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랩소디 1권 – 4장 : 철탑의 인슬레이버 enslaver – 6화
모포 속에서 느닷없이 깨워진 슈마허는 한참 동안이나 자신을 깨운 것이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을 깨운 것이 키 드레이번임을 알게 된 슈마허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 키는 전(前) 율리아나 공주 호위대장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오 왕자의 검이 뭐냐?”
“뭐요?”
“오 왕자의 검이 뭐냐고 물었다.”
슈마허는 대답에 앞서 눈을 비비는 척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키의 좌우에는 라이온과 식인종 조타수가 조용히 앉아 있었다. 순간적으로 키 를 제압하여 그를 인질로 삼아보면 어떨까 하는 용감한 생각을 떠올렸던 슈마허는 아쉬움을 느끼며 그 계획을 폐기했다.
“왜 내게 그걸 묻는 거요?”
“칸나가 나에게 그 사실을 말해 주려 했지만 그는 제국어가 서툴다. 그런데 그가 너에게 물어보라더군. 그가 너를 지목한 이유를 모르겠지만 그건 네게 들으면 되겠지.”
슈마허는 칸나를 돌아보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칸나가 자신을 지목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건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군요. 이 식인종이 나를 지적한 이유는 내가 기사였기 때문이겠지요.”
“기사였기 때문에?”
지금은 아니지. 널빤지 위에서 상어가 되기로 했으니까. 그래서 너 따위 해적 녀석에게 이렇게 공손하게 대답하는 것이고. 그러나, 두고봐. 언젠가 는………….
“그것도 전략전술이나 전사학에 대해 공부했을 것이 분명한 기사였기 때문이겠죠. 그건 전략가들이 하는 말입니다.”
“전략가라고 했나?”
“예. 그것도 누대의 전략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해 온 이야기입니다.”
“무슨 이야기인데?”
“그곳을 얻으면 반드시 대륙을 제패할 수 있는 땅에 대한 이야기죠.”
“뭐라고?”
슈마허는 오왕자의 검에 대해 설명했다.
아직까지도 새로운 것이 발견될 정도로 무수한 대륙의 여러 신비 중에서도 이 땅의 신비함은 독특한 것에 속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현실성 있는 신 비이기 때문이다.
고대로부터 수많은 자칭 타칭 천재들이 대륙 제패의 열쇠가 되는 땅으로 지적해 온 땅이 있었으니 바로 이곳, 다벨과 록소나, 그리고 다케온과 팔라 레온 지방을 잇는 거대한 사각형 모양의 땅이 그것이다. 그래서 전략가들은, 그들로서는 드문 일이지만 약간의 문학적 재치를 발휘하여 이곳을 ‘왕자 의 땅’이라고 불러왔다.
여기서 왕자란 왕이 될 수 있는 가능성 그 자체를 의미한다. ‘오 왕자의 검이 하나로 모이면 왕이 탄생하리라.’ 전략가들이 꿈에서라도 잊을 수 없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오 왕자의 검이란 다케온의 다이아몬드, 록소나의 말, 팔라레온의 밀, 다벨의 강철의 네 가지의 현실적인 검과 역사상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다섯 번째의 검을 더하여 말하는 것이다. 수많은 불우한 천재들이 갈망과 비탄을 담아 노래해 왔던 다섯 번째의 검은 시운, 재능, 그 리고 행운을 가진 ‘인간’을 말한다.
왜 현실적인 네 개의 검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비현실적인 다섯 번째의 검이 필요한 것일까?
오 왕자의 검이라는 말은 양면적인 의미를 가진다. 전략가들이 그 말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던 것 중에는 군주국의 정기 행사와도 같은 형제 살해를 비꼬는 일도 포함된다. 비슷한 능력의 왕자가 넷 있다면 왕위 계승이 얼마나 어려울지를 생각해 보라. 마찬가지로, 이 왕자의 땅에서도 현실적인 네 검은 서로가 서로에 대한 억제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하나로 모아질 수 없다. 그렇기에 다섯 번째의 검, 나머지 네 개의 검을 그 자신에게로 모을 수 있는 천재가 있어야 한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야말로 그 다섯 번째의 검이라고 믿어왔지만 대륙의 역사가 증명하는 바 그런 천재는 단 두 사람뿐이었고, 두 사람 모두 이 왕자 의 땅에서 그의 발걸음을 내딛지는 않았다는 점은 아이로니컬함을 넘어 어처구니 없을 정도다.
“아달탄 황제와 대마법사 하이낙스 말인가?”
“그렇습니다. 이 땅을 대륙의 역린, 황제의 요람 따위로 부르는 전략가들은 많지만 실제로 제국을 세운 아달탄 황제 폐하나 그 제국을 거의 전복시 킬 뻔한 하이낙스 모두 이 땅에서 태어나기는커녕 이 땅을 이용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이야기 또한 무료한 자칭 전략가들의 탁상공 론 정도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잠시 침묵한 채 슈마허의 말을 소화하던 키는 진지한 어조로 질문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나?”
슈마허는 잠시 갈등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사실 그럴 듯하긴 합니다.”
“그럴 듯하다고?”
“당신도 다벨 공국의 메르데린 공작의 이야기는 들어보셨겠죠?”
“그 허풍 공작 말인가? 공개적으로 황제위를 얻겠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얼간이?”
“예. 하지만 그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단순한 허풍만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그 역시 왕자의 땅에 대한 이야기를 아는 것이겠죠. 만일 그가 그의 나라와 인접한 록소나, 다케온, 팔라레온의 3국을 얻을 수 있다면 무시 못할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흐음.”
“만일 그것이 사실로 이루어진다면 다벨의 강철로 무장하고 록소나의 말에 올라탄 부대가 등장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대는 팔라레온의 밀밭을 보급창으로 삼고 다케온의 다이아몬드를 군자금으로 쓸 수 있겠지요. 강력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군사력입니다.”
키는 이를 악물었다. 필마온의 발도 로네스는 별개로 치더라도, 정신병자 정도로 취급하고 있었던 메르데린 공작에게도 이 정도의 근거가 있었단 말 인가. 제국을 뒤엎겠다는 녀석이 왜 이렇게 많아?
물론 키 드레이번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가 남해를 주인 없는 바다처럼 돌아다닐 수 있는 이유와 같다. 마법사 하이낙스 때문이다. 아무도 그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때, 마법사 하이낙스는 실제로 제국 정복이 가능함을 몸소 보여주었다. 비록 레프토리아 회전에서의 패 배로 그 성공 일보 직전에서 무너졌지만, 그렇기에 그는 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파멸한 영웅은 사람들을 더 흥분시키는 것이다. 비록 그들 자신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발도 로네스나 메르데린 공작은 하이낙스의 뒤를 잇는 그의 추종자인 것이다.
“좋아. 이제 메르데린 공작이 흥분하여 게거품을 뿜어대는 이유는 짐작할 수 있다. 그만한 가능성이 있단 말이지. 그렇다면 그 자가 이토록 바보 취 급당하는 이유는? 실제로 제국을 정복했던 두 사내가 이 땅을 이용하지 않았다는, 단지 그 역사적 사실 때문에?”
“대륙 제패 정도의 대사건이라면 두 개 정도의 예로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부족해.”
“글쎄요. 전쟁이라는 것이 그렇게 말처럼 쉽게 된다면 패배하는 장수는 생기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오 왕자의 검 이야기에서도 네 개의 검이 하나 로 모이기 위해선 다섯 번째의 검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었잖습니까? 혼자서 한 나라와 맞먹는 천재가 필요하다는 말이죠. 하지만 그런 천재는 잘 등 장하지 않는 법입니다. 내 생각엔 그건 그저 그럴 듯한, 하지만 현실성은 없는 이야기처럼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왜 그 많은 전략가들이 그 이야기를 반복해 왔단 말인가?”
“아마도 최초로 오 왕자의 검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사람의 명성 때문이겠죠. 그래서 그의 말을 앵무새처럼 계속 반복하고 있는 것일 겁니다.”
“최초로 말한 자가 누군데?”
“아달탄 황제 폐하이십니다.”
“아달탄 황제가? 그 자신은 이 땅을 이용하지도 않았다고 했잖은가.”
“그러니 그 말은 더 믿을 수 없는 거죠. 어쩌면 선황제 폐하께선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키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슈마허에게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조금 전 칸나에게서 들었던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었다.
칸나는 대사 때문에 오 왕자의 검이 모이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슈마허는 대사라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말했다. 그렇다면 그 건 역시 아피르 족의 환상인 것일까? 그러나 라스는 이 슈마허를 다섯 수레와 한 권이라고 평했고, 비록 그 평을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키 역시 이 전 호위대장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것까지 꿰뚫어보는 눈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대사라는 존재는 오 왕자의 검이 하나로 모이지 않는 이유에 대한 괜찮은 해답으로 여겨졌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무서운 힘을 가진 어떤 존재가 오 왕자의 검이 모이는 것을 막고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