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랩소디 1권 – 3장 : 악마의 밤 – 11화
세실은 걱정스러웠다. 굳이 이마에 도드라진 세로 주름을 보지 않더라도 그녀가 걱정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은 자명했다. 그렇잖으면 접시에 술을 따 를 리가 없다. 손님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쳐다보았을 때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세실은 씩 웃으며 말했다.
“술잔이 좀 얕지?”
손님들은 핏 웃었다.
“게다가 넓기도 하군요.”
세실은 사과한 다음 술잔으로 바꿔 술을 따랐다. 그러고는 다시 걱정하기 시작했다.
파킨슨 신부가 애지중지하던 교회를 내팽개치고 두 명의 이방인과 함께 테리얼레이드를 빠져나갔다는 소식은 그 사건 발생 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서 세실의 귀에까지 들어왔다. 세실은 그 이야기를 믿을 수가 없었지만 그 이면에 숨은 뜻에 대해 고민하는 대신 할 일 없이 주점에 죽치고 있는 젊은 이 몇 명을 급히 교회로 보냈다.
“교회에 들어오려는 사람은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정중히 돌려보내. 다짐해 두겠어. 누구도 예외 없어.”
“정중히 말해서 통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까요, 세실?”
“창자를 끄집어내어 목에 나비 매듭을 만들어주겠다고 말해. 그래도 물러나지 않으면 실제로 그렇게 해줘. 나비 매듭 묶는 법은 알지?”
젊은이들은 당황했지만 어쨌든 세실이 내어놓은 술병과 주전부리할 군음식 등을 들고는 희희낙락하며 테리얼레이드 교회를 향해 걸어갔다. 다행히 도 그들은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그토록 불경스러운 언사, 혹은 행동을 취할 필요는 없었다. 세실이 젊은이들을 교회로 파견한 사실이 테리얼레이드 전역에 퍼지는 것 역시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으며, 테리얼레이드의 깡패들과 불량배들과 범죄자들과 그들의 우두머리들은 이 사실을 세실이 테리얼 레이드 교회를 보호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해석했다. 따라서 그들은 그녀에 대한 정중한 존경을 담아 교회에 접근하지 않았다.
세실 역시 그 사실을 잘 짐작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녀는 현재 교회에 대해 걱정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파킨슨 신부에 대한 일이 었다.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걸까. 자신이 교회를 비우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뻔히 짐작할 텐데.
세실은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았지만 답은 이미 한 가지로 정해져 있었다. 파킨슨 신부에게 있어 그 남녀는 10년 동안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인 교회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인물들인 것이다. 하지만 세실은 그 답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떤 세속의 남녀가 파킨슨 신부에게 교회보다 더 중 요할 수 있는가. 그리고 또 한 가지,
‘다벨이나 팔라레온, 심지어 록소나나 다케온에서 사고를 치고 이 도시로 도망치는 작자들은 지겹도록 많이 봤지만, 이곳에서 떠나는 작자들은 처음 인데? 그 남녀가 테리얼레이드에서 떠난다면, 그러면 애초에 유리와 발은 어디서 왔다는 거지?”
결국 세실은 가게 문을 닫고 테리얼레이드 교회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갈 때까지 그 문제의 올바른 대답을 찾아내지 못했고, 그래서 위 언저리가 꽤나 쑤시는 듯한 통증을 조용히 참아내며 걸어야 했다. 그녀를 알아보고 말이나 건네보려 했던 시민들은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황급히 물러나 자기 갈 길을 열심히 걸어갔다. 그래서 세실은 평소 때보다 빨리 교회에 온 것 같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깊은 밤, 테리얼레이드 교회는 언제나 그렇듯이 쓸쓸했다.
주인이 내팽개치고 달아난 그 건물은 스산해 보이기까지 했다. 보다 건전한 사람들이 사는 도시의 교회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화려한 장식물들이나 성인의 조각 같은 것이 없는 테리얼레이드의 교회는, 바로 그렇기에 을씨년스러움을 표현하는 데 있어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세실은 못마땅한 표 정으로 교회 건물을 흘겨본 다음 예배당 안으로 들어섰다. 들어서기 직전 세실은 교회 주위의 공기를 조금 가늠해 보았지만 수상한 점은 없었다. 당 연한 일이다. 세실이 취한 조처는 충분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못마땅해할 작자들이 많겠지만 대부분은 교회에 대한 습격을 포기했을 것이다. 그리고 기어코 습격하겠다면 가장 터프한 친구들만 올 것이다. 그 때문에 세실은 보다 항구적인 대책을 세울 동안 이곳에서 잠을 잘 생각이었다.
예배당 안으로 들어선 세실은 우선 예배당 바닥에 쓰러져 자고 있는 젊은이들의 둔부를 가격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일어나! 이 되어먹지 않은 꼬마들 같으니. 착한 어린이라면 잠은 집에 가서 자야지.”
젊은이들은 졸음기와 취기 양쪽에 시달리며 신음을 내뱉었을 뿐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세실은 소매를 걷어붙인 다음 교회의 세탁장을 향해 걸어 갔다. 잠시 후 예배당으로 돌아온 그녀의 손엔 커다란 물동이가 들려져 있었다. 테리얼레이드에서는 이미 유명한 ‘세실리아의 전설적인 처방’이 실시 되자 젊은이들은 기겁하며 일어났다.
“푸아! 퍼, 뭐야? 기습이다!”
“아냐, 빌. 으이구. 우리는 방금 세실리아의 전설적인 처방에 당했다. 에취!”
“흘레붙은 개들도 아니고 왜 사람들에게 자꾸 물을 뒤집어씌우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이상한 별명이 붙잖아.”
젊은이들은 저마다 투덜거리면서도 정신을 차렸다. 세실은 빈 물동이를 옆으로 던진 다음 옆구리에 주먹을 얹었다.
“이놈들아. 그렇게 엎어져 자고 있으라고 내가 너희들을 보냈냐? 엉? 잘들 논다, 잘들 놀아. 술 한 병에 모조리 취해 가지고는 목을 따가도 모를 정 도로 쿨쿨 자고 있고. 하긴 너희들에겐 별로 필요없는 것일 테니 잘라가도 상관은 없겠지만. 어서 일어나! 한번 더 물벼락을 맞아야겠냐?”
젊은이들은 기겁하며 일어났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그들은 바깥이 밤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곤 세실에게 질문했다.
“여기서 불침번 설 생각이에요?”
“그래.”
“에헤, 혼자서? 우리가 도와줄게요.”
“술 안 가져왔어, 인마들아.”
“누가 술 달라고 그랬어요? 그냥 도와주겠다 이거죠. 혼자서 어떻게 여길 지키겠다고 그래요?”
세실은 껄껄 웃었다.
“고마워 죽겠네. 감사 표시로 누나가 뽀뽀해 줄 테니까 그거나 받고 빨리들 꺼져줘. 너희들같이 다 큰 짐승들하고 밤을 같이 보내는 건 이 요조숙녀 인 누나에겐 너무 무서운 일이란다.”
세실은 젊은이들의 뺨에 차례로 키스해 준 다음 그들의 엉덩이를 토닥거리며 모두들 쫓아내었다. 젊은이들은 세실을 걱정하며 같이 있겠다고 주장 했지만 그녀는 완강한 자세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약 싸움이 벌어진다면 정말 거친 싸움이 벌어질 것이 뻔했고, 그녀로선 이 거칠지만 착한 풋내기 들을 다치게 만들 생각은 전혀 없었다. 물론 몇 년만 지나면 테리얼레이드의 바람이 이들 착한 젊은이들을 야비한 악당으로 만들어버릴 것임을 스스 로 잘 알고 있었지만.
젊은이들을 모두 몰아낸 다음 세실은 취침의 안락함보다는 감시의 용이성을 주된 이유로 삼아 잠자리를 결정했다. 제단이나 예배당 사방의 벽엔 많 은 촛불과 촛대걸이 등이 있었지만 세실은 불을 켜지 않았다. 습격이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만일 습격이 있다면 습격자들은 이 캄캄한 교회 내에서 그녀가 어디에 있을지부터 추측해 봐야 할 것이다. 예배당의 의자들 위에 나이프 몇 개와 지팡이를 던져둔 세실은 의자에 아무렇게나 누워 성소의 천 장을 바라보았다.
불빛 하나 없는 예배당 내에서는 막 잘린 목재의 냄새와 향내가 아련하게 번지고 있었다.
세실은 몰려오는 잠을 쫓기 위해 애썼다. 누가 들어오든 간에 세실리아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아는 이상 고요히 들어올 것이며, 따라서 작은 소리 하 나 놓치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운 채 이 밤을 세워야 할 것이다. 피곤한 밤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며 세실은 낮게 투덜거렸다.
차라리 그냥 잠들었어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그 밤의 침입자는, 그녀가 듣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태도로 쳐들어왔기 때문이다.
유난히 밤잠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졸음을 느낄 무렵, 세실은 사방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발자국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것도 마치 전쟁터에서나 들을 법한 거칠고 격한 발자국 소리였다. 그리고 그 발자국 소리를 배경으로 급한 명령들과 구령 소리가 울려퍼졌다. 세실은 기막힌 심정으로 벌떡 일어났 다.
“이건 뭐야? 테리얼레이드의 깡패들이 모조리 몰려왔나?”
세실은 손에 잡히는 대로 나이프 하나를 집어든 다음 창문 쪽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더 놀랐다.
백여 개나 되는 칼들은 너무 길고 두꺼웠으며, 백여 개나 되는 어깨들은 너무 넓었다. 테리얼레이드의 도시형 불량배들이 아니었다. 거칠지만 민첩 한 움직임으로 테리얼레이드 교회를 포위하고 있는 사내들의 면모에는 어딘지 군대를 방불케 하는 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 살기등등한 몰골들은 군 대에서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은 모습들이었다. 저건 도대체 뭐지? 그때 포위를 끝낸 사내들이 멈춰 섰다. 그러자 한 사내가 앞으로 걸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