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혼세편 1권 13화 – 프랑켄슈타인의 후예 1 : 고뇌

랜덤 이미지

퇴마록 혼세편 1권 13화 – 프랑켄슈타인의 후예 1 : 고뇌


고뇌

준승의 고뇌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엄청난 고민과 괴로움, 슬픔과 분노까지 뒤섞인 그의 깊은 고 뇌는 누구한테도 이야기할 성질의 것도 아니었고, 속마음을 터 놓고 상의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고뇌는 매일같이 더욱더 커 다란 무게로 그의 몸과 마음을 짓누르고 있어서 이제 준승은 거 의 질식하기 일보 직전의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냉동 인간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친숙한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 고 그렇게 생소한 말도 아니다. 체온을 빙점보다도 훨씬 낮은 극 저온으로 떨어뜨려 그대로 몸을 오랫동안 보존하는 것. 그러나 그러한 일은 고기를 얼려서 보존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고, 오히 려 동물의 겨울잠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준승의 스승인 염 박사 는 주장해 왔다. 단,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겨울잠을 맞이하게 되지만 사람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인위적인 조작으로 그런 상태를 만들어 낸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였다.

염 박사는 냉동 의학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분야를 전문적 으로 연구한 권위자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손꼽혔으 며, 그가 발표한 실험 결과는 매번 학계에 엄청난 파문을 몰고 왔다. 그러한 염 박사의 연구소에 전도양양한 수재인 준승이 들 어가게 된 것은 밖에서 본다면 하등 문제가 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남에게 이야기할 수 없는 준승만의 사정이 있 었다. 더군다나 그것은 요즈음 준승에게 밀어닥친 크나큰 고뇌 와 깊게 연관되어 있었다.


오늘도 연구소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처음엔 어쩌다가 발생할 수도 있는 단순한 사고라고만 생각했 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그런 식으로 적당히 얼버무려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수십 마리에 달하는 기니피그들이 모조리 꽁 꽁 얼어붙은 참혹한 사체로 발견된 것쯤은 이제 다반사였다. 열 댓 마리의 토끼들이 뻣뻣하게 사지가 굳은 채 얼어 죽는 사건도 이미 여러 차례 일어났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냉동고 안에 깊숙하게 보관중이던 개 와 말이 처참하게 난도질된 채로 죽어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영 문을 알 수 없었다. 냉동고 안은 질소의 액화점인 영하 백사십도가 넘는 극저온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특수 유리로 된 오중의 작은 창문을 제외하고는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상태였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이러한 동물들의 떼죽음은 결과가 나오기 만을 눈빠지게 기다리고 있던 연구원들에게 처음부터 실험을 다시 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그들 모두를 왠지 모를 불안감에 빠뜨렸다.

몇 번이나 경비원들로 하여금 철저하게 순시를 하도록 시켰으 나 아무런 단서도 잡히지 않았고, 오히려 그러한 기괴한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일어났다. 이제 연구원들은 아무리 급한 실 험이 있어도 해만 떨어지면 연구소에 남아 있으려고 하지 않았 다. 외부의 별 볼일 없는 세미나나 지겨운 심포지엄에도 서로 참 석하려고 난리였다. 무서운 일이 벌어지는 연구소에서 조금이라 도 떨어져 있으려는 분위기가 팽배해져 갔다. 말로야 다들 신경 쓰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그러한 증상은 마치 돌림병처럼 연구소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다.

계획했던 실험들에 자꾸 문제가 생기자 끝없는 의문에 휩싸였 던 염 박사의 머릿속은 차츰 공포의 감정으로, 그리고 지금은 공 포를 넘어 폭발할 듯한 분노로 가득 찼다. 여기저기 파헤쳐져 피 대신 교체된 대체 냉동액의 고드름을 주렁주렁 달고 처참하게 죽은 동물들의 끔찍한 사체는 누가 보아도 진저리를 칠 수밖에 없었다.

자그마한 오중 창이 달린 두꺼운 쇠문의 안쪽은 지금 임시로 온도를 영하 육십 도까지 낮추어 놓았다. 그곳에서 우주복처럼 생긴 방한복과 열선 파이프를 주렁주렁 매단 작업원들이 꽁꽁 얼어붙은 동물들의 사체를 망치로 깨고 있었다. 그 옆에는 정상 적으로 작동하는 여러 개의 컨테이너가 보였다. 사실 컨테이너 들연구원들은 관이라고 불렀다ᅳ안에 닭, 개, 돼지, 말 등의 동물들이 잘 냉동되어 있는지 상태를 살피기 위해서는 이런 계 기들에 의존하는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미 복잡한 절차를 거쳐서 냉동된 동물들은 아무리 몸집이 작다고 하더라도 다시 외부 환경에 내놓는 데에 적어도 일주일 정도의 기간이 필요했고, 좀 더 큰 동물의 경우 길게는 두 달 이 상 걸린 경우도 있었다. 그러한 상태이니만큼 중요한 연구 목적 으로 동물들이 냉동된 컨테이너를 연다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요즘 들어 누가 냉동고 안으로 침입하여 컨테이너를 열고 평온하게 잠들어 있는 동물들을 참혹하게 난도질한 것이 다. 물론 실험은 아직 완전하지 않아서 냉동 상태에 있는 동물들 이 과연 살아 있는지 아닌지의 구분이 애매모호하긴 했다. 외견 상동물들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냉 동 상태를 풀게 되면 일부는 다시 회생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동 물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냉동 상태에 있어서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도 어쩌면 이미 생사가 구별된 것일 수도 있지 않느냐는 견해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렇더라도 생명 활동의 징후만 없을 뿐 결코 죽은 게 아닌 냉 동 동물들을 저리도 무참하게 난도질한다는 것은 너무도 끔찍 한 일이었다. 동물이 냉동되면 혈액을 냉매로 대체한다. 극저온 의 냉동 상태에선 혈액이 응고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 서 그렇게 찢겨져 나간 상태에서도 붉은 핏자국이 전혀 없었기 에 냉동된 동물들은 마치 푸줏간의 고깃덩어리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연구소 연구원들은 냉동되어 있는 모든 동물들한테 이름 을 붙이고 애칭까지 지어 주었다. 어떻게 보면 그 동물들은 연구 원들 생활에 깊게 자리 잡은 존재였다. 그런 동물들의 처참한 모 습에 욕지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뚝뚝 눈물을 흘리는 연구원 도 있었다. 또 분노로 얼굴빛이 파랗게 된 중년의 책임 연구원도 보였다.

한 박사라는 연구원은 몸을 부르르 떨며 연구소 책임자인 염 박사에게 노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 것일까요? 이건…………….”

“누군지 고의로 방해하는 게 분명해. 나는 그렇게 단정했네. 이 냉동고 안에는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들어올 수 없어. 그렇지 않은가. 이 박사?”

한참 아무 말 없이 그 광경을 바라만 보고 있던 염 박사가 중얼거리듯 옆에 있던 준승에게 말했다. 준승은 신출내기이기는 하지만 박사 학위를 받고 재능을 인정받아 연구소의 선임 연구 원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존재였다.

준승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와 비슷한 일이 여러 번 생긴 뒤로 연구소 외곽의 검문과 경 비는 이전에 비해 몇 배로 강화되었다. 그러니 어제 벌어진 사건 은 외부 사람의 침입에 의한 것이 아님이 거의 확실하다고 다들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도, 어떤 방호복을 입은 사람도 영하 백사십도의 냉동고 안에 들어가서 이런 짓을 벌일 수는 없었다. 결국 이러저러한 정황을 심사숙고한 염 박사는 나름대로 그런 결 론을 내린 것이다. 어떤 이유든 누구의 사주를 받았건 간에 연구 소 내부의 누가 이런 짓을 벌였다고 염 박사는 단정했다. 준승이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자 염 박사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렇지만 연구소 내에서 누가 그런 짓을 한단 말입니까?” 

“그거야 나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조작하기도 어 렵고 영하 백사십 도나 되는 냉동고에 들어가서 누가 저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응?”

“혹시 뭔가 초자연적인 현상은 아닐까요? 귀신이라든가……….”

“하하하.”

염 박사 옆에 있던 한 박사가 주위 사람들이 민망함을 느낄 정 도로 큰 소리로 웃어 젖혔다. 준승은 얼굴이 벌게진 채 조금 화난 눈으로 뭐라고 말하려고 했으나, 한 박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다니, 자네도 참 뭣하군그래. 요 즘 세상에 그런 것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아니, 요즘 세상이 아니 라 옛날이라 해도 그렇지, 그런 허황된 이야기를 하다니. 자네도 원, 참…….”

“그런 식으로 단정 지을 수는 없는 겁니다. 그런 일들이 자주 일어나지는 않지만, 무조건 허황된 일이라고 치부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할 때인가?”

염 박사가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러면서 필요 이상으로 흥 분해 있는 준승을 의아하다는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준승은 하 려던 말을 꿀꺽 삼켰다. 이미 육십 대에 접어들어 희끗희끗하지 만결 좋은 머리카락을 가진 염 박사는 준승에게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말을 삼켰다. 잠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한 염 박사가 준 승에게 조용히 말했다.

“냉동고 관리는 자네가 맡고 있지?”

“예.”

“저 냉동고는 특별한 자물쇠가 부착되어 있지는 않지만, 복잡 한 계기를 조작해야만 열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가?” 

준승은 얼굴을 붉히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전 냉동고 문을 연 적이 없습니다. 문을 열 수 있는 키를 가진 사람은 박사님과 저뿐이고요. 또 문의 조작법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연구소에서 저뿐입니다.”

“흠.”

“그러나 저는 절대로 저 문을 연 적이 없습니다. 맹세합니다. 저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그런 말은 하지 않았네.”

염 박사는 나직하게 말하면서 준승에게 눈짓을 해 보였다. 준 승은 얼굴이 벌게진 채로 씩씩거리면서 뒤로 돌아섰다. 돌아서 는 그의 빛나는 눈동자가 염 박사의 눈에 비쳤다. 준승이 나가고 나자 염 박사는 혀를 차면서 옆에 있던 한 박사에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정말 이상한 일이야. 그렇지 않은가?”

“글쎄요. 그렇지만 이 박사가 이런 짓을 벌인 것 같지는 않습 니다. 도대체 그럴 만한 이유가 없잖습니까?”

“그러게 말이야. 내 생각도 자네와 똑같네. 그러나 말일세, 이 런 경우를 어떻게 설명하겠나. 냉동고 안에서까지 해괴망측한 일이 벌어지다니. 다른 곳도 아니고 냉동고 안에서 말일세. 냉동 고문을 조작할 수 있는 사람은 이 박사뿐이야. 그리고 고작 이 안의 동물들을 해치기 위해서 엄중한 감시를 뚫고 이곳에 들어 올 외부인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나?”

염 박사는 문제가 풀리지 않는지 계속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박사가 그런 짓을 했다면 이렇게 서툴게 하지는 않았을 겁 니다. 냉동고 문을 여는 법을 이 박사 혼자만 알고 있다는 사실 은 연구소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일 아닙니까? 만에 하나 이 박사가 실험중이던 동물들을 해쳤다고 하더라도 저렇게 태연 히 엉망진창으로 증거를 남겨 놓았을 리도 없을 것이며, 오늘 천 연덕스럽게 이 자리에 나타나 놀란 척한다는 것도 제 상식으로 는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그게 사람들의 의표를 찌르는 방법일 수도 있지 않은가?” 

한 박사는 얼굴을 굳히며 단호하게 말하는 염 박사의 무표정 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이 박사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그렇다고는 안 했네. 나도 이 박사가 그런 짓을 했으리라고는 보지 않아. 다만………….”

“다만 뭐죠?”

“어딘가 이 박사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과 관 련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은 드네. 뭔가 내막을 알고 있는 것 같아”

“그럴 리가요!”

“아니야. 이 박사는 마음속으로 괴로워하고 있네. 겉으로 드 러나 보일 만큼 말이야. 이 박사는 동물들을 가장 냉정히 다루던 사람이었네. 그런 사람이 동물들의 죽음에 놀라는 것까지는 몰라도 그렇게 마음속 깊이 괴로워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설명이 안되네.”

“그럴 만한 무슨 이유라도…………….”

“그건 나도 모르지. 그리고 사실 나는 이 박사를 의심하는 게 아닐세. 허나……”

염 박사는 뭔가 더 말을 이으려다가 그만 입을 다물어 버렸다. 한 박사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염 박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오늘 밤은 더욱 경비를 강화 하라는 말을 남기고 염 박사는 뚜벅뚜벅 걸어서 방에서 나갔다.


또다시 밤이 되었다.

아침에 발견되었던 끔찍한 일들을 겉으로는 다들 잊은 듯했지 만, 각자의 일에 열중하던 사람들도 해가 지는 것을 보고는 서둘 러서 연구소를 총총히 빠져나갔다. 그러나 준승은 늦은 시각까 지염 박사와 함께 연구실에 남아서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자료 를 정리하고 있었다. 철야 작업을 하는 일은 가끔 있었으나 느닷 없이 오늘 함께 작업하자는 소리를 들었을 때 준승은 염 박사에 게 무슨 저의가 있다고 여겼다. 아무래도 자신을 의심하고 있는 것 같아 준승은 불안했다.

둘은 늦은 밤까지 공식적인 것 이외에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 고 묵묵히 일에만 몰두했다. 염 박사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서류만 뒤적거렸다. 그러나 서류나 자료는 이미 정리가 끝난 것들이라 다시 할 필요가 없는 것들뿐이었다. 준승은 염 박사가 자신을 의심하기 때문에 옆에 붙들어 놓고 있으려 한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더욱 무거웠다.

“이 박사.”

“예, 염 박사님?”

“피곤하지는 않은가?”

준승이 돌아보니 염 박사가 안경을 벗고 미간을 문지르고 있 었다. 말 한마디 없이 일에 몰두하는 척만 하다 보니 염 박사도 꽤 피곤한 모양이었다. 준승도 여러 가지 고민 때문에 피곤하기 는 했지만 말은 다르게 했다.

“아닙니다. 박사님은요?”

“허허허. 글쎄………….”

염 박사는 쑥스러웠는지 너털웃음을 짓고는 문득 뭔가 생각나기라도 했다는 듯 뜸을 들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같이 일하게 된지가 얼마나 되었지. 이 박사?”

“글쎄요. 삼 년이 조금 넘은 것 같습니다.”

“그렇군. 자넨 정말 열심히 일했어. 내게 무척 큰 힘이 되어 주었네.”

“저야 뭘 한 것이 있습니까? 과찬의 말씀입니다.”

“아니야. 자네만큼 냉동 의학에 깊은 관심과 열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내 보지 못했지. 거기다가 재능도 있고….”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제 본론이 나올 모양이라고 준승은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는 갑자기 들려온 날카로운 비명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아아악!”

비명 소리는 메아리를 길게 끌면서 저쪽의 복도에서 들려왔 다. 준승과 염 박사는 둘 다 놀라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고 준 숭이 앞서 문을 열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염 박사는 무척 놀랐 는지 숨을 몰아쉬며 망설이다가 곧바로 준승의 뒤를 따라 문밖 으로 나섰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