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랩소디 1권 – 3장 : 악마의 밤 – 4화

랜덤 이미지

폴라리스 랩소디 1권 – 3장 : 악마의 밤 – 4화


테리얼레이드의 교회는 세실의 가게에서 한 10분쯤 걸리는 곳에 있었다. 교회는 테리얼레이드의 지나치게 낡은 건물과 지나치게 새것 분위기가 나 는 건물 중 후자에 속하는 모습이었다. 율리아나는 건물이 깨끗해 보인다고 말했지만 세실은 씩 웃었다.

“아, 얼마 전에 웬 주정뱅이가 불을 질렀거든. 그래서 새로 만든 건물이야.”

“예? 교, 교회에 불을 지, 질러요?”

“뭐가 이상해? 주정뱅이가 들어오도록 허락해 주는 곳이 교회밖에 어디 있어? 그러니까 예배당에서 자다가 불을 질러버린 거지. 그 녀석은 교회에 서 타 죽었으니 직통으로 천국에 갔을 거야.”

율리아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세실은 지팡이 끝으로 교회의 문을 밀어젖히며 안쪽으로 들어섰고 두 사람들도 그 뒤를 따라들어갔다. 예배당 안으 로 들어선 두 사람은 천장을 향해 고함을 지르는 세실의 뒷모습을 보게 되었다.

“파킨슨! 파킨슨!”

오스발은 천장의 들보에 앉아 망치질을 하고 있는 중년 남자를 볼 수 있었다. 남자는 아래를 향해 말했다.

“아아. 세실? 잠깐 기다리시오. 곧 내려가겠습니다.”

오스발은 사다리가 어디에 있나 살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천장으로부터 밧줄이 떨어져내렸다. 망치질을 하던 남자는 익숙한 동작으로 밧줄 에 매달린 다음 빠른 속력으로 아래로 내려왔다. 세실은 씩 웃으며 말했다.

“신부야, 곡예사야?”

“사다리가 있었는데 어떤 벼락 맞을 형제가 훔쳐가서 말이오. 하하. 이 짓도 익숙해지니 할 만하군요.”

세 사람 앞에 선 테리얼레이드의 신부는 머리에 백발이 희끗희끗하지만 키가 크고 강단 있어뵈는 모습이었다. 혁대에 망치를 꽂고 소맷자락을 걷어 올린 모습이긴 했지만, 파킨슨 신부는 인자한 표정으로 세 사람을 맞이했다.

“아아, 주님의 집을 찾아드신 형제 자매님들께 큰 실례로군요. 건물을 새로 지은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직 손질할 곳이 많거든. 그래서 이 모양 이 꼴 이오.”

세실은 비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 도시의 빌어먹을 깡패놈들에겐 새 교회 같은 건 아까워. 도대체 펠라론으로부터 어떻게 건축 자금을 타내었나? 법황이 몸소 오더라도 이 도시를 계도할 수는 없어, 이 친구야.”

파킨슨 신부는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세실 자매님. 내 입도 온화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부디 그런 불경한 말은 좀 삼가주시오. 다른 곳도 아닌 신성한 교회 안이란 말이오.”

“내 입은 분위기를 잘 타지 않거든. 어쨌든 소개하지. 이 사람들은 발과 유리고, 도움이 간절히 필요한 모습으로 내 가게에 들어와서는 교회의 도움 을 바란다고 하기에 여기로 데려왔으니까 이야기 나눠.”

모든 용무를 한 문장으로 표현해 버린 세실은 율리아나와 오스발이 뭐라고 인사를 하기도 전에 휙 나가버렸다. 문을 닫고 나서는 세실의 뒷모습을 향해 파킨슨 신부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보였다.

“원 참, 바람 같은 분이로고. 하긴 바람의 도시에 바람의 마법사면 어울리긴 하지.”

그리고 파킨슨 신부는 고개를 돌려 율리아나와 오스발을 바라보았다.

“자, 저 바람의 마법사가 바람처럼 해치워버린 소개도 소개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정식으로 소개하지요. 이 만남을 인도하신 주님을 찬양할진저. 테 리얼레이드 교회의 파킨슨 신부올시다.”

“주님을 찬양할진저. 유리입니다.”

“발입니다. 어, 주님을……… 예? 아, 찬양할진저.”

오스발은 율리아나 공주의 귓속말을 들어가며 인사를 마칠 수 있었다. 파킨슨 신부는 얼굴 가득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 시작해 볼까요.”

“예?”

“두 사람 모두 보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체격이군요. 퍽 다행입니다.”

“예?”

“아아. 마침 결혼 예복 중에 불타지 않은 것이 몇 벌 있습니다. 두 분께 잘 맞겠군요. 뭐 예복이 없어도 결혼 서약이 무효가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입는 편이 좋잖습니까. 절 따라오십시오.”

오스발은 세 번째로 ‘예?”라고 말하는 대신 당황하여 입을 뻐끔거렸지만, 율리아나 공주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아셨죠?”

파킨슨 신부는 득의만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정도야 머리 위로 결혼 서약 천사의 나팔 소리가 울려퍼지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것이죠. 어쨌든 여러분의 눈앞에 있는 이 작자 는 이 바람의 도시에서 10여 년 동안이나 신부 노릇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두 분은 절대로 테리얼레이드의 주민은 아니군요. 여행자의 복장을 보지 않아도 두 분의 얼굴만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벨입니까, 팔라레온입니까? 아, 그건 제가 상관할 바 아니죠. 어쨌든 여행, 흐음. 사랑의 도피 행각이 라고 할까요? 바람의 도시 테리얼레이드로 도망친 두 남녀가 이 도시에 들어오자마자 다른 곳도 아닌 교회를 찾는다면 목적이야 뻔한 것 아니겠 습…니…아닙니까?”

파킨슨 신부는 배를 잡고 웃어대는 율리아나 공주와 난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오스발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꼬리를 흐렸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신부 를 향해 노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퍽 인상적인 추리셨습니다만, 아닙니다. 신부님.”

“아아, 선입견과 헛된 추측을 벌하시는 주님이여. 이 미욱한 놈을 용서하소서. 죄송합니다. 그럼 두 분은 무슨 용무로?”

간신히 웃음을 멈춘 율리아나는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하아, 하아. 저, 예. 그러니까 저희들은 교회의 가호를 얻고자 이 성스러운 곳을 찾았습니다.”

“두려움을 버리고 말씀하십시오. 말씀하신 대로 이곳은 교회입니다.”

“예. 먼저 제 이름은 조금 전에 소개된 이름과 다르다는 사실부터 말씀드려야겠군요.”

파킨슨 신부는 이 무법 도시에서 신부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답게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그는 선선히 웃으며 말해 보라는 몸짓을 했고 율리아나는 침을 삼키고서 말했다.

“제 원래 이름은 딜비움 그랜다이 레보라 아크 리 바레린 길리데아 율리아나 카밀카르, 카밀카르 왕국의 공주입니다.”

순간 오스발은 고개를 조금 갸웃했다. 파킨슨 신부의 눈에서 어떤 번득임 같은 것이 지나쳤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본 신부의 얼 굴엔 놀라움만이 떠올라 있었고, 그래서 오스발은 자신이 착각했겠거니 생각했다. 파킨슨 신부는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했다.

“탈출하신 겁니까?”

율리아나 공주는 크게 놀라며 말했다.

“제가 납치당한 것을 알고 계셨어요?”

“물론입니다. 법황의 눈은 탄젤론의 미궁에서도 신의 자녀를 바라보고 계시며, 법황의 손은 사무이다크의 고원에서도 신의 자녀를 끌어올리는 법입 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자랑을 할 때가 아니군요. 공주님께 베풀어진 신의 크나큰 은혜를 본다면 말입니다. 오오, 공주님. 도대체 어떻게 키 드레 이번의 손아귀에서 탈출하신 겁니까?”

잠시 종교계의 발넓음에 경탄하던 율리아나는 더듬거리며 자신의 탈출 과정을 설명했고 이번에는 파킨슨 신부가 감탄을 연발했다. 파킨슨 신부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떤 바람도 완전히 걷어낼 수는 없다는 미노 만의 안개 덕분에 탈출에 성공하신 것이로군요. 주님의 은혜에 감읍할 따름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라 대드래곤의 은혜인데요’라는 말이 혀를 간지럽게 했지만 율리아나는 간신히 말을 삼켰다. 파킨슨 신부는 자신의 이마를 딱 치며 말했다.

“아, 이런! 죄송합니다. 테리얼레이드에 살다 보니 예법이고 뭐고 다 잊어먹었군요. 들어오시지요. 차라도 하시면서 귀향길에 대해 의논해 보도록 하시지요. 아, 귀향길. 음. 그런데 공주님께서는 어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어디라니오?”

“어, 그러니까 고국 카밀카르로 돌아가실 생각이신지 아니면 필마온 기사단으로 가실 생각이신지를 여쭙고 있는 것입니다.”

“아, 예………… 따져보자면 저는 혼사길에서 봉변을 당한 어린 신부이고, 따라서 시댁보다는 본가로 달려가고 싶을 거예요, 아마. 이 경우 보통이라는 말은 쓸 수 없겠지만, 보통 그렇게들 하잖나요?”

어느덧 공주의 어법에 익숙해져 버린 오스발은 별 이상한 느낌을 받지 못했지만 파킨슨 신부는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어버렸다. 율리아나는 생긋 미 소 지었다.

“카밀카르로 가야겠지요. 저는 카밀카르의 배에 타고 있던 시점에서 납치당했으니까요. 항해중인 선박은 그 소속 국가의 영토와 마찬가지인 점은 아시겠지요?”

율리아나 공주가 너무나 당연해서 별로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는 점은 파킨슨 신부에게나 오스발 모두에게 불행이었다. 두 사람은 그런 사실 을 도통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파킨슨 신부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아, 예. 잘 알겠습니다. 자, 이리 오십시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