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1567화
1567화. 산책은 이런 날에 가는 거란다. (2)
“저, 저거…….”
“장일소! 장일소입니다!”
장가계에 진을 친 사패련을 감시하던 개방도들이 두 눈을 부릅떴다. 눈앞의 광경을 믿기 힘들었다.
“저게 대체…….”
이를 데 없이 화려한 적포를 걸친 사내. 사패련의 련주 장일소다. 그가 선두에 서서 걷고 있고, 그 뒤로 만인방과 흑귀보의 전력들이 뒤따랐다.
사파는 머릿수가 많은 오합지졸이라는 말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한 기강을 자랑하는 군세였다.
하지만 개방도들은 그 군기에 경악한 게 아니다.
“왜 장일소가 선두에 서지?”
“정신이 나가기라도 했나?”
개방 거지들의 입에서 넋 나간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장일소는 련주다. 사패련의 중심인 동시에 사패련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이가 군의 선두에 선다는 건, 말 그대로 상식을 초월하는 짓거리다.
물론 사기 진작에는 당연히 좋을 것이다. 정말 위급한 상황일 때는 황제라 해도 과감하게 친정(親征)에 나서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러나 친정에 나선 황제도, 마지막 항전을 이끄는 우두머리도 군의 선두에 서지는 않는다. 그 하나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날 상황이니 굳이 가장 위험한 짓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가짜 아닐까요?”
“가짜?”
“장일소는 이미 한차례 금선탈각(金蟬脫殼)의 계(計)로 우리를 농락한 적 있지 않습니까? 저 장일소 역시 가짜일 수도…….”
“그,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럼 일단 그리 보고를…….”
보고를 하겠단 말에 한 거지가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려는데.
퍼억!
앞에 있던 거지의 머리가 그대로 터져 나갔다.
고개를 끄덕이던 거지의 얼굴에 뜨거운 피가 흠뻑 끼얹어졌다.
“어……. 어어?”
순간적으로 벌어진 참극에 거지는 얼빠진 소리만 멍하니 흘렸다.
콰드득!
그사이 그의 양 무릎을 무언가가 꿰뚫었다.
“꺽…….”
균형을 잃고 털썩 쓰러진 그의 동공이 뒤흔들렸다. 너무 당황하여 무릎을 꿰뚫린 고통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는 그의 눈앞에, 낯선 기물(奇物)이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가락지?’
한눈에 보아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비취를 정교하게 음각하여 문양을 낸 반지다. 이 살풍경한 땅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다.
그렇기에 거지는 이 모든 일을 벌인 이가 누구인지, 지금 자신이 왜 쓰러졌는지를 곧바로 알아챘다.
까라락.
그런 그의 추측에 확신을 실어 주듯, 등 뒤에서 섬뜩한 소음이 들려왔다.
바닥에 반쯤 박혀 있던 반지가 허공으로 둥실 떠오르더니 이내 그의 머리를 타 넘어 뒤쪽으로 날아갔다.
“흐으으음.”
동시에 묘한 음성이 들려왔다.
순간적으로 거지의 머릿속에선 이성과 본능이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당장 고개를 돌려 등 뒤에 있는 이를 확인해야 한다는 이성과, 그 얼굴을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다는 본능.
그 치열한 두 갈래의 싸움이 고통에 일그러진 거지의 얼굴을 더욱더 구겨 놓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다음에 벌어질 일을 정하는 건 그가 아니다.
“이제 확인이 되었니?”
친절한 목소리에 거지는 그대로 얼어붙은 듯 숨을 죽였다.
고개가 덜컥대며 뒤로 돌아갔다. 의지를 벗어나 조종이라도 당하는 모양새였다.
실로 낯설고도 익숙한 이의 모습이 보였다. 적포를 걸친 장일소가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궁금해했잖니. 내가 장일소인지 아닌지.”
“어…….”
장일소의 웃음이 더욱 환해졌다.
“이 정도면 대답이 됐니?”
피로 점점 젖어 가는 거지의 몸이 바람 앞의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기껏해야 죽는 게 전부이리라. 사패련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았을 때 이미 죽음 따위는 각오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이리 떨린단 말인가? 고작 죽는 게 전부인데.
장일소의 붉은 비단신이 느긋하게 앞으로 다가왔다.
사박.
바닥을 사뿐히 즈려 밟는 소리가 거지의 귓가에 천둥처럼 울렸다.
“아니면, 뭔가 더 필요할까? 네가 나를 장일소라고 확신하게 하는 데?”
“으……. 으어…….”
거지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간다.
그 모습을 감상하던 장일소가 돌연 깔깔 웃었다.
“하하하핫! 얼굴이 너무 우습구나. 하하하하핫! 경극 배우 같잖니!”
정말로 재미있는 걸 본 사람처럼 소리 높여 웃는다.
바로 앞에 머리 잃은 시신이 놓여 있지 않았다면 그저 즐겁고 평온한 광경으로 여기고도 남을 만큼 맑은 웃음이었다.
그러나 시신은 아직 식지 않고 피를 뿜고 있다. 실로 광기 넘치는 섬뜩한 광경이다.
시작할 때 그랬던 것처럼 돌연 웃음을 뚝 그친 장일소가 손을 뻗어 쓰러진 거지의 멱살을 잡아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멀리서 볼 때도 괴기했지만, 이렇게 코앞에서 바라보는 장일소는 멀리서 보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기이하다.
여인조차 과하다 할 만큼 희게 분을 바른 피부, 피처럼 붉은 입술, 내리깔린 길고 짙은 속눈썹, 그리고…….
거지의 몸을 부르르 떨린다.
그 속눈썹 아래로 보이는 눈.
맹수 같기도, 여인 같기도, 또 어쩌면 아이 같기도 한 그 요사한 눈이 칼날처럼 온몸을 찌르는 듯했다.
“말해 보렴.”
“흐으…….”
“아직 뭔가 더 필요하니?”
거지가 격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간절함이 실려 더욱 격렬한 움직임이었다.
“그렇지?”
장일소가 빙그레 웃었다.
“알지. 다 안단다. 너희가 나를 의심한 이유는 나 때문이잖니? 내가 저지른 일이 있으니 어쩔 수 없지. 그런데…… 글쎄. 아무리 그렇다지만, 의심을 받는다는 게 기분이 좋을 순 없단다. 그렇지?”
거지는 자신이 무슨 말을 듣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동의를 구하니 급히 그렇다 할 뿐이다.
“착한 아이구나.”
그리고 그의 의도는 다행히 장일소의 마음에 흡족하였던 모양이다.
“그래. 이젠 내가 장일소라는 걸 믿겠지.”
나긋하게 말한 장일소가 거지의 멱살을 쥐고 있던 손을 놓아 주었다. 그리고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가 보렴.”
순간 거지는 제 귀를 의심하는 듯 멍하니 장일소를 올려다보았다.
“왜 그러니?”
“정말로 가, 가도……?”
그러자 장일소가 혀를 차며 작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걸인에겐 흥미가 없단다.”
영문 모를 말이었다. 장일소가 덧붙였다.
“가진 것도 없고, 빼앗을 것도 없는 놈을 굳이 건드려 뭐 하겠니? 내 손만 더러워지지.”
그는 거지의 멱살을 쥐었던 것조차 영 찝찝하다는 듯 손을 털었다.
“그러니 가 보렴.”
“…….”
“흐음. 혹시 가기 싫으니?”
“아, 아니…… 아닙니다! 감사…….”
거지가 말을 채 다 잇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그도 정파인데, 사파의 수괴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이 상황이 순간 어처구니없어 말문이 막힌 것이다.
혼이 죄 빠진 사람처럼 몸을 돌리며 몸을 일으킨 거지는 순간 다시 균형을 잃으며 고꾸라졌다.
“억!”
너무 정신이 없어 제 무릎이 꿰뚫렸다는 사실도 잊은 것이다.
“저런, 저런. 이리 정신이 없어서야. 쯧쯧.”
뒤로 돌아섰던 장일소가 흘끗 돌아보며 혀를 찼다.
“조심해야지. 걷지도 못하니 빌어먹을 수 있는 곳까지 가려면 고생할 텐데 말이다. 하긴…… 그래도 개방 놈이니 두 팔로도 잘 갈 수 있으려나?”
겁에 질린 거지가 필사적으로 팔을 뻗어 땅을 움켜쥐고 나아가려 할 때였다.
“그러고 보니…….”
거지의 피가 일순 차게 식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장일소의 목소리가 묘하게 달라졌다는 걸 본능적으로 눈치챈 것이다.
거지는 덜덜 떨리는 머리를 억지로 돌려 장일소를 돌아보았다. 몸을 돌려 가려던 장일소가 시선만 흘끗 돌아보고 있었다.
조금 전과는 달리, 한없이 서늘한 눈길이었다.
“네게도 아직 남은 것이 있었네.”
파아앗!
무언가가 엎드린 거지의 등판을 꿰뚫었다.
“꺼……헉. 으윽…….”
거지의 입에서 역류한 피가 울컥울컥 쏟아졌다.
아까 보았던 장일소의 반지가 다시 날아들며 그의 단전을 꿰뚫은 것이다.
물론 단전을 꿰뚫린 정도로 사람은 죽지 않는다.
하지만 더는 무공을 쓸 수 없다. 무학을 잃고 양다리를 잃은 이를 세상이 뭐라 부르겠는가?
“거지는 거지다워야지. 안 그렇니?”
벌레처럼 꿈틀대는 거지를 일별한 장일소가 빙긋 웃으며 몸을 돌렸다.
“괜히 시간을 끌었구나.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테니 서둘러 가야지.”
“예!”
신음하는 이를 버려두고, 장일소가 다시 발을 내디딘다.
그가 있던 곳엔 이제 머리 없는 시체 한 구와, 목숨 외 모든 것을 잃은 사람 하나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군사. 괜찮겠습니까?”
“무엇이 말이냐?”
부관이 다소 걱정 어린 어투로 호가명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련주께서 선두에 서시는 것 말입니다.”
호가명이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보자 부관이 떨떠름하게 다시 입을 열었다.
“련주께선 누구보다 강하시니 그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지만…… 굳이 본인이 진짜 련주라고 저리 알리실 필요까지야 있을까 싶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좋지 않은 대응 같습니다. 차라리 적에게 혼란을 주는 편이…….”
호가명의 눈빛이 스산하게 가라앉는다. 이를 알아채지 못한 부관이 말을 이었다.
“아니면 차라리 지금이라도 저 거지 놈의 숨통을 끊어 버리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저놈의 입에서 나올 말이 어디로 들어갈지야 뻔한데, 차라리 죽여서 정보를 차단하는 게 나을 듯합니다.
“일부러 살려 주는 것이다.”
“예? 어, 어째서…….”
“네 말대로 저들에게 전하라고 살려 준 게지. 이곳에 련주께서 계심을. 그 련주가 결코 가짜가 아님을.”
“대, 대체 왜 그런 이득 없는 짓을…….”
호가명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부관을 직시했다.
“사람이 왜 죽는 줄 아나?”
“……예?”
“주제넘는 짓거리를 해서지. 제가 똑똑한 줄 알고 말이다.”
그 말에 부관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죄, 죄송합니다, 군사.”
“련주께서 너를 살리셨다. 그분 앞에서 피를 보이는 불경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넌 지금 내 손에 목이 잘렸을 것이다.”
살기조차 어리지 않은 음성이다. 하늘을 두고 넓다고 말하는 것처럼, 너무도 당연한 말투. 그것이 부관의 심장을 더욱 오그라들게 했다.
호가명은 차가운 시선을 거두고 금세 관심을 껐다. 그리고 선두에서 걷는 장일소를 물끄러미 보았다.
“전장에 나설 때 련주께서 왜 붉은 옷을 입는지 알고 있느냐?”
“……거기까진 잘…….”
호가명은 잠시 침묵하며 검은 용이 새겨진 장일소의 장포를 보았다.
‘알 수 없겠지.’
– 방주! 놈들이 방주를 노리고 있습니다. 피하셔야 합니다!
– 하하핫! 그래? 나를 노린다고? 그거 듣던 중 좋은 소식이로구나.
수도 없는 전장을 겪어 왔다.
때로는 살아남았고, 때로는 살아남아졌다.
하지만 호가명은 똑똑히 기억한다.
– 방주! 어째서……!
– 이래야 저놈들이 내가 어디에 있는지 똑똑히 알 것 아니냐? 오라고 해라. 목적이 분명해지면 사람은 눈이 머는 법이지.
승냥이들이 들끓는 전장 한가운데서, 장일소는 시신에서 벗겨 낸 붉은 장포를 걸친 채 광소했다. 그 두 눈에 일렁이던 짙은 광기를,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날, 두 사람은 피할 수 없으리라 여겼던 죽음의 밑바닥에서 기어 올라왔다.
이후 장일소는 항시 붉은 장포를 걸치거나, 피에 물들어 붉게 젖을 흰 장포를 걸쳤다.
어떤 순간에도 적들이 그를 확연히 알아볼 수 있도록.
“저들의 눈에도 분명히 보이겠지.”
저 붉은 장포는 상대가 고개 돌려 외면하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
이제 세상은 이곳에 장일소가 있음을, 그 장일소가 자신들의 세상을 불태우러 오고 있음을 강제로 깨달아야 할 것이다.
과연 그렇게 되어도 지금처럼 시선을 땅에 처박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외면할 수 있을까?
호가명의 어둑한 눈이 차게 빛났다.
‘바로 여기 있다. 너희가 그토록 노리던 이가. 너희의 세상을 불태울 이가.’
장일소의 붉은 장포가 바람에 펄럭인다. 곧 핏빛으로 뒤덮일 푸른 하늘을 암시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