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랩소디 1권 – 2장 : 미노-대드래곤의 성지 –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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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리스 랩소디 1권 – 2장 : 미노-대드래곤의 성지 – 12화


현재 노스윈드의 선단에서 율리아나 공주만큼이나 유명해진 인물이 있다면 자유호의 노잡이 오스발이 그에 해당한다. 오스발의 기행 본인은 기 행을 저지른다는 아무런 인식도 없이 저지르기에 더욱 기행다운 기행은 해적들 사이에 무수한 루머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갑판 위로 뛰어올라오 고도 오히려 칭찬을 받고, 교수형이 싫다는 이유로 노예 신분을 고수하고, 마법의 꽃 싱잉 플로라를 제멋대로 다루고, 6,000만 데리우스라는 제국에 서 가장 높은 현상금이 걸려 있는 배를 거뜬히 움직였던 사내는…… 현재 자유호의 조타수 칸나가 언제 마음이 바뀌어 자신을 잡아먹으려 들지도 모 른다는 공포감에 젖어 떨고 있었다. 그가 과민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치부해 버릴 수도 없는 것이, 제국 천년의 역사도 아피르 족의 식습관을 개선하 지는 못했던 것이다.

오스발은 발목에 쇠사슬을 묶고 노 옆에 묶여 있었으면 얼마나 마음 편할까 하는 생각을 계속 되뇌이고 있었다. 하지만 노예장이 키 드레이번의 명 령을 무시하고 그에게 족쇄를 채울 리가 없다. 오스발은 노예장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배 아래로 내려가지는 않았다. 자신이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노예가 근처에 있다는 것이 노예장을 얼마나 신경 거슬리게 하는 일인지는 오스발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칸나의 시선이 날카롭 게 빛나고 있을 상갑판으로 올라갈 생각은 더욱 들지 않았다.

그래서 오스발은 넓은 자유호의 선내에서 소속감을 잃고 이리저리 배회하고 있었다. 노예에겐 너무 힘든 일이었다. 계속 혼자말을 중얼거리며 걷고 있던 오스발은 문득 자신이 처음 보는 장소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황한 오스발은 이곳이 어디인지 생각하기도 전에 이곳을 떠날 궁리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이곳이 어디인지 모르는 바에야 여기를 떠날 방법을 알 리 없다. 오스발은 혹시나 지나가는 해적들에게 들킬까 봐 두려워하며 무의식중에 통로 옆 벽에 바짝 붙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오스발의 등이 닿은 곳이 선실의 문이었다.

오스발의 등이 문에 부딪히자 문 저편으로부터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누구시죠?”

오스발은 제자리에서 굳어버리고 말았다. 여자 목소리? 오스발은 자유호 내에서는 들릴 리가 없는 목소리에 놀라 경악하다가, 간신히 이 배에 타고 있는 유일한 여자를 떠올렸다. 오스발은 그 깨달음에 안도감을 느끼기보다 더 짙은 공포를 느껴야 했다. 율리아나 공주가 갇혀 있는 곳이라면 노예는 절대 출입해서는 안 되는 격리 구역인 것이다.

“왜 등을 보이는 건가요? 몸을 돌리세요.”

오스발은 자신의 경악을 다스리지도 못한 상태에서 몸에 익은 대로 명령에 복종했다. 오스발은 뒤로 돌아 선실문의 감시창을 들여다보았다. 감시창 너머 선실 안쪽으로 율리아나 공주의 얼굴이 보였다. 공주는 얼굴 가득히 의아함을 담은 채 오스발을 바라보고 있었다.

“식사 시간도 아닌데 뭔가요? 음? 당신 얼굴이 왠지 낯에 익군요. 당신……?”

잠시 후 오스발과 율리아나 공주는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예. 저는.” 

“그때 그 노예!”

오스발은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오스발이라고 합니다. 너무 늦은 사과입니다만,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고귀하신 공주님.”

하지만 율리아나 공주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 말마따나 너무 늦어서 용서해 주려고 해도 어색해요. 그러니 다음번엔 당신이 치마 입고 내 앞에서 엉덩방아를 찧든가 해요.”

오스발은 당혹한 표정으로 창살 너머의 공주를 바라보았다. 치마를 입고 어쩌라고? 하지만 공주는 별 표정도 없는 얼굴로 그를 마주보고 있어서, 오 스발은 그녀가 농담을 하는 건지 진담을 하는 건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스발은 역시 무덤덤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명령이시라면.”

율리아나 공주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정말 치마 입을 거예요? 노스윈드는 노예에게 치마를 지급하나 보군요. 망측하네요. 변탠가 보다. 그렇게 안 봤는데. 음음음. 그런 취미가 있어서 나를 보고서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은…………..”

“물론 그렇지는 않습니다.” 오스발은 싱긋 웃으며 발랄하게 전개되고 있는 율리아나 공주의 상상을 중단시켰다. “저, 다른 방법이면 안 되겠습니까? 저는 무지한 노예입니다. 어떻게 하면 사과드릴 수 있을지 하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른 방법? 모르겠네요. 천천히 생각해 봐요.”

“그건 안 됩니다. 오늘 저녁까지………”

아무 생각 없이 말하던 오스발은 흠칫하며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래 가지고서야 들려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고 광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예 상대로 율리아나 공주는 창살에 바짝 붙어서며 말했다.

“오늘 저녁이라니, 무슨 말이죠? 가만! 물러나지 말아요. 이야기해요. 그렇잖아도 아까 식사를 가져다준 해적도 퍽 이상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더군 요.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꼭 지금의 당신 같은 얼굴을 하던 걸요. 오늘 저녁에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죠?”

오스발은 슬픈 눈으로 공주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입은 쉽게 열렸다. 그의 성격이다.

“공주님께서는 오늘 저녁 만찬에 초대됩니다.”

“만찬?”

“물론 공주님께서는 많은 만찬에 초대되셨을 듯합니다만, 오늘 만찬에서 공주님이 맡을 역할은 생전 처음이실 것 같군요.”

율리아나 공주는 잠깐 미간을 찌푸렸다. 공주가 만찬에서 맡은 적이 없는 역할이 뭘까? 잠시 후 율리아나 공주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테이블의 말석인가 보죠?”

“아뇨. 음식입니다.”

율리아나 공주는 잠깐 동안 말문이 막힌 채 오스발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오스발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오스발은 자신이 무슨 말 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체념 섞인 태도로 말했다.

“공주님은 키 드레이번 선장님이 대드래곤 라오코네스를 주빈으로 개최하는 만찬에 메인 코스의 음식으로 초대되실 겁니다.”

이해는 느렸지만 비명은 빨랐다. 율리아나 공주가 소리 높이 비명을 지르는 동안 오스발은 풀죽은 얼굴을 한 채 선실 문 앞에 서 있었다. 뭐라고 위 로할 말도 떠오르지 않았고, 게다가 율리아나 공주가 전혀 위로받고 싶어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오스발은 비명을 들은 해적들이 빨리 달려와 자신을 끌고가 주길 바라며 묵묵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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