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랩소디 4권 – 16장 : 새벽의 사수 – 8화

랜덤 이미지

폴라리스 랩소디 4권 – 16장 : 새벽의 사수 – 8화


후작은 눈을 비볐다. 그리고 조금 후 다시 눈을 비볐다. 그리고 그 다음엔 세 번째로 눈을 비빌 것인지 비명을 지를 것인지를 놓고 짧게 고민했다. 다 행히도 그 대신 비명을 질러줄 사람이 있었다.

“해가!”

세실리아가 무서운 모습을 본 것처럼 실제로 무서운 모습이었다 숨이 턱 막히는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녀의 외침이 신호가 된 것처럼 저편 관람대에서도 비명이 터져나왔다.

조금 전 태양이 떠올랐던 수평선에선 여전히 불그스름한 하늘이 빛나고 있었지만 그 가운데서 빛나고 있어야 할 태양은 보이지 않았다. 에름 후작은 다리가 후들거리는 기분을 느끼며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났다. 쓰러지기엔 절벽 가장자리에 너무 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에름 후작은 다리가 더 이상 그를 지탱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안전하게 엉덩방아를 찧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쯤 사람들은 광란스러운 비명을 올리기 시작했다. 아티모스 2세의 비명은 그 중에서도 가장 끔찍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는 비명이 거칠게 벼랑 위를 휘몰아쳤다. 소리들 사이로 띄엄띄엄 ‘태양’이라든지 ‘사라졌’, 혹은 ‘주님!’ 등의 말이 있 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비명들이었다.

에름 후작은 자신이 이 상황에서도 뭔가 말이 되는 설명을 찾고 있다는 사실에 전율을 느꼈다. 

‘맙소사. 이런 일에 어떻게 설명이 가능할 수 있는가!’ 

그러나 그때까지도 비명을 지르지 않던 세 사람, 즉 키 드레이번과 군나르 회장, 그리고 라이온은 차분히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평선에 어떤 변화가 생겼다. 이번에도 세실이 가장 먼저 외쳤다.

“해가 떴어!”

주저앉아 있던 에름 후작은 버둥거리고 씩씩거리고 스스로를 향해 욕설을 퍼붓기까지 하며 가까스로 일어났다. 몇 번 비틀거린 다음 후작은 수평선 을 노려보았다.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금빛 찬란한 해가 다시 수평선 위에 길다란 손자국을 남기며 절벽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비명을 지르던 사람 들의 얼굴에 빛을 뿌렸다.

따스한 빛 속에 비명이 사라졌다.

그들은 넋을 잃은 채 그 아름답고 고요한 일출 속에 정물이 되어 서 있었다.

햇빛은

밝고, 부드럽고

따스했다.

에름 후작은 자신이 도대체 몇 분 동안이나 정신을 잃고 있었던 건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그들이 어느 정도 사람 같은 행동을 취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이미 태양은 수평선 위 높은 곳에 떠올라 똑바로 바라보기 힘들 정도로 타오르고 있었다. 후작은 라이온이 서 있던 곳을 돌아보았다.

라이온은 활시위를 벗긴 활을 다시 목 뒤에 걸어놓은 채 조용히 셔츠를 찾아들고 있었다. 단추를 채우는 그의 손길은 피로해 보였지만 동시에 편안 해 보였다.

그때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그 모습을 발견했다.

제일 처음 안도의 한숨이, 그리고 석류알처럼 톡톡 터져나오는 웃음이, 그리고 환성이 차례대로 터져나왔고, 이윽고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함성과 함 께 관람대에 서 있던 사람들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라이온에게 달려들었다.

“새벽의 사수 만세―!만세!”

“라이온 왕자 만세!”

군나르는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쓰러지지 않은 자신에 대해 자랑스러움을 느꼈을 뿐 움직이는 것 은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군나르는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러다가 군나르는 문득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선 관람대 위에 무릎을 꿇은 채 난간을 움 켜쥐고 있는 아티모스 2세가 있었다.

근위병들도 모두 달려가고 군나르 외엔 아무도 없는 관람대 위에서, 아티모스 2세는 어깨를 떨며 소리없이 울고 있었다.

군나르는 아무래도 움직여야 되겠다고 생각하고는 힘겹게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아티모스 2세의 뒤에 선 군나르는 한손을 들어 조심스럽게 왕의 어 깨를 짚었다.

“전하.”

대답은 없었고 단지 아티모스 2세의 어깨가 더 세차게 떨렸다. 군나르는 그 어깨를 조심스럽게 흔들며 말했다.

“전하. 일어나십시오.”

“군나르인가.”

울먹이는 목소리였지만 아티모스 2세는 가까스로 대답할 수 있었다. 군나르는 손을 끌어당겼다.

“예. 그렇습니다.”

“5년 전 그때………… 모두들 그대가 미쳤다고 생각했고, 그 중에서도 내가 특히 그러했다.”

군나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5년 전의 어느 날 아침에 아티모스 2세도 똑같은 일을 했었다. 그는 쾌활한 기분으로 일출을 향해 활을 쏘았고 그것으로 예법을 다 지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그들은 ‘해가 떨어졌다!’고 외쳤고 여전히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저건 두 번째 해다!’라고 외쳤다. 그것이 왕위 계승 예법이었고 모든 사람들은 아티모스 2세가 왕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오직 한 사람, 군나르만을 제외하 고는.

“하지만 그대는 억지를 부린 건 아니었군. 그게 진짜였나. 말로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렇습니다.”

아티모스 2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군나르의 늙은 얼굴을 향해 애처롭게 질문했다.

“직접 보았었나?”

“예. 휀켈 5세께서 보여주셨습니다. 30여 년 전 제가 그 분의 도피행을 돕던 시절에.”

“그때 ・・・”

“그 분은 자신이 왕위에 돌아갈 수 없게 되는 경우 아라스틴이 정당한 왕, 정당한 새벽의 사수를 가르쳐줄 거라 말씀하시고는 제게 그것을 보여주셨 습니다. 저도 그때까지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건 그냥 말만 그렇게 외치는 것인 줄로 알고 있었지요.”

“고집을 부려주어………… 고맙다.”

군나르는 순간 아티모스 2세를 좋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을 느꼈다. 비록 그에게 남은 날은 얼마 없을 테고 그 동안엔 아직 좌절을 벗어나지 못 한 아티모스 2세를 볼 수밖에 없겠지만, 그렇다 해도 어떤가. 좋은 친구는 사귈 수 있는 기간보다는 만났다는 사실에 감사할 일이다. 그것이 인생의 황혼에 찾아온 마지막 친구라도.

군나르는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십시오, 전하.”

절벽 저편에서 키 드레이번은 코트 자락을 추스르고는 몸을 돌렸다. 그러나 라이온에게 향하는 길은 아니었다. 그는 공터를 가로질러 잔칫판이 차려 진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늦게서야 정신을 차린 세실과 에름 후작은 짧게 시선을 교환한 다음 황급히 키의 뒤를 따랐다. 라이온은 인파 속에서 찬사 를 받고 있었고 아무래도 당장은 접근하기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키를 따라잡은 세실은 황급히 외쳤다.

“뭐야!”

키는 멈춰 섰다.

“뭐냐니?”

“내가, 내가 조금 전에 본 그건 뭐야? 응?”

그리고 에름 후작도 가세했다.

“키키키키키 드레이번!”

이 호칭은 키를 약간 짜증나게 했지만 에름 후작으로선 불가항력이었을 것이다.

“도도도대체, 무, 무무슨 일이 일어난 거요? 예? 설명을, 설명을 해주시오!”

“수도 없이 말해 줬던 대로의 일이다. 라이온은 첫 번째 일출을 쏘았고, 그리고 두 번째 일출이 시작되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난 거요!”

키는 물끄러미 에름 후작을 바라보다가 세실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키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 순간 웃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세실과 에름 후 작은 똑같이 얼굴을 벌겋게 물들인 채 씩씩거리며 애원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키는 웃는 대신 짧게 대답했다.

“하나만 말하지.”

“뭐, 뭐요?”

“아흔아홉 눈의 섬이 왜 아흔아홉 눈인 줄 아나?”

“예?”

“그건 백 번째 눈, 새벽의 눈은 새벽의 사수가 쏘아버리기 때문이지. 그래서 아흔아홉 눈이다.”

키는 이 정도면 더 바랄 것 없이 훌륭한 설명이 아니냐는 듯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봐 준 다음 몸을 돌려버렸다. 물론 세실과 에름 후작에게는 전혀 설명이 아닌 말이었다. 둘은 망연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서로를 쳐다보던 그들의 시선은 다시 절벽 쪽으로 옮겨졌고, 그리고 인파에 둘 러싸인 라이온을 보게 되었다.

에름 후작은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고 세실은 키를 흘끔 쳐다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그들은 다시 달리고 있었다.

“키키키키키 드레이번!”

“뭐냐고! 도대체 뭐냐고! 이봐, 키!”

키는 등뒤에서 들려오는 고함을 무시한 채 앞으로만 걸어갔다. 요리장 옆을 걷게 되었을 때 키는 뚜껑이 벗겨진 나무상자를 발견했다. 키는 그 안에 서 술병 하나를 꺼낸 다음 코르크 마개를 이로 뜯어내었다. 그리고 키 드레이번은 몸을 돌렸다.

에름 후작과 세실은 갑자기 자신들을 향해 돌아선 키를 보고는 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키는 그들의 어깨 너머 멀리 사람들의 축하를 받고 있는 라이 온을 향해 술병을 들어보였다.

“축하한다. 이 빌어먹을 혹덩어리 자식아. 그리고 드디어 널 떨쳐내게 된 나 자신에게도 축하를 보낸다.”


다음날 새벽, 키는 라이온 만에서 출항 준비를 마친 라이트버드호 앞에 서 있었다.

부두에는 라이온과 군나르, 그리고 에름 후작이 서 있었다. 그들은 제각기의 표정으로 키를 쳐다보고 있었지만 키는 공평하게도 똑같은 무표정으로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라이온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부탁입니다. 레갈루스 해군을 맡아주십시오.”

키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헛소리를 계속할 거라면 입을 찢어주겠다.”

꽤 익숙한 라이온과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던 에름 후작은 별로 당황하지 않았지만 군나르 회장은 꽤 당황했고 동시에 화난 기색을 조금 보였다. 아 직 대관식을 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라이온은 레갈루스의 국왕이다. 그래서 군나르는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항의, 즉 강력한 헛기침을 구사했 지만 키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 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군나르를 더 당혹하게 만들었다.

“네놈의 아비가 줬던 배 두 척에 대한 보답은 이걸로 끝이다. 더 이상 나에게 뭘 요구할 수는 없다.”

“어쩌실 생각입니까. 정말 오스발을 계속 추적하실 겁니까?”

“네가 알 바 아니다.”

그리고 키는 몸을 돌렸다. 작별의 말 한마디도 없었다. 키는 그대로 뱃전을 뛰어넘어 라이트버드호의 갑판에 내려섰다.

에름 후작은 씁쓸하게 웃으며 라이온을 향해 몸을 돌렸다.

“여러 가지로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전하.”

“감사합니다. 로드 에름.”

“저야 한 것도 없는 걸요. 저를 이곳으로 끌고 오고 아라스틴을 빼내온 것은 전부 저기 있는 입지저분한 사내의 공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저 사내 와 같이 배를 타고 라트랑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는군요.”

라이온은 빙긋 웃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후작님. 키 선장님은 말했습니다. 당신을 바다의 공주에게 돌려줄 거라고. 그렇게 말했으니, 반드시 그렇게 할 겁니 다.”

“약속은 지킨다는 겁니까?”

“그보다는 어길 수가 없다는 것에 더 가깝겠지요.”

“어길 수 없다고요?”

라이온은 갑판 저편에 서서 코트를 벗어던지고 있는 키를 바라보았다.

“거울 아시지요, 후작님? 일부분만 반사하는 거울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눈과 입은 비춰주는데 코는 비춰주지 않는 거울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런 것 이 있을까요?”

“그런 것은 없겠지요. 거울은 비춰진 모든 것을 반사하겠지요.”

“예. 자기 마음대로 골라서 반사할 수 있는 거울은 없습니다.”

에름 후작은 미심쩍은 눈으로 라이온을 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키를 바라보았다. 키는 닻줄을 끌어올리고 있었고 그 옆에선 갑판에 앉은 세실이 뭐라 이야기를 걸고 있었다. 키는 언제나처럼 별로 대답하지 않는 듯했고 세실 역시 언제나처럼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다가온 모든 것을 똑같이 돌려보내는 거울처럼, 키 역시 그러하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저는 그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으려 했습니다.”

“예?”

라이온은 슬픈 눈으로 키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이 공정하다는 믿음은 어린애에게 꼭 필요한 겁니다. 어른이 되면 더 이상 그런 것은 믿지 않게 되겠지만, 어쨌든 그건 감미로운 믿음이지 않 습니까? 노력한 대로 보답받는다. 뿌린 대로 거둔다………… 정말 그렇다면 세상에 어떻게 악인이 있겠습니까. 죄에 반드시 벌이 따를 텐데 누가 죄를 짓 겠습니까.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그렇긴 하겠지요.”

“그래서 저는 모든 것을 돌려주는 키 선장님 곁에 있고 싶었습니다. 그럭저럭 5년 정도는 그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고 버틸 수 있었지요.”

“주지 않는다……… 라고요?”

“예. 아무것도 안 줬습니다. 아마 키 선장님은 무척이나 약이 올랐을 거라 생각합니다. 낄낄. 하지만 그 날 저녁, 후작의 궁에서 화살에 맞았던 나는 고국을 떠올렸고, 그리고 내 아버지의 왕좌를 떠올렸습니다. 그 순간 키 선장님은 그대로 나를 싣고 이곳으로 왔습니다. 정말 손이 빠르지요. 그리 고………… 키 선장님은 5년 만에 나를 팽개칠 수 있었지요.”

“그렇다면, 키 선장님은 당신의 욕망을 그대로 돌려줬단 말입니까? 거울처럼?”

“복수죠.”

“복수?”

“복수의 사전적 의미를 아십니까? 해를 받은 본인이나 그 친척, 혹은 친구들이 똑같은 방법으로 가해자에게 해를 돌려주는 행위입니다. 똑같다는 점 에 주의하십시오. 눈에 눈, 이에 이.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사랑에 사랑, 자비에 자비, 욕망에는 성취.”

“아니……”

“나는 키 선장님이 선인이라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라이온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는 모든 것을 돌려줄 뿐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선인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하지만 선인이 과연 뭐겠습니까? 뭐가 선이겠습니까? 나는 모 르겠습니다. 하지만 키 선장님이 제국의 공적 제1호가 된 것은, 그가 파괴와 공포와 절망과 증오의 대명사가 된 것은 그에게 파괴와 공포와 절망과 증오만을 보낸 세계의 탓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걸까요?”

에름 후작은 멍한 눈으로 라이온을 바라보았다. 라이온은 약간 격해진 호흡을 고르며 나직이 말했다.

“적은 반대쪽에 서 있는 자입니다. 키 선장님은 제국의 공적입니다. 그는 제국의 반대쪽에 서 있는 자이며, 제국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거울에 비치 는 모습이 무섭고 끔찍한 것은 과연 누구의 모습이 무섭고 끔찍하기 때문일까요?”

에름 후작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라이온은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좀 감상적으로 바뀌었나 봅니다. 어울리지도 않는 왕좌 따위에 앉게 되니… 뭐, 신경 쓰지 마십시오. 후작님.”

“전하.”

그러나 라이온은 이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있었다.

“바람이 없군요. 먼바다까지 나가려면 세실이 고생해야겠는데요.”

“예? 아니,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

에름 후작은 뭐라 대답하려다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거울이라고요? 재미있군요. 이젠 제가 질문 하나 드리죠. 갇혀 있던 자가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거울은 그에게 무엇을 돌려줘야 할까 요?”

에름 후작은 그 말만 남기고는 배 위로 뛰어올랐다. 그러곤 라이온을 향해 말했다.

“굿 세일!”

“아, 굿 세일.”

두 사람의 인사가 끝나자마자 라이트버드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라이온은 당황하여 떠나가는 배를 바라보았다. 돛은 올리지도 않았고 노를 쓰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라이트버드호는 쾌속이라 부를 만한 속력 으로 순식간에 멀어졌고 그래서 뒷갑판에서 손을 흔들던 에름 후작은 몇 번 비틀거려야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도나 물결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런 빠른 속력이라면 당연히 갈라지는 바닷물이 좌우에서 크게 물결쳐야 했을 텐데도.

고요한 라이트버드호의 흘수선을 바라보던 라이온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군나르를 돌아보았다.

“스팻?”

“예.”

“아, 복수로군. 그걸로 스팻을 묶고 있던 마법을 깬 것이군.”

“그렇습니다.”

라이온은 피식 웃었다.

“갇혀 있던 물이 원하는 것은 다시 대양을 헤엄칠 자유겠지. 키 선장님은 스팻이 보내온 것에도 똑같이 돌려줬군.”

군나르는 약간 혼란스러워하는 눈으로 멀어지는 라이트버드호를 보며 말했다.

“저는, 전하. 돌려준다느니 거울이니 하는 말씀이 이해가 잘 안 됩니다.”

“그럴 테지. 군나르. 그걸 알려면 그와 오랜 시간 함께하거나, 아니면 마법사여야 하니까.”

“마법사라고 하셨습니까?”

라이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스팻의 등에 얹혀 이미 수평선 가까이까지 사라져가고 있는 라이트버드호를 보며 라이온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리고 키 를 보자마자 그에게서 최후의 대답을 받아낼 수 있음을 간파해 버린 노련한 마법사에게 경의를 보냈다.

훌륭합니다, 세실. 키 선장님은 당신이 원하는 것도 돌려줄 겁니다.

하지만 너무하지 않습니까?

살아 있기에 자유를 알고 자유를 알기에 거기에 취할 줄 아는 물에 얹혀, 라이트버드호는 바람도 없는 수면 위를 빠르게 미끄러지고 있었다. 해는 떠 오르고 있었지만, 새벽의 사수는 그 모습을 언제까지고 바라보고 있었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