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랩소디 5권 – 21장 : 별의 꿈 – 1화
킬리 선장은 성루 위에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광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높은 하늘의 바람은 매서울 정도겠지만 이 땅 위에는 그 바람의 자취 정도만 느끼게 하는 시원한 미풍이 불고 있 었다.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쓸어넘긴 킬리는 흉벽 위에 발을 올리고 저 멀리 숲 쪽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수풀 사이에서 몇 명의 기사들이 스르륵 걸어나왔다.
성벽으로부터 거리는 상당히 멀었지만 기사들의 선두에는 눈에 확연히 들어오는 기사가 있었다. 회색 하늘과 회색 대지 사이에서 기사의 초록색은 두드러지게 보였다.
그린 나이트, 휘리 노이에스다. 꿈에라도 잊을 수 없는 이름의 소유자를 처음으로 보게 된 킬리는 씁쓸하게 말했다.
“정말 녹색 옷을 입고 있군. 실망인데.”
킬리 선장 옆에 서 있던 오닉스 선장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킬리는 휘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왜 음유시인들이 전쟁터에서 녹색 옷을 선택하는 줄 아나, 오닉스? 근사한 이유가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외과의사가 초록빛 옷을 입고 수술하는 것과 같은 이유야.”
오닉스의 마스크가 다시 휘리에게로 돌아갔다. 킬리는 팔짱을 끼며 우울하게 말했다.
“전쟁터와 수술실의 공통점은? 붉은 피야. 그런데 피의 붉은색을 계속 본 눈은 자신도 모르게 그 반대되는 색을 찾게 되지. 녹색의 잔상을 보게 되는 거야. 그런 잔상은 사람을 혼란시키지. 수술실이나 전쟁터 같은 흥분의 도가니에서 그런 혼란은 정말 위험하지. 그래서 의사들은 서로를 보며 놀라지 않도록 녹색을 입고, 음유시인은 피의 광기에 젖은 전사들을 더 흥분시키지 않기 위해 녹색 옷을 입지.”
킬리는 조롱하듯 입술을 내밀었다.
“따라서 저 친구가 저런 옷을 입는 건 자기 기만이고 다른 사람에 대한 기만이야. 쟁쟁한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사람을 실망시키는군. 뭐, 그런 사실 도 모르고 그냥 음유시인의 전통을 따르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때 녹색의 기사가 오른손을 높이 들었다.
숲 자체가 움직이는 듯한 소란이 일어나면서 다벨군이 앞으로 걸어나왔다. 킬리는 ‘이제쯤 다 나왔으려나’ 하는 생각을 세 번쯤 한 다음 의기소침해 져 버렸다. 벨로린이 미리 말해 주지 않았다면 킬리는 더욱 풀이 죽었을 것이다.
총병력 1만 8천. 폴라리스 전체의 병력의 4배에 달하는 병력이 초원 위에 포진했다. 휘리의 정복 전쟁 중 이만한 병력이 등장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휘리는 바스톨 장군에게 격파되었던 군단병들을 모두 8군단에 집어넣었다. 본국에 무력 공백 사태가 일어나게 하는 처사였지만 휘리 는 바탈리언 남작에게 9, 10, 11, 12군단의 창설을 명령했고 바탈리언 남작은 이레다벨에서 말없이 그 작업을 수행중이었으며, 두 사람 모두 거기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펄럭이는 군기들 아래 8군단은 엄정한 진형으로 멈춰 섰다. 휘리 노이에스와 8군단은 그 자세로 성벽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회전을 위한 진형 같았지만 그들의 반대쪽에는 성벽뿐이므로 전체적인 모습이 약간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킬리는 웃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나 정서 불안에 걸릴 것 같은데.”
농담이 통할 만한 기본적인 소양도 없는 말이 없으므로. 오닉스였지만 킬리는 농담을 던져보았다. 오닉스는 손을 들어올려 자신의 옆머리를 향하게 하고는 다른 손으로 심지에 불 붙이는 동작을 취해 보였다.
“그런 쓸모없는 머리는 대포로 날려버리라고? 됐어. 내 머리를 날릴 포환도 아까워질 것 같으니까. 그럼 보고 싶은 것 다 봤으니 배로 돌아가겠어.” 몸을 돌리려다가 잠깐 멈칫한 킬리는 씩 웃으며 오닉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닉스의 마스크가 킬리의 손을 멀뚱히 내려다보았다.
“이봐. 오늘이 지나면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는데, 악수쯤 어때?”
잠시 후 오닉스는 손을 내밀었다. 오닉스의 건틀렛을 힘차게 흔들어준 킬리는 밝게 외쳤다.
“잘 싸우게!”
“대륙 해전사에 다시 없을 명장면이군. 3L의 배 세 척이 한 해역에 집합하다니.”
트로포스 선장은 여유작작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손은 끊임없이 안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다림 만은 원래 자유 무역항이다. 그 말은 이 근처의 해역에 위험 지대가 별로 없다는 말이며 따라서 상대보다 적은 숫자로 전투를 벌여야 하는 입장 에서는 매우 곤혹스러운 항구이기도 하다. 그리고 트로포스는 3척의 롱 갤리어스와 1척의 헤비 갤리어스, 그리고 2척의 터릿 갤리어스만으로 6척의 롱 갤리어스와 8척의 헤비 갤리어스로 이루어진 필마온 함대를 막아야 하는 입장이었다. 자유호는 여전히 침묵 중이었으며 물수리호 역시 움직이지 않았기에 임시 함대 사령관인 트로포스에게 남은 배는 6척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먼바다 쪽에 떠 있는 카밀카르 함대가 움직일 기색이 없다는 점뿐이다. 카밀카르 함대는 필마온 함대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도착했지만 당장은 관찰하는 입장에 남기로 결정한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 또한 필마온 함대의 모습에 약간 당황한 듯했다.
하지만 카밀카르 함대를 제외하더라도 6 대 14. 누가 보더라도 전투를 벌이려고 드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없는 숫자다. 트로포스는 원망스러운 눈초 리로 내항 쪽의 물수리호와 자유호를 바라보았다.
“자유호만이라도 나와준다면 좋겠는데.”
자유호는 그 전투력뿐만 아니라 수부들에게 던져주는 공포만으로도 충분히 2척 이상의 값을 하는 배였기에 트로포스의 말은 단순한 투덜거림은 아 니었다. 하지만 자유호는 닻조차 올리지 않은 모습으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트로포스는 체념한 듯 고개를 돌렸다.
수하들을 훑어보던 트로포스의 시야에 잔뜩 얼어붙은 해적의 모습이 들어왔다. 트로포스는 핏 웃으며 말했다.
“이봐, 스우. 6 대 14로 해전을 벌이겠다는 작자가 있다면 넌 뭐라고 부르겠나?”
스우는 긴장한 상태였다. 그것도 바짝.
“미친놈이라고 부르지요.”
질풍호의 일, 이, 삼항사의 눈초리가 한꺼번에 스우에게 집중되었고 그래서 스우의 얼굴은 허옇게 질렸다. 하지만 트로포스는 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미쳤지. 올해는 아무래도 미쳐돌아가는 해인 것 같다. 이 트로포스 님이 대드래곤의 성지로 쳐들어갔을 때부터 뭔가 이상했지. 판데모니엄의 하이마스터를 이 손으로 불러내었고, 그리고 폴라리스? 노스윈드 해적놈들이 건국 영웅이 되셨단 말이지.”
트로포스는 목을 옆으로 꺾어 우두둑 하는 소리를 내었다.
“24시간 전의 생활 방식이 지금은 통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도 유쾌한 일이야.”
벨로린은 알버트 선장의 다리에 등을 기댄 채 두 눈을 감고 있었다.
“피곤해 보이는군.”
벨로린은 실눈을 뜨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돛대 위에는 태양을 등지고 한 그림자가 앉아 있었다. 벨로린은 마치 커다란 올빼미처럼 보인다고 생각했 다.
“너무 힘쓰고 있는 것 아니야? 전지성이야 너에겐 호흡과도 같은 것이니 그것 때문은 아닐 테고. 모든 것을 아는 벨로린이 더 알려고 힘쓸 필요는 없 지. 그럼 뭣 때문일까.”
벨로린은 미간을 찡그린 채 돛대를 노려보았다. 돛대 위의 그림자는 사납게 말했다.
“오호라. 진실을 깎아내리느라 너무 힘든가 보군?”
“흥.”
“그대는 진실 그 자체를 몸으로 알아버리지. 하지만 저 우매한 종족을 도와주려면 그 진실들을 하등하고 열등한 언어들로 번역해야 하지. 힘드시겠 어.”
벨로린은 여전히 평온한 자세였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 작은 몸을 만져보았다면 그 몸이 돌멩이처럼 단단하게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을 것이 다. 벨로린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 영토에 침범하지 말라는 건가, 벌쳐?”
“분명히 진리를 깎아내리는 것도 거짓말에 속하지.”
벨로린은 마음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애에게 남녀가 사랑하면 아기가 생긴다고 가르치는 모든 부모들은 벌쳐의 노예인 것이다. 폴라리스를 위해 진실을 조각내고 단순화시키고 편리하게 가공하는 벨로린은 벌쳐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벌쳐는 화를 내거나 하는 대신 우울하게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올라와. 멋진 풍경이다.”
벨로린은 잠깐 거절할까 하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한번 도약했고 다음 순간에는 벌쳐의 옆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벨로린은 모든 것을 안다. 그 순간에 아무도 그녀를 보고 있지 않다는 것까지도.
벌쳐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천천히 꺾었다.
“끝을 짐작할 수도 없는 이 우행.”
벨로린은 수평선에 늘어선 전함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인간들이라면 아마도 가슴 벅찬 광경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벌쳐는 증오 섞인 목소 리로 말했다.
“진흙탕에서 뒹구는 돼지도 이들보다는 더 품격 있는 생물일 것이다. 이 참혹하도록 얼빠진 생물에게 너무 큰 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벨로린? 혹은, 우리에게 너무 큰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벨로린은 고개를 돌려 벌쳐를 빤히 바라보았다.
“말하고픈 바가 뭐지, 듀크?”
“하이마스터가 받아야 할 모든 경의를 보내며 정중히 요청하는데, 네 선택의 이유를 듣고 싶군. 노래의 불꽃이여. 말해 주겠나? 너의 선택은.
“노래의 불꽃을 지피는 자와 불꽃으로 노래를 태우는 자. 나는 전자를 선택했다.”
“이유는? 단지 xards daiuwv 때문인가? 결국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이거야. xaxos daipwv이라는 것은 실제할 수 있는 개념인 거야? 그런 것이 정 말 가능한가?”
“선택하면 알 것 아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그러면 xards daiuwv이라는 것이 실현 가능한지, 우리의 증오와 우리의 배례가 주인을 얻게 되 는지, 그리고 저들에게……………”
“첫 번째 빛의 종족보다 나은 점이 있는지.”
벨로린은 입을 다문 채 벌쳐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벌쳐는 다리를 흔들며 한가롭게 말했다.
“고백하자면 난 그들이 좋았어. 적어도 지금 땅 위를 우글거리고 있는 이 두 발 달린 벌레들보다는 나았다고 생각해. 그들은 품격이 뭔지 알고 있었 어. 제기랄, 그들은 자존심이 뭔지 알고 있었어.”
“하지만 xaxos 8 aiwv은 나타나지 않았어.”
“엘프들에게도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 이 저급한 동물들에게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래도 엘프는 엘핀과 저 복수와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남겼어. 우리들은 그들에게서 이름까지도 얻었지. 하지만 이 짐승 새끼들은 뭘 남길까? 화약 가루와 피로 물든 대지?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따위의 자기 비하적 좌우명? 아니면 저 빌어먹을 매장 관습 놈들이 남길 것은 무덤들뿐일까? 난 놈들의 모든 환멸스러운 행태들 중 매장이 가장 마음에 안 들어.”
벨로린은 약간 비뚤어진 미소를 지었다.
“새매의 공작이여. 그대는 지금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땅에 파묻어버리는 인간의 처사에 대해 불평하고 있는가?”
“내가 화를 내는 것은 매일같이 식탁에 시체를 올리면서도 자기 자신의 시체는 누가 볼까 봐 묻어버리는 저 졸렬하고 아둔한 짓거리다. 도대체 눈곱 만큼의 자존심이라도 있다면 하지 못할 행동을 저렇듯 천연덕스럽게, 저렇듯 거창하게 행하는 저 아둔한 꼬락서니에 욕지기가 나. 그런 주제에 만물 의 영장이라 잘난 체하지. 병아리만도 못한 지성을 가진 주제에.”
벨로린은 빙긋 웃었다.
“병아리?”
“병아리는 자기 머리를 구멍에 집어넣고는 매가 자신을 못 볼 거라 생각하지. 하지만 매는 반드시 병아리를 낚아채.”
벨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와 친지와 모든 친구의 시체를 파묻어버려도, 죽음은 반드시 찾아온다……”
하지만 벨로린은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나 나무들이 늙어가는 소리를 듣는 것은 아니야. 삶 곳곳에 배어 있는, 삶과 하나인 죽음을 볼 수 있게 되려면 저 종족은 더 자라야겠지.”
“더 자랄 수 있다고 보나? 더 팔이 길어져 더 높은 별을 만질 수 있다고 보나?”
“난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꾸는 종족은 아름답다고 생각해. 그것이 아무리 우스꽝스럽더라도.”
벌쳐는 입을 다물었다. 그때 앞바다에서 포격이 시작되었다.
앞바다에서 일어난 포성은 멀리 다림 외성 쪽에 있는 다벨군에게도 똑똑히 들려왔다. 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해전이 벌어졌다면 강철의 레이디는 모두 필마온 기사단 쪽으로 돌려졌을 것이다.
“끝내 나오지 않는군. 서 기리우와 서 켈커는 심심하겠는데.”
공성전이 된다면 기병은 필요없다. 휘리는 서 기리우와 서 켈커에게 갑자기 나타날지도 모르는 리저드라이더를 대비하도록 명령한 다음 서 소팔라 에게 성벽 돌파를 명령했다.
서 소팔라는 검을 뽑아 휘두르며 외쳤다.
“사다리 들어올려!”
나란히 선 노예병들이 사다리를 들어올렸다. 서 소팔라는 한번 더 검을 휘둘렀고 그러자 궁병들이 앞쪽으로 걸어나왔다. 궁병들은 성벽 위쪽을 세심 하게 겨냥했고 잠시 후 일제 발사가 시작되었다.
까마득히 솟아오른 화살들이 성벽 위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닉스 나이트는 도끼 끝을 발로 차올린 다음 그것을 한 바퀴 돌려 방패처럼 머리 위를 막으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와 동시에 화살들이 억수처럼 쏟아져내렸다. 그러나 화살들은 돌에 부딪히는 요란한 소리를 낼 뿐 사람의 몸을 꿰뚫지는 못했다. 다벨군의 예상과는 달리 폴라리스는 성벽 위에 한 사람밖에 배치하지 않았고 그 한 사람은 갑주로 온몸을 두르고 있었다. 오닉스의 머리 위로도 몇 개의 화살이 쏟아져내렸지만 그것들은 모두 도끼나 갑주에 맞아 튕겨났다.
사정을 알 리 없는 다벨군은 즉각 다음 행동으로 들어갔다. 평원에서는 서 소팔라가 두 손을 입 앞에 모은 채 특유의 함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우 – 우우우우! 가자!”
노예병들은 야수와 같은 함성을 내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사다리를 어깨에 멘 채 맹렬히 달려드는 노예병들의 모습은 마치 수천 마리의 거대한 지 네가 한꺼번에 성벽으로 치닫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궁병들은 중장보병들과 자리바꿈하며 뒤로 물러났고 중장보병들은 노예병들의 뒤를 따라 천천히 전진했다. 사람의 파도라 할 만한 것이 쏟아져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벽 위에서는 화살 한 발도 날아오지 않았고 그래서 휘리는 의아한 기분을 느꼈다.
‘이놈들이 전투를 포기한 건가?”
물론 폴라리스는 전투를 포기하지 않았다. 노예병들과 함께 신나게 달리던 서 소팔라는 섬뜩한 기분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끼며 급히 멈춰 섰다. 긴장한 소팔라의 귀에 그가 요즘 들어 제일 싫어하게 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휘리리리 릭 !
“강철의 레이디! 어떻게?”
다벨군들은 모두 이 끔찍한 전조음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발작을 일으킬 듯한 얼굴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멈춰 섰다. 돌격 대형은 엉망이 되었고 백부장들은 갖은 욕설을 퍼부으며 병사들을 장악하려 했지만 다벨군들은 모두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팽창한 동공 속으로 하늘을 가르는 80여 개의 포환이 들어온 것은 그들의 혼란이 최대치에 도달했을 때였다.
그랜드파더호와 그랜드머더호의 포수들은 이미 연습해 본 격자 포격을 다시 한번 매끄럽게 펼쳐보였다. 고막을 날려버릴 듯한 괴성과 함께 80개의 화광이 초원에서 번득인 순간 그 모습을 보던 8군단의 수뇌진들은 모두 귀를 틀어막은 채 신음을 흘렸다.
투구와 마스크 때문에 충격음을 좀 심하게 받은 오닉스는 머리를 몇 번 흔든 다음 팔짱을 끼며 다시 초원을 내려다보았다. 초원에서는 패닉에 빠진 노예병들과 중장보병들이 달려왔던 방향을 완전히 거슬러 달려가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며 오닉스는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저 먼 곳에서는 휘리 노 이에스가 겁에 질린 말을 달래며 사납게 외쳤다.
“미친놈들. 터릿 갤리어스도 없이 필마온 기사단과 싸우겠다는 건가? 시간 끌기일 뿐이야. 비참해지고 싶다면 마음대로 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