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랩소디 3권 – 10장 : 새장 속의 왕 –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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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리스 랩소디 3권 – 10장 : 새장 속의 왕 – 3화


하리야는 약간 주춤했다. 그리고 그런 심정을 자연스럽게 감추기 위해 무심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유호의 갑판은 회담을 위해 비워져 있었다. 사트로니아의 수병들이 10여 명 가량 올라와 있었지만 솔직히 하리야는 그 수병들보다는 그들의 호위를 받고 있는 바스톨 장군의 모습에서 더 위압 감을 느꼈다. 칸나가 자기 옆에 서 있었다면 좋겠다는, 그보다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자신이 아니라 키 드레이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하리야는 다시 책상 너머로 바스톨 장군을 바라보았다.

바스톨 장군의 안색은 태연했다. 하리야 역시 태연했으므로 둘의 모습만 놓고 본다면 이상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 둘은 자유호의 갑판 에 앉아 있었으며, 사트로니아 함정들과 노스윈드 선단의 포수장들은 모두 그들 사이에 떠 있는 자유호를 정조준하고 있었다. 합계 500문 가까운 포 문이 겨냥하고 있는 살벌한 회담 자리였지만, 하리야는 차분하게 말했다.

“대사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나는 철탑으로 갔었소. 하리야 헌처크 선장.”

“그냥 하리야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엔도 장군님.”

“그럼 나 또한 바스톨이라고 부르시구려.”

하리야는 곤혹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저를 난처하게 하시는군요. 저 같은 해적놈이 당신과 같은 고명한 무인을 그렇게 부른다면 세인들이 분수도 모르는 자라고 저를 비웃을 겁니다.” 비위를 맞춰줘서 나쁠 건 없다는 판단으로 한 말이었지만 아쉽게도 바스톨 장군은 별로 즐거워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당신은 내가 해적에 대해 그러하리라고 생각했던 모습에서 많이 벗어나는군요. 하리야 선장. 이렇게 부르면 되겠소? 그럼 이야기나 계속합시다. 나 는 철탑으로 갔었소. 변론가 린타는 그의 기록 속에 철탑의 위치를 남겨놓았지. 그래서 나는 철탑에 도달했지만, 그 안에서 대사를 찾아내지는 못했 소.”

“잠깐, 말을 끊어서 죄송합니다. 철탑 내부로 들어가셨다고요? 어떻게?”

“우리에겐 린타가 남겨준 구슬이 있었소. 대사가 그에게 선물했던 것이지. 그것을 이용하여 철탑에 들어갈 수 있었소. 하지만 대사의 모습은 발견할 수 없었소. 그녀가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그곳에서 이상한 연 하나를 찾아내었소.”

하리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소이다. ‘다림으로 오라. 키 드레이번.’ 당황스러운 내용이었지만 나는 일단 그 내용을 믿기로 했소. 그래서 이곳으로 온 것이고.”

“알겠습니다. 그 연은 키 선장님이 대사에게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왜 대사를 찾으시려는 건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바스톨 장군은 잠시 하리야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잠시 후 바스톨 장군은 ‘그것은 대사에게 말할 일이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하리야 역 시 그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좋소. 내가 아는 바로, 철탑은 오 왕자의 검을 지키는 감시탑이오.”

“감시탑이라고 하셨습니까?”

“오 왕자의 검에 대해서는 아는 모양이구려.”

“약간은 말, 철, 밀, 다이아몬드, 오 왕자의 땅에 있는 네 개의 주인 없는 검입니다. 다이아몬드와 밀은 일종의 전략 단위이고 말과 철은 전술 단위 겠지요. 개개로 나뉘어 있을 땐 위험이 되지 않지만 하나의 주인에게로 모이면……..”

“왕을 태어나게 할 수 있소.”

“반왕이지요.”

하리야는 부드럽게 노무인의 말을 바로잡았다. 바스톨 장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반왕이오. 그리고 대사는 바로 철탑이라는 감시탑에서 그 네 개의 검이 하나로 모이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고 알고 있소.”

바스톨 장군의 설명을 듣고 있던 하리야는 철탑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울리는 이름인가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철과 탑, 견고함과 감시, 견고한 감시. 바스톨 장군의 말은 이어졌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그 네 개의 검을 가지고 싶다면 대사를 물리쳐야 하오. 얄궂게도 거꾸로 되어버린 거요. 대사가 그 네 개의 검이 하나로 모이는 것을 막기 때문에, 거꾸로 대사를 쓰러뜨리는 검이 바로 다섯 번째의 검이 되는 것이며 동시에 네 개의 검의 소유자가 되게 되는 거지요. 그것이 다섯 번째의 검, 오 왕자의 검이오. 음? 왜 그러시오?”

하리야는 자신이 소리를 지를 뻔한 것이 아니라 그저 뱃속이 좀 안 좋았던 거라고 설명하려 애썼다. 바스톨 장군은 하리야의 설명을 받아들이는 듯 했다. 하지만 하리야는 마음속으론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대사를 쓰러뜨린 검?

“그리고 지금, 한 젊은이가 한 일에 대해 세인들이 놀라고 걱정스러워하고 있소.”

“휘리 노이에스.”

“그렇소. 그래서 나는 그가 다섯 번째의 검인지를 대사에게 묻고 싶소.”

“그 답은 저도 할 수 있겠군요. 휘리는 다섯 번째의 검이 아닙니다.”

“아니라고?”

하리야는 아슬아슬하게 자신의 입을 단속했다. 대사를 쓰러뜨린 건 키 드레이번이라고 말하는 대신, 하리야는 약간 돌려서 말했다.

“조금 전에 장군께서는 대사를 쓰러뜨린 검이 다섯 번째의 검이 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대사는 살아 있습니다. 아무도 그녀를 쓰러뜨리 지 않았으니, 다섯 번째의 검 같은 것은 나타나지 않은 것 아니겠습니까?”

바스톨 엔도 장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대사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좀 희망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소. 하지만 그녀가 철탑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거요?”

“무슨 말씀인지?”

바스톨 장군은 대답 대신 몸을 조금 돌렸다. 그를 따라왔던 호위병들 중 하나가 탁자 위에 조그만 상자를 내려놓았다. 하리야가 호기심 어린 시선으 로 바라보는 가운데, 바스톨 장군은 상자를 열어 그 속에서 구슬을 꺼내어보였다.

하리야는 약간 실망했다. 구슬은 마녀들이 사용하는 수정구와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어느 마녀의 천막에 놓여 있으면 그대로 어울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바스톨 장군은 그 구슬을 하리야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어떻소?”

“수정구입니까?”

“아니, 아까 말했던 구슬이오. 대사가 린타에게 선물했다는 것. 수정구라. 그러고 보니 그렇게도 보이는군. 하지만 보통의 수정구와는 달리 그건 원 래 속으로부터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소.”

“빛이라고요?”

“그래요. 하지만 지금은 보시는 바와 같이 아무런 빛이 없지. 대사가 린타에게 그것을 주며 말하길, 만일 자신이 더 이상 철탑의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 구슬이 흐려질 거라 말했소. 그리고 우리가 그 빛이 흐려진 것을 발견하고 나서 얼마 후 휘리 노이에스의 활동이 시작되었소.”

“아…… 그렇습니까.”

하리야는 구슬을 한번 더 살펴본 다음 조심스럽게 상자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아까부터 많은 참을성 발휘해 주신 것 압니다만, 한번만 더 이 무례한 해적의 처사를 참아주시겠습니까? 질문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스톨 장군은 말해 보라는 듯이 턱을 약간 기울인 채 하리야를 바라보았다.

“휘리 노이에스가 다섯 번째의 검이라고 대사가 확언해 준다면, 어쩔 생각이십니까?”

“막을 것이오.”

“막는다고요?”

“그의 정복 전쟁을 분쇄하고, 그로 하여금 고향에 돌아가 천사가 선물했다는 그 목소리로 노래나 부르게 할 작정이오. 그리고 당신에겐 우리에게 협 력하는 즐거움을 드리겠소.”

바스톨 장군은 협박을 하진 않았다. 말을 알아듣는 사람에겐 협박이 필요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리야는 말을 알아들었기에 속으로 투덜거렸다.

“예. 아까부터 대충 그런 의도로 말씀하시던 것 같군요. 왜지요? 사트로니아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을 텐데요. 왜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곳에서 휘리 노이에스의 정복 전쟁을 막겠다고 나서는 거지요? 약간 조야하게 말해 본다면 마치 남 잘되는 꼴 못 보겠다고 팔 걷어붙이고 나서는 심술쟁이처럼도 보이는군요. 그렇잖으면 사트로니아군은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나선 의용군이라고 주장하실 겁니까?”

바스톨 장군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오. 하리야 선장. 우리가 너무도 고결해서 지상의 한 구석에서 일어나는 죄악을 좌시하지 않는 성격이라고 주장하진 않겠소. 우리 또한 우리의 이해 관계를 위해 움직이는 것일 뿐이오.”

“어떤 이해가? 지금 휘리 노이에스의 정복 전쟁은 사트로니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사트로니아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게 될 무렵에는, 휘리 노이에스의 신발은 너무 커져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오.”

“예?”

“아직은 네 개의 검이 하나로 모이진 않았소. 휘리 노이에스가 가진 검은 현재 두 개요. 다벨의 철과 팔라레온의 밀. 다케온과 록소나가 버틸 거라 생각하시오? 천만에. 휘리는 합리성에 기반한 정확한 순서를 지키고 있어요. 계획표 짜기를 좋아하는 친구가 아닌가 싶기도 하군. 어쨌든 그는 그런 정확한 순서만이 가져올 수 있는 확실한 결과 또한 얻게 되겠지. 그때가 되면, 휘리 노이에스는 도저히 넘볼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릴 것이오. 하이낙 스가 쥬르노 산을 뭉개버린 바로 그 순간처럼.”

하리야는 하이낙스라는 이름에 주춤했다.

“그렇게까지 염려하십니까?”

“하이낙스가 쥬르노 산을 없애버리기 전까지는 모든 사람이 선장과 같은 말을 했소. 그 마법사에 대해 그렇게 염려할 것은 없다고. 그리고 그 다음엔?”

“염려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지요.”

하리야는 간단히 응답하며 자신 속으로 잠깐 빠져들었다. 이것이 단지 자라 보고 놀란 작자의 솥뚜껑 환시증일까? 한때 소제국이라고까지 불리웠던 사트로니아의 현재 모습은 그 과거의 영광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제국 최고의 정보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이낙스를 무시했기에 호된 꼴을 당했던 사트로니아를 생각하지 않으면, 이들의 이런 신경질적인 반응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두번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고 싶지 않겠지.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더 장군님을 귀찮게 해드려서는 안 되겠군요. 대사를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그 전에 먼저 부탁 좀 드 립시다.”

바스톨 장군은 노골적으로 불쾌한 기색을 비추고 싶은 것을 참으며 참을성 있게 질문했다.

“또 뭐요?”

“아, 별거 아닙니다. 장군님의 부하들에게 대포를 쏘지 말라고 좀 전해 주십시오. 대사는 그들을 놀라게 할 수 있거든요.”

바스톨 장군은 사트로니아 해군이 그렇게까지 자기 통제를 모르는 군대는 아니라고 딱 잘라 말했다. 하지만 하리야 선장은 계속 고집을 부렸다. 

“원하신다면 저희들 쪽의 선단에도 같은 신호를 보내셔도 무방합니다. 조금 당혹스러운 일이 있을 것이나 발포할 필요는 없다는 내용이면 충분합니 다.”

바스톨 장군은 약간 언짢은 표정을 지었지만 하리야의 요구에 따랐다.

따라서 대사가 수면 아래로부터 솟구쳤을 때, 사트로니아 함대의 배 한 척이 엉겁결에 발포해 버린 사건에 대해 바스톨 장군은 두고두고 창피스러워 해야 했다.


“이 자식, 악취미야.”

세실은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헛간 외벽을 쳐다보았다. 헛간 벽에는 분필로 커다랗게 ‘정의의 심판을 받아랏!’이라고 씌어져 있었다. 친절하게도 그 아래쪽엔 ‘서 슈마허’라는 서명까지 되어 있었다. 세실은 푸념처럼 말했다.

“카밀카르 기사단은 서 슈마허의 용맹무비한 행동을 그들의 전승록에 기록할까?”

“아무리 뻔뻔한 기록관이라도 말을 훔치고 벽에 악취미적인 잡담을 남긴 것을 가지고 용맹무비하다고 기록하긴 어려울 겁니다. 낭만주의자는 못 말 린다니까.”

“흐음. 그 말은 자기 반성으로 여기겠어.”

“……나도 후회합니다. 그 자식을 바다에 던져버리지 않고 곱게 돌려보내준 거. 젠장.”

“저 서명의 의도는 뭘까?”

“별거 아닐걸요. 자기가 그랬다는 거 알리지 않고 못 배기겠던 모양이지요. 낭만주의자라니까요.”

라이온은 율리아나의 목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젯밤 야음을 틈타 은밀히 헛간에 침투하여 키 일행의 말들의 고삐를 풀어내어 그들을 모조리 쫓아 버린 서 슈마허로서는 복장이 뒤집힐 일이겠지만, 말들은 아침이 되자 모두 농가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래서 세실과 라이온은 태평한 심정으로 헛간 벽의 낙서를 보며 시시덕거리고 있을 수 있었다.

“그 친구 그런 끼가 있긴 해도 똑똑한 젊은이로 보이던데. 숨은 의도가 있을지도 몰라.”

“난 슈마허의 숨은 의도보단 숨겨놓은 활재주가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 더 걱정스럽습니다. 요렇게 되면 어쩌죠?”

라이온은 집게손가락으로 자신의 목을 찌르며 혀를 빼물어보였다. 세실은 라이온의 행동에 섬뜩하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파르스름한 안 개가 끼여 있는 농가의 아침은 고요했고 당장은 화살 맞을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농가의 헛간에서 수탈을 면한 건초와 보리 푸대를 찾아 낸 라이온은 말구유에 그것을 쏟아붓고는 몸을 돌렸다.

“어쨌든 빨리 떨쳐내든가 도망치든가 해야겠군요. 슈마허 혼자라면, 음, 우릴 덮치지 않고 말만 풀어버렸으니 혼자일 겁니다. 그 녀석 혼자라면 그 렇게 염려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녀석이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인다면 문제입니다. 키 선장님의 현상금이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쉬 울걸요.”

“그렇겠군. 그 친구가 다벨군이라도 끌어들이면 진짜 골치 아프겠어.”

잡담을 나누던 두 사람이 집 쪽으로 걸어올 때였다. 키 드레이번이 문을 열고 마당으로 걸어나왔다. 키는 잠시 두 사람을 흘끔 바라보고는 그대로 걸 어왔다. 라이온이 밤 동안 슈마허가 치러야 했던 전쟁에 대해 짧고 유익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말을 가다듬고 있을 때 키가 먼저 말했다.

“고맙다.”

라이온은 • 세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흠칫하며 뒤로 물러났다. 경계의 빛으로 얼굴 전부를 물들인 채 라이온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예?”

“고맙다고 했다.”

“죽고 싶지 않아요!”

“……식전부터 그 따위 우습지도 않은 농담을 꼭 해야 되나, 빌어먹을.”

“그 동안 고마웠다는 인사 아니었습니까?”

“아니다. 피나드 부인이 깨어났다.”

세실과 라이온은 집 쪽을 바라보았다.

“그 부인의 이름이 피나드 부인이었습니까?”

“그래. 그리고 그녀는 율리아나 공주와 오스발의 소재를 가르쳐주었다. …하루 정도는 잘난 체하는 거 봐주겠다.”

키의 조처는 충분히 빠른 것이었지만 이미 라이온의 콧대는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키는 속이 끓는 것을 참는다는 표정으로 겸손하게 라이온을 바라보았고 세실은 배를 움켜쥐고 소리 없이 웃었다.

“다벨군이 그녀를 매달기 전 율리아나와 오스발, 그리고 바탈리언 남작이 그녀의 집에 들렀던 모양이다. 그들은 라트랑으로 간다고 했던 모양이군.” 라이온에게 설명하던 키의 시선이 갑자기 헛간 쪽으로 향했다. 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러니. 분필 찾아라.”

“어, 예?”

“우리도 라트랑으로 떠난다.”

그날 한낮 무렵, 여름의 하늘을 날아가던 참새 한 마리가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비명에 질겁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참새는 비명이 들려온 땅을 내려 다보았고, 외딴 농가의 헛간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절규하고 있는 한 젊은 사내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래로 내려간 참새는 헛간 벽에 이상한 무늬가 있는 것은 보았지만 그 무늬와 사내의 절규를 연결짓지는 못했다. 참새가 본 무늬는 달필의 페이노로서 이런 내용이었다.

‘그대가 기사라면 상처 입은 과부를 모른 체하진 않겠지. 피나드 부인을 잘 부탁한다. 군.’

라이온. PS: 내 말 율리아나가 자네에게 안부 전해 달라는

“라이온, 이 개에에에자식아!”


남으로 다벨에서부터 북으로는 그리치까지 뻗은 미리온 산맥. 제국의 울타리라 할 수 있는 미리온 산맥은 페인 제국과 그 주위의 군소 국가들 사이 에서 지리적 경계 역할뿐만 아니라 심리적 경계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었다. 머나먼 변방의 땅인 자마쉬나 레우스, 바다 건너의 카밀카르가 말하는 ‘제국’과 라트랑, 바이스라, 혹은 록소나 등이 말하는 ‘제국’이 비슷한 뉘앙스를 가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자마쉬가 제국으로부터 수평적 거리감을 느낀다면 록소나 등의 나라는 수직적 높이에 의해 역시 거리감을 가지게 된다. 남부 국가들 사이에 페인 제국은, 그 꼭대기에 만년설이 덮인 미리온 산맥 너머 아득히 머나먼 어떤 땅이다. 어쩌면 천국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아름답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아득하다는 의미에서.

하지만 미리온 산맥에도 인간이 넘을 수 있는 길은 여럿 있다. 그런 험로를 통해 제국의 손길은 주위의 국가들에 뻗는다. 정치가 전달되고 문화가 오 고가며 경제가 소통된다. 물론 그런 교통로 중 상당수는 야만스러운 고산족, 위험한 괴물들의 땅을 통과하기도 한다. 물론 괴물들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괴물은 역시 추위와 굶주림이라는 괴물일 것이다 – 따라서 미리온 산맥을 넘는 이들은 합리적인 선택으로서 패스파인더를 고용하거나, 그렇 잖으면 비합리적인 선택으로 자신의 운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게 된다.

“우린 패스파인더를 가졌군. 그런데 왜 이렇게 안심이 안 되지?”

“본인의 직업적 자부심을 깔아뭉개면서 즐거움을 느낀다면, 좋으실 대로. 어쨌든 즐거움은 걷는 데 도움되는 감정이니까.”

데스필드의 경쾌하기까지 한 대꾸에 파킨슨 신부는 신음을 흘리며 다시 통나무 같은 다리를 끌어당겼다.

고산 지대의 메마르고 거친 돌 위로 세 사람의 발이 힘겹게 움직였다. 미리온 산맥이 높긴 하지만 머리 바로 위로 솟아오른 여름의 태양은 도스 계곡 에 폭염을 퍼붓고 있었다. 주위로 만년설이 보이는 이 높은 땅에서 더위를 느낀다는 것이 신부에겐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로 여겨졌지만, 실제로 온 몸에서 땀이 흘러나와 옷이 다 젖을 정도였다. 파킨슨 신부는 마흔세 번째로 이마를 닦으며 지나가는 말처럼 말했다.

“오늘은 더 가까워지겠죠?”

주어가 생략된 말이지만 그의 곁을 걷고 있던 핸솔 추기경은 신부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렇겠지요.”

“글쎄요. 뭐랄까요. 무섭다고 해야 되나.”

“부지런히 걸읍시다. 이 지긋지긋한 계곡도 빨리 지나갈 수 있을 테고, 지쳐서 푹 잠들면 노랫소리도 안 듣게 되겠지요.”

“그런데, 예하. 그게 그렇게 위험한 것이라 생각되십니까?”

솔직한 심정으로, 핸솔 추기경은 데스필드가 ‘오늘은 저기까지’라고 말했던 능선에 도달할 때까진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언제나 지칠 줄 모르 던 학자의 학구열도 찜통 같은 도스 계곡에선 깡그리 증발된 듯하다. 그래서 핸솔 추기경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모르겠소. 파킨슨 신부.”

데스필드는 산양처럼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아니, 산양이라도 저런 모습으로 달리지는 못할 것이다. 자신의 짐과 두 성직자의 짐 이제 그것은 원래부터 데스필드의 짐이었던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 까지 둘러메고 성직자들이 걸어올 길을 찾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길을 선도하는 데스필드 의 모습은 가히 초인적이었다.

파킨슨 신부는 계속 무슨 말인가 꺼내려 했다. 하지만 데스필드는 저 앞쪽을 쉬지 않고 걸어가고 있었고 핸솔 추기경은 기어코 짜증을 내기 시작했 다. 그렇지만 파킨슨 신부는 계속 말하고 싶었다.

“신학교 초년생이었던 시절이 생각나는군요. 도반들과 함께 저는 고행이랍시고……….”

평소 때의 핸솔 추기경이라면 과거로 돌아가는 식의 이런 화법은 이야기를 간절히 하고 싶은 증거임을 쉽게 깨달았을 것이다. 하지만 핸솔 추기경은 숨쉬기조차 버거웠고, 그래서 매몰찬 무시로 파킨슨 신부의 입을 막았다.

햇살은 바위를 두쪽낼 듯 쏟아졌다. 달궈질 대로 달궈진 바위는 펑펑거리는 소리를 내며 터져버리거나 그 자리에서 녹아내릴 것만 같다. 속눈썹에 맺히는 빛살에 눈이 멀 것 같은 폭염 속에 사방은 고요했다.

이 고지대에서는 벌레 소리 하나 들을 수 없었다.

걷는 것은 두 다리지만 산을 오를 때는 온몸이 아픈 법이다. 파킨슨 신부는 온몸에서 전달되어 오는 악랄하게까지 느껴지는 고통을 잊고자 자신도 모르게 기도했다.

부디 저를 긍휼히 여기시와 제 앞에 나타나주소서. 저는 너무 고통스럽……

파킨슨 신부는 흠칫하며 기도를 멈췄다. 이런 맙소사! 신부는 자신을 저주하며 성전의 구절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핸솔 추기경은 흘끔 그 모습을 돌 아보고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둠으로써 어둠을 가리시고, 빛으로 빛을 드러내시는 내 주여. 무위(無爲)로 창세하신 세상에 무언(無言)으로 지혜를 설파하시는 내 주여. 나의 원수 중의 원수이신 주여. 나의 고난에 고난을 선사하시는 주여.’

어둠으로 어둠을, 빛으로 빛을. 이 구절은 신이 그 자체로 규칙의 제1원리임을 나타내는 구절이다. 따라서 창조자는 창조 ‘행위’를 하지 않는다. 행 위는 원인을 필요로 하는 것이며 따라서 원인보다 뒤에 오는 단계이다. 돌을 던지는 것은 돌이 있기 때문이고 하품을 하는 것은 피곤하기 때문이다. 사과가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중력이 있기 때문이고 사랑하는 것은 사랑할 대상이 있기 때문이다…… 원인이 없는 행위는 하나도 없다. 바꿔 말한다 면, 모든 상황엔 그에 앞서는 제반 요건이라는 것이 따른다. 그러나 규칙의 제1원리인 창조자는 모든 종류의 행위에 앞선다. 따라서 ‘무위로써 창세 하는 것’이다.

무언으로 지혜를 신은 보편 개념보다 앞서는 존재다. 그가 바로 보편 개념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지혜를 말할 필요가 없다. 가장 간단 한 지혜, 예를 들어 1+1이 2라고 생각하는가? 그것이 절대로 틀릴 리가 없다고 믿는가? 그렇지 않다. 1+1이 2가 되는 것은, 우리가 그런 결과가 나 오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그것뿐이다. 만약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는 모모한 존재라면 우리의 이런 믿음(지혜)을 어 처구니없는 헛소리로 치부할 것이다. 모든 지혜는 단순히 세계에 대한 경험을 취합하여 과거에 그랬으니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 믿는 ‘믿음’일 뿐이 다. – 1+1이 항상 2였으니 미래에도 그럴 거라 믿을 뿐이다 – 따라서 세계 자체의 원인인 창조자는 세계보다 하위 개념인 지혜를 말하지 않는다. 신이 시도 때도 없이 네거리 교차로에 나타나 나를 믿으라고 고함 지르지 않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신이 신도들에게 아무 모습도 보이지 않고 아 무런 말도 건네지 않는 것은, 신도들에게 무관심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진짜 웃기는, 그야말로 우주론적으로 웃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혜로는 세계조차 설명할 수 없다. 그런데 세계의 원인인 신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기억의 깊고 어두운 창고에서 신학교에서 배웠던 모든 지식을 악착같이 끌어내며 파킨슨 신부는 이를 사려물었다. 하지만 탐욕스럽게 공기를 찾아 헤매는 파킨슨 신부의 폐는 그 주인의 존엄성을 어딘가로 걷어차버린 채 그 주인을 한없이 헐떡거리게 만들었다. 땀이 솟아났다가 증발하기를 수십 회, 팔다리에는 허연 소금기가 잔뜩 묻어 있다. 파킨슨 신부의 몽롱한 의식 속에서 바라보는 도스 계곡은 꿈 속의 정경 같았다. 일종의 망아 상태 속 에서, 파킨슨 신부는 다시 신을 부르고 말았다.

펠라론의 명령을 거부한 제 행위는 역시 배교였습니까?

이건 그 벌이나이까?

그럴 리는 없을 것 같다. 그 암살의 주모자인 핸솔 추기경 역시 그의 옆에서 똑같이 헐떡이고 있었다………… 아니다. 확신할 수 없다. 핸솔 추기경은 펠 라론의 명령을 실행하지 못한 벌을 받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답을 알려는 것은 부질없는 소망이다. 신은 ‘원수 중의 원수이며 고난에 고난을 선사할 뿐이기 때문이다.

귓속으로 들려오는 이명은 집중된 사고를 방해하고 있었다.

고요한 계곡. 저 위쪽에서 들려오는 주르륵거리는 모래 소리. 데스필드 또한 무게를 가진 현실의 존재임을 나타내어 주는 것은 간혹 들려오는 그런 잡음들뿐이었다. 데스필드는 떠다니듯 움직이고 있었고 그 모든 동작은 비현실적이었다. 가벼운 동작들. 세 사람 몫의 짐을 지고 산을 오르는 것이라 고 믿어지지 않는 동작들이다.

지친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는 사람처럼 걸어가던 데스필드가 샘물을 발견하고 성직자들을 멈춰 세운 건 제11시 무렵이었다.

“해가 많이 남아 있긴 하지만, 더 가봐야 이보다 좋은 잠자리는 없겠군. 멈춥시다.”

“은총이로다!” 파킨슨 신부는 그렇게 외친 다음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보던 데스필드는 크게 한숨을 쉰 다음 배낭들을 던져놓고는 핸솔 추기경을 업 으러 계곡을 성큼성큼 뛰어내려갔다.

데스필드가 혼자서 장작을 모으고 먹을 것을 만드는 동안, 두 성직자는 그렇게 하면 자신들의 죄의식을 잊을 수 있다는 것처럼 기도문을 중얼거렸 다. 그러나 데스필드의 서릿발 같은 야유가 날아들자 ‘접신하셨소들? 그거 방언의 은사요?’ 두 사람은 기도도 제대로 올리지 못한 채 얌전히 데스필 드의 시중을 받아야만 했다.

“너무 고생시키는 것 같구려, 데스필드 군. 우리에게도 일을 시켜주시오. 아, 그리고 내일부턴 우리 짐은 우리가 들겠소.”

“됐수. 신경 쓰지 마쇼.” 퉁명스럽게 말한 데스필드는 잠시 후 약간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본인이 판단할 거요. 당신들이 짐을 멜 만하다고 생각 되면, 메기 싫다고 해도 메게 할 거니까 걱정 마시오.”

핸솔 추기경은 약간 밝은 표정이 되었다.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고산 증세 때문에 저녁 식사는 그냥 배를 채워놓는다는 의미밖에 없었고 조악한 식 사가 끝나자마자 파킨슨 신부와 핸솔 추기경은 급하게 찾아든 고지대의 밤을 이불 삼아 모닥불 주위에 곯아떨어졌다.

데스필드는 두 성직자의 잠든 모습을 바라보다가 모닥불을 약간 줄였다. 짐승들이 볼지도 모르고, 장작을 낭비할 필요도 없으니까. 낮 동안 달구어 진 계곡의 돌들이 열기를 뿜어내고 있어서인지 계곡 안은 그다지 춥지 않았다. 데스필드는 자신의 손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불꽃을 줄여놓고는 파 이프를 꺼내어들었다.

지금쯤 시작될 건가 하고 생각했을 때, 그 노래가 시작되었다.

데스필드는 의식을 자신의 안쪽으로 돌렸다. 한참 동안 자신의 호흡을 냉철히 관찰하며 그것이 충분히 가늘고 길어졌다고 판단되었을 때, 데스필드 는 의식을 바깥으로 돌렸다. 바깥에서 맴돌며 그를 기다리고 있던 노랫소리가 매끄럽게 그의 귓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아름다운 노래였다.

도스 계곡은 거대한 공명통처럼 싱잉 플로라의 노랫소리를 진동시켰고, 그래서 데스필드는 노랫소리의 진원지를 알 수 없었다. 이곳인가 싶으면 저 곳에서, 저곳인가 싶으면 이곳에서 노래가 이어지는 식이었다. 데스필드는 머릿속으로 계곡 여기저기에 피어 있는 싱잉 플로라들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생각해 보았다. 방향성이 없는 노래가 대충 설명되는 듯했다. 데스필드는 손을 뻗어 불 붙은 잔가지 하나를 들어올린 다음 파이프에 불을 붙 였다.

알싸하고 고소한 담배 연기가 코끝을 스쳤다. 데스필드는 모닥불 주위에 쓰러져 있는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고산 증세와 강행군 때문에 녹초가 되어 있던 파킨슨 신부와 핸솔 추기경은 아직 저 노래에 크게 반응하고 있지는 않았다. 데스필드는 여행 속도를 조금 늦추면 그들도 덜 지칠 테고, 그럼 저 노래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저 노래를 들려줄 필요가 있을까?

어쨌든 가까워지긴 한 모양이다. 어젯밤에 듣던 것보다는 훨씬 더 크고 또렷하게 들려왔다. 데스필드는 음악에 대해서는 별 조예가 없었고 음악을 좋아해 본 경험도 별로 없었다. 그런 그에게도 그 노래는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뭘까.

내용이 없어.

그것은 내용이 없는 노래였다. 행진가든 애모곡이든 찬가든 장송곡이든, 사람이 부르는 노래에는 어떤 감정이나 내용이 담겨 있다. 그렇기에 야만인 들의 노래를 들어도 그것이 대충 어떤 노래인지는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도스 계곡에서 들려오는 싱잉 플로라의 노래는 노래 자체를 위한 노래였다.

하긴, 꽃들 당신이 사람 당신들의 감정을 노래할 리는 없겠지.

아니, 감정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데스필드는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를 말할 수는 없었다. 어떤 슬픔에 관계된 것이라고밖에는…………. 하지만 어떤 슬 픔이 저렇게 아름다운 것일까….

데스필드는 눈가를 비볐다.

어떻게든 두 성직자를 푹 쉬게 하려고 무리했던 후유증이 나타난 듯했다. 그는 잠이 부족한 상태였다. 담배와 섞어 피운 마약도 누적된 피로를 완전 히 씻어내지는 못했다.

조만간 위 아래로 피를 흘리며 쓰러질지도 모르겠군. 자신의 상상에 기분이 나빠진 데스필드는 떫은 표정으로 파이프를 내려놓고는 두 팔을 들어올 리며 크게 심호흡했다.

….그녀의……

데스필드는 기지개를 켜던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호흡을 멈춘 그의 귀에 자신의 맥박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데스필드는 이를 악물었고 그 때문에 눈앞에 아지랑이 같은 빛이 떠다니는 것이 보였다. 들었나? 데스필드는 주의 깊게 고개를 돌렸지만 실상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싱잉 플로라의 노랫소리였다.

그런데 왜 그게 말소리처럼 들렸던 걸까?

…..래의 불꽃……

데스필드는 두 손을 내리고 재빨리 파이프를 껐다. 그는 호흡을 억제하기 위해 애쓰며 싱잉 플로라의 노랫소리에 집중했다. 그것은 어제까지와 마찬 가지로 노랫소리였지만 데스필드는 자신이 들었던 것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데스필드는 어쨌든 자기 부정이나 의혹 따위는 취급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느꼈던 것을 긍정하는 것으로부터 세계를 바라보는 데 익숙했다.

‘당신들이 세상은 이렇다 저렇다 말해도, 본인은 패스만 봐. 본인은 세상을 걷지 않고 패스를 걷지. 자, 모든 당신들이 노랫소리라고 말하는 것에서 본인이 뭘 들을지 볼까?”

…….으로 그녀를

데스필드는 박수를 치고 싶었다. 그것은 확실히 노래가 아니었다.

“좋다구! 본인은 미치지 않았다고 주장하겠어. 그거야 모든 미치광이 당신들이 하는 말이지만, 어쨌든 다른 말은 생각나지 않으니 본인은 미치지 않 았다고 하겠어. 계속해 봐! 들어줄 테니!”

그 순간 노래가 멎었다. 데스필드는 어이없음을, 심지어 불가해한 억울함까지 느끼며 계곡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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