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1587화
1587화. 그럼 대체 누구란 말이냐? (7)
콰드드득!
가슴이 통째로 뜯겨나가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다.
하지만 법정은 제 가슴을 내려다볼 수조차 없었다. 시선을 돌리는 순간, 저 권(拳)이 가슴이 아닌 목을 물어뜯기 위해 날아들 테니까.
비릿한 피 냄새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다.
실로 낯설다 못해 이질적인 고통에, 법정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러나 고통에 겨워할 시간도 없다.
그는 장일소의 팔을 후려치며 밀어 내었다. 즉시 연타를 하려는 듯 허초를 날리고는, 일순 몸을 뒤로 띄웠다. 장일소의 허를 찌르고 이 상황을 수습할 만큼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나쁘지 않은 임기응변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장일소가 그런 수에 놀아날 이가 아니란 것이었다.
파핫.
장일소는 곧장 대기를 찢어발길 기세로 법정에게 쇄도했다.
창염투살(蒼炎鬪殺).
장일소에게 패군(覇君)이란 별호를 안겨 준 그의 독문무공이 극성으로 전개된다.
전신을 휘감은 새파란 강기가 마치 지옥의 불꽃처럼 들끓었다. 금방이라도 법정을 뒤덮고 태워 버릴 듯했다.
“이익……!”
늘 불자답던 그가 드물게 악을 쓰며 주먹을 내질렀다.
얼굴은 마귀처럼 일그러졌으나, 주먹이 발하는 불광(佛光)은 여전히 상서로웠다.
아라한신권(阿羅漢神拳)!
마귀를 멸(滅)하는 아라한의 권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감당하기에는 앞에 선 마귀는 너무도 강대했고, 또한 집요했다.
“하하하핫!”
장일소가 광소를 터뜨리며 수십 개의 권을 말 그대로 뿜어냈다. 눈으로 따라가기도 힘든 속도였다.
푸른 강기는 금빛 권력이 채 뻗어지기도 전에 공간을 침투해 들어갔다.
강대한 무학은 반드시 그 힘을 완전히 뻗어 낼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장일소의 권은 법정의 내공이 권력으로 전환될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절반도 채 전개되지 못하고 허물어지는 제 권력에, 법정은 당혹을 숨기지 못했다. 뻗었던 손을 급히 회수하고, 날아드는 권에 정면으로 주먹을 마주 박아 넣었다.
쾅! 콰콰쾅!
장일소의 주먹과 법정의 주먹이 연이어 충돌했다.
그 순간 법정은 느꼈다. 장일소의 권이 교묘하게 그를 아래에서 위로 밀어 올리고 있음을. 결코 과하지 않게, 하지만 또 분명하게.
‘똑같은 수작에 또 당할 만큼 내가 우스워 보였느냐!’
법정이 내력을 단숨에 끌어 올렸다.
또 발이 땅에 닿지 못하게끔 만들 셈이라면, 그 의도를 통째로 부숴 버리면 그만이다!
“타하아아압!”
우렁찬 기합과 함께 법정의 나한권이 장일소의 머리를 향해 쏘아졌다. 산을 쪼갤 기세로, 장일소가 감히 받아치지 못할 만큼의 가공할 내력을 실은 채!
파아앗!
하나 그 순간, 법정의 주먹을 향해 정면으로 쇄도하던 장일소의 주먹이 한 마리 뱀처럼 비틀리며 법정의 주먹을 훑고 그의 팔뚝을 휘감았다.
순간 기경한 법정이 눈을 부릅떴다.
‘이 무슨……!’
변칙적인 수라서 놀란 게 아니다.
우득! 우드드득!
법정의 팔목을 휘감은 장일소의 팔이 뒤틀렸다.
당연한 일이다. 맞받아치지 않는다고 해서 주먹에 실린 내력이 사라지는 건 아니므로. 장일소는 팔을 뒤튼 채로 그 어마어마한 내력을 고스란히 받아 낸 셈이다.
장일소의 얼굴엔 변화가 없었지만, 팔은 비명을 질러 댔다.
콰드득!
끔찍한 소리와 함께 뼈가 부려져 나갔고, 순간적인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풍선처럼 부풀었던 살이 터지며 피가 폭발하듯 내뿜어졌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장일소의 팔은 법정의 팔을 단단히 옭매었다. 아주 단단한 잠금쇠 같았다.
“패군!”
법정이 고함을 크게 내지르며, 얽힌 우수 대신 좌수에 관음수(觀音手)의 공력을 담아내었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수십 개의 장영이 장일소의 몸으로 쏟아졌다.
다른 이도 아닌 법정이 뿜어낸 장력이다. 다급히 전개했다고는 하나 그 안에는 만 근도 능히 으스러뜨릴 거력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장일소가 얽힌 팔을 강하게 당겼다. 법정의 자세가 일순 흐트러지며 쏘아 낸 장력의 방향이 뒤틀렸다.
하지만 그러고도 장일소와 다른 방향으로 날아간 건 고작 절반. 남은 절반의 장력은 고스란히 장일소의 전신을 향해 쏟아져 왔다.
“하하하핫!”
장일소의 두 눈에 광기가 휘몰아쳤다.
화아아악!
장일소를 둘러싼 염강이 사람을 집어삼키고 살라 먹는 불길처럼 휘몰아쳤다. 작렬하는 염강(炎鋼)을 전신에 휘감은 장일소는 날아드는 장력을 향해 되레 제 몸을 들이밀었다.
쾅!
이윽고, 수십 개의 장영이 일시에 장일소의 전신을 강타했다.
거대한 망치로 금종(金鐘)을 때리는 듯한 수십 번의 폭음이 하나로 겹쳐 울렸다.
제아무리 강기로 몸을 둘렀다고 해도 그만한 힘을 온전히 막아 낼 수는 없는 법. 고통만으로도 숨이 끊기고 남을 충격이 장일소의 전신을 강타한다.
그러나 장일소는 입과 코로 시커먼 피를 흘리면서도 법정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여전히 한쪽 팔을 법정의 팔에 얽은 채로 말이다.
쾅!
장일소의 팔꿈치가 법정의 명치에 박혔다.
마치 거대한 강철의 벽을 후려친 듯한 반발력. 내력을 실어 친 팔꿈치가 되레 부러질 것 같은, 가공할 반탄진기였다.
그럼에도 장일소는 개의치 않고 연신 팔꿈치를 휘둘러 법정의 가슴과 명치를 연이어 강타했다.
쾅! 쾅! 쾅! 쾅!
법정의 입에서 피가 울컥 터져 나오며 장일소의 얼굴로 쏟아졌다. 그가 흘린 피와 그가 흘리게 한 피로 얼굴을 온통 붉게 물들인 장일소가 두 눈에서 새파란 살기를 쏟았다. 그리고 법정의 명치를 다시 한번 강하게 후려쳤다.
터어어엉!
그 순간 법정이 손바닥으로 장일소의 턱을 올려 쳤다. 장일소의 고개가 부러질 듯 뒤로 꺾였다. 입술 새로 뿜어진 피가 허공에 솟는다.
“끅!”
그 찰나, 장일소의 손가락이 법정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내력을 공세로 전환한 한순간, 그 짧은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든 손가락이 법정의 갈비뼈 사이를 꿰뚫으며 움켜잡았다.
“아아아아!”
콰앙!
법정이 주먹으로 장일소의 가슴을 연타했다. 마치 그를 으스러뜨려 이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듯이.
그리고.
콰앙!
법정의 눈앞이 일순 새하얘졌다. 그리고 이내 하늘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별이 쏟아질 듯 박힌, 시커먼 하늘이.
‘뭣?’
순간적으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법정의 얼굴이 멍해졌다. 그를 현실로 되돌린 건 턱에서 전해지는 끔찍한 고통이었다.
장일소가 머리로 그의 턱을 그대로 들이받아 버린 것이다.
“이…….”
뿌드드득.
법정이 험악하게 이를 갈았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분노가 끓었다. 자신을 이 지경까지 몰고 온 적에 대한 증오가 넘실넘실 번지며 ‘자비’를 불태웠다.
“노오오오오오옴!”
쿠우웅!
법정이 장일소의 배를 곧장 걷어찼다.
초식이고, 운용이고를 논할 것도 없는, 말 그대로 발길질이었다. 하지만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 몸부림에 가까운 일격은 장일소에게 확실하게 먹혀들었다. 장일소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간 것이다.
양손의 자유를 얻어 낸 법정이 노기를 단 한 올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뿜어내었다.
“흐아아아아아아!”
말 그대로 폭풍과도 같은 연격.
본디 일 권, 일 권에 힘을 담아 상대를 내리눌러야 할 대력금강권(大力金剛拳)이 그 무학의 본질과는 전혀 다른 운용으로 장일소를 갈기갈기 찢어 놓을 듯 뿜어졌다.
“아아아아아!”
그걸로도 만족하지 못한 듯, 법정은 괴성을 지르며 가슴 앞에 양손을 모으며 기묘한 수인(手印)을 맺고 앞으로 강하게 내질렀다. 그의 손이 만들어 낸 형태는 금빛을 넘어 선홍빛에 가까운 강기를 내뿜었고, 이내 장일소를 향해 쏘아졌다.
사자모니인(獅子牟尼引)!
보리수 아래서 수련하던 석가가 유혹해 오는 마귀를 멸하기 위해 창안했다는 절예(絶藝).
유래에 걸맞게 오직 상대를 멸(滅)하는 위력을 지녔고, 불문무학답지 않은 짙은 살기로 인해 익힌 이들조차 사용을 꺼린다는, 칠십이종절예 중에서도 손꼽히는 상위 무학.
법정의 눈에도 그 선홍빛 강기가 비치며 일렁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땅이 터져 나가고, 부서진 파편들이 포탄처럼 사방으로 쏘아졌다. 흙먼지 구름이 하늘을 뒤덮을 만큼 솟구쳤다.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 냈다기에는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허억! 허억! 허억!”
법정이 거친 숨을 헐떡거렸다. 전신에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린다. 피와 땀으로 젖은 그의 승복은 이미 이전의 빛을 잃은 지 오래였다.
손끝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그가 이런 낭패를 겪는단 말인가?
장일소와 그의 무학은 적어도 한 수 이상의 차이가 난다. 방심만 하지 않으면 그리 어렵지 않게 상대를 제압할 수 있어야 정상이란 말이다.
그런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승기는 분명 그에게 있다. 여전히 그렇다.
하지만 이건 도무지 승기라고 할 수 없었다. 그가 쏟은 피와 폐가 터지도록 가쁜 숨, 그리고 떨리는 손끝만 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이 꼴을 보는 이들이 어찌 생각하겠는가? 그가 흘리는 피를 두고 뭐라 말할 것인가?
“이…….”
증오와, 적개심,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다시 활활 타올랐다.
“패구우우우우우운!”
법정의 입에서 지축을 뒤흔드는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달아오른 전장의 열기마저 순간 얼어붙게 할 정도로 가공할 사자후였다. 피어올랐던 먼지구름이 그 기세에 빠르게 밀려 나갔다.
이 정도로 죽을 리 없다.
저 끔찍한 놈이 겨우 이 정도로 죽을 리는 없다. 그러니 확실하게 그의 손으로 마무…….
“우, 우욱!”
그 순간, 법정은 심한 구역감이 치밀어 입을 틀어막았다. 아찔한 어지러움이 그를 엄습해 왔다.
‘독(毒)?’
이건 분명 중독(中毒) 증상이다.
하지만 대체 언제?
“으…….”
법정의 시선이 제 몸을 훑었다. 땀과 피로 엉망이 된 승복 한쪽이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다.
“이, 이런…….”
조금 전 장일소의 손가락이 꿰뚫고 들어갔던 옆구리. 그곳의 의복이 짙은 자줏빛으로 물들어 있다. 그 짧은 순간 법정의 몸에 독을 쑤셔 박은 것이다.
“하찮은 수를……!”
법정이 으득 이를 갈았다.
그와 같은 내력을 지닌 고수에게 독이란 고작 한순간 내력을 소모시키는 잡기에 지나지 않는다.
법정은 즉시 내력을 돌려 몸속에 흐르는 독기를 불태웠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는다고?’
그의 몸을 타고 흐르는 독기는 태워도 태워도 또다시 육체를 잠식해 들어갔다.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법정의 두 눈이 지진이라도 난 듯 떨렸다.
“무…… 무슨……!”
법정이 반사적으로 제 옆구리를 움켜잡았다. 그러자 지금껏 고통에 가려 느끼지 못했던 강한 이물감이 느껴졌다.
장일소의 손이 파고들었던 옆구리에서 느껴질 만한 이물감이라면…….
“가락…지…….”
“정답이란다.”
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주인의 몰골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였다.
귀신처럼 산발한 장일소가 어느새 몸을 일으켜 법정을 응시하고 있었다.
상의의 옷자락은 뜯겨 나가 흉터투성이 상반신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고, 그 상반신은 곳곳이 검붉었다.
한쪽 팔은 부러진 채로 괴이한 각도로 뒤틀려 여전히 피를 줄줄이 흘리고 있었다.
정작 장일소는 그런 상처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축 늘어진 팔을 들어 올리더니 반대 손으로 군데군데 부러진 뼈를 맞춰 나갔다.
“내가 무척…….”
뚜둑.
“아끼는 물건이지.”
뚜둑.
소름 끼치는 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뒤틀렸던 장일소의 팔이 조금씩 펴진다.
“어때? 좋은 방법이지 않니?”
“……윽.”
법정이 이를 악물었다. 너무 강하게 맞물린 나머지 금이 가고 말 정도였다.
으득!
그의 덜덜 떨리는 손은 옆구리에 뚫린 구멍을 헤집고 있었다. 하지만 반지는 손끝에 걸리고도 좀처럼 빠져나오지 않았다. 끔찍한 고통만을 더할 뿐.
“흐음. 너무 쉽게 생각하는구나. 그리 쉬울 거면 그 고생도 안 했지?”
장일소가 부드럽게 미소를 흘렸다. 망가진 얼굴로 흘리는 미소는 섬뜩하기만 했다.
“작살처럼 갈퀴가 있거든. 한동안 거기에 박힌 채로 독을 흘릴 거란다. 딱히 뭔가 하지는 못하겠지만, 내력을 지속적으로…….”
“아미……타불!”
말을 멈춘 장일소가 순간 눈썹을 꿈틀했다.
법정이 제 옆구리에 장심을 대더니 격공섭물로 옆구리 안의 반지를 움켜잡은 것이다. 이윽고,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반지를 강제로 뽑아내었다.
우두두둑!
그 과정에서 갈비뼈가 부러졌고, 갈퀴에 걸린 살이 말 그대로 한 움큼 뽑혀 나왔다. 실로 지독한 광경이었다. 장일소마저 일순 눈살을 찌푸릴 정도였다.
“이런, 이런……. 과격하기도 하지.”
“흐으……. 훅. 장…일소……!”
장일소를 노려보는 법정의 두 눈엔 벌건 핏발이 서 있었다. 원독에 모든 것을 내맡긴, 복수하려는 자의 눈빛이었다.
“눈빛이 아주 좋아졌구나.”
장일소가 즐겁게 웃으며 법정을 향해 걸어갔다.
법정의 저 상처까지 포함한다고 해도, 지금까지 장일소가 훨씬 더 큰 손해를 보았다. 그건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잘 왔다. 이게 전장이고, 이게 싸움이란다. 너도 이제야 여기 선 거지. 고고한 자는 설 수 없는 땅에.”
“장일소오오오오오!”
법정이 문답무용으로 장일소를 향해 쇄도했다. 자비와 불법은 이미 잊었다. 그를 이끄는 건 오로지 분노였다.
그렇기에 법정은 보지 못했다.
그가 달려드는 찰나, 장일소가 다른 곳을 힐끗 보았단 사실을.
전투, 아니 이 전쟁이 종반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를 향해.