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혼세편 1권 9화 – 와불이 일어나면 8 : 도선국사의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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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혼세편 1권 9화 – 와불이 일어나면 8 : 도선국사의 비석


도선국사의 비석

신사 발굴 현장에 도착한 박 신부는 승희에게서 자료를 받아 자세히 읽어 보았다. 박 신부도 천불천탑의 비밀이 적힌 비석이 암굴 속에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승희와 의견을 같이했다. 박 신 부는 인부를 동원해 신사 밑의 암굴을 저번보다도 더욱 신경을 써서 발굴하는 것은 물론 암굴 속에 내려가서 살다시피 했다.

승희는 그렇게 박 신부가 애쓰는 것을 보고 자신도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궁리를 했으나,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 다. 정 선생과 임악 거사에게 꿍꿍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얼핏 들은 바가 있어서 그들 마음속을 투시해 볼까 싶기도 했다. 그러나 두 사람 다 다른 생각만 하고 있었고, 능력자들이어서 그 런지 투시도 쉽지 않았다. 하루 종일 그 사람들을 투시하고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어서 승희는 공사 현장 부근에서 서성거리면 서 가끔 가다 박 신부의 말 상대가 되어 주는 정도로 시간을 보 내고 있었다.

어느덧 사흘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저녁때가 되면 승희는 주기적으로 현암과 세크메트의 눈으로 연락을 취했다. 그쪽은 급속도로 일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내일 정도면 천불천탑의 진세가 완성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 었다. 그러나 이쪽에서는 수북한 흙더미와 부서져서 가루가 돼 버린 사리 조각 외에 특별한 것은 나오지 않아 박 신부와 승희를 답답하게 했다. 그러던 중 심심했던지 승희가 자기도 암굴로 들 어가보고 싶다고 박 신부에게 말했다.

“만날 바깥에서만 지내고 있으려니 답답하네요. 그렇다고 어 디 놀러 가기도 그렇고요. 저도 들어가 볼래요.”

“허허허.”

박 신부는 승희의 말을 듣고는 여기저기 흙이 묻은 얼굴을 털면서 가볍게 웃었다.

“그렇게 예쁘게 화장하고는 두더지처럼 땅굴로 들어가서 흙이라도 뒤집어쓰면 어쩌려고 그러니?”

“그런 것쯤 상관없단 말이에요.”

승희는 박 신부를 따라 암굴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승희의 예상과는 달리 암굴 속은 오로지 흙 말고 보이는 것이라고는 아 무것도 없었다. 꽁해진 승희는 지루하다며 밖으로 나가 버렸다. 답답한 암굴보다는 바깥쪽이 그래도 숨이 트이는 것 같고 기분도 풀리는 듯했지만 갑갑한 기분은 가시지를 않았다. 입이 툭 튀어 나온 승희가 고개를 돌리는데 저만치에서 낯익은 사람이 보였다. 

‘아니, 가만있자……. 저게 누구지?’

승희가 인상을 쓰듯이 눈을 찌푸리며 자세히 살펴보니 신사 올라오고 있는 사람은 젊은 여자였다. 그냥 젊은 여자가 아니라 승희와도 안면이 있는 사람으로 얼마 전 현암과 함께 이곳에서 죽을 뻔했던 여학생이 틀림없었다.

‘아니, 저 불여우가 뭐하러 여기까지 왔지? 현암군이 여기 있 는 줄 알고 온 모양인데……………. 흠! 원 참, 이거 뭐라고 할 수도 없 고………’

승희는 샐쭉 웃었다.

‘어차피 현암 군은 여기 있지도 않은데, 뭐. 어디 갔는지 말 안해주면 그뿐이지..’

여학생은 승희의 심사도 모르는 듯, 저만치에서 승희가 서 있는 것을 보고는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손은 뭐하러 흔드나? 하나도 반갑지 않구먼.’

승희는 속으로 중얼중얼하면서 서 있었으나 그래도 막상 여학 생이 다가와서 귀엽게 웃는 것을 보고는 예의상 한마디 했다.

“이젠 다 나았어요?”

“예, 이젠 괜찮아졌어요. 그래서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려고요. 떠나기 전에 제가 억지를 부려서 겨우 시간을 내서 올라왔어요. 지난번에 현암 씨에게 제대로 인사도 못 드려서 그것도 겸해서 요.”

“아, 현암 군은 바쁜 일이 있어서 먼저 갔어요. 외국으로 나갔으니까 삼사년쯤 있어야 돌아올지도 몰라요.’

“예? 아니, 가 버리셨단 말인가요? 저런 그, 그러니까……..”

여학생의 안색이 단번에 어두워지며 울 듯한 표정을 짓자 승 희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헤헤헤. 미안하지만 제발 그런 데 신경 쓰지 말고 살아라. 너 도 모르고 사는 게 속 편할 거다..

속으로 승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여학생은 어깨가 축 쳐져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면서 그 여학생은 암굴에 서 파내어져서 무더기로 쌓여 있는 흙더미와 돌무더기 들을 보 았다. 그중에서 반으로 꽉 쪼개진 커다랗고 넓적한 바위가 보이 자전에 벌어진 일이 기억난 듯 우울한 표정이 되었다.

는 것을 보고는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손은 뭐하러 흔드나? 하나도 반갑지 않구먼.’

승희는 속으로 중얼중얼하면서 서 있었으나 그래도 막상 여학 생이 다가와서 귀엽게 웃는 것을 보고는 예의상 한마디 했다.

“이젠 다 나았어요?”

“예, 이젠 괜찮아졌어요. 그래서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려고요. 떠나기 전에 제가 억지를 부려서 겨우 시간을 내서 올라왔어요. 지난번에 현암 씨에게 제대로 인사도 못 드려서 그것도 겸해서 요.”

“아, 현암 군은 바쁜 일이 있어서 먼저 갔어요. 외국으로 나갔으니까 삼사년쯤 있어야 돌아올지도 몰라요.’

“예? 아니, 가 버리셨단 말인가요? 저런 그, 그러니까……..”

여학생의 안색이 단번에 어두워지며 울 듯한 표정을 짓자 승 희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헤헤헤. 미안하지만 제발 그런 데 신경 쓰지 말고 살아라. 너 도 모르고 사는 게 속 편할 거다..

속으로 승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여학생은 어깨가 축 쳐져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면서 그 여학생은 암굴에 서 파내어져서 무더기로 쌓여 있는 흙더미와 돌무더기 들을 보 았다. 그중에서 반으로 꽉 쪼개진 커다랗고 넓적한 바위가 보이 자전에 벌어진 일이 기억난 듯 우울한 표정이 되었다.

“어, 이게 뭐지?”

승희는 돌덩이 위를 손으로 훑어보았다. 이상했다. 자연적으 로 이렇게 인위적인 요철이 많은 돌이 있을 리 없다. 세월이 오 래되어서 닳고 뭉그러지기는 했으나 이 파인 것들은 새겨진 글 자가 분명했다. 이상하게도 둥글넓적한 모양의 이 돌은……….. 

“이럴 수가! 이 돌이 바로 우리가 찾고 있는…………….”

승희는 소리를 질러 박 신부를 불렀고 박 신부는 영문도 모르고 흙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하고 구멍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신부님, 찾았어요! 비석은 우리가 찾기 전에 파내어져서 아래쪽에 버려져 있었어요. 뒤질 필요가 없다고요!”

“뭐, 뭐라고? 승희야, 정말 비석을 찾았단 말이냐?”

“예, 틀림없어요. 저기 있어요. 빨리 가 봐요.”

“음, 알았다.”

박 신부는 급히 암굴을 빠져나와서 승희와 함께 쪼개진 비석 이 있는 쪽으로 나는 듯이 달려갔다.


어느덧 준후와 승현 그리고 임악 거사와 정 선생은 거의 완성 된 진세를 지나가면서 이곳저곳 점검하는 중이었다. 구조물은 계획한 대로 배치되었다. 몇 개의 구조물을 임악 거사와 정 선생 이 추가로 설치한 것이 아무래도 찜찜했으나 아직까지 특별히 이상한 점은 느껴지지 않았다.

“참으로 엄청난 진세지요? 그렇지 않은가요?”

“음, 그렇구나.”

정선생은 입가에 묘한 미소를 띠면서 빛나는 눈으로 진세를 바라보았다. 한참이나 살펴보던 임악 거사가 갑자기 껄껄껄 하 고 큰 소리로 호탕하게 웃어 젖혔고, 준후는 그러한 임악 거사의 모습을 보면서 알게 모르게 불안감을 느꼈다. 정 선생이 와불이 누워 있는 야트막한 동산 위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와불만 일으키면 되는군.”

그 말을 듣고 승현이 말했다.

“와불을 일으키는 일은 쉽지 않을 텐데요. 워낙 거대해서 ……………우선 꼭대기에 있는 암반에서 와불을 떼어 내야 하는데 그 게……”

“아무 염려 말아라.”

정선생이 웃으면서 말했다.

“요즘의 공법이면 암반에서 와불을 떼어 내는 것 정도는 별문 제가 아니란다. 폭약을 이용하면 간단해.”

“폭약을 이용한다고요? 그러면 와불이 부서지지 않을까요?” 임악 거사가 껄껄껄 웃으면서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폭약만 있는 것은 아니지. 한쪽 방향으 로만 폭발력이 가게 만들어서 칼로 베어 낸 것처럼 깔끔하게 자 르는 방법도 있단다.”

“그렇군요. 그렇지만…………….”

준후는 자기가 작성한 지도를 들여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런 준후를 보고 정 선생이 서두르며 말했다.

“자, 자. 이렇게 시간 낭비하지 말고 정리를 마치고 와불의 밑 부분에 폭약 장치하는 일을 부탁하도록 하자고.”

임악 거사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아래로 내려간 뒤에도 준후 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계속 진세를 응시했다.


현암은 사람이 없는 외딴곳에서 세크메트의 눈을 꺼내어 쥐고 박 신부와의 통신을 기다렸다. 평상시처럼 박 신부는 승희를 시 켜서 이야기를 할 듯싶었는데 시간이 벌써 십오 분이나 지났는 데도 저쪽에서는 세크메트의 눈을 손에 쥐고 있지 않은지 통신 이 안 됐다.

‘승희 혼자만이라면 몰라도 시간관념이 투철하신 신부님께서 옆에 계신데… 뭔가를 알아낸 것이 아닐까?’

현암이 혼자 추측하는 중에 저쪽에서 반응이 왔다. 승희가 세크메트의 눈을 쥐고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현암 군, 현암 군! 급한 일이야.

왜 그러지, 승희야? 비석을 찾았니?

그래, 찾았어. 찾긴 찾았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야?

글쎄, 잘은 모르겠어. 하여간 진세를 복구하고 와불을 세우는 일은 당장 멈춰야 해.

응, 뭐라고? 왜 그만두라는 거지? 복구가 거의 끝나서 와불을 세우는 작업만 하면 끝나는데………………

아이고, 저런! 그러면 안 돼, 그러면……………..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이 비석의 내용을 보라고. 아이고, 이런…………. 내가 비석에 적혀 있는 내용을 떠올릴 테니까 현암 군이 직접 읽어 봐.

승희는 저쪽에서 마음을 열고 비석에 새겨져 있던 내용들을 떠올리는 듯했고, 그러자 승희의 기억이 현암에게 느껴지기 시 작했다.

‘왜는 지금 비록 야만하고 무지한 종족이나 흘러넘치는 대륙의 기운 을 모아서 장차 크게 부흥하리라. 왜가 흥하면 힘을 뻗치려고 할 곳은 우리 땅이 분명할진저, 기운을 막기 위해서는 행주형국의 세를 가진 우 리 땅의 남단 서쪽에 천불천탑을 세워 무게를 줌이 가하다. 그리고 그 진세는……..

뒤에 한참이나 현암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풍수지리적인 설명 이 나왔다. 승희도 그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한 듯, 기억 도 불확실했지만 아마도 천불천탑과 둘레의 산들을 이용한 진세에 대한 설명 같았다. 그러한 내용이 한참 나오다가 눈에 확 띄는 구절이 나오자 현암도 내심 섬뜩함을 느꼈다.

‘진세의 한쪽 정점은 암반 꼭대기에 마침 있으니 그곳에 큰 불상을 세우면 좋을 것이며 다른 한쪽 정점에는 이 비를 세운다. 이 두 정점은 진세의 핵심으로 저울추와 같으므로 한쪽이 기울어지면 한쪽이 올라가 는 것. 진세 전체의 형국도 그리 따르리라. 후인들은 명심하라. 한쪽 정 점을 그대로 두고 다른 정점인 동산 위에 큰 불상을 세우고 주위에 천불 과천탑을 세워 받들면 왜는 가라앉으리라. 불상이 세워지고 천불천탑이 세워져도 이 비석이 있는 곳의 땅을 파면 모든 것이 반대로 되리라. 천명 (天命)과 천리(天理)를 생각하면서 인간의 손으로 이러한 일을 해야 하 는지 하지 않아야 되는지, 가슴에 새겨 잘 판단하여 신중할 것이니라.’

……………왜가 가라앉는다고?

그래, 큰일이야. 지금 와불을 세운다면………………

천불천탑을 다시 조성하고 와불을 세우는 것이 우리나라의 국운을 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을 가라앉혀 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단 말이야?

그래. 그러니까 신부님 생각으로는……………. 아이고, 신부님!

잠시 승희의 생각이 끊어지더니 박 신부가 세크메트의 눈을 받아 든 듯, 박 신부의 마음속 목소리가 울려왔다. 평상시 그렇게 만지기 싫어하던 물건이었는데 어지간히 급한 모양이었다.

비석의 뒷부분을 보면 후에 추가된 글자들이 있네. 천불천탑의 앞에 나오는 이야기는 도선국사가 새겨 놓은 것이고, 뒷부분에 있는 글자들 은 후에 다른 사람이 추가한 내용이지. 도선국사는 지형을 읽어 내기는 했지만 직접 천불천탑을 세우신 것은 아니고, 다만 그러한 힘으로 이용 될 수 있다는 것만 후대에 알려 주셨을 뿐이네. 그리하여 비밀을 알아낸 사람들, 그러니까 왜구의 침략과 노략질로 피해를 입은 원한 서린 민중 들이 힘을 모아 천불천탑을 조각하기 시작한 것이네.

아, 그렇다면………..

이제야 모든 것이 분명히 보이는 것 같았다. 도선 국사는 그 러한 지형을 보고 단번에 일본을 망하게 할 수 있는 지기의 흐름 을 읽은 것이다. 그러나 단지 그러한 내용을 알리는 비석만을 만 들어 놓았을 뿐, 천불천탑을 도선국사가 조성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천불천탑을 조성한 사람들은 바로 소박한 민중들로 우 연한 기회에 비석을 보고 내용을 알아낸 사람들이 분명했다. 왜 구의 침략 때문에 가족을 잃고 피해를 입은 사람들, 그래서 왜를 미워하고 원한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 소박한 솜씨로 하나씩 하 나씩 나름대로 정성을 들여서 무수한 세월에 걸쳐 만들어 낸 것 이 천불천탑이었다.

‘그랬구나!’

불상의 만들어진 모양과 형태, 크기가 제각각인 이유를 현암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군요.

그래, 천불천탑과 와불은 고대의 초무기와 비슷했던 것이네. 요즘 핵무기처럼 단번에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는 것 같은 기를 과거에 풍수적 인 흐름으로 알아내었던 것이지.

그렇지만 와불을 세우면 도대체 어떻게 일본이 망한다는 말입니까? 대체 무슨 일이 생긴다는 것이죠?

그건 모르겠어. 흐름, 기의 흐름이 막혀서 국운이 단순히 막히는 것인지 아니면…….

아니면 뭐죠?

‘저울추와 같이 배가 기울어진다.’ 이런 상상을 해 보게. 내 짐작이지 만 우리나라는 동쪽이 무거워 동해 쪽으로 기울어진 지세였다고 했네. 그렇게 기울어져 있을 때 우리나라보다도 더 동쪽에 있는 일본이 오히 려 들렸다면, 우리나라 동쪽 지형이 올라가면 일본의 지형은 오히려 꺼 져 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예?

놀란 현암의 마음속에 짚이는 것이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일 본 열도는 지층이 불안정하여 지각 변동과 지진이 수없이 일어 나는 곳이고, 열도 전체가 조금씩 가라앉는다는 설도 있다. 그렇 다면 이번 일이 그러한 것들을 단번에 촉발시키는 결과를 초래 하는 것은 아닐지………….

일본 대지진이나 일본 열도의 침몰까지도 와불이나 천불천탑의 진세하나로 조정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수 있지요?

모르겠어, 모르겠어. 모든 것이 확실하지가 않아.

박신부는 생각을 끊었다가 다시 마음을 전달해 왔다.

그러나 만에 하나, 아니 백만에 하나라도 그것이 사실이라면 어쩌나, 응?

그렇게 되면……….

현암군, 내 생각은 이러네. 우리는 일본에 수없이 침탈을 당하고 점 령되어 식민지가 되었던 쓰라린 기억이 있지. 그 이전부터 왜구의 침탈 과 같은, 수많은 노략질을 당해 온 건 사실일세. 그렇지만 일본을 전멸 시켜 버리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나?

현암은 단호한 마음으로 박 신부에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내 생각도 그러네. 그러니 어쨌든 와불이 일어서는 것을 막아야만 해. 또 한 가지 의문스러운 구절이 그 밑에 있네.

어떤 구절이지요?

세상일은 공평하니 한쪽에만 피해를 주고 한쪽이 무사하지는 않을것이라는 탄식 비슷한 구절…………. 그것을 보면, 아니 내가 아예 그 부분 을 떠올리겠네. 그러면 자네에게 뜻이 그대로 전달되지?

예.

현암은 박 신부가 전해 주는 비석 뒷부분의 내용을 읽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수백 년에 걸쳐서 이름 없고 고초를 당한 불쌍한 백성들이 만든 •천불천탑. 그 광경을 보고 눈물짓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 이에 크게 분개하여 와불을 일으키려고 하였으나 한쪽에만 피해를 주고 한쪽 이 무사할 수는 없는 것. 천명과 천리를 생각하라는 도선국사의 뜻을 받들어 천불천탑의 진세를 평화적인 것으로 바로잡는 일이 더욱더 필요 하다고 여기고 그리 행한다. 무명씨.

이 말은…….

현암 군, 과거에 와불을 일으켜 세우려다가 만 흔적이 있었다고 했 지? 왜 그랬을까? 기술이 없고 그럴 만한 힘이 없어서 그랬을까? 세우 려다가 마음을 바꾸어서 그만둔 것은 아닐까? 여기 무명씨라고 적힌 사 람은 옛적 또 다른 풍수학의 거두였는지도 모르네. 그리하여 천불천탑 이 조성된 것을 보고 와불을 일으켜 세우려다가 마음을 돌렸을 거야. 우 리도 그래서는 안 되네. 그래서는 안 돼!

알겠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반드시 이 뜻을 전달하지요. 신부님께서도 어서 오십시오.

지금 가고 있는 중이네. 몇십 분 내로 도착을 할 것 같아.

시간이 급합니다! 저 위쪽에서는 벌써…………….

현암이 말을 이으려는데 산에서 쾅 하는 폭발음이 들려왔다.

틀림없었다. 와불을 화약으로 암반에서 떼어 낸다고 들은 기억 이 났다. 지금 그 화약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 분명 ………….

신부님, 시간이 없습니다. 올라가서 막아야겠어요.

현암은 박 신부의 대답도 듣지 않고 세크메트의 눈을 주머니 에 집어넣고는 몸을 돌리다가 흠칫하고 놀랐다. 현암의 앞에는 무련이 합장을 한 채로 서 있었다. 현암은 무련의 등에 흰 천으 로 싸인 뭔가가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했으나 반가운 마음에 다 급히 말했다.

“무련 님, 와불을 세우려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 면 큰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는 안 돼요! 엄청난 일이……”

“어떤 결과 말인가요?”

“사실일지 사실이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만에 하나, 아니 백만 에 하나라도 사실이라면 큰일이 납니다. 와불은 우리나라의 국 운을 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본을 제압하고 멸망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무련은 현암의 말을 듣고도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하게 합장을 한 자세에서 나직한 목소리로 현암에게 말했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인가요?”

“예? 지금 무슨 말씀을……………”

현암은 놀라서 쳐다보다가 일단 무련을 피해 와불을 세우는 현장으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챙 하는 소리가 나면서 섬뜩한 빛 이 걸음을 옮기려는 현암의 앞을 막아섰다. 현암의 앞에 청홍검 을 빼어 든 무련이 서 있었다.

“무, 무련님, 이, 이게 무슨……………..”

“용서해 주십시오. 와불은 세워져야만 합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무련 님, 당신은 처음부터 와불이 어 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고 계셨죠. 그렇지요?”

“아미타불, 저도 오랫동안 고민해 보았습니다. 그래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주변을 보십시오. 이 천불천탑을 세운, 그 동안 당해 왔던 우리 백성의 한을 보십시오. 목숨을 잃은 철기 과 은기옹을 생각해 보십시오. 은기옹의 뜻을 저는 믿습니다. 저 는 예전부터 그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지요. 다만 천불천탑을 복구할 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저 혼자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제껏 천불천탑은 방치되어 왔지요. 지 금이야말로 좋은 기회입니다. 오랫동안 번민을 했으나 이것만이 최선의 길이라고 믿습니다. 현암 시주 방해하지 마시지요. 그냥 두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아무리 일본에게 당한 것이 많더라도 이런 식으로 보복을 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 다. 절대로요!”

“아미타불 용서하십시오. 현암 시는 올라가시지 못합니다.” 

“제가 올라가지 못할 것 같습니까?”

현암이 말하는 순간, 다시 위쪽에서 쾅 하는 폭발음이 들려왔 다. 현암은 눈앞에 놓여 있는 청홍검을 무시하고 지나가려 했으 나무련은 놀라운 검술로 현암이 빠져나갈 수 없게끔 그림자를 수십 개 만들면서 청홍검을 휘둘렀다.

“무련 님! 이건, 이건 정말…………… 속세를 잊고 출가한 몸으로 어째서…….”

“사명 대사나 서산 대사 같은 고승들께서도 왜군을 무찌르기 위하여 살생의 계를 범하였소이다. 비록 제가 계를 범하여 지옥 에 떨어진다 할지라도 반드시 이 일만은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무련님! 잘못된 생각입니다!”

다시 한번 현암이 몸을 옮기려고 하자 청홍검이 허공에 은빛 장막을 펼쳤고, 위협하듯 현암의 코앞에까지 검의 기운이 들이 닥쳤다. 현암은 입술을 깨물면서 뒤로 재빨리 몇 발자국을 물러 선 뒤에 한숨을 쉬면서 월향검을 뽑아 들었다.

“무련 님! 도대체 우리가 왜 이래야 합니까? 이건…………. 무련은 담담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현암을 바라보았다. 

“제가 속세에 있을 때 항상 현암 시주에게 호승심을 가지고 실 력을 겨루어 보기를 원했죠. 출가한 몸이지만 이제 와서 속세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 또한 인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얼마든지 오십시오.”

무련은 청홍검을 끌어들여 아미파 검법의 기수식(起手式)을 취하며 심호흡을 했다. 월향검이 천하무적인 무기이기는 했지만 현정의 손에 들려 있는 청홍검도 전설적으로 내려오는 병기였 고현정의 검술 조예 또한 현암의 밑에 있지 않았다. 현암은 눈 썹을 찡그리면서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무련을 힘으로 제압해서라도 와불을 일으켜 세우 려는 것을 막아야 하는지, 아니면……..

현암이 침중하게 입술을 깨물면서 오른팔에 공력을 모으자 월 향검에서는 주변의 평화스러운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귀곡성이 울리면서 길게 검기가 뻗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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