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랩소디 2권 – 6장 : Bladerunner –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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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리스 랩소디 2권 – 6장 : Bladerunner – 2화


카밀카르 상관으로 돌아오는 포석 위론 석양의 붉은 광선이 흐르고 있었다.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조차 아름다운 보석으로 보이게 만드는 황혼이었 지만 스스로의 고민 속으로 침잠해 있던 파킨슨 신부의 눈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부둣길을 걷던 신부는 잠시 멈춰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수평선 안쪽으로 나갔던 배들은 힘든 노역에 지친 어부들을 싣고 부두로 돌아오고 있었고, 수평선보다 더 먼곳으로 떠날 배들은 내일 일출의 출발을 위해 마지막 점검으로 부산했다. 다림의 항구 전체가 부드러운 소란함으로 들끓고 있었고 그 모든 것 위로 금적색의 황혼이 스며들고 있었다. 거대한 배들의 옆구리로 음영은 더욱 짙어지고 있었지만 젖은 밧줄들은 화염처럼 빛나고 있었다.

멍하니 서 있던 파킨슨 신부의 머릿속으로 핸솔 추기경의 말이 스쳐지나갔다.

키 드레이번과 결혼했더라면, 죽음과 결혼했더라면.

파킨슨 신부는 헛된 소망을 품어보았다. 그날, 철탑 앞에서 율리아나 공주가 키 드레이번의 손에 죽었더라면. 그는 키 드레이번이라면 얼마든지 증 오할 수 있었을 것이고, 바로 그렇기에 용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그 비정한 자를 위해 기도할 수도. 하지만 신부는 교회를 증오할 수는 없 었고 바로 그렇기에 용서할 수도 없었다. 파킨슨 신부는 얼굴 아래쪽 전체가 마비될 때까지 어금니를 사려 물었다.

“비켜어, 히꾹! 이 정신나간 영감아!”

신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초저녁부터 술에 취한 선원 몇 명이 비틀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낮 동안 내내 마시다가 잠자리를 찾아 배로 귀환하는 선원들인 듯하다.

“뭐라고 하셨소?”

“비키라고! 왜 사람 다니는 길을 막고, 끽! 서 있는 거야? 어라, 혹시 밀항이라도, 히꾹! 하려는 거야? 쿠겔겔!”

파킨슨 신부는 잠시 다섯 명의 선원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떤 계획이 그의 머릿속으로 그려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파킨슨 신부는 자신의 계 획에 찬성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형제들. 혹시 이 중에서 행동이 굼떠서 다른 친구들보다 항상 손에 들어오는 게 적어 속상했던 친구 있나?”

선원들 중 하나가 얼빠진 목소리로 질문했다. “뭐라고?” 다음 순간 대답한 선원은 파킨슨 신부의 세찬 주먹에 맞아 뒤로 나가떨어졌다. 아직까지 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해서 어리둥절해하고 있던 선원들을 무시한 채 파킨슨 신부는 쓰러진 선원에게 말했다.

“자넨가? 그럼 자넨 두 배로 축복해 주지. 다음 차례로 축복받고 싶은 친구는 누구지?”


율리아나 공주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파킨슨 신부를 바라보았다. 신부는 히죽 웃으려다가 입술을 움켜쥐고 신음을 흘렸다. 찢어진 입술에서 다시 피 가 흐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신부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누구랑 싸우셨어요?”

신부는 잠시 아파서 그러는 것처럼 얼굴을 감싸쥔 채 낭패한 기분을 다스렸다. 파킨슨 신부는 그녀를 만나고 싶지 않았기에 대사관저 경비병에게도 소란을 일으키지 말라고 사정하곤 조용히 들어왔던 참이었다. 그러나 율리아나는 그의 소망대로 침실에 있는 대신 응접실에 오도카니 앉아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율리아나 공주는 그가 뭐라고 말할 겨를도 주지 않은 채 그의 팔을 끌어당겼다.

“일단 좀 앉아보세요. 세상에!”

소파에 앉는 파킨슨 신부를 보며 율리아나는 다시 한번 가슴이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신부의 머리카락은 피와 함께 굳어 있었고 왼쪽 눈은 이 미 눈동자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부어 있었다. 이마와 볼의 피부 여러 군데가 찢어져 있었고 방금 터진 입술에서 흐르는 선혈은 섬뜩했다. 율리아 나는 짧게 숨막힌 소리를 내었지만 시름에 잠겨들거나 설명을 요구하는 대신 재빨리 하인을 불렀다. 하지만 그녀는 곧 자신을 꾸짖으며 직접 일어났 다. 잠시 후 율리아나 공주는 직접 주전자와 대야, 그리고 수건 등을 챙겨들고 돌아왔다. 공주는 수건을 물에 적시며 말했다.

“약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군요. 대사님이 아직 돌아오지 않으셔서. 그 경매건 때문에 다벨 사람들하고 이야기할 일이 많으신가 봐요.”

“아아, 메르데린 컬렉션이 도착했습니까?”

“예. 아까 오후에요. 호송단 인원이 얼마나 많은지 대사관저의 하인들까지 다 그쪽으로 갔어요. 대사님은 저를 혼자 내버려둘 수 없다고 하셨지만 제가 다 가라고 했지요. 지금은 좀 후회되는군요. 아, 말씀하지 마세요. 일단 피 좀 닦아내죠. 물을 끓였으면 좋았을 텐데.”

파킨슨 신부는 자신이 하겠다는 듯이 손을 내밀었지만 율리아나는 수건을 꼭 쥔 채 직접 파킨슨 신부의 얼굴을 닦아내었다.

“오스발과 데스필드는 술을 약간씩 하고 와서는 이미 잠들었어요. 데스필드는 신부님이 빨리 돌아오지 않는다고 많이 투덜대더군요. 신부님이 자기 대금으로 술 마시고 있을지도 모른다고까지 그러더라고요. 아까는 그 말에 웃어버렸지만, 지금은 데스필드가 부업으로 예언가 일도 하는 것이 아닌 가 하는 상상까지 되는데요?”

파킨슨 신부는 눈을 꼭 감은 채 속으로 말했다. 예언가라면 여기 있습니다. 당신의 사망 시각과 장소를 예언해 드릴 수 있지요. 순간 신부는 비명을 내지르고 싶은 기분 속에서 몸을 떨었다. 그러나 율리아나는 그 몸짓을 엉뚱하게 해석했다.

“죄송해요. 아프시죠? 살살할게요. 도대체 왜 이렇게 되셨어요?”

“………돌아오는 길에 부둣가에서 선원들과 약간의 언쟁이 있었습니다.”

이 경우 언쟁은 너무 부드러운 표현일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파킨슨 신부가 상대가 내미는 단검의 끝을 볼 줄 아는 특이한 신부가 아니었거 나 그 선원들이 파킨슨 신부가 둘로 보일 만큼 취하지 않았다면 ‘언쟁’을 벌였던 여섯 명 중 한둘은 시체 꼴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율리아나는 다른 사실에 분개했다.

“아니, 신부님을 때려요?”

“신부복을 입지 않았잖습니까.”

“그래도 말씀하셨어야죠! 아아, 믿지 않았나 보군요. 핸드건으로 하늘이라도 쏘지 그러셨어요? 아아, 오발 사고가 날까 봐 그러셨나 보군요. 그래도 이렇게 될 때까지!”

율리아나는 파킨슨 신부가 우물거리는 사이에 자기 질문에 대한 대답까지 다 해버렸다. 그래서 파킨슨 신부는 침묵으로써 공주의 말에 동의하는 척 했다. 피를 꼼꼼히 닦아낸 율리아나는 일단 외부적으로 치명상은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안쪽으로 뭔가가 상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이곳까지 걸어온 파킨슨 신부의 상태로 보아 당장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듯했다. 그래서 율리아나는 한숨을 쉬며 일어났다.

“갈아입으실 옷을 찾아야겠는데… 신부님 배낭에 여벌 옷이 있죠?”

“예. 제가 갈아입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공주님.”

“정말 괘씸하기 짝이 없어요! 누군지 알아보실 수 있으세요? 대사님께 말해서 체포하도록 하겠어요.”

“아니, 괜찮습니다. 제 상태는 상대방에 비하면 오히려 나을 정도거든요.”

율리아나는 잠시 당혹한 얼굴로 파킨슨 신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곧 그녀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제가 뭔가를 착각했군요. 전 무의식중에 신부님이 그냥 때리는 대로 맞았을 거라고 넘겨짚었거든요. 선입견이었어요. 하지만 신부님이 그런 고분 고분한 성격이시라면 바람의 도시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계실 수는 없었을 거라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군요. 차라리 상대방을 찔러버리지는 않았냐 고 물어야겠군요. 아! 농담이에요.”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파킨슨 신부는 몸을 일으켰다. 율리아나는 그의 굳은 얼굴을 보며 자신의 농담이 과했던 것은 아닌가 걱정했다.

“신부님? 저녁은 드셨어요?”

“가는 길에 먹죠.”

“예?”

파킨슨 신부는 품속에서 돈주머니를 꺼내었다. 신부는 그것을 율리아나에게 건네는 대신 그녀의 눈을 피해 소파에 올려놓았다. 그러곤 여전히 그녀 의 얼굴을 피하며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데스필드에게 좀 전해 주십시오. 그의 대금입니다.”

“어? 당장 떠날 사람처럼 말씀하시네요?”

파킨슨 신부는 아무 말 없이 문 쪽을 향해 걸어갔다. 율리아나는 황급하게 말했다.

“신부님?”

그러나 파킨슨 신부는 공주의 말에 멈추는 대신 속도를 더 높였다. 파킨슨 신부는 거의 문을 박차듯이 뛰쳐나갔다.

율리아나 공주는 다급하게 신부의 뒤를 따라 복도로 나왔다. 조금 후 계단으로부터 배낭을 양손에 든 신부의 모습이 나타났다. 계단을 내려온 파킨 슨 신부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그를 바라보고 있던 율리아나 공주의 곁을 조용히 지나쳤다. 율리아나가 몸을 빙글 돌렸을 때 신부는 현관에 있던 자 신의 지팡이를 들어올리고 있었다.

“파킨슨 신부님!”

파킨슨 신부는 멈춰 섰지만 몸을 돌리지 않았다.

“테리얼레이드의 제 교회가 걱정됩니다. 빨리 돌아가 봐야겠습니다.”

어린애도 믿지 않을 딱딱한 어조였다.

“그렇더라도………… 데스필드와 함께 돌아가셔야죠? 신부님 혼자서 어떻게 거기까지 돌아가시겠어요. 그리고 이런 야밤에… 도대체 뭔가요? 왜 그렇 게 급히…………… 마치 ‘도망치는’ 것처럼?”

파킨슨 신부는 목이 메인다는 평범한 말이 이토록 무서운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는 죽을 사람이 던져오는 따스한 말 에 진저리를 쳤다. 당신은 죽습니다. 율리아나 공주. 마침내 탈출에 성공하여 안도하는 바로 이 시점에, 당신을 도와왔다고 믿던 교회의 손에 의해. 그리고 당신을 이곳으로 끌고 온 것은 바로 이 미련한 신부였습니다. 주여!

“이 도시에 있어서는 안 될 사정이 생겼습니다.”

율리아나 공주는 오늘 저녁 여러 번 저지른 일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눈치 채지 못했던 일을 다시 저지르고 말았다. 잠시 경악한 얼굴로 신 부의 등을 바라보던 율리아나는 잠시 후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데스필드를 깨울게요.”

“공주님.”

“혼자서는 못 달아나세요! 시체는 잘 처리했나요? 정당 방위였음을 주장할 증인이 아무도 없어요? 도망치시려면 데스필드와 함께 가셔야 돼요! 아, 참! 도망치지 않으셔도 돼요. 아무리 엉터리 같은 대사관이라도 이곳은 어쨌든 카밀카르 대사관이니 치외법권 지대예요. 이곳에 계셔야 해요. 폴라 대사님과 함께 사태를 논의해 봐요.”

율리아나는 말뿐만 아니라 파킨슨 신부의 팔을 다시 잡아끌었다. 하지만 파킨슨 신부는 약간 거칠다 싶은 동작으로 공주의 손길을 뿌리쳤다. 이 무 례에 놀란 율리아나는 그제서야 파킨슨 신부가 울고 있음을 발견했다.

“신부님· ..?”

파킨슨 신부는 눈물이 흐르도록 내버려둔 채 율리아나 공주를 바라보았다. 신부의 얼굴에 떠오른 비탄과 노여움, 그리고 애절함에 놀란 율리아나는 두 손을 들어 자신의 입을 가렸다.

“신・・・・・・부님? 파킨슨 신부님? 왜………… 그런 얼굴로 저를?”

눈물을 통해 율리아나를 바라보던 파킨슨 신부의 가슴속에서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많은 말도 필요없어. 단 세 마디면 충분해. 미사에 가지 마시오. 그거면 이 가련한 신의 아이를 구할 수 있어. 저런 눈으로, 마치 우리 주님을 바라보는 것 같은 신뢰감과 애정으로 널 보는 눈을 보란 말이다.

그러나 파킨슨 신부는 말하지 못했다. 핸솔 추기경이 그를 보내줬기 때문이다. 파킨슨 신부는 그제서야 핸솔 추기경이 자신을 순순히 보내준 사실에 의아해하고 동시에 그 대답도 떠올렸다. 몇 년 전의 짧은 만남뿐이었지만 핸솔 추기경은 그를 너무도 잘 파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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