서 내 태극기공력이 힘을 발휘하지 못했구나!’

그런데도 불구하고 ‘탄’ 자결한 방이 거인을 이렇게 때려눕 히고 갑옷을 박살 내 버린 것을 보면, 그 위력이 얼마나 큰지 새 삼 실감할 수 있었다. 갑옷을 자세히 살펴보다가 거인의 얼굴을 본 현암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거인은 엄청난 체구에 걸맞지 않게 천진난만하다 못해 약간은 모자라 보이는 얼굴이었다. 거인은 눈을 치켜뜨고 있었는데 눈동자가 뒤집혀서 그런지, 아니면 아까 현암이 언뜻 본 것처럼 검은자위가 없는 장님인지, 흰자 위만 보여서 더욱더 끔찍했다.

현암은 거인 옆에 뒹굴고 있는, 자신의 목덜미를 물었던 정체 불명의 것을 발로 툭 차 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훌렁 벗겨진 가죽 덮개 안에 조그마한 사람이 신음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아 닌가! 끔찍하게도 이 사람은 양쪽 팔과 다리가 모두 없었고 몸뚱 이와 얼굴만 달려 있었다. 그리고 이 사람을 에워싼 껍질에는 갈 고리가 여러 개 달려 있어서 약간의 튀어나온 팔다리의 부분으 로 힘을 가하면 조종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현암은 모든 게 정리된 듯 머리가 말끔해졌다. 놈은 처음엔 거인의 머리 뒤에 달라붙어 있다가 허리의 힘으로 뛰어올라서 현암의 등 뒤에 달라붙었던 것이다. 현암을 물어뜯 어서인지 입가에 피가 잔뜩 묻어 있었고, 현암의 발길질에 꽤 큰 타격을 받았는지 계속 신음 소리를 냈다. 처음에 거인이 머리가 두 개 달린 것처럼 보였던 것은, 이자가 거대한 머리 위에 가죽 덮개를 뒤집어 쓴 채 올라타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암은 손을 뻗 어서 연희를 가까이 오게 했다.

“연희 씨. 이자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들으실 수 있어요?”

연희는 미간을 찌푸리며 참혹하게 쓰러져 있는 거인과 난쟁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여튼 이자의 모습을 바라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대강은 알아들을 수 있어요. 별 특이한 말은 아니고 이 지방에서 쓰는 말인데요. 저도 능통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요?”

연희가 인상을 찌푸렸다.

“현암 씨에게 저주를 하고 있어요. 죽여 버리고 만다고.”

“흠! 그러고요? 또 뭐라고 하는지 들어 봐요. 무슨 흉악한 주 술을 부리려 하면 막아야 돼요.”

이자는 계속 고통에 찬 신음 소리를 뱉어내면서도 중얼중얼 떠들어 대고 있었고 연희는 눈살을 찌푸린 채 한동안 그 소리를 듣더니 입을 열었다.

“거인이 쓰러진 것에 대해서 굉장히 분노하고 있어요. 저 거인 의 이름은 ‘미르챠’인 것 같군요. 현암 씨가 미르챠를 죽였다고 믿고 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난 방어했을 뿐이었는데. 이자가 다짜고 짜 공격을 해 왔는데 별수 없잖아요! 그리고 저 거인은 죽지 않 았어요. 기절했을 뿐이죠.”

계속 말을 하려는 현암을 연희가 제지하며 난쟁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앗! 아니 잠시만요. 지금 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이름을 말하고 있어요.”

연희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현암이 되물었다.

“누구에 대한 거죠. 연희 씨?”

“코, 코제트.”

호호호, 꼬마야. 기분 어때?

코제트는 희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직접 말로 소리를 내 지 않더라도 상대방의 마음속에 뜻을 전달하는 텔레파시와 유사 한 술수를 써서 준후의 정신을 혼돈스럽게 만들었다. 그 소리는 마음으로 울리는 것이라 귀를 막는다고 해도 똑똑히 들렸다. 준 후는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약간의 부적들을 허공에 띄워 서 윌리엄스 신부가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으나, 신부는 이 제 더 이상 참기가 힘든지 괴성을 지르며 준후가 있는 쪽으로 점 점 다가오려고 했다.

“준후! 컴. 오, 노우! 어서…………. 피해, 피, 피해…………. 아니. 이리 와 응? 흐흐…………… 이리 와라, 준후야, 노우! 노우! 어서 피………… 피해!”

윌리엄스 신부는 극도의 혼란 상태에 빠져들고 있었다. 몸 안 에서 꿈틀거리며 윌리엄스 신부의 몸을 정복하려는 흡혈귀의 기 운을 이성으로 이겨 내려고 안간힘을 쓰면서도, 서서히 흡혈귀 의 기운에 잠식당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전까지는 어느 정도는 흡혈귀의 기운을 이겨 내고 있었지만, 코제트가 나타난 이후 윌리엄스 신부의 행동이 급변한 것으로 보아 뭔가 술수를 써 서 신부의 상태를 악화시키고 있음이 분명했다.

“코제트! 이런 미워………….”

준후는 코제트의 악랄한 행위에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철창 바깥을 이를 악물고 노려보았다. 철창 밖에는 잔인하게도 화사 하게 웃고 있는 코제트와 흡혈귀가 되어 버린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서 있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윌리엄스 신부님과 싸울 수는 없 어. 차라리 코제트와 싸워 죽는 한이 있어도…………….’

준후는 순간적으로 부적을 운용하던 수인(手印)을 고쳐 맺고 는 철창문을 향하여 뇌전을 쏘았다. 그러나 철문은 덜컹거리기 만 할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낡고 허술해 보이기는 해도 뇌전 한 방에 부서질 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코제트가 빈정거리 며 웃는 소리는 준후의 마음속에 더욱더 강하게 전달되어 왔고, 준후는 화가 치밀어 올라 주체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저문, 저 문을…………!’

준후는 수인을 바꿔서 멸겁화의 기운을 철창 밖으로 뿜어냈 다. 철창을 노리고 쏜 것이 아니라 저쪽 끝에 서 있는 코제트를 향하여 불덩어리를 날린 것이다. 그러나 코제트의 깔깔거리는 목소리가 사방에 울리자 주변에 서 있던 흡혈귀들이 앞을 막아섰고, 준후가 쏘아 낸 겁화의 기운이 그중의 한 명에게 적중하여 시뻘건 불덩어리로 변했다.

꼬마야. 한 명 죽였구나. 잘했어. 호호호. 좀 더 죽여 보련? 죽이는 것도 아주 재미있단다.

“뭐, 뭐라고?”

후는 몸을 떨었다.

‘죽이다니, 내가 사람을 죽이다니. 그렇다면 코제트는 나를 화 나게 만들어서 주변을 둘러싼 흡혈귀들을 죽이게끔… 안돼! 침착, 침착!’

준후가 흡혈귀 하나를 태워 버린 데 대해 충격을 받고 정신이 흐트러지자 허공에 떠 있던 부적들도 힘이 약해진 듯했다. 그 틈 을 놓치지 않고 어느새 흡혈귀가 되어 버린 윌리엄스 신부가 준 후를 덮쳤다. 준후의 얼굴 바로 앞에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윌 리엄스 신부의 얼굴이 보였다. 평상시엔 미소로 가득했던 윌리 엄스 신부, 그러나 지금 그의 얼굴은 완전히 흡혈귀로 변해 있었 다. 양쪽 눈은 새빨갛게 빛났고 입에는 기다란 이빨이 솟아 나왔다.

준후는 사정없이 덤벼드는 윌리엄스 신부를 밀어내려고 안간 힘을 쓰며 버텼다. 허공의 부적들을 쏘면 물리칠 수 있었지만 차 마 그럴 수가 없었다. 부적들은 모두 맥없이 땅에 떨어져 버렸고 그 모습을 보면서 준후는 울음 섞인 소리를 질렀다.

“이러지 마세요! 이러면, 이러면 안 돼요! 정신을 차려요. 신부님. 어서어서 정신을…………. 신의 이름으로…………….”

준후가 애타게 소리를 지르자 윌리엄스 신부의 흉악하게 일그 러졌던 얼굴이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왔고, 준후를 움켜잡고 있 던 손의 힘도 많이 약해졌다.

“준, 준…….”

윌리엄스 신부의 입에서 원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주, 준후, 저, 나는 나, 나…………….”

“윌리엄스 신부님, 힘을! 스스로를 믿고………….”

준후의 외치는 소리가 채 끝을 맺기도 전에 철창 바깥에서 코 제트가 주문 외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주변의 흡혈귀들이 괴 성을 지르면서 철창을 잡고 흔들어 댔고, 간신히 정신을 차리던 윌리엄스 신부는 다시 흉포해졌다.

준후는 할 수 없이 힘을 한풀 꺾어서 손 대신 팔꿈치로 윌리엄 스 신부를 밀어내고는 수인을 맺으며 땅을 향해 강한 바람의 기 운을 내쏘았다. 준후의 소맷자락이 부풀면서 강한 바람의 기운 이 쏟아져 나오자 윌리엄스 신부를 매단 채 준후의 몸이 허공으 로 치솟았고, 윌리엄스 신부는 준후를 잡고 있던 손을 놓치고 땅 에 털썩 쓰러졌다. 준후는 천정을 팔로 짚고는 고양이처럼 날렵 하게 땅으로 뛰어내렸다. 윌리엄스 신부는 몸 안의 고통을 더 이 상 이겨 내기 힘들었던지 서서히 땅에 쓰러져 갔다.

‘이때다! 빠져나가야 해! 그래서 코제트를……………’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준후는 도가 오행의 기운 중금(金) 의 기운을 손에 모아서 철창문을 닫고 있던 자물쇠를 향하여 내 리쳤다. 우지끈 소리가 나면서 자물쇠가 반쯤 부서졌고, 준후가 재차 내리치자 완전히 박살이 나 버렸다.

“이이… 나쁜 것들! 뇌전의 힘이여!”

준후가 철창을 향해 뇌전의 기운을 쏘자 문이 벌컥 열리며, 철 창에 매달린 흡혈귀들이 고통스런 비명을 질러 댔다. 준후가 발 로 문을 걷어차자 흡혈귀들은 비틀거리며 중심을 잃고 나자빠졌 다. 문이 열리자 준후는 코제트에게 시선을 향했다.

이번엔 코제트 차례라고 생각하며 문을 나서서 부적을 꺼내 들려는 순간, 쌕 소리와 함께 채찍이 날아와 부적을 들고 있던 준후의 팔목을 감았다. 준후는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들고 있던 부적들을 놓쳐 버렸다. 팔목을 칭칭 감은 채찍은 무서운 힘으로 끌어당겼고, 준후는 허공에 붕 뜬 채 그쪽으로 끌려가기 시작했 다. 팔목이 찢어지는 듯한 심한 통증이 왔다.

요 꼬마 깜찍하구나! 별 술수를 다 쓰는군! 그러나 오늘이 네놈의 마 지막 날이다.

코제트가 휘두른 채찍에 말려 끌려가면서도 준후는 힘을 내 서 수인을 맺으려 했으나, 워낙 센 힘으로 끌어당기는 바람에 수 인을 맺을 수가 없었다. 준후가 반쯤 눈을 감고 체념하고 있는데 저쪽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 준후를 놔라! 이 사악한 요녀!”

준후가 번뜩 눈을 떴다. 박 신부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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