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랩소디 1권 – 3장 : 악마의 밤 – 10화
“이봐. 테리얼레이드의 얼간이쯤 모조리 덤벼도 본인을 상대할 수는 없소. 파킨슨 신부 당신은 자신이 테리얼레이드에서 10년이나 버텼다는 것을 자랑삼지만, 본인은 그 세 배가 넘는 기간을 테리얼레이드에서 살아왔단 말씀. 그러니 발 당신은 그런 쓸데없는 짓 안해도 된단 말이오.”
오스발은 의아한 표정으로 데스필드를 쳐다보았다.
“쓸데없는 짓이라뇨?”
“왜 자꾸 사방을 쳐다보냐고! 테리얼레이드에는 눈빛이 마음에 안 든다고 상대를 찔러버릴 당신도, 그리고 그런 당신의 행동을 술자리의 이야깃거 리로도 삼지 않을 이웃들도 너무 많단 말이오. 시선은 땅에 두든가 본인의 등에만 둬요! 발 당신이 주의한다고 해서 뭘 알아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오스발은 기죽은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데스필드는 이제 어처구니가 없는 얼굴이 되었다.
“본인이 발 당신에게 말하는 것을 못 들으셨소, 유리 당신?”
주위를 정신없이 살피고 있던 율리아나 공주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
“예? 아, 예……….그런데 뭐라고 하셨는데요?”
“관둡시다, 관둬. 앞길이 막막하우, 신부님 당신.”
파킨슨 신부는 살짝 웃은 다음 율리아나에게 주위를 두리번거리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그래서 율리아나와 오스발은 잠시 입도 벙긋하지 않은 채 데 스필드의 등만 보며 걸었다. 하지만 그런 침착함은 오래가지 못했고 율리아나와 오스발은 곧 사방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바로 어제 그들 이 목격했던 살인 사건을 잊지 않았다. 더군다나 데스필드의 훈계 속에 들어 있던 내용은 오스발을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누군가가 내 눈빛이 마 음에 들지 않아서 소매 속의 단검을 꺼낼지도 몰라. 그런데 그게 누굴까? 용의자가 너무 많았다. 오스발과 율리아나의 눈에는 테리얼레이드의 도로 위를 걸어다니는 사람들 전부가 잠재적 살인광으로 보였다. 예를 들어, 지금 저기서 걸어오는 허리에 롱 소드를 찬 사내는 어떨까.
“이봐, 거기!”
롱 소드를 찬 사내는 데스필드를 향해 갑작스럽게 외쳤다. 율리아나와 오스발은 기겁하며 각자의 무기를 뽑아들 뻔했지만 파킨슨 신부가 재빨리 손 짓으로 그들을 제지했다. 데스필드는 고개를 삐딱하게 젖힌 채 사내를 바라보았다.
“본인을 불렀나?”
사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거기 신부. 장례식이 있는데.”
“장례식?”
“그래. 어제 돌아가신 우리 형님 장례식이야. 케록스 이드거.”
말을 잠시 끊었던 사내는 설명이 더 필요하다고 느낀 듯했다.
“뭐, 생전에 말씀하길 자 기 장례식에는 반드시 신부를 입회시키라고 했거든.”
율리아나와 오스발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케록스라고? 파킨슨 신부는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지금 바쁜 일이 있어서 안 되겠는데.”
사내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뭐? 제길. 테리얼레이드에 당신 말고 신부가 어디 있어! 우리 형님도 당신이 있으니까 그런 말을 했던 거 아냐! 비용은 듬뿍 지불할 테니 걱정 말고 따라와.”
“비용 문제가 아니야. 지금 정말 급한 일이 있어.”
사내는 고함을 지르는 대신 참으로 테리얼레이드 주민다운 행동을 보였다. 그는 허리에 찬 롱 소드의 손잡이를 움켜쥐며 낮게 말했다.
“고인의 유지보다 급한 일이 뭔지 말해 보시지?”
신부에 대한 최후의 예의인지, 사내의 검은 검집에서 반만 뽑혀나온 상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압박감도 반만 전달되는 것은 아니었다. 햇살 에 하얗게 반짝이는 칼날을 보며 파킨슨 신부는 눈살을 찌푸렸고 오스발은 재빨리 데스필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데스필드는 자신은 알 바 아니라 는 얼굴을 한 채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율리아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신부님. 망자의 부탁인데 참석하시지요? 조금 늦어져도 상관없을 것 같은데요.”
파킨슨 신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금 늦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룻밤 동안 밤샘해야 되고 내일 매장까지 따라간다면 이틀을 테리얼레이드에 묶여 있어야 될 겁니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죠. 그분으로서는 마지막 소망이시잖아요.”
벌컥 화를 내려던 사내는 율리아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을 억눌렀다. 파킨슨 신부는 결심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의’에서 올라간 파킨슨 신부의 오른손은 ‘이름으로’에서 성호를 긋는 대신 아래로 휘둘러졌다. 파킨슨 신부는 마치 파리라도 잡듯이 사내의 칼 자루를 내려쳤고 사내는 타의에 의해 칼을 다시 꽂아넣으며 얼빠진 비명을 질렀다.
“어엇?”
바로 그 순간 하늘만 쳐다보고 있던 데스필드가 재빨리 앞으로 돌진하며 사내의 턱을 들이받았다. 사내는 뒤로 벌렁 넘어졌고 파킨슨 신부와 데스필 드는 각자 율리아나와 오스발의 팔을 끌어당기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뭐, 뭡니까!”
고함은 조금 늦었다. 오스발은 데스필드에게 질문했지만 데스필드는 오스발의 질문을 그대로 파킨슨 신부에게 보냈다.
“신부님 당신! 뭐한 겁니까?”
“좋은 타이밍이었네, 데스필드.”
“젠장! 본인이 그런 칭찬 듣자고 손발 맞췄답니까. 도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이제 테리얼레이드 교회는 끝장났다는 것쯤은 짐작하겠죠?”
“후후후. 사실대로 말하자면, 테리얼레이드 교회는 한번도 파괴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절대 파괴되지 않아. 왜냐하면….
“그, 그래. 미쳤던 거였어. 신부님 당신…………”
“…………닥쳐랏! 왜냐하면 교회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으니까!”
어쩌면 꽤나 감동적일 수도 있었을 말을 떼쓰는 어조로 말해 버리게 된 파킨슨 신부는 덕분에 꽤나 화난 얼굴로 데스필드를 쏘아보았다. 그때 데스 필드의 일격에 의해 쓰러졌던 사내가 간신히 일어났다. 사내는 도망치는 네 사람의 등을 향해 험악한 기세로 외쳤다.
“이 빌어먹을 놈들, 거기 서라!”
데스필드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외쳤다.
“본인이 정말 서면 깜짝 놀랄 거면서 쓸데없는 말 외치지 마라, 이름 모를 당신!”
데스필드의 날카로운 지적은 사내를 난처한 지경에 빠뜨림과 동시에 길을 가던 테리얼레이드 시민들로 하여금 너털웃음을 터뜨리게 만들었다. 혼자 서 네 명을 뒤쫓을 수 없기에 사내가 제자리에서 고래고래 욕설을 퍼붓는 동안, 네 사람은 그들이 편히 달아날 수 있도록 옆으로 비켜주는 시민들 사 이를 줄달음질쳐 사내와의 거리를 계속해서 벌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