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외전 3 : 천기의 수호자 : 5화 – 쉽지 않은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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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외전 3 : 천기의 수호자 : 5화 – 쉽지 않은 도전


쉽지 않은 도전

옥결은 여전히 겉으로는 냉랭했다.

“뭐가 좋다고 웃어?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닐 거라고 난 이미 경고했잖아.”

“가능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데요.”

“나중에 후회하지 마.”

그러면서 옥결은 이 시도의 위험에 대해서 설명했다.

“첫째, 새로운 지구를 아예 만드는 건 안 돼. 그건 애초에 네 권 능에 비해 너무도 큰일이야. 네 권능은 지구에 한정돼 있어. 아예 다른 우주에 지구를 재현하려면 그에 딸린 태양이며 달이며 은하 계까지 모조리 만들어 줘야 하는데, 그건 너무 하잖아.”

“그러면요? 안 되는 겁니까?”

“날 무시하지 마. 천기의 수호자라는 거창한 직함이 괜히 있는 게 아냐. 어디까지나 지구에 한정해 지구를 재현하는 길은 하나뿐 “이야.”

“어떤 길이죠?”

옥결은 거만하게 코웃음을 한 번 치고는 대답했다.

“시간의 위상차를 이용하는 거야.”

“네? 잘 이해가 안 되는데요?”

“네가 이해하고 안 하고는 상관없어. 만들어 주는 내가 알면 그만이니까. 그래도 굳이 설명하자면…”

옥결은 헛기침한 다음 설명을 시작했다.

“시간은 너희가 인식하는 것처럼 알아서 흘러가는 게 아냐. 공간과도 맞물려 있고 모든 것과 맞물려 있지. 뭔지 이해가 어렵겠지만 알맹이만 이야기하자면, 너 따위는 못 해도 나는 과거 시간 에서 지구 그 자체를 꺼내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거지. 왜 위상차 라고 말했느냐 하면, 그 시간적 위상의 차이 덕분에 지구가 둘이 돼도 태양계 내에 존재해도 되거든. 두 지구 간에 몇 시간의 차이 가 생기게 되는 만큼 두 지구는 시간을 극복하지 않는 이상 만날 수 없으니 상관없는 거지. 물론 정보만 남은 지난 지구를 꺼내는 것만 해도 지구 자체만큼의 질량이 필요하지만, 그거야 뭐 우주에 널린 별을 대신 쓰면 되니 섭리에 위배될 것도 아니고 귀찮은 재 창조도 아니야. 원본을 꺼내는 셈이니 확실하기도 하고.”

준후는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차원을 분리한다거나 하는 것 보다도 훨씬 간단하고 확실하게 옥결은 준후의 까다로운 요구를 실행해 보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시간대에 있는 신부님이나 현암 형도…………….” 

“그래. 생각하기 나름이긴 하지만, 단순한 복제물은 아니지. 원 본 그 자체라고 볼 수도 있어. 그냥 네가 시간을 무리하게 역전시 키는 것보다는 우주에 손해가 덜 가는 방법이기도 하고, 일단 내 가 현실화시키고 시간의 위상차만 적용시키고 나면 그 자체로는 불합리가 발생하지 않아.”

“정말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그러나 옥결은 고개를 저었다.

“이야기는 끝까지 들어. 그러나 시간적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 고, 이중 존재는 배척당해. 바로 너의 영혼 말이야. 다른 지구와의 불합리는 안 생기겠지만, 적어도 거기 들어가는 너에 대해서는 양 자 복원 원리나 섭리가 강력하게 발동될 거야. 너는 거기서 너를 알던 누구에게도 정체를 들켜서는 안 돼. 특히 거기에 있는 준후 에게 정체를 들키면 안 돼. 그건 정말 무서운 불합리를 낳게 되거 든. 만약 들키면 모든 것이 망가질 수 있어. 이건 절대로 명심하고 조심해야 해.”

“그렇군요. 반드시 명심하겠습니다.”

“그걸 피하더라도 섭리는 결국은 너를 지워 버릴 거야. 어쩌면 네가 그들을 구하지 못한 채 소멸될 수도 있어. 이건 육체의 죽음 을 넘어서 영혼까지도 완전히 소멸되는 거야. 그걸 감수할 수 있 겠어?”

후는 서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처음부터 각오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옥결은 조금 입술을 일그러뜨리더니 다시 말했다.

“넌 사실 수명이 다해 가는 상태여서 쉽게 생각하는지 모르겠 는데, 이건 육체적 수명과는 다르다고. 영혼까지 완전히 없어지는 건데, 정말 괜찮겠어?”

“그분들을 살려 낼 수 있다면 정말 상관없어요. 어차피 이번 생 에서의 시간보다 값진 생은 윤회를 반복한다고 해도 올 것 같지 않아요. 아니, 온다 해도 제가 거부할 거예요. 그만큼.. 그만큼 이나 저는 신부님과 형, 누나를…………….”

후는 말을 더 잇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것을 보고 옥결은 또 잔소리를 해 댔다.

“에이. 칠칠치 못하게. 뭐, 알아서 해. 아무튼 그래서 소멸은 확정이지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네 재주에 달렸어. 결코 쉽지 않을 거야. 아하스 페르츠인지 해밀턴인지 하는 고장 난 영혼이 도와줘도 벌 수 있는 시간은 얼마 안 돼.”

옥결은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준후로서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해밀턴의 영혼도 소멸되지 않고 있다면 희망은 더욱 커졌다. 준후가 고개를 끄덕이자 옥결은 또다시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난 이미 네 권능대로 딱 지구만큼의 물질을 새로 만든 셈이야. 거기서 어떻게 하는지, 성공하는지 실패하는지는 전적으 로 네 몫이고 난 하나도 안 도와줘. 실패하고서 날 원망하지 마. 뭐, 어차피 원망할 영혼도 안 남겠지만.”

“충분합니다. 그리고 섭리상 그래야만 한다는 것은 이해하고 있 습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네 권능을 쓴 거고 난 할 일을 한 거야. 더불어 네가 벌을 받아 죽을 자리를 찾아 준 것뿐이니 굳이 감사 안 해도 돼.”

옥결은 이어서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이건 말 안 해도 되지만 숨기긴 싫어서 알려 주는 건데.” 

“뭐죠?”

“일단 지구 자체만으로 보면 불합리는 안 생기지. 그리고 주어진 권능을 발휘한 것이니 다른 신격들도 뭐라 하지는 못할 거고, 내가 그만한 권한은 있으니까. 그러나 다른 문제가 있을지도 몰라.”

“무슨 문제죠?”

“아까도 말한 마계 이야기야. 마계는 인간을 싫어한다고. 그런데 인간이 갑자기 두 배가 된 셈이야. 지구 안에서 보면 서로 만날 수 없지만, 마계에도 그 정도는 알아보고 두 세계 모두를 넘나들 만한 존재는 많거든.”

“그 말씀은…………….”

“아마도 틀림없이 마계의 악마들은 두 배의 적개심을 가지고 인 간을 공격하려 할 거야. 대놓고 내가 합당한 권능으로 만든 세계 를 멸망시키지는 못하겠지만, 훨씬 노골적으로 공격해 올걸? 어쩌 면 기껏 길들여 놓은 적개심이 다시 터져서 두 세계 중 하나 정도 는 어떻게든 멸망시키려 시도할지도 모르고, 그거, 감당되겠어?” 

그러나 준후는 단호히 대답했다.

“저는 모두를 믿어요. 신부님이나 형, 누나가 다 극복해 줄 거예 요. 그리고 생각해 보니 저도 있긴 하네요. 이쪽 세계의 저이지만, 그래도 지금의 저처럼 할 일은 해낼 거라고 믿어요.”

“너, 내 말을 이해 못 했네. 그래, 새로 만든 세계는 지금까지처 럼 그럭저럭 버텨 낼 수도 있겠지. 그러나 네가 있던 원래 세계는? 이제 쓸 만한 자들도 없는데 마계는 더 난리를 칠지도 모르니 훨 씬 상황이 안 좋아질 텐데?”

이 말에는 준후도 심각한 표정이 됐다. 그러나 준후는 그런 걱정을 떨쳐 내려 애썼다.

“그래도 저는 인간의 힘을 믿어요. 스스로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제가 있던 세계를 굳이 원본이라 생각하지도 않을 거고요. 두 세계 모두 남던지. 이겨 내는 세계가 남겠죠.”

“거기까지는 나도 모르겠다. 어떻게 될지. 어차피 이제 네가 책 임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그러고는 옥결은 마치 이만 꺼지라는 듯 손을 휘휘 저어 보였다.

“아무튼 됐어. 준비됐으니 남은 일은 알아서 해.”

“벌써 다 됐나요?”

“다 된 게 아니라 시작도 안 했어. 난 섭리와 권능으로 일하거 든. 그리고 시간 역행만 아니라면 시간도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 한데, 오래 걸릴 이유가 없지. 네가 떠나면 즉시 만들 거야.” 

“해밀턴 씨는요?”

“그놈은 자신이 정지된 공간에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채 헤매고 있을 거야. 너와 함께 새로운 지구에 도착하게 될 거다. 그 녀석에게 사실을 말하건 그냥 네 알량한 계획대로 했다고 말 하건 그건 네가 알아서 해라. 어차피 둘 다 없어질 게 뻔하니 상관 없어.”

그러자 준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옥결을 돌아보았다.

“왜 쳐다봐? 그런 눈빛을 하고?”

“한 가지만 더 부탁해도 될까요?”

“양심도 없냐? 아마 인간 중에 너보다 더 거창한 뭔가를 얻어낸 녀석은 없을 거다. 그런데 또 바란다고?”

“별것 아니라면 별것 아닌 부탁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거고요”

“허. 뭔데?”

그러자 준후는 속마음을 말했다.

“저는 승희 누나가 너무 안 됐어요. 누나는 힘을 써서 늙어 가고 있는데・・・・・・저도 기술을 쓸 때마다 생명을 바쳐야 해서 그 마음 잘 알거든요.”

“그래서 뭐? 젊어지게 해 달라는 거야?”

“바로 그겁니다. 어차피 새로 만들어 내시는 거나 다름없는데, 기왕이면 조금만 더 신경을 써 주실 순 없을까요? 하는 김에 현암 형이나 신부님도 조금 더 삶을 누리실 수 있게…………….”

“야, 너 진짜 너무한 것 아냐? 수명 조작은・・・・・・ 그건・・・・・・ 뭐. 크 게 월권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막 해 줄 만한 건 아냐!” 

“막 해 달라는 건 아니에요. 따지고 보면 제가 얻은 권능도 세상 을 구해서 얻은 건데, 그분들에게도 공이 있지 않나요? 이제 만들 어질 새 지구도 같은 위기 상황일 텐데 거기서도 권능을 인정한다 면 그분들도 있고…….”

“그런 중복은 절대로 불가능! 그걸 일일이 인정해 줬다간 지구가 무한 복제될 수도 있잖아! 권능은 더 이상 없어!”

“그렇다고 해도 그 정도는 인정해 주실 수 있지 않아요?”

“떼쓰는 거야?”

“네.”

준후가 시원하게 인정하자 옥결은 어이가 없다는 듯 크게 웃었다. 그러다가 안 되겠다는 듯 대답했다.

“정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뭐. 너만 아니라 그들도 좋아했으니까. 정말 순전히 내 호의로 해 주는 거다? 물론 네가 그들을 구하는 데 성공했을 때이지만 한 삼십 년 정도면 되겠어?”

준후는 기쁨에 환호했다.

“더 바랄 것이 없어요!”

옥결은 여전히 툴툴거렸다.

“근데 너. 정확히는 새로 생긴 지구의 장준후는 곤란해. 이미 명 이 너무 조금밖에 안 남아서 손볼 수가 없다고.”

다른 사람은 성공한다면 원래의 천수를 누리게 돼 있으니 명을 더 붙여도 대략 넘어갈 수 있지만, 준후의 경우는 며칠도 남지 않 았는데 갑자기 삼십 년이라는 시간을 붙여 줄 수 없다는 말이었 다. 그러나 준후는 오히려 자신의 일이기에 가볍게 받아들였다. 

“그건 할 수 없죠. 어차피 장준도 이해하고 원래대로 받아들 일 거예요. 그것도 저고, 아무것도 모를 테니까요. 하하.”

“곧 죽을 놈이 웃기는…………… 이제 그만 가 봐. 더 있다간 뭘 더 뜯 길지 모르니 강제로라도 보내야겠어.”

그때 준후는 다시 정색하고 묵묵히 매무새를 갖추더니 옥 향해 정중하게 큰절을 올렸다. 옥결도 굳이 피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그 절을 점잖게 받았다. 단아하게 절을 마친 후 준후는 말했다. 

“정말,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냥 내 의무라서 해 준 거라니까?”

“아니란 것 잘 알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자 옥결도 처음으로 감상에 젖은 표정이 됐다. 그리고 마치 정말 사백 살이 된 할아버지처럼 말했다.

“너희가 그토록 옳고 바르게 살아갔는데, 내 어찌 허술하게 넘기겠느냐? 나는 너희를 정말 좋아했단다. 세상의 추악함을 낱낱 이 보는 내 입장에서 너희의 모습은 실로 구원이었어. 이토록 올 바른 아이들을 내가 어떻게 돕지 않겠느냐? 그리고 우주의 섭리 가 결코 매몰차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단다. 그러나 여기까지구나 잘가거라, 준후야, 꼭 원하는 바를 이루거라.”

준후도 눈물이 나오려 했으나 옥결이 부여한 육체가 소멸돼 가 며 영혼 상태로 돌아갔기에 눈물이 흐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옥결 의 따뜻한 배려는 실로 큰 위안이 됐다.

그리고 준후는 다시 원래 계획했던 싸움을 치르기 위해, 영혼 상태로 새로운 지구를 향해 전이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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