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외전 2 : 대성인의 죽음 (1965년 인도-파키스탄 2차 전쟁 직후) : 1화 – 수상의 암살
수상의 암살
인도와 파키스탄 간에 전쟁이 발발했다. 원래 한 나라였지만,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종교적 문제에 따라 둘로 나뉜 두 나라 사이 의 관계는 극도로 나빴다.
인도군은 파죽지세로 파키스탄군을 몰아붙여 많은 영토를 획득 했다. 그리고 이 땅을 힌두교도의 것으로 삼으려 했다. 하지만 인 도와 파키스탄 양국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소비에트 연방이 중재해, 양국은 타슈켄트에서 평화 협약을 맺게 됐다. 이미 점령 한 영토 대부분을 파키스탄에 돌려주는 내용이라 숭전하던 인도 측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내용이었으나, 소비에트 연방의 수상 코 시간의 중재를 거부할 수 없었다. 그렇게 짧았던 전쟁은 일단 끝 났다.
그러나 양측이 이 협약에 서명한 지 불과 몇 시간 후, 인도의 수 상이었던 샤스트리가 심장 마비로 급사하는 의외의 사태가 벌어졌다. 서명이 이루어진 다음 사망한 것이므로 협약은 유효했지만 인도 내에서는 수상의 공교롭고도 갑작스러운 죽음에 의문을 품 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실 누구라도 의심해 봄 직한 일이었다. 그러나 샤스트리 수상의 죽음에 수상쩍은 점은 없었다. 적어도 대외 적으로는 말이다.
그것을 일반적인 의학적 견지에서 보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은 초자연적인 힘의 존재를 아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이 사건 전반에 전혀 다른 견해를 가진 것이다. 바로 이 번 전쟁의 주요 쟁점이 된 카슈미르 지방의 접경에 주둔한 북부 인도군 사령실 내부에 모인 사람들이 그러했다. 그들 사이의 분위 기는 몹시 격앙돼 있었다.
“이건 틀림없이 이슬람 돼지들의 음모요. 우리가 이기고 있는데 왜 그만둬야 한단 말이오?”
인도군 장성 한 명이 열을 올렸다. 이 말에 맞장구라도 치듯, 몇 몇 장성과 대령급 그리고 참모진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모두는 군인이란 것 외에 몇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 공 통점 중 첫 번째는 독실함이 지나친 과격과 힌두교도라는 것. 그 리고 나아가서는 군부 내에 소규모의 비밀 그룹을 결성하고 있다 는 점이고, 두 번째는 현대 군을 지휘하면서도 종교적인 신비한 힘을 믿으며, 군 내부에 존재하는 비밀 그룹이 어떤 성자의 뜻을 은밀히 실행하고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더구나・・・・・・ 수상 각하가 급서하신 것도 의심스럽소! 이것도 이슬람 놈들의 짓은 아닐지요?”
그 말에는 모두가 동의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들이 원수나 다름 없는 이슬람교도일지라도 소비에트 연방 영내에까지 사람을 풀어 수상을 암살했다고 믿기는 차마 어려운 구석이 있었다. 믿기 어려 운 우연의 일치였지만 그건 억측이라 할 수 있었다. 허나 감정이 격앙된 몇몇 군부 인물들은 이미 그렇게 단정 지어 말하고 있었다. 비록 작전 회의라고 하기엔 내용이 조금 이상하게 흘러갔지만 여기까지는 누가 봐도 전형적인 군 회의였다.
그런데 막사에는 이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세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인도인으로는 절대 보이지 않는, 백인의 용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정장 차림의 작달막한 남자였고, 다른 두 사람은 헐렁한 사리’ 차림을 한 전형적인 인도의 힌두교 수행자와 같은 모습이었다.
수행자 중 한 사람은 막 초로에 접어든 듯, 단정하게 정리된 터 번을 쓰고 백발이 섞인 머리칼과 짧은 수염을 길렀다. 머리나 수 염에 비하면 주름이 적은 편이라 비교적 젊어 보이는 얼굴이었으 나, 다른 한 사람은 터번도 없이 헝클어진 회색 머리칼을 어깨까 지 늘어뜨린 데다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다. 그러나 세월의 훈장 처럼 굳어진 수많은 주름살과는 다르게, 관자놀이까지 늘어진 긴 흰 눈썹과 사자의 갈기 같은 회색 수염이 강한 느낌을 주어 도저히 나이를 짐작할 수 없었다. 신비한 힘을 사방으로 강렬하게 뿜 어내는 듯한 인상이었다.
1 인도에서 주로 입는 바느질을 하지 않은 옷이다. 옛 풍습을 따르는 인도인들은 바느질을 불결하다고 생각해 바느질하지 않고 만들어진 사리를 즐겨 입었다.
그중 비교적 젊은 편에 속하는 수행자가 군인들을 향해 조용히 요가 자세가 가미된 형태의 합장을 했다. 그러자 방금까지 흥분했 던 인도군 장성이 금세 기세를 누그러뜨리더니 그를 돌아보며 엄 숙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최대한 정중한 목소리로 그 터번을 쓴 남자에게 말했다.
‘어쁘띠’. 이건 분명히 이슬람 측에서 뭔가 술수를 부린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너무 주제넘게 생각하는 것인지 모르나 부디 나무라지는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군 장성으로서의 권위도 엿보이는 데다 굉장히 다혈질인 성격 이 분명함에도 그의 목소리는 아까와 확연히 다르게 정중했다. 최 대한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려는 의도를 넘어서 일종의 경외심, 나아가서는 두려움까지도 섞여 있었다.
‘어쁘띠’라는 호칭은 원래 영어로 어프렌티스(apprentice), 즉 제자를 의미했다. 인도는 원래 영국의 지배를 오래 받아서 힌두어 와 영어를 공용어로 쓰니 이상한 표현은 아니다. 다만 인도인들의 억양이 워낙 억세고 강렬해서, ‘어프렌티스’보다는 ‘어쁘랭띠즈’처 럼 발음하고는 했고, 그러다 보니 아예 ‘어쁘띠’라는 고유의 애칭으로 불리게 됐다. 물론 원래의 뜻은 아직 미숙한 견습 제자, 혹 은 도제를 의미하지만 그를 알고 이 호칭을 아는 자라면 누구도 그를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는 없었다. 그의 존재에 대해 아는 사 람은 극히 적지만, 그는 군부만이 아니라 인도의 유력자들, 특히 힌두교 신앙이 독실한 고위 인사들에게는 크나큰 영향력을 발휘 하는 인물이었다. 비록 ‘어쁘랭띠’일 뿐일지라도 그 이름이 갖는 무게는 실로 엄청났고, 그 호칭마저도 일종의 겸손에서 나온 것이 라 여겨졌다. 그는 비록 ‘어쁘랭띠’일지라도 일반적인 사람의 제 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군 장성은 조심스레 덧붙였다.
“감히 말씀드리건대, 수상 각하의 서거에 대해 어쁘랭띠의 고견 도 들려주신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습니다만…………….”
나이보다는 젊고 밝은 얼굴이어도 은근히 초로에 접어든 수행 자에게 붙이는 칭호로는 조금 생경했으나, 그래도 명칭 자체보다 는 그 말에 깃든 존경심과 호의가 몹시도 강했다. 어쁘랭띠는 다 시 한번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장성에게 대답했다.
“이러한 불미스러운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에 대해서는 뭐라 말 씀드릴 수가 없군요. 저도 확실히 단언할 수는 없지만…………….. 어쁘랭띠는 긴장감을 고조시키듯 잠시 말을 끊었다가 이었다. 샤스트리 수상의 서거는 필경 이슬람 쪽의 보이지 않는 독수에 걸렸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악마의 주술이라고나 할 수 있겠지요.”
모르는 사람이 듣기에는 황당한 발언일 수 있었겠지만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사람들은 일제히 탄식하면서 분노를 표출하려는 듯 주먹을 불끈 쥐었고, 분을 못 이겨 눈 물을 흘리기도 했다. 어쁘랭띠가 한 말이 틀릴 리가 없었기 때문 이다. 묵묵히 앉아 있던, 가장 높은 계급장을 단 북부군 사령관조 차 분노를 터뜨렸다. 사령관은 어쁘랭띠를 바라보던 것과는 전혀 다른 날카로운 눈매로 옆에 서 있던 백인을 노려보았다.
“키르모비치 대령, 우리 수상 각하의 안전에 대한 책임은 소비 에트 연방에 있지 않소? 당신들, KGB(소비에트 연방의 국가 보안 위 원회)는 어찌 이런 일이 생기게 내버려둔 거요?”
북부군 사령관이 언성을 높여 따진 상대인 키르모비치 대령은 바로 KGB의 고위 요원이었다. 대령은 매우 난처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물론 정상적인 경우, 그러니까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최 선의 경호는 다했습니다. 그래서 협약까지 도출됐………….”
키르모비치 대령의 말을 북부군 사령관이 끊었다.
“이런 협약을 누가 원한단 말이오! 우리가 이기고 있었고, 카슈 미르 지방을 모조리 되찾을 수 있는 기회였는데! 저 더러운 이슬 람 놈들을 모조리 없애 버리고…………….”
그러자 키르모비치 대령이 북부군 사령관의 말을 중단시키듯 말했다.
“수상님의 서거는 저희도 몹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허나 그 사인은 심장 마비지요. 그리고 샤스트리 수상께서 어느 정도 지병 이 있으셨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으니…………. 이건 어떻게 막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슬람 놈들이 악마의 주술로……..”
“사령관님. 조금 진정을…………….”
키르모비치 대령은 능란하게 잠시 일부러 말을 끊고 고개를 몇 번 저어 보인 후 눈에 조금 힘을 주어 북부군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 힌두교 신자인 인도 인민들조차도 이렇게 공표한다면 믿 어 줄까요?”
북부군 사령관은 탄식했다.
“아, 그러나 우리는 사실을 알잖소. 여기 어쁘랭띠께서 증명해 주셨고…….”
“저는 공산주의자입니다. 하지만 어쁘랭띠의 놀라운 힘은 직접 보아 알고 있으니, 믿지 않는 건 아니지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입 중하겠습니까? 저로서도 유감입니다만 일단 우연의 일치로 해 두 어야만 합니다.”
“우연의 일치? 이미 우리는 진상을 안 셈인데…….”
“우리 외의 전 세계인들은 모두 우연의 일치로 볼 것입니다. 아 니라고 증명할 수도 없고요. 우리 소비에트 연방은 종교 자체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건 공산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일입니다. 그 러니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줄 알고 방어하며, 이렇게 된 일에 어 떻게 책임을 질 수 있겠습니까?”
북부군 사령관도 속은 끓었지만, 세상에 알린다고 사람들이 믿을 만한 사건은 아니다. 사실 성자인 어쁘랭띠가 단언하지 않았다면 자신들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키르모비치 대령은 소비에트 연방에 돌아올 화살을 방지하려는 건지, 쐐기를 박듯 말했다.
“샤스트리 수상께서 저격을 받았다거나 폭탄 테러를 당했다면 모르지만, 심장 마비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않습니까? 대단히 죄송 합니다만, 저희 측에서도 눈에 보이는 형태의 어떤 외교적 행동은 취할 수 없습니다.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만.”
“그럼 책임지지 않겠다는 거요?”
“나름의 책임을 분담하기 위해 제가 온 것을 잊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북부군 사령관은 눈을 부릅떴지만 곧 낙담한 듯 어쁘랭띠에게
로 시선을 돌렸다.
“어쁘띠께서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하시니 내놓고 까발릴 수야 없겠지. 허나…… 어쁘랭띠시여.”
북부군 사령관이 다시 엄숙한 어조로 고개를 숙이며 묻자 어쁘 랭띠도 살짝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예.”
“어떻게 이슬람 놈들에게도 그런 능력의 은총이 베풀어지는 것 입니까?”
어쁘랭띠는 조용히 합장해 보이며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슬람교도라도 고행을 하며 절실히 간구한다면 인간계가 아 닌 다른 세계의 문을 열 수 있겠지요. 허나 이런 수단을 사용한 것 자체가 그들이 연 문은 신의 문이 아니라 악마의 문이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능력은 사람을 해치는 데 사용돼서는 안 됩니다. 꼭 율법의 문제가 아니라 운명을 건드리는 것은 보다 큰 문제를 낳을 수도 있는 것이라…………….”
어쁘랭띠가 길게 설교를 늘어놓을 것 같자 북부군 사령관은 최 대한 조심스럽게, 그러나 도저히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은근히 어 쁘띠의 말을 끊었다.
“존경하옵는 어쁘랭띠. 감히 주제넘게 말씀을 중단시킨 것을 용 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 해도 어쁘랭띠께서 마음만 먹으신 다면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을 능력을 지니고 계시지 않습니까? 우리 힌두 설화에 예전부터 내려오는 성자들과 맞먹거나 그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바로 당신이시니.”
어쁘랭띠는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나 그런 짓을 함부로 벌이는 것은 아니 되지요. 못 한다고 말씀드리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렇게 하는 것은 카르마로 엄격하게 금지돼 있는 일이며 다르마에 따르는 행동도 결코 아니기에.”
북부군 사령관은 조심스럽고 정중하면서도 과격하게 말했다.
“파키스탄의 아유브칸 대통령을 없애 버릴 수는 없겠습니까? 어쁘랭께서 여기 이 자리에서 죽으라고 한마디만 하셔도 그자 는 박살이 나 버릴 텐데요.”
어쁘띠는 난처하다는 듯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럴 수는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 일은 악마나 하는 짓 이지요.”
“그러면 우리는 당하기만 해야 하는 겁니까? 어쁘랭띠께서 뒤에 계신 바바지’님께서…………….”
바바지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온순했던 어쁘랭띠의 눈매가 갑자기 날카로워졌다.
입을 열어 말하지도 않고 눈썹을 약간 치뜬 것뿐인데도 회의장 내의 분위기가 압도됐다. 수십 명에 달하는 장성과 참모들이 삽시 간에 냉랭하게 변한 분위기를 피부로 느끼고 목을 움츠렸다.
전쟁터에서 용감하게 싸우던 군인, 그것도 바로 며칠 전까지 전 투를 하고 있던 군인들을 단번에 압도할 만큼 어쁘랭띠의 눈짓 한 번은 위압적이었다.
어쁘랭띠는 분위기가 경직되자 눈빛을 풀어 천천히 온화한 표 정을 지으며 조용히 말했다.
“스승님께 누를 끼치지 말아 주시지요. 저와 말씀하시면 됩니 다. 스승님께서 여기 계신 것만으로도 삼생(三生)의 영광’이니 존 함까지 함부로 입에 담지 말아 주십시오.”
어쁘띠의 뒤에 있었던 사람이 바로 힌두교 최고의 성자라고 일컬어지는 바바지였던 것이다. 그러니 어쁘랭띠도 보통 사람의 제자가 아니라 바로 바바지의 제자라는 뜻이다. 사실 어쁘랭띠는 바바지의 제자이자 바바지의 명령을 보이지 않게 세상에 전달해 힌두교를 아주 깊게 신봉하는 인도의 많은 고위 관리에게 큰 영향 력을 발휘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2 힌두어로 ‘바바’는 ‘아버지’ 정도의 의미로도 쓰이지만, 주로 높은 덕을 지닌 스승 을 뜻한다. 힌두교의 요가 수행자 중 많은 가르침을 베푸는 큰 스승을 ‘바바 누구누구 식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바바지’라는 호칭은 ‘바바’의 극존칭, 즉 ‘스승 중의 스 승’이라는 뜻이다.
3 삼생은 전생, 현생, 후생의 총칭으로 이 ‘삼생의 영광’이라는 표현은 윤회를 믿는 힌두교에서 자주 사용한다.
바바지가 최고의 성자라고 일컬어지지만 어쁘랭띠도 결코 보통 사람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기에 그의 능력 에 대한 경외심도 강렬했다.
어쁘랭띠는 천천히 말했다.
“속세의 일에 개입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는 스승님께서 여러분 앞에 서게 된 것 자체만으로도 이 일의 중대성은 분명하겠지요. 전쟁이 석연치 않게 끝나는 마당에 국가의 수장이 서거하셨고, 그 것도 원인을 알 수 없게 급사하셨으니 이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함이 마땅하겠지요. 그러나 이것은 속세의 관례, 그렇다고 다시 전쟁을 벌이거나 티 나는 방법으로 드잡이하면 세상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또한 기정사실이니.”
옆에 있던 키르모비치 대령이 다소 우물거리며 말했다.
“우리 소비에트 연방 측 입장도 생각해 주셔야 할 겁니다. 분명 우리 코시긴 수상께서 평화 협상을 주재해 이미 발효됐다는 사실 을 잊지 마십시오. 이건 국제 협약이고, 샤스트리 수상이 협약서 에 서명한 것도 사실이니 그분이 돌아가셨다고 해도 이 협약 자체 에 영향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자 인도군 장성 중 한 명이 화를 냈다.
“그래서 협약을 맺자마자 돌이키거나 할 여지를 주지 않도록 이슬람 놈들이 우리 수상 각하를 암살한 것 아니오?”
“암살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대외적으로는 말이지요.”
키르모비치 대령이 말하자 그 장성은 거의 잡아먹을 듯이 대령 을 노려보며 말했다.
“어쁘띠께서 말씀하셨소. 분명히 그럴 것이라고! 그런데 당신 같은 소련인이 무얼 안다고!”
분위기가 험악해지려 하자 어쁘랭띠가 나섰다.
“스승님께서 직접 모습을 보이신 것은……”
말 한마디만으로 그 장성은 기세를 누그러뜨리며 어쁘랭띠에게 황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여 보였다. 어쁘랭띠는 아무 일도 없었다 는 것처럼 계속 강조하듯 의도적으로 반복하며 말을 이었다.
“……………스승님께서 속세에 나오신 것은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런 부조화가 벌어지게 한 이슬람의 악마를 퇴 치하기 위함이지요. 물론 스승님께는 어떤 도움도 필요 없겠지만, 여러분에게 열의가 있고 조금이라도 도울 마음이 있다면, 또는 여 러분들의 마음에 이글이글 끓어오르는 증오의 불길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릴 수 있다면 여러분들도 같이 나서는 게 좋겠지요.”
“같이 나서다니요? 바바………… 아니, 이분께서 우리의 힘을 필요 로 하신단 말입니까?”
의혹이 아니라 절실한 복음이라도 들은 것처럼 목소리가 감격에 절로 떨렸다. 바바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삼생의 복이 함께할 무한한 영광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이었기에.
“그렇다면 그 어떤 일이든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떠들자 어쁘랭띠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여러분들의 성의가 그러하시니 저도 기쁩니다. 스승님께서도 기뻐하시는 것 같군요. 사실 그 이슬람의 악마는 몹시도 강대한 자라 여러분의 성의가 함께하면 일이 조금 수월해질 것 같군요.”
“저희가 도와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북부군 사령관이 묻자 어쁘랭띠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전쟁이 갑작스레 끝났으니 아직 무기와 탄약의 재고는 충분하겠지요?”
“물론입니다. 언제든지 이교도의 땅 전체를 쓸어버릴 화력이 우리 군에게 있으니까요!”
“그러면 됐습니다.”
어쁘랭띠가 희미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