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랩소디 1권 – 3장 : 악마의 밤 – 14화
케이윈은 테리얼레이드에는 너무 많아서 희소성도 별로 없는 칼잡이였고, 지금은 겁을 잔뜩 집어먹은 칼잡이였다. 그의 ‘형님’인 케록스 이드거는 생전에 버릇처럼 자신의 장례식은 반드시 신부님을 모셔와서 치르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케이윈은 그 유언을 실행할 수 없었다. 테리얼레이드에 있 는 유일한 신부가 그의 눈앞에서 달아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케이윈은 땅에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죄송합니다. 형님!”
반쯤 썩어가고 있지만, 관 뚜껑을 열어젖히고 일어난 케록스는 퀭한 눈으로 케이윈을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케록스의 시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물론 시체는 원래 말이 없는 법이지만, 관 가운데 우뚝 서 있는 케록스의 시체가 만들어내고 있는 고요함은 장례식에 온 조문객들을 심장마비로 몰아갈 만한 정적이었다. 케이윈은 땅바닥에 이마를 찧어대며 횡설수설했다.
“형님! 살려주십시오. 나, 나는 정말이지 신부를 데, 데려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놈의 신부가 처음 보는 패거리들과 함께 나를 두드려패고 도망 쳤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잘못했습니다. 나를, 나를, 저, 거기로 데려가려고 오신 건 아니시죠? 예? 형님. 말씀 좀 해주십시오! 거기, 거기는 아니죠?”
케록스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케이윈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한 것은 아니었다. 케록스는 문드러지기 시작하는 입술을 열었고 흐물거리는 잇몸과 핏 덩어리, 끊어진 혀뿌리와 함께 괴성을 토해내었다.
“끄아아…… 아갹!”
무릎을 꿇고 울먹거리던 케이윈은 기어코 기절했다. 그리고 그 순간 케록스의 장례식장에 모여 있던 조문객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로를 밀치고 짓밟으며 도망쳤지만, 움직이는 시체로부터 도망치려는 것이었다면 그들의 시도는 완전한 헛수고였다. 왜냐하면 테리얼레이 드의 시내 곳곳에서 시체들이 일어나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트로포스의 인도 아래 지상에 도래한 구울의 왕자가 손을 휘저은 순간, 테리얼레이드의 도시 곳곳에서 과거에 죽었던 이들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도 테리얼레이드다운 모습으로 진행되었다. 누군가에게 살해당해 하수구에 던져졌던 시체가 온몸에 오물을 묻힌 채 일어났다.
뒤뜰에 암매장되었던 시체가 땅을 헤치며 일어났다. 마른 우물 속에 던져졌던 시체가 기어나왔다. 강물 한가운데에서 시체가 강변으로 걸어나왔다. 벽의 회반죽을 뚫고 나오는 시체들을 보며 테리얼레이드 시민들은 행방불명되었던 칼잡이들이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깨달았다. 그들은 자신이 테리 얼레이드의 시민임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이렇게나 많은 시체 속에서 살고 있으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그것들 중 가장 악몽스러운 것들은 절단되어 암매장된 시체들이었다. 대로 한가운데를 걸어가는 절단된 사지들을 보며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던 테리얼레이드 주민들은 극히 적었다.
테리얼레이드 전체가 토해대는 비명에 하늘마저 창백해질 지경이었다. 교회 앞에 서 있던 키 드레이번은 도시 곳곳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눈살을 찌 푸리며 하리야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하리야는 넋이 빠진 표정으로 구울의 왕자만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구울의 왕자는 음산하게 웃고 있었다. 키는 트로포스의 멱살을 붙잡아 일으켰다.
“이놈! 설명해라. 뭐가 일어난 거냐!”
그러나 트로포스가 대답할 필요는 없었다. 구울의 왕자가 먼저 조롱하듯 말했다.
“너희들이묻었던것은이웃의시체뿐만은아닐테지.”
키는 구울의 왕자를 돌아보았다. 구울의 왕자는 경멸만으로 말했다.
“너희어리석은바보놈들은도저히견딜수없었겠지그들이증거하고있는바로너희들자신의죽음을그렇기에 그들을옆에둘수없어어두운땅속에묻었겠지너 희들이죽음의공포를너희들마음속의가장어두운부분에묻어두듯이가증스럽고어리석은벌레놈들아너희들자신을보라.”
키는 다음 순간 골목 어귀어귀에서 나타나는 그림자들을 보았다. 비틀거리고 끄덕거리고 있었지만 뚜렷한 하나의 목표, 테리얼레이드 교회를 향해 걸어오는 시체들의 무리가 그곳에 있었다.
시체들은 마치 바퀴가 고장난 수레처럼 이리저리 비틀거리며 걸어왔다. 시가지의 저편에서는 하늘을 찌르는 비명이 울려퍼졌고 시내 곳곳에서 화광 이 피어올랐다. 테리얼레이드 교회 앞에 서 있던 선장들은 자신의 부하들이 제자리를 지키며 서 있다는 사실에도 위안을 받지 못했다. 그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달아나지 않는 까닭은, 시체들이 사방에서 걸어오기 때문에 달아날 방향이 없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보던 키는 하늘을 향해 외쳤다.
“구울의 왕자! 지금 하고 있는 짓을 당장 멈춰라! 죽은 자들을 그들의 안식으로 돌려보내!”
한없는 경멸을 담은 목소리가 키의 외침에 대답했다.
“네가지금하고있는일이무엇인지아느냐너는위대한판데모니엄의하이마스터에게명령을하고있다.”
“틀렸어!”
갑자기 키의 오른손에 쥐어진 복수가 삼엄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키는 그 끝을 들어 구울의 왕자의 거대한 몸을 겨냥하며 말했다.
“난 명령을 하고 있는 것이 아냐, 협박을 하고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짓을 멈추지 않으면 넌 두번 다시 그리운 지옥의 유황불을 못 보게 될 것이다. 알았냐!”
구울의 왕자는 이 모독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욕은 격이 비슷한 존재들 사이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 울의 왕자는 다만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키의 손에 쥐어진 복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것은복수그렇군첫번째빛의종족이만든무기로군그것이어떻게이역겨운세계에있는진모르지만잘되었군판데모니엄의무기고에목록을추가할수있게 되었군.”
키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구울의 왕자는 그저 싱긋 웃으며 손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 순간, 비틀거리며 걸어오고 있던 시체들이 일제히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키는 고개를 휙 돌렸고, 그 순간 오닉스의 마스크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키는 주저없이 외쳤다.
“막아라, 오닉스!”
오닉스는 마스크 아래에서 으르렁거렸지만 곧장 다가오는 시체들을 향해 몸을 돌려 달려갔다. 그리고 명령을 내린 키는 오닉스의 행동을 확인하지 도 않은 채 구울의 왕자를 향해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