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랩소디 1권 – 1장 : 제국의 공적 – 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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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리스 랩소디 1권 – 1장 : 제국의 공적 – 5화


해적 선단과 레보스호의 거리가 반 마일 이내로 좁혀지는 순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차분히 기다리던 식스의 오른팔이 섬광처럼 움직였다. 식스는 팔 전체를 휘두르며 벼락처럼 지시를 내렸다.

“질풍, 좌측으로! 페가서스, 우측으로! 합류를 방해하고 멀리 쫓아버려! 흑기사 전속 전진! 물수리와 바다사자는 감속 후 밀집 대형 형성! 할아버지 할머니는 노 세우고 포격 준비 후 대기!”

식스의 명령은 기수의 빠른 손놀림에 의해 다른 일곱 척의 배로 전달되었고 곧 수면 위로 드라마틱한 움직임이 펼쳐졌다.

나란히 달리던 배들이 마치 군무를 추는 것처럼 움직였다.

해적 함대의 최좌익을 맡고 있던 질풍호, 그리고 최우익을 맡고 있던 페가서스호는 흩어지는 카밀카르의 두 배를 따라 선체를 돌렸다. 그리고 중앙 을 달리고 있던 자유호와 흑기사호는 앞쪽으로 죽죽 뻗어나갔다. 물수리호와 바다사자호는 자유호와 흑기사호가 빠져나간 자리로 들어오며 후위를 형성했다. 곧 가운데를 달리던 네 척의 배는 한 덩어리가 되어 달리기 시작했다.

좌우익이 빠져나가고 본대의 네 척이 한 곳으로 모이자 함열에는 빈 공간이 두 개 생겼다. 그 빈 공간 속으로 해적선들 중 가장 큰 두 척의 배가 천천 히 흘러들어왔다. 그랜드파더호와 그랜드머더호.

그랜드파더호와 그랜드머더호는 넓게 빈 해역을 이용하여 거대한 선체를 천천히 회전시켰다. 곧 지금까지의 진로와 직각으로 서게 된 그랜드파더호 와 그랜드머더호는 선체 옆의 포문을 모두 열었다. 쿠르르르! 레일 위로 대포가 움직이며 묵직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두 척의 배에 40문씩, 모두 80 문의 대포가 치명적인 정확성으로 레보스호를 조준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레보스호의 감시자는 목이 찢어져라 외쳤다.

“적함, 사격 태세!”

“뭐? 이 거리에서?” 엘리엇 선장은 재빨리 몸을 돌렸다. 수평선 위로 해적선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엘리엇 선장은 해적선 사이에서 옆모습을 보이고 있는 두 척의 배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터릿 갤리어스. 왕국 레갈루스의 이름을 지도상에서 존속하게 만드는 바로 그 유명한 배다. 레갈루스의 조선소에서만 건조되는 이 거대한 배는 ‘강 철의 레이디’를 탑재한 대륙 유일의 함종이다. ‘강철의 레이디’는 그 경이적인 사정 거리와 지독한 파괴력 때문에 법황의 칙령에 의해 모든 땅에서 사 용이 금지된 대포지만, 레갈루스의 함선 설계가들은 법황의 칙령이 ‘모든 땅’에서의 사용을 금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오로지 레갈루스의 설계가만이 설계할 수 있는 특수 포가, 반동력 분배 기술 등은 마침내 강철의 레이디를 탑재한 ‘배’를 만들어내었다. 제국의 다른 해양국과 해양 세력들은 한숨을 쉬고, 이를 갈고, 법황청을 향해 목청껏 항의를 외쳐대었지만, 법황청은 조그마한 왕국 레갈루스의 자주 독립을 간접 지원한다는 의미에서 보완 칙령 을 발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저 거대한 터릿 갤리어스는 커다란 덩치 때문에 느리기 짝이 없지만, 대신 강철의 레이디를 이용하여 다른 배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장거리 사격을 장 기로 삼는다. 바다 위의 성채라 불러야 할 그런 배들이 선체를 옆으로 돌린 채 레보스호를 조준하고 있었던 것이다. 엘리엇 선장의 머리 한편에서 키 드레이번이 레갈루스 왕국의 사략함대로 활동하던 시절, 두 척의 터릿 갤리어스를 공여받았다는 소문이 떠올랐다. 물론 그에게 그 소문이 사실로 확 인되는 잔잔한 즐거움을 만끽할 여유는 없었다.

“충격에 대비하라! 미친 언니가 날아온다!”

엘리엇 선장은 강철의 레이디를 카밀카르 뱃사람 식으로 불렀다. 마치 그런 호칭에 대해 화를 내는 것처럼, 해적 선단 쪽에서 수십 개의 화염이 폭발 했다.

넓은 해원 전체가 진동했다. 터릿 갤리어스 두 척의 일제 사격에 비해 보면 조금 전 레보스호의 사격은 연인들의 밀어로 느껴질 정도였다. 포탄이 공 기를 가르는 소리가 수면 위로 요란하게 울려퍼진 것도 잠시, 수면에 작렬한 포탄은 물기둥을 일으켰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구쳐 오른 물기둥은 레 보스호의 선상에 비말이 되어 쏟아졌다.

엘리엇 선장은 선교 난간을 붙잡고 늘어짐으로써 볼품없이 쓰러지는 꼴을 간신히 면했다. 하지만 선 채로 고문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보라 는 폭포처럼 쏟아져 숨을 막히게 하고 있었고 전후좌우 사방에서 터지는 폭음은 고막을 찢어놓지 않았나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흠뻑 젖은 데다가 폐 가 끊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엘리엇 선장은 간절히 빌었다.

‘제발 빗나가라!’

해적들의 포술 실력은 조악하다. 게다가 레보스호는 좁은 고물 쪽을 보이고 있는 상태. 그러나 80발이나 되는 포탄 중 한 발도 맞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아무래도 현실성이 없다. 현실은, 물기둥과 파도로 휘청거리고 있는 레보스호에 명중탄이 날아들기 시작하는 것으로써 나타났다.

콰아앙! 좌현을 뚫고 들어온 포환은 순수한 운동 에너지만으로 불행한 노잡이 세 명의 몸을 갈가리 찢어놓은 다음 텅텅거리며 배 안을 굴러다녔다. 선체는 진저리 치고 선원들은 나가떨어졌다. 엘리엇 선장은 기어코 난간을 놓치고는 갑판으로 곤두박질쳤다.

“으아아악!”

짧은 비행 후 엘리엇 선장은 선교에서 갑판으로 추락했다. 쾅! 등부터 떨어지면서 숨통이 턱 막히는 느낌이 엘리엇 선장을 급습했다. 그러나 엘리엇 선장은 자신의 몸이 질러대는 비명에 귀기울이기에 앞서 등으로 배의 움직임을 느끼려 애썼다. 키는? 다행이다. 키는 맞지 않았다. 용골의 뒤틀림도 없다. 돛대의 경우에는 눈으로 확인했다. 빌어먹을 바람! 엘리엇 선장은 드러누운 채 욕지거리를 뱉어내었다. 그때 혼란과 진동을 꿰뚫고 슈마허가 다가오며 선장의 팔을 잡아당겼다.

“괜찮으십니까, 선장님?”

“안 괜찮소! 저 빌어먹을 역풍, 저 바람을 어떻게 해야…………!”

엘리엇 선장의 말이 갑자기 잦아들었다. 그의 뇌리 속으로 이 역풍을 순풍으로 바꿀 방법이 생각났던 것이다. 엘리엇 선장은 벌떡 일어섰고 덕분에 슈마허는 하마터면 턱을 가격당할 뻔했다. 그러나 엘리엇 선장은 슈마허에게 사과할 틈도 없이 외쳤다.

“돛을 모두 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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