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랩소디 2권 – 6장 : Bladerunner – 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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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리스 랩소디 2권 – 6장 : Bladerunner – 6화


데스필드를 확인하기 위해 교회 안쪽을 훔쳐볼 요량으로 정문을 향해 걸어가던 오스발은, 그래서 문이 느닷없이 열렸을 때 하마터면 사람들에게 깔 려 죽을 뻔했다. 가까스로 옆으로 비켜선 오스발은 이제 떨어져내리는 빗줄기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달려가는 사람들을 보며 기막힌 얼굴이 되 었다. 문을 박차고 달려나온 사람들은 저마다 목이 찢어져라 비명을 내지르며 달려갔고 그 중 상당수가 계단에서 미끄러져 굴러내렸다. 오스발은 급 히 사람들을 부축하려 했지만 그 자신이 먼저 깔려 죽을 판국이었다. 그때 그의 눈에 양쪽 겨드랑이에 두 명의 자녀를 끼고 달려가는 사내의 모습이 들어왔다. 오스발이 그 엄청난 모습에 감탄했을 때 사내는 찢어져라 비명을 질렀다.

“노 – 스윈드! 노― 스윈드다!”

아무리 어이없는 순간이라 하더라도 오스발은 그 말을 북풍이 분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오스발은 재빨리 정문을 돌아보았지만 사람들 로 가득 찬 문을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방황하던 그의 시야에 정문 옆의 창문이 들어왔다. 오스발은 속으로 사과하며 그 아름다운 장식창을 향해 몸 을 던졌다.

유리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파편을 피하기 위해 몸을 구부린 채 몇 바퀴 굴러간 오스발은 밟혀 죽지 않기 위해 재빨리 일어났다. 그 사이에도 사람들은 오스발이 깨어놓은 창문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로 간신히 빠져나온 오스발은 예배당 안쪽의 모습에 주춤 했다. 오스발은 의자 뒤에 몸을 숨겼다.

몇 명의 칼잡이들과 대치중인 키 드레이번이 그곳에 있었다. 오스발이 보고 있는 동안에도 한 명을 베어내린 키는 그대로 몸을 뒤틀어 또다른 칼을 막아내었다. 하지만 그의 방어는 오스발이 보기에도 좀 이상했다. 오스발은 철탑 앞에서 보았던 키를 떠올렸고, 그때 그의 오른팔이 좀 이상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오스발의 추측대로 키의 부러진 팔은 아직 완쾌되지 않았다. 가까스로 또다른 검을 막아낸 키는 조금 전 쓰러진 사내의 검을 걷어찼다. 바닥을 미끄 러진 검은 한 사내의 발에 걸렸고 사내는 그 검을 차올려 완벽한 동작으로 거머쥐었다.

“본인의 도움을 원하나?”

데스필드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고 키 드레이번 역시 무서운 미소로 화답했다.

“누구든 공격해라. 아무 짓도 안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패스파인더!”

데스필드는 짧게 웃은 다음 율리아나 공주를 향해 달려드는 또다른 칼잡이의 진로를 막아섰다. 키 드레이번이 왜 암살자들을 막는진 알 수 없었지만 데스필드는 아마 저 정신나간 사내가 자신의 이름을 도용당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가 생각해 봤다 어쨌든 더 급한 건 이 암살자 를 저지하는 일이었다. 데스필드는 야수 같은 고함을 지르며 칼잡이에게 달려들었다.

폴라 대사와 대사관 직원들은 율리아나 공주를 감싼 채 자리를 피하려 했다. 하지만 정문은 도망치는 사람들에 의해 막혀 있었다. 제단 왼쪽에서 수 도원으로 통하는 문을 발견한 폴라 대사는 목청껏 외쳤다.

“저 문으로!”

그러나 잠시 후 카밀카르 대사관의 일행들은 공포 어린 좌절을 느껴야 했다. 문이 잠겨 있었다. 이런 대낮에, 더군다나 예배 시간에 교회의 문이 잠 겨 있을 까닭이 없었지만 혼란에 빠진 그들은 냉정하게 추리할 시간이 없었다. 그들은 일단 급한 대로 율리아나 공주를 고해실에 들어가게 한 다음 그 앞을 몸으로 막아섰다. 그러나 부하들과 함께 고해실을 막아서면서도 폴라 대사는 의문을 떠올렸다. 핸솔 추기경과 다른 수사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정문으로 달아났을까? 그러나 폴라 대사는 왠지 그들이 저 잠긴 문으로 도망쳤을 거라는 의심을 떨치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녀는 곧 그런 의 심을 잠깐 접어두기로 했다. 칼잡이 하나가 괴성을 지르며 육박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데스필드는 한 명의 칼잡이를 상대하고 있었고 키 역시 두 명의 칼잡이에게 묶여 있었다. 무장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카밀카르인들 중 몇 명이 죽 음을 각오하고 달려들었지만 상대는 능숙한 칼잡이였다. 사람의 벽이 두껍다고 판단한 암살자는 무조건 육박하는 대신 다가오는 자들을 한 명씩 쓰 러뜨렸다. 세 명이 쓰러지자 아무도 달려들지 못했고 그러자 암살자는 득의만면한 표정으로 외쳤다.

“비켜라!”

폴라 대사는 이를 악물었지만 옆으로 움직이진 않았다. 그리고 다른 카밀카르인들 역시 고해실을 막아선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너무 많 아서 달려들 수 없었던 암살자는 사납게 으르릉거렸다. 의자들 사이에 몸을 숨긴 채 그 모습을 훔쳐보던 오스발은 조심스럽게 암살자에게 접근했다. 반쯤 기고 반쯤 달리며 암살자에게 접근하고 있긴 했지만, 오스발은 사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저쪽에서 두 명의 암살자들을 상대하고 있던 키가 고해실 쪽의 모습을 보았다. 키는 거센 공격으로 암살자들을 잠시 떨어지게 한 다음 품속으 로 손을 집어넣었다. 다시 나온 그의 손에는 오스발의 눈에도 익은 핸드건이 쥐어져 있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틈을 보인 그를 향해 암살자들의 검 이 날아들었다.

“크윽!”

키 드레이번은 옆구리에 상처를 입었지만 맹렬한 동작으로 핸드건을 집어던졌고 그것을 받아든 사람을 보며 오스발은 다시 당황했다. 파킨슨 신부는 자신의 손에 들어온 핸드건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키는 고통에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짜증을 내듯 외쳤다.

“썩을 신부놈! 누굴 쏴도 상관없으니 빨리 쏴!”

끔찍한 유혹이야. 무의식중에 핸드건의 장전 상태를 확인하고 그것을 들어올려 겨냥하는 동안에도 파킨슨 신부는 이 유혹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굴 쏴도 상관없다라.

콰과광!

천둥 소리와 동시에 핸드건이 불을 뿜었다. 암살자들뿐만 아니라 폴라 대사와 다른 카밀카르인들도 질겁하며 놀랐다. 천장을 명중시킨 파킨슨 신부 는 핸드건을 내려 고해실 앞에 있던 암살자를 겨냥했다.

“검을 버려라!”

안타깝게도, 그 암살자는 교회의 보물에 무지했을 뿐만 아니라 파킨슨 신부가 천장을 쏜 것도 보지 못했다. 암살자가 느낀 건 그저 굉음뿐이었다. 그 래서 암살자는 노성을 지르며 신부를 향해 달려들었다. 파킨슨 신부는 입술을 깨물며 포구를 조금 내렸다.

콰아아앙! 다시 굉음이 울려퍼졌다. 파킨슨 신부를 향해 달려가던 암살자는 마치 다리가 걸린 것처럼 앞으로 쓰러졌다. 어이없는 심정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본 암살자는 그제서야 자신의 다리 하나가 깨끗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고통은 공포 다음에 찾아왔다.

“으아아아악!”

암살자는 자신의 다리를 거머쥔 채 온몸을 비틀어대었다. 파킨슨 신부는 우울한 얼굴로 그 모습을 보다가 핸드건을 돌려 다른 암살자들을 겨냥했다. 남아 있던 세 명의 암살자들은 기겁하며 교회 밖으로 도망쳤다. 폴라 대사가 발을 동동 구르며 외쳐대었다.

“잡아야 해! 배후를 알아야 된다고!”

물론 폴라 대사의 외침은 핸드건에 다리를 맞은 사내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걱정까지 하며 외친 말이었다. 하지만 파킨슨 신부는 다시 사람을 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고 데스필드는 한숨 돌리며 쓰러진 암살자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무장을 가진 마지막 사람인 키드 레이번의 경우에는…………….

“키 드레이번.”

파킨슨 신부는 핸드건을 들어올리지는 않았다. 그것을 허리쯤에 늘어뜨린 채 파킨슨 신부는 키 드레이번을 바라보았다. 키는 왼손으로 상처입은 옆 구리를 움켜쥔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파킨슨 신부는 괴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휴전은 끝난 건가?”

“그렇다.”

키는 힘겹게 복수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파킨슨 신부는 여전히 핸드건을 들어올리지 않았다.

“이렇게 될 걸 짐작하지 못했나? 당신은 정말 미치광이인가?”

키 드레이번은 대답 대신 파킨슨 신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핸드건을 쥔 파킨슨 신부의 손이 가볍게 떨렸다.

“멈춰.”

“싫다면?”

“쏜다.”

“네 죽음에 그토록이나 이유가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

핸드건이 올라왔다. 파킨슨 신부는 키 드레이번의 미간을 조준했고 키 드레이번은 걸음을 멈췄다.

“이건 언젠가 겪어본 일인 것 같군. 쏘지도 못할 대포로 아무나 겨누지 말라고 했던가. 하지만 이번엔 자네 주위에 아무도 없네.”

다시 벼락이 쳤다. 꽈루루룽! 열어젖혀진 정문과 깨진 창문을 통해 비바람이 몰아쳤다. 천둥 소리의 여음이 희미해져 갈 무렵, 키는 다시 걷기 시작 했다. 그의 두 눈은 파킨슨 신부의 눈동자에 고정되어 있었다.

“멈춰, 포기해!”

하지만 키는 멈추지 않았다. 파킨슨 신부는 입술을 깨물며 핸드건을 조금 내렸다. 키의 다리를 겨냥한 파킨슨 신부는 속삭이듯 말했다. 

“미안하네.”

굉음과 함께 핸드건이 발사되었다. 키 드레이번은 걸음을 멈췄다.

그러나 쓰러지지는 않았다.

파킨슨 신부는 흠칫하며 자신의 손과 키의 다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겨냥은 정확했다. 비교할 대상이 드문 최고이긴 하지만, 어쨌든 최고의 건맨 인 파킨슨 신부의 조준은 완벽했다. 키는 분명히 왼쪽 정강이에 상처를 입고 쓰러졌어야 했다. 하지만 핸드건의 포탄은 돌바닥에 무서운 탄흔을 남겨 놓았을 뿐 키에겐 아무런 상처도 입히지 않았다. 파킨슨 신부는 어이없는 얼굴로 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광풍에 흩날리는 머리카락 속에서 키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키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파킨슨 신부는 다시 핸드건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돌바닥에서 벼락이 뿜어져나왔을 뿐 키의 다리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파킨슨 신부는 손을 떨 며 핸드건을 들어올렸다. 이건 살해다, 이건 살해다! 파킨슨 신부는 자신을 향해 계속 외치고 있었지만 그 손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핸드건의 포 신은 키 드레이번의 가슴을 겨냥한 채 불을 토해내었다.

키 드레이번 뒤쪽의 창문이 박살나며 빗줄기 속으로 터져나갔다.

파킨슨 신부는 그만 울고 싶어졌다. 공포와 당혹 속에서 파킨슨 신부는 키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그때 파킨슨 신부는 키의 두 눈에서 뭔가 의미를, 퍽이나 맹포한 의미를 읽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파킨슨 신부는 그 의미에 집중했다.

두 번의 굉음이 울린 후 예배당 안은 적막 속으로 빠져들었다. 폴라 대사와 카밀카르인들, 그리고 데스필드는 이 불가해한 대치를 보며 숨쉬는 것마 저 잊었다. 데스필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조금 전 사납게 날뛰던 암살자 당신도 한 방에 쓰러뜨린 신부 당신 아닌가. 그런데 저렇게 멍청하 게 서 있는 당신도 명중시키지 못한다면 말이 안 돼! 그때 데스필드는 심장이 서늘해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파킨슨 신부의 핸드건이 스르르 내려오기 시작했다.

겨냥을 낮추는 것이 아니었다. 신부의 두 눈은 초점을 잃은 채 허공을 방황하고 있었고 그 손은 그저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데스필드의 마음속으 로 어두운 불안감이 스쳐지나갔다. 설마, 포기해 버리는 건가? 하지만 왜!

그리고 그 사태에 어이없어하는 자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신부님? 설마 죽으시려는 겁니까?”

데스필드는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복수를 들어올리던 키 또한 고개를 돌렸다. 예배당 저편에서 오스발이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 로 신부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순간, 키는 끔찍한 분노를 터뜨렸다.

“오스바알!”

데스필드는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낮추며 두 팔을 앞으로 들어올렸다. 그의 모습은 마치 쏟아져오는 불길로부터 몸을 막으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 러나 불길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오스발을 향해 달려가던 키는 몸을 솟구쳤고 예배석을 박차며 다시 더 높게 날아올랐다. 복수를 쥔 오른손 은 등뒤로 완전히 넘겼고 그것이 앞으로 휘둘러졌을 때 오스발의 머리가 쪼개질 것은 누구의 눈에도 당연하게 보였다.

순간 세계가 하얗게 바뀌었다.

“꽈루루루 콰아아앙!”

무수한 찰나 속에서 데스필드는 많은 것을 보았다. 오스발의 창백한 얼굴, 그의 머리 위에 떠 있던 키 드레이번, 한껏 당겨진 복수. 데스필드는 번개 때문에 자신이 잔영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은 맹렬한 동작을 담은 한 폭의 정지된 그림처럼 보였다. 그 의 눈엔 키 드레이번의 등에서 솟아오른 피보라도 멈춰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곧 사물의 시간이 원래대로 흐르기 시작했다.

날개 꺾인 새처럼, 키는 아래로 떨어졌다.

키 드레이번은 오스발의 발치에 떨어졌다. 데스필드는 파킨슨 신부를 바라보았고 핸드건에서 피어오르는 파르스름한 포연 너머 그의 파랗게 질린 얼굴도 똑똑히 보았다. 그 모든 것을 보면서도 패스파인더는 패스를 밟아나갔고 데스필드는 곧 키 드레이번의 등을 밟고 다른 손으론 복수를 치워버 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거의 반사적으로 치러낸 동작들의 끝에서 데스필드는 자신이 무엇을 밟고 있는가를 깨닫곤 아연해했다.

폴라 대사는 고해실의 문을 열었고 율리아나 공주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파킨슨 신부와 율리아나 공주, 폴라 대사 그리고 카밀카르인들은 서서히 데스필드와 오스발의 주위로 걸어왔다. 그들은 모두 입을 다문 채 데스필드의 발 아래를 묵묵히 내려다보았다.

키는 이를 악문 채 신음을 참고 있었다. 그는 옆구리와 등으로부터 피를 흘리고 있었고 데스필드가 발을 치워준다 하더라도 자신의 힘으로 일어날지 의심스러운 모습이었다. 문득 오스발이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괜찮으십니까, 선장님?”

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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